1.
근래 들어 상류층의 삶에 대한 전시와 과시·관음이 기이할 정도로 문화 전반을 뒤덮고 있다고 느낀다. TV 프로그램들도 예전에도 이런 프로그램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채널을 돌리는 곳마다 온통 연예인들이나 그 밖의 샐럽들의 화려한 삶을 보여주기에 여념이 없다.
당연히 TV만 그런 건 아니다. 오히려 이런 현상은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들 어찌나 저렇게 잘 사나 싶을 정도로 한강이 보이는 집이 없는 사람이 없는 것 같고, 몇백만 원 하는 명품은 기본 세팅으로 들고 있는 것만큼 무수한 소비와 과시와 전시의 장이 펼쳐지고 있다. 이에 질세라, 무소유를 설파하던 종교인마저 그런 대열에 합류해서 삶을 과시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사람이 어느 정도 자기의 행복을 드러내고, 그 행복을 타인들로부터 확인받고, 그럼으로써 조금 더 행복해지는 일이란 본능과도 같은 것이다. 나는 친한 사람들끼리 ‘불행 배틀’을 하는 것보다 서로의 행복한 지점에 관해 이야기하고 북돋아 주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근래 보이는 ‘행복 경쟁’은 단순히 실제로 나의 행복과 타인의 행복을 공유하면서 서로가 더 진정한 행복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관계 맺기의 과정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야말로 자신이 얼마나 상류층의 이미지를 소유하고 있는지 과시하는 경쟁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2.
문제는 실제로 상류층들만이 그런 과시에 몰두하는 걸 넘어서서, 상류층이 아닌 사람들도 자신을 그런 ‘상류층 이미지’로 전시하기만을 좋아하게 되어간다는 점이다. 원룸에 살면서 5년 할부로 산 벤츠 자동차키를 자랑한다든지, 매일 편의점 도시락을 먹더라도 호캉스를 떠난 하루를 전시한다든지, 값비싼 장소나 아이템을 자랑하는 일에 상당히 몰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온 세상이 정말로 그런 풍요로움으로만 넘쳐나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렇지 못한 삶의 측면들은 잘못된 것 같고, 나아가 그런 화려한 이미지에 속한 삶을 살고 있지 못하다는 피해 의식도 양산하는 것 같다.
세상을 뒤덮고 있는 이미지들은 거의 다 그런 이미지들이다. 부부 합쳐 연봉 1억쯤 되는 가정의 10억 내외 부동산 이야기, 억 단위로 돈을 벌었다는 재테크 고수들의 이야기가 온 매체를 뒤덮고 있다. 부를 벌어들인 여러 인플루언서는 더욱 주목받으며 자신을 드러낸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삶이 많은 것처럼 보여도, 전체의 10% 내외를 결코 넘지 못할 것이다. 나머지 삶은 숨어 있고 좌절하며, 피해 의식에 휩싸여 있고, 어두운 방에서 화려한 이미지를 구경하는 삶으로 남아 있다.
3.
이런 분위기 속에서, 소리 죽여 보이지 않는 체념이 확산된다. 좌절과 실패는 숨겨야 할 것이고, ‘나’를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는 내면의 압박이 퍼져나가며, 우울증과 상대적 박탈감의 그늘이 심화된다. 소외된 사람들이 무덤처럼 쌓여간다.
올해만 해도 40만 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었다. 특히, 애초에 고용이 불안정했던 서비스업이나 기타 자영업자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 자산 격차도 매우 심각해지고 있다.
세상이란, 결코 눈에 보이는 것처럼 밝고 화려하지 않다. 이런 시대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으나, 과연 누구에게 이런 문화가 좋은 것인지 묻고 싶어진다.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시대 분위기 속에서 피해 의식, 좌절, 체념, 포기, 절망만이 괴물처럼 커지고 있는 사회가 아닌지 참으로 의심스럽다.
원문: 정지우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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