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그리고 노벨문학상 이야기
1910년 12월 10일 오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노벨상 첫 시상식이 열렸다. 알프레트 노벨(1833~1896)의 5주기를 맞아 3,150만 스위스 크로네(약 920만 달러)에 이르는 거액의 상금은 5개 부문 6명의 수상자에게 돌아갔다.
5개 부문 6명의 수상자 중 알 만한 사람은 물리학상을 받은 엑스(X)선을 발견한 뢴트겐((Wilhelm Conrad Röntgen)과 평화상을 수상한 프레데리크 파시(Frederic Passy, 국제평화연맹 설립자)와 공동 수상한 적십자 창설자인 앙리 뒤낭(Jean-Henri Dunant)이 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알려진 이 역사적인 상의 첫 시상은 생각보다 어수선했던 모양이다. 형식도 그랬지만, 내용으로도 그리 개운하지는 않았던 듯하다. 무엇보다도 문학상 수상 관련해서 이런저런 말이 많았는데, 이는 지금도 비슷하게 재연되는 문제다.
문학상은 프랑스 시인 쉴리 프뤼돔(Sully Prudhomme)에게 돌아갔다. 강력한 후보였던 에밀 졸라는 노벨이 평소 좋아하지 않아서 배제됐다는 말이 있었고, 스웨덴 작가들은 톨스토이에게 상을 줘야 한다며 반기를 들기도 했다. (결국 졸라와 톨스토이는 끝내 이 상을 받지 못했다)
노벨상은 스웨덴의 화학자이자 다이너마이트의 발명가인 알프레트 노벨의 유언에 따라 해마다 인류의 문명 발달에 학문적으로 이바지한 사람에게 시상한다.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학·의학상, 문학상, 평화상 등이 있다. 1969년에는 알프레트 노벨을 기념하는 스웨덴 국립은행 경제학상이 만들어졌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으로 엄청난 부를 쌓은 노벨은 자기 발명품이 군사적으로 사용하는 일이 늘어나자 심기가 불편해졌다. 그의 형이 죽었을 때 프랑스의 한 신문은 실수로 노벨의 부고 기사를 실었는데, 이 기사에서 그는 ‘죽음의 상인’이라고 불렸다. 노벨은 이 일에서 큰 충격을 받았고, 곧 노벨상을 만든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노벨은 자기 유산의 94%인 3200만 스웨덴 크로나(340만 유로, 440만 달러)화를 노벨상 설립에 남겼다.
노벨상 수상자는 금으로 된 메달과 표창장, 그리고 노벨 재단의 당해 수익금에 따라 달라지는 상금을 받는다. 노벨상은 수상 대상자가 이미 고인이 된 경우에게는 수여하지 않지만, 수상자 선정 후 수상 전에 사망한 사람에게는 시상한다. 최초로 사후 노벨 평화상을 받은 이는 1961년 다그 함마르셸드다.
서구 중심 운영
노벨문학상은 1901년부터 시행되어 백 년을 넘겼지만 정작 아시아권은 수상자가 고작 다섯 명에 불과하다. 아프리카도 마찬가지다. 남아공의 백인을 포함해 네 명이 다다. 당연히 유럽이 압도적이고, 미국도 열 명이 넘는 수상자를 냈다. 역시 주류 세계의 이해가 일정하게 반영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아시아에서 노벨문학상을 처음으로 받은 수상자는 1913년 인도의 시인 타고르였다. 이어서 일본의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 오에 겐자부로(1994)가 각각 수상했다. 2000년에는 중국의 극작가·소설가인 가오싱젠이, 2012년에도 중국 소설가 모옌이 받았다. 결국, 동아시아 삼국 가운데선 우리나라만 수상자를 못 낸 셈이다.
톨스토이, 릴케, 제임스 조이스도 받지 못한 노벨상
노벨문학상 수상 여부가 그 나라 문학 수준을 판단하는 잣대가 될 수는 없을 듯하다. 이견이 있을 순 있겠지만 나는 우리 문학의 수준이 세계에 비겨 그리 처지는 수준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노벨상 수상자를 내지 못한 것은 독서 인구 따위의 문학적 지표가 취약하다던가, 체계적 번역으로 해외 시장에 알려지지 못했다든가 하는 요인들과 함께 ‘며느리도 모른다’는 노벨상의 선정 기준에 말미암은 것으로 보는 게 온당할 듯싶다.
세계적으로 이름 높은 작가 가운데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한 작가들이 적지 않은 것도 이 상의 공정성과 선정 기준에 의문을 갖게 만드는 부분이다. 그 자신 노벨문학상 수상자(1982)였던 작가 가브리엘 마르케스는 ‘노벨상의 환영’이란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위대한 작가들은 노벨상을 받지 못하고 죽었다고들 말한다. 이것은 과장된 말이기는 하지만, 그리 과장됐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레오 톨스토이는 1910년 82세의 나이로 죽었는데 그 해는 노벨상이 시작된 지 10년째 되는 해였다. 그의 대작은 이미 전 세계에 걸쳐 수없이 반역되고 재판을 거듭하면서 45년간의 영광을 누리고 있었으며, 그 어떤 비평가도 그 작품이 영원히 사람들의 뇌리에 존재하리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고 있던 때였다.
반면에 톨스토이가 살아 있을 당시 노벨상을 받았던 열 명의 작가 중에서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유일한 작가는 영국인 키플링뿐이다.
- 노벨상의 환영(마르케스, 『꿈을 빌려드립니다』, 하늘연못, 2006) 중에서
노벨문학상은 생존 작가에게만 수여하는 상이다. 따라서 살아 있을 때만 수상할 수 있다. 어느 해던가,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고은 선생 댁 근처에서 밤을 새운 기자들이 다음날 아침 예측이 실패한 것을 확인하고 선생에게 ‘오래 사시라’고 축원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세계적 문호 톨스토이가 노벨상을 타지 못한 것은 그가 너무 일찍 세상을 떠서가 결코 아니다. 스웨덴 한림원의 고명한 종신회원들은 이 위대한 작가의 문명을 일찍이 듣지 못했던 모양이다. 마르케스가 말한 대로 톨스토이를 비켜 간 시기(1901∼1910)의 노벨상 수상자 이름을 일별해 보자.
- 쉴리 프뤼돔(1901)
- 테오도어 몸젠(1902)
- 비에른스티에르네(1903)
- 프레데리크 미스트랄, 호세 에체가라이(1904)
- 헨리크 시엔키에비치(1905)
- 조수에 카르두치(1906)
- 러디어드 키플링(1907)
- 루돌프 크리스토프(1908)
- 셀마 라겔뢰프(1909)
- 파울 요한 루트비히 폰 하이제(1910)
마르케스의 말마따나 눈에 익은 이름은 ‘정글북’의 작가 키플링뿐이다. 나머지 작가의 이름은 생소하다 못해 그들이 시인인지 소설가인지도 구별하기 힘들 지경이다. 마르케스의 힐난은 계속된다.
이후 16년 동안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다섯 명의 작가가 상을 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1916년 헨리 제임스, 1922년 마르셀 프루스트, 1924년 조지프 콘래드, 그리고 같은 해에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숨을 거두었다. 또한, 이 기간에도 천재들의 반열에 있던 작가들이 있었다. 상을 받지 못하고 1936년에 죽은 길버트 체스터턴이나, 세계문학의 흐름을 바꾸었던 『율리시스』의 저자이자 1941년에 죽은 제임스 조이스가 그들이다.
(또한, 노벨상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던 다른 작가들도 있었다. 가령 토머스 하디, 올더스 헉슬리, 버지니아 울프, 몽테를랑과 앙드레 말로 등을 들 수 있다.)
- 노벨상의 환영(마르케스 『꿈을 빌려드립니다』, 하늘연못, 2006) 중에서
‘하느님의 정의도 어찌할 수 없는’ 수상자 결정
마르케스의 신랄한 지적은 노벨상 수상자를 결정하는 스웨덴 학술원으로 옮아간다. 그는 “매년 10월 초가 되면 하나의 환영이 위대한 작가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그것은 다름 아닌 노벨문학상이다.”이라고 허두를 떼더니 노벨문학상 선정 과정의 비밀주의를 넌지시 빈정댄다.
그러나 문제는 최종 결과가 후보의 고유 권리와 상관있는 것이 아니며, 심지어는 하느님의 정의도 어찌할 수 없고, 단지 스웨덴 학술원 위원들의 헤아릴 수 없는 의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노벨상 선정이) 어떻게 진행되며, 어떻게 합의를 보고, 무엇이 그들의 생각을 결정짓는 진정한 타협점인지는 아직도 우리 시대에 가장 잘 보관된 비밀 중의 하나이다. 그들의 범주는 예측 불가능하고, 모순적이며, 심지어는 전조(前兆)마저도 무시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결정은 비밀이며, 공동 책임이고 번복 불가능한 것이다.”
- 노벨상의 환영(마르케스, 위의 책) 중에서
마르케스가 윗글을 쓴 것은 아마 1980년대인 듯하다. 윗글에서 마땅히 수상해야 할 작가로 언급한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와 영국의 그레이엄 그린(1904~1991)은 결국 노벨상과 인연을 맺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노벨상을 타지 못한 작가는 이뿐만이 아니다.
조지프 콘래드, 안톤 체호프와 마르셀 프루스트, 프란츠 카프카와 D. H. 로런스,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에즈라 파운드, 폴 발레리, 니코스 카잔차키스, 생텍쥐페리도 노벨상과는 인연이 없었다. 하긴 노벨상 수상을 거부한 프랑스 작가 장 폴 사르트르도 있긴 하다.
노벨문학상은 작품이 아니라 작가에게 주어지는 상이라는 것, ‘문학상’이라고 하지만 ‘Literature’가 문학에만 국한된 단어가 아닌, ‘쓰는 행위(Literacy)’ 일반에 대한 것이어서 역사가나 철학자에게도 수 여되기도 한다. 영국의 처칠이나 버트런드 러셀, 앙리 베르그송 같은 이가 이 상을 받은 게 그 예다. 2016년에는 가수인 밥 딜런이 문학상을 받았다.
고은, 가장 서구에 잘 알려진 시인
한때 고은(1933~ ) 시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수상 가능성이 큰 노벨상 후보였다. 그러나 2012년 중국의 모옌이 수상한 뒤부터 그 가능성이 떨어지기 시작한 듯싶다. 그가 유력한 수상 후보로 떠오랐던 것은 고은이 우리나라에서는 세계에 가장 널리 알려진 시인이기 때문이다.
노벨상을 타려면 작품성은 기본이요, ‘번역’이 잘 되어 있고 국제 문단에서 인지도가 높아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선 고은이 이 조건에 가장 가까운 이였다고 한다. 그의 시는 17개 언어권 62종이 번역 출간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는 국내 작가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이다.
또 노벨상 수상자를 선정하고 시상하는 스웨덴에도 작품이 번역 출간되어 있는 게 유리한데 스웨덴에 출간된 한국문학작품은 16종 가운데 ‘만인보’, ‘화엄경’ 등 4종이 고은 시인의 작품이라고 한다. 나머지는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 ‘시인’, 황석영의 ‘한씨연대기’와 ‘오래된 정원’ 등이라고.
스웨덴에서의 한국문학 보도 건수도 고은 시인 관련 소식이 가장 많으니 역시 해마다 유력 수상자로 꼽히게 되는 게 전혀 무리는 아닌 셈이다. 현지에서의 번역 출간 등으로 살피면 황석영도 수상 후보자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이유가 설명될 듯하다.
고은은 노르웨이에서는 자국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비에른스티에르네 비에른손을 기린 비에른손 훈장을 받았고, 스웨덴에서도 자국 노벨문학상 수상자 하뤼 마르틴손을 기리는 상인 동시에 동아시아권 문학에 주는 상인 시카다상을 받았을 정도다.
2018년 최영미 시인이 고은의 성추행을 폭로하면서 한때 최고의 시인으로 추앙받았던 그의 명성과 이미지는 급전직하로 추락했다. 그의 작품은 중고교 교과서에서도 삭제되었고, 그를 기리는 시설들도 일정한 영향을 받았다.
한동안 수세에 몰렸던 그는 최영미 시인과 언론사 등을 상대로 10억 7천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반격에 나섰지만 1심에서 그는 패소했다. 사실 여부 이전에 후배 시인과 언론을 상대로 소송으로 입을 막으려 한다는 비난도 받았다. 노벨위원회에서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지만 이제 그에 대한 기대는 접히는 느낌이 있다. 올해 우리 나이로 여든여섯 나이를 생각하면 가능성은 훨씬 더 줄어든다.
2019년 수상자 페터 한트케 논란
2019년 노벨문학상은 <관객모독>, <긴 이별에 짧은 편지>의 작가 오스트리아의 페터 한트케(Peter Handke, 1942~ )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그의 수상에 대해 수상자 철회 움직임까지 일 만큼 논란이 되고 있다.
친 세르비아 성향의 가정에서 태어난 한트케는 ‘발칸의 도살자’로 불린 전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 대통령 밀로셰비치를 옹호해 오랫동안 논란의 중심에 섰다. 밀로셰비치는 1990년대 유고 내전 당시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발칸 곳곳에서 인종 학살을 자행한 인물이다. 한트케는 2006년 밀로셰비치가 숨지자 그의 장례식에서 조사를 읽기도 할 만큼 친분이 두터웠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책을 잘 읽지 않는다. 소설에 비기면 시집은 말한 것도 없다. OECD 꼴찌 수준인 독서량 통계가 이를 반증한다. 어떤 작가가 했다는, ‘평소엔 책 한 권 읽지도 않다가 노벨문학상 시즌만 되면 왜 우리나라는 상을 못 타느냐고 질타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항변을 귀를 씻고 들어야 하는 이유다.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1971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칠레는 아옌데의 사회주의 정부를 쿠데타로 전복한 피노체트의 군부독재 따위가 우리 현대사와 닮아 있는, 2004년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남미의 조그만 나라다. 국민소득이 일만 달러 정도인 개도국에 지나지 않지만, 칠레의 상인들은 저잣거리에서 네루다의 시를 줄줄 왼다고 한다. 단순히 국민소득으로 한 나라의 문화 수준을 이야기할 수 없는 사례다.
언제쯤이면 사람들이 재테크에 달려드는 것만큼이나 책을 열심히 읽어서 성인 독서량이 세계 192개국 중 166위고, 연간 1권의 책도 읽지 않는 성인이 10명 중 4명이나 되는 상황을 넘을까. 칠레처럼 상인은 아니라도 좋으니 나는 샐러리맨들이 통근길 지하철에서 시집을 읽고 있는 풍경을 잠깐 상상해 본다. 그런 일상의 풍경을 가끔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노벨문학상’은 저절로 우리에게 다가올지도 모르는 일이 아닐까.
원문: 이 풍진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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