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2월, 고 김대중(1924–2009) 전 대통령은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 메인 홀에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홀은 그가 추진해 온, 남북 화해를 위한 햇볕정책을 상징하는 노란 꽃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김대중은 같은 해 6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6·15선언’을 끌어낸 바 있었다.
두 달 전인 10월 13일,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에서는 ‘한국과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 및 북한과의 화해와 평화에 기여’한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을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노벨위원회 위원장 군나르 베르게가 밝힌 선정 이유는 짧았지만, 김대중이 감내한 수난과 고통의 삶의 지향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노벨평화상은 6·15선언 이끈 김대중에게로
2000년은 노벨평화상이 제정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였는데 어느 해보다 경합이 치열했다. 추천된 단체와 개인은 각각 35개와 115명이었다. 중동 평화협상에 주력한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Bill Clinton)도 강력한 후보였지만 평화상은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김대중에게 돌아갔다.
노르웨이 언론은 “과거에는 이런저런 자격 시비가 있었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단 한 건의 반대 의견도 없었다”라고 보도했지만, 국내 사정은 만만치 않았다. 야당과 보수 언론은 마지못해 수상을 축하하고 있었고 영남을 비롯한 정치적 반대자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반호남, 반김대중 정서에 매몰된 이들 반대자는 김대중의 노벨평화상 수상조차 음해하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특히 한반도 남동부 지역의 유권자들은 그의 수상이 ‘북한에 퍼 주기 한 공로’라든가, 심지어는 노벨상위원회에 뇌물을 쓴 결과라고까지 조롱했다. 그것은 가히 ‘맹목의 저주와 증오’였다고 할 수 있었다.
세계 뉴스는 음울한 소식으로 가득하다. 중동은 전쟁의 위협 아래 놓여 있고, 영국 남부지방은 홍수가 발생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로 분단된 한반도의 화해를 추진하기 위한 끈기 있는 노력으로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에게 돌아간 노벨평화상은 암흑 속의 한 줄기 소망의 빛이다.
- 『더 타임스』 사설, 2000. 10. 14.
오히려 세계 언론이 전하는 축하 기사가 이례적이었다. 수상을 위한 로비가 있었다는 의혹 제기에 대해 노벨위원회 베르게 위원장은 별도의 해명을 해야 했다. 그것은 적지 않은 한국인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노벨상은 로비가 불가능하고, 로비가 있다면 더 엄정하게 심사한다. 기이하게도 김대중에게는 노벨상을 주지 말라는 로비가 있었다. 김대중의 수상을 반대하는 수천 통의 편지가 한국에서 날아왔다. 그것이 모두 특정 지역에서 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도 그것을 조롱하고 폄훼하는 세력이 적지 않지만, 2000년 6월 15일에 이루어진 남북 정상의 공동선언이 냉전 반세기를 끊고 새로운 민족 화해의 길에 대한 7,000만 남북 겨레의 의지 확인이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남북 평화를 위한 그의 노력과 결단이 민족사상 최초의 노벨상 수상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그는 수상의 영광은 ‘한국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민족의 통일을 위해 기꺼이 희생한 수많은 동지와 국민’에게 바쳐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반대쪽의 국민은 그것을 비웃고 조롱했다. 상식도 예의도 없는 어처구니없는 폄훼를 통해 그들은 마치 정치적 박탈감을 위로받으려 하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의 출신 지역 사람들로부터는 외경의 대상이었지만 다른 반쪽 지역의 유권자로부터 맹목적 배제를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게 그의 정치적 운명이었던 것일까. 그는 죽을 때까지 천형처럼 그 지역감정을 지고 가야 했다.
민주주의와 인권, 남북 화해 협력에 건 삶
그는 자신을 제거하려던 독재자 박정희의 공작에도 살아남았지만, 박정희가 키운 정치군인 전두환으로부터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타협 대신 죽음을 선택했지만, 다시 살아남았고 마침내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자신을 죽이려 했던 전두환, 노태우를 사면케 함으로써 자신의 은원을 담담하게 정리했다.
2009년, 여든다섯 해의 간난의 삶을 마치면서 그는 비로소 자신을 가두었던 전근대적 정치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가 추구했던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와 평화는 이제 대중들의 일상적 삶의 가치로 바야흐로 내면화하고 있다. 그런 뜻에서 우리는 모두 그에게 빚을 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관련 기사 : DJ의 죽음으로 그들은 그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시상식에서 노벨위원회 위원장 군나르 베르게는 노르웨이 작가 군나르 롤드크밤이 쓴 시 ‘마지막 한 방울’을 인용하며 수상자 선정 이유를 밝히고 김대중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옛날 옛적에
물 두 방울이 있었다네
하나는 첫 방울이고
다른 것은 마지막 방울
첫 방울은 가장 용감했네
나는 마지막 방울이 되도록 꿈꿀 수 있었네
만사를 뛰어넘어서 우리가 우리의
자유를 되찾는 그 방울이라네
그렇다면
누가
첫 방울이기를 바라겠는가?
- 군나르 롤드크밤, ‘마지막 한 방울’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냉전의 빙하 시대는 끝났습니다. 세계는 햇볕 정책이 한반도의 마지막 냉전 잔재를 녹이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시작되었으며, 오늘 상을 받는 김대중 씨보다 더 많은 기여를 한 사람은 없습니다. 시인의 말처럼 ‘첫 번째 떨어지는 물방울이 가장 용감하였노라.’
김대중 정부에 이어 참여정부가 그의 햇볕 정책을 계승하여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지속해 나갔다. 그러나 이어진 보수 정권은 전임 정부의 성과를 잇기는커녕 남북관계를 냉전 시대로 되돌려 놓았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남북 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 폐쇄와 같은 대북 강경정책으로 일관함으로써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러 있다.
그러나 햇볕 정책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내다보았던 김대중과 그의 6·15선언을 이어 10·4선언으로 화답했던 노무현은 이미 세상에 없다. 박근혜 정부가 자행한 전대미문의 국정농단과 엽기적 실정을 목격하면서 이미 고인이 된 두 정치 지도자의 자리가 훨씬 더 커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원문: 이 풍진 세상에
참고
- 김택근, 『김대중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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