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이상한 문화가 있다. 특정 세대만의 문화인지, 혹은 우리 사회만의 문화인지 모르겠지만 도대체 어떻게 생겨났는지 궁금한 이상한 문화가 있다. 다음 문장이 이 문화를 대표하는 한 문장이다.
좋은 의견이야. 어디 네가 한번 해봐!
꼭 직장이 아니어도 사람이 모이는 어디를 가더라도 이런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리더가 있다. 내 경우도 사회생활 초기부터 이 문화에 부딪히며 고민해왔다.
하지만 십 수년이 지나고 세대가 바뀌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밀레니얼 세대가 회사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더 불거졌다. 나 역시 고민만 했지, 문제 해결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고민하지 못했다. 그러나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생겨 이 문제에 대해 접근해봤다. 확실한 건 이 현상은 그냥 꼰대 문화로 치부하기에는 조직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이고, 때문에 방법을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직업병이 발동했다. 그래서 리더의 입장에서 두 가지 측면에서 사분면 그래프를 그려봤다. 먼저 X축은 ‘리더가 직원들에게 충분한 발언 기회를 주는 지의 여부’이고, Y축은 ‘리더가 직원들의 발언을 반영할 의지가 있는지 여부’이다. 리더 입장에서 그린 것은 아직 우리 미팅 문화에서는 리더의 태도가 미팅 목적 달성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나는 이 사분면을 일단 ‘마크의 사분면’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려놓고 보니 지금까지 경험한 리더들이 각 사분면 별로 구분이 되었다. 내가 많이 배운 리더도 있고, 아쉬웠던 리더도 있다. 각 사분면 별로 리더들과의 경험을 통해 문제의 상황을 정리해보고, 상황이 나아지기 위해서 리더와 직원들이 각각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지를 살펴봤다.
1사분면 (발언 기회 O, 반영 의지 O)
A팀장: 자, 다 모였지? 먼저 어제 영업팀장 하고 논의한 거 먼저 공유하지. 우리가 관리하는 CRM 데이터 중에서 영업팀이 입력하는 데이터도 사실 품질이 썩 좋은 것은 아닌데, 파트너사들이 입력하는 데이터는 정말 엉망이잖아. 그래서 어제 영업팀장과 얘기해서 파트너사 데이터 품질관리를 우리 팀에서 하기로 했어.
B부장: 아니, 팀장님, 그건 원래 영업팀 역할 아니었나요?
A팀장: 그렇지, 근데 영업팀장이 영업사원들이 영업하느라 바쁜데 파트너사 데이터 품질 관리까지 할 여력이 없다는 거야. 생각해보니 어차피 CRM 데이터 품질이 좋아야 우리 팀에서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으니 그냥 우리 팀에서 역할을 가져오겠다고 했어.
B부장: 아, 예…
A팀장: 자, 일단 우리 팀에서 맡기로 했으니 어떻게 관리하면 좋을지 의견부터 들어볼까?
마크: 우리 팀에서 맡아야 되는 상황이면 제 의견에는 일단 영업팀에서 그동안 어떻게 파트너 데이터 관리했는지 파악하는 게 우선이고요. 프로세스 파악해서 저희가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을 파악해야겠죠. 결국은 밀착해서 관리하는 방법밖에는 없는 거 같아요. 담당하게 되는 사람이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데이터를 들여다보고 이슈가 있을 경우 바로 파트너사를 푸시해야 할 거예요. 아, 프로세스 개선된 다음에는 파트너사 데이터 입력 담당자들 대상으로 트레이닝도 하면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A팀장: 좋은데? B부장 생각은?
B부장: 예, 우선 그렇게 해보시죠. 그럼 담당자를 정하면 될 거 같습니다.
A팀장: 마크 과장이 의견 냈으니, 본인이 직접 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아까 말한 프로세스대로 진행하면 업무 부담도 크지 않을 거 같고. 마크 과장 괜찮겠지?
마크: 예? 예, 해보겠습니다.
이처럼 좋은 제안을 한 직원에게 그 업무를 맡기는 경우가 흔히 발생한다. 이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라 수차례 반복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
모두 경험해봤을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아무도 자신의 생각을 먼저 얘기하지 않는다. 얘기를 꺼내는 순간 본인의 업무가 될 수도 있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그리고 점차 팀 미팅은 아무도 제안하지 않는 이상한 미팅으로 변해간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팀장: 자, 이제 좋은 의견들 있으면 얘기해볼까요?
팀원: …
팀장: 아니 다들 남의 일처럼 생각하지 말고 내 일이라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얘기들 해봐요. 그냥 지금처럼 계속할까요?
팀원: 예, 팀장님. 올해는 일단 기존 프로세스를 유지하고 내년에 다시 논의하시죠.
팀장: 어, 그럴까? 그렇게 하지.
이런 상황은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내가 경험한 바로는 세 가지 정도 접근 방법이 가능하다.
먼저는, 한 단계 거쳐서 팀장에게 제안해보는 것이다. 이 경우 대전제가 하나 있다. 바로 팀장과 직원들 사이에서 중간 다리 역할을 해주는 부장급, 책임급 정도의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만약에 이 사람이 팀장과 같은 스타일이면 불가능한 방법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사람이 팀 미팅 전에 먼저 팀원들로부터 아이디어를 받아보자. 이를 취합해서 하나로 모으고 실현 가능한 제안들을 추려서 팀 미팅 때 공유하면 된다. 누가 어떤 제안을 했는지는 얘기할 필요 없고, 팀 미팅에 올라온 제안을 가지고 팀장과 팀원들이 논의를 하고 그중에 우선순위를 정하고 투입한 인력을 정한다.
다음으로 팀장은 팀원들에 대해 자원 관리 (Resource Planning)을 해야 한다. 그래야 갑자기 새로운 업무가 생겼을 때 누구에게 업무를 할당할지를 쉽게 결정할 수 있다. 놀랍게도 많은 팀장들이 팀원들에 대한 시간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경험한 팀장들의 경우도 절반 정도는 팀원들의 시간 관리를 체크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이유는 번거롭기 때문인데, 사실 알고 보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굵직한 업무만 감안해도 어느 정도 큰 그림을 볼 수 있다.
전략기획 매니저 시절의 내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아래는 한 달에 주요 업무 별로 소요되는 시간이다.
- 전사 전략 수립 관련 업무: 2일
- 전사 전략 수립 후 트래킹+대시보드+미진한 부분 후속 조치: 2일
- 시장 동향 보고서 관련 업무: 3일
- 직원 강의 준비 및 진행: 2일
- 신사업 인큐베이팅 관련 업무: 2일
- 출장 및 콘퍼런스 참석: 3일
- 임원 보고: 1일
- 서베이 진행 및 보고서 작성: 1일
이렇게 매월 평균 16일 정도를 주요 업무에 할애했다. 그리고 나머지 4~5일 정도를 그때그때 팀장이나 경영진이 긴급하게 요청하는 업무 하는데 투입했다. 그래서 팀장은 나한테 이 정도의 여력(Room)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추가 업무를 지시하곤 했다.
팀원들의 시간 관리를 너무 타이트하게 할 필요는 없다. 어느 정도 여력이 있는지 정도만 파악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팀 전체에 새로운 업무가 생겼을 때 팀원들의 가용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거기에 업무 연관성과 시너지 등을 생각해서 누구를 투입할 것인지를 결정한다면,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팀원도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한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제안한 것을 내가 맡는다고 해서 무조건 싫은 것은 아니다. 나도 가끔은 내가 진행하고 싶어서 제안한다.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업무라면 현재 업무만으로 이미 벅찬 상황에도 맡아서 하기도 한다. 이 경우에는 처음에 제안할 때부터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내가 경험한 직원 중에는 그런 방식으로 본인의 영역을 넓혀서 어느 순간 회사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직원으로 알려지게 됐다.
자신이 제안은 했지만 맡고 싶지 않은 경우에는, 해당 제안을 수행하는데 어느 역량이 필요한지에 대한 의견을 덧붙여 얘기해도 좋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중간 리더를 통해서 아이디어를 개진하는 것도 방법이다. 어떤 경우든 제안한 사람이 무조건 프로젝트를 맡게 되는 일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2사분면 (발언 기회 X, 반영 의지 O)
이 경우가 가장 이상하다. 발언 기회는 주지 않으면서 언제든지 받아주겠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리더이다. 그래서 많은 경우 리더는 착각한다. 자신은 괜찮은데, 언제든지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데, 직원들이 자신을 찾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참 이상해. 언제든 얘기하면 들어주겠다고 얘기했는데, 문을 열어 놔도 찾아오는 직원들이 없잖아. 그래 놓고 내 마음대로 한다고 뒤에서 얘기하고 다니고 말이야.
사실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발언 기회 없이 별도의 기회를 직원이 만든다는 것은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다. 이 사실을 왜 리더 포지션에 올라가면 잊는 것일까?
1사분면에서 직원들이 입을 닫고 나서 팀 미팅이 없어지면서 2사분면으로 옮겨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팀장은 본인은 할 만큼 했다고 말할 것이다. 이 경우에는 팀 미팅이 사라지면서 발언 기회도 사라졌기 때문에 팀장이 밀고 있는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는 팀원들이 의기투합해서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한 목소리를 내기로 결정했으면 개별 미팅 때마다 팀장에게 어필해야 한다.
3사분면 (발언 기회 X, 반영 의지 X)
독불장군. 천상천하 유아독존. 이건 정말 ‘모 아니면 도’이다. 일단 결과는 리더의 역량과 직결된다. 무조건 리더가 정한 방향대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더러는 이런 리더를 원하는 직원들도 있다. 마치 카리스마가 있는 리더로 생각하는 것이다.
팀장: 자, 미팅 시작할까? 내가 바로 화면 띄울게.
팀원: 어, 팀장님, 다 준비해오셨네요?
팀장: 주말에 시간 남아서 그냥 다 준비했어. 각자 역할까지 다 정했으니 보면서 바로 숙지하도록 해.
내 경험상 이런 리더의 경우는 직원들을 100% 신뢰하지 못하고, 더불어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그래서 본인의 방향에 대한 확신이 거의 100%이고 데이터를 들이밀지 않는 한 자기 뜻을 굽히지 않는다. 이런 리더를 선호하는 직원들이 의외로 많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리더로서 자질은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런 리더들 밑에서는 직원들이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직원들이 성장할 기회를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내가 경험한 팀장 중에는 이런 종류의 리더가 없었다. 대신 고객사 중에 경험한 적이 있다. 팀장이 밑그림을 다 그린다. 그리고 나면 팀원들이 밑그림에 맞춰 색을 칠한다. 그래서 팀원들은 절대로 큰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엽적인 것에만 갇혀 있었다.
그런데 그 팀원 중에 한 명이 이 한계를 뛰어넘었다. 방법은? 공부한 거다. 독불장군인 팀장 조차 인정할 정도로 그 분야에 대해서 공부했다. 이런 직원과는 팀장이 몇 번 대화를 나눠보면 그 차이를 안다. 사실 독불장군 팀장도 혼자서 다 하려니 힘들었을 것이다. 티를 안 냈을 뿐.
4사분면 (발언 기회 O, 반영 의지 X)
A팀장: 자, 미팅 시작할까?
B부장: 예, 팀장님. 먼저 화면 보시죠. C과장?
C과장: 예! (PPT 파일을 빔 프로젝트에 띄운다)
B부장: 보시는 것처럼 오늘 미팅의 어젠다는 크게 3가지입니다. 우선 홈페이지 콘텐츠….
A팀장: 자, 각자 돌아가면서 의견 나눠보죠. C과장부터…
(2시간 동안 의견 교환)
A팀장: 다양한 의견 나누니 좋네. 잘 들었어요. 마지막으로 내 의견은 홈페이지 콘텐츠는 우선… 운영 관리 부분은 이렇게… 보안 관련해서는 저렇게… 했으면 좋겠네. 여러분 의견도 좋은 의견이 많지만 내년엔 큰 변화를 주기보다는 기존의 것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하자고. 자, 오늘 미팅 여기까지 할까?
사회 초년생 때 자주 경험했던 미팅의 모습이다. 새로운 팀장님이 와서 이런 식으로 6개월 정도 주간 미팅을 진행했다. 심할 때는 4시간 정도 팀원들이 열띤 토론을 해서 의견을 모았는데도, 팀장님은 본인 의견대로 진행해버렸다.
3개월 정도 지났을 때 팀원들이 입을 닫기 시작했다. 나머지 3개월은 정말 회의 분위기가 암울했다. 그리고 6개월이 됐을 때 팀장님은 주간 미팅을 다시는 열지 않았다. 본인도 팀원들이 입을 닫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럼에도 자신의 스타일을 바꾸지 않았다. 그리고 필요한 경우에만 담당자를 불러서 따로 얘기했다.
결국 어떻게 했을까? 팀장님 없이 팀원들끼리 미팅을 했다. 거기서 의견을 모아서 액션 플랜까지 나오면 부장님이 팀장님에게 보고했다. 팀장님 역시 경영진의 압박을 이겨내려면 어떻게든 업무를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이런 팀원들의 움직임을 막지 않았다.
당시 내가 느꼈던 감정은 팀장님이 참 외로워 보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본인이 스타일은 고집하니 팀원들은 팀장 없이 어떻게든 진행해보려고 했다. 팀장은 져주는 척하면서 이러한 팀원들의 움직임을 인정했다.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으나 이 방법밖에 없었다.
마무리하며
좋은 팀장, 리더를 만나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그렇게만 되면 이러한 고민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우리가 이런 고민을 해봐야 하는 것은 우리 모두는 직장이든, 가정이든, 커뮤니티든 어디서든 리더의 자리에 서게 되는 날이 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좋은 리더가 될 수 있을까?
원문: Mark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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