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는 영웅이 아니다. 언월도나 화극 한번 휘두르면 백만대군이 쓸려나가는 그런 영웅이 아니라는 말이다. 대표의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회사를 몇백 배 몇천 배 키우는 일은 극히 드물다. 나의 한 방은 다른 누군가의 한 방과 등가인 경우가 많다. 영웅의식이나 숙명, 과한 책임감, 혹은 자만을 빨리 벗어던져야 한다.
그럼 대표는 뭔가? 말 그대로 회사의 가치, 비전을 끝까지 지키는, 회사 최후의 수호자다. 이게 원활히 되려면, 대표는 가치와 비전을 지키기 위한 사람과 돈을 원활히 공급/사용/관리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여기서 삐딱선을 타면 회사도 삐딱선을 타게 된다.
내부 고객의 만족이 없으면 외부 고객의 만족도 없다. 내부 만족이 선행되야 혁신 동력이 활발히 돌기 시작한다. 전체 회의에서 의견이 활발히 나오지 않는다면, 그게 치명적으로 흔들린다는 증거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피드백이 거리낌 없이 흘러나오고, 그게 적절하고 공정하게 반영되어 회사가 유의미한 변화를 시도하게 되는, 그래서 그 피드백이 살아 움직인다는 효능감을 주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의 공정은 평등이 아니라 납득할 만한 합리적 절차, 앞으로도 비슷한 프로세스가 예측 가능하게 진행되리라는 기대감 따위다.
누군가의 만족은 누군가의 불만족이 되기도 한다. 시스템 구축이 관건이 아니다. 불만족의 원인이 더욱더 특수해지고 좁아지도록 하는, 가치와 비전을 충분히 담지한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는 게 핵심이다. “우리 회사는 이럴 때 늘 이렇게 판단해 왔지”라는 예측 가능성 말이다.
예측 가능성이 생기면, 불만족의 영역은 회사의 가치와 비전 이내에서 점차 수렴한다. 여기에 만족하는 구성원은 더욱더 열정을 쏟게 되고, 아닌 이들은 자연스럽게 다른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이 계속되면 가치와 비전은 대표가 입으로 떠들지 않아도 조직 내에 알아서 착근한다. 대표가 때로는 치졸할 만큼 철저하게 가치를 고수해야 하는 이유다.
절차를 만든다고 혼란이 해결되지 않는다. 절차가 많이 생기면 생길수록 혼란이 어떨 땐 더 늘어나고, 대부분의 경우 내부 고객들은 입을 닫게 된다. 모두가 필요에 공감하는 절차를, 타이밍 놓치지 말고, 적절하게 갖추는 게 중요하다. 이때 탑다운은 대체로 효과적이지 않은 것 같다.
‘통솔범위(Span of Control)’를 잘 지키는 것만도 능사는 아닌 것 같다. 가끔, 대표가,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 예외적으로 실무에 뛰어들어 재점검하는 건 필수인 듯하다. 최근 그 효능을 몸으로 느낀다.
내부 만족은 내적·외적 자극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는 과정에서 극대화되는 것 같다. 내부 피드백이 원활히 돌면서 조직 내에 ‘말의 효능감’이 살아 움직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우리 조직의 강점과 약점이 대외적으로, 혹은 외부자에 의해 신랄히 까발려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객관성은 비교에서 나온다. 다른 조직과의 비교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외부의 전문가나 경쟁사, 업계 주요 파트너 등을 통한 외부적인 자극과 피드백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대부분의 크리티컬한 경쟁우위나 열위는 아주 사소한 디테일에서 나온다. 그 디테일에 천착해 문제를 개선해내느냐 아니냐는 내부 고객의 모티베이션 수준에 따라 판가름 난다. 가끔은 특수한 개인들이 그 모티베이션을 하드캐리하는데, 이들이 조직 밀도 상으로 고립되지 않도록 개입하는 게 대표의 역할이다. 그리고 그 밀도는 높아질수록 좋다. 앞의 활동들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대표 자리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어렵고 또 무거운 자리다. 같은 길을 가는 분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전한다. 때로는 나에게도 누군가가 그래 줬으면 한다. 피드백과 작은 개선에서 오는 대표 뽕이 있다. 요새 그걸 즐긴다. 더욱 즐기고 성장한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 그릇만큼 회사가 커 있으리라 믿는다.
원문: 이종대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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