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eon의 「Touch is a language we cannot afford to forget」을 번역한 글입니다.
촉감(touch)은 우리가 세상애서 처음으로 느끼는 감각인 동시에 죽음의 마지막 순간까지 가져가는 감각입니다. 마가렛 앳우드는 “눈먼 암살자(The Blind Assassin)”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손은 눈보다 빠르고, 말보다도 빠르다(Touch comes before sight, before speech).
촉감은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자 가장 마지막까지 할 수 있는 말이며, 항상 진실만을 말한다.
이는 생물학적으로도 사실입니다. 태아는 16주가 되었을때 솜털(lanugo)이라는 가는 털로 뒤덮입니다. 연구자들은 이 솜털이 모체의 양수가 주는 안락함을 느끼게 만들며, 출산 후 어머니의 품에 안겼을 때 아기가 느낄 따스함과 평온함의 시작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촉감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각입니다. 촉감은 우울힌 나를 위로해주며, 기쁠때 그 기쁨을 남에게 전달하게 해주는 나의 신실한 친구입니다. 스웨덴에 산지 이제 10년이 넘은 이탈리아 인으로서, 나는 신체적 접촉의 부족을 종종 느끼며 이는 내 기분과 건강에도 나쁜 영향을 미칩니다. 북유럽은 남유럽에 비해 신체적 접촉을 훨씬 덜 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어쩌면 지난 수년 간 내가 인간의 신체적 접촉을 연구한 이유는 이 때문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의 시대’는 인간이 가진 이 가장 중요한 감각에 심각한 결핍을 만듭니다. 코로나19는 사람 간의 접촉을 공공장소에서의 기침이나 재채기 다음 가는 최악의 금기로 만들었습니다. 코로나19는 확진자의 미각과 후각만을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나머지 인류 전체의 촉감 또한 가져갔습니다. 촉감은 어쩌면 이 시대의 가장 큰 피해자일지 모릅니다.
지금의 물리적 거리두기는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만, 사실 돌봄과 양육의 관점에서는 역효과가 있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목욕시키고, 옷 입히고, 들어 나르고, 치료 행위를 하는 등의 수단적 접촉(instrumental touch)에서부터 교감을 목적으로 하며 위로와 지지를 제공하는, 더 정서적인 행위를 말하는 표현적 접촉(expressive touch)을 아우르는, 타인을 돌보는 모든 과정에는 반드시 신체적 접촉이 필요합니다. 뇌과학자들이 도수 치료사들과 같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마사지 치료에는 치료사가 행하는 것 이상의 효과가 있습니다. 곧, 누군가의 손이 환자의 피부에 닿는 것 자체에 특별한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접촉이 없다면, 돌봄도 없고 치료도 없습니다.
사실 지금의 거리두기는 인류의 역사에서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물리적 거리두기의 연장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기술의 발달은 모든 세대가 물리적 접촉이 아닌 소셜 네트웍을 기본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으로 삼게 만들었습니다. 최근 한 설문조사는 10대의 95%가 스마트폰이 있으며 45%가 ‘거의 항상’ 온라인에 접속해 있음을 보였습니다.
오늘날 신체적 접촉에 대한 경계가 심해진 이유 중에는 신체적 접촉이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권력의 형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가 점점 더 알아간다는 사실도 있습니다. 미투 운동은 여성이 특정한 종류의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부적절한 접촉을 참아야만 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한편 의사, 간호사, 교사, 세일즈맨 등이 신체적 접촉을 최대한 피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수의 연구결과는 이들 전문직이 신체적 접촉을 사용했을 때 업무의 질이 올라가며, 상대로부터도 더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한 연구는 주문을 받을 때 무심히 고객의 어깨에 손을 얹은 웨이터가 고객과 거리를 둔 웨이터보다 팁을 더 많이 받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촉감을 다른 감각과 구별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이 감각이 상호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를 쳐다보지 않는 사람을 쳐다볼 수 있지만, 촉감은 그렇지 않습니다.
코로나를 치료하는 의료진들은 환자와의 신체적 접촉이 그들과의 교감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보호장구 때문에 서로 이야기할 수 없고 웃거나 적절한 표정을 보일 수도 없지만, 의료진이 환자의 어깨를 두드리고,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는 식으로 환자들에게 그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코로나19에서 신체적 접촉은 분명 전염의 원인이지만, 또한 치료의 역할을 담당하는 셈입니다. 촉감은 궁극의 사회적 연결 도구이며, 다행히 인간은 이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1990년대에는 신체적 접촉이 인간의 발달 과정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 다수의 연구가 발표되었습니다. 생애 첫 해에 신체적 접촉을 거의 경험하지 못한 루마니아 고아원의 아이들은 충분한 두뇌 발달을 경험하지 못한 것은 물론 이후 인지적, 행동적 결함을 보인 경우도 있습니다. 성인의 경우에도 사회적 접촉이 부족한 이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더 일찍 사망합니다.
신체적 접촉은 노후에 특히 더 중요합니다. 한 연구는 요양원의 노인들에게 가벼운 신체적 접촉을 경험하게 했을 때 그들의 음식 섭취량이 늘어난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보거나 듣지 못하고 말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더라도 촉감은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대한 정보를 주며, 이를 통해 타인과 소통과 교감을 할 수 있게 해줍니다.
과학자들은 이제 촉감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연구합니다. 신체적 접촉은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심박 수를 떨어뜨리고, 혈압과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졸의 수치를 낮아지게 만들며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옥시토신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합니다. 친구들과 껴안고 반려동물을 쓰다듬을 때마다 우리 몸에서는 옥시토신이 나와 우리의 기분을 좋게합니다. 옥시토신은 이렇게 우리로 하여금 타인과의 관계를 유지하게 만들며 또 뇌의 발달을 돕습니다. 옥시토신은 자기 자신의 신체를 인식하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리 연구실은 최근 옥시토신이 다감각 통합(multisensory integration)이라는 감각의 결합능력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다감각 통합은 우리가 느끼는 여러 감각이 서로 무관한 정보가 아니라 하나의 대상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해주는 능력입니다. 또 자기 신체를 지각하기 위해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능력이며, 우리 자신의 몸이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실험실로 불러, 고무손 착각 실험으로 알려진 잘 알려진 심리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이 실험은 사람들의 진짜 손을 가리고 가짜 고무손을 보여준 상태에서 진짜 손과 고무 손에 같은 자극을 주었을 때 사람들이 가짜 고무손을 마치 자신의 진짜 손인 양 착각하는 실험입니다. 우리는 애정이 담긴 부드러운 자극을 주었을 때 사람들이 고무손을 자신의 손으로 더 빨리 착각하게 된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비강을 통해 옥시토신을 투여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는 정서적인 신체적 접촉과 옥시토신이 우리가 자신의 신체에 대해 가지는 감각을 강화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촉감은 우리가 가장 먼저 발달시키는 감각이자, 우리가 가진 가장 커다란 기관인 피부에 의해 주어지는 감각입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유난히 미성숙한 개체로 태어납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움직일 수도 없고, 스스로 음식을 먹을 수도 없으며, 자신의 체온을 조절하지도 못합니다. 이는 인간의 생존에는 누군가의 도움이 근본적으로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아이를 돌보고 양육하기 위해서는 아이를 품에 안고, 아이와 신체적 접촉을 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기저귀를 갈고, 목욕을 시키며, 젖을 먹이고, 잠을 재우는 등의 모든 행동에서 촉감이 작용합니다. 태어난 후 몇 달이 지난 뒤에도 아기와의 신체적 접촉은 여전히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산후 우울증은 아기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산모와 아기가 충분한 신체적 접촉을 가짐으로써 서로에게 그 피해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신체적 접촉을 통해 양자가 모두 효과를 본다는 것입니다. 아기와 부모 사이의 신체적 접촉은 두 사람의 옥시토신 수치를 모두 증가시켜 부모와 아기 사이의 상호작용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많은 뇌과학자와 심리학자들은 우리가 사회적, 감정적 촉감의 인식을 위해 일반적인 촉감과 다른 특별한 인식경로를 가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경로를 통해 우리는 애정이 담긴 접촉을 인식한 후 자신의 신체를 인식하는 부위인 뇌섬엽(insula)에 이를 전달합니다. 이러한 애정이 담긴 접촉 또한 아기의 인지적 사회적 발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4개월 된 아기들을 대상으로 한 한 연구는, 아기들을 부드럽게 쓰다듬었을 때 아기들이 사람의 얼굴을 더 잘 기억한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곧, 느리고 애정이 담긴 촉감은 얼굴과 같은 사회적 자극에 주의를 기울이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신체적 접촉은 양뿐 아니라 질도 중요합니다. 최근 우리는 12개월 된 유아는 어머니의 신체적 접촉이 가지는 의미를 이해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이 실험이 모자간의 신체적 접촉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때문에 그들 사이의 자연스러운 접촉 방식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관찰하면서 두 사람이 신체적 접촉의 형태로 서로의 필요를 전달한다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에게 덜 관심을 보이는 어머니들은 아이에게 다소 거칠거나 제한적인 신체적 접촉을 했고, 아이들은 이에 대응하듯 어머니에게 더 공격적인 방식으로 접촉을 시도했습니다.
곧 신체적 접촉이 하나의 언어라는 말은 과장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 마치 언어를 배우듯 사랑하는 이들과의 접촉을 통해 신체의 언어를 배우는 것입니다. 또, 매일매일 이 접촉을 이용해 자신의 감정을 전달합니다. 자신이 두려운지, 행복한지, 사랑에 빠졌는지, 슬픈지, 그리고 성적으로 흥분했는지를 상대에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상대가 사용하는 신체적 접촉을 통해 그가 어떤 의도와 감정을 가졌는지를 매우 잘 읽어냅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실험실로 초청해 실험자가 신체적 접촉을 통해 어떤 감정과 의도를 전달하려 했는지 평가하도록 했습니다. 이 접촉은 어머니와 아기 사이에, 혹은 연인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처럼 느리게, 또는 모르는 이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처럼 거칠게 주어졌습니다. 사람들은 느린, 애정을 담은 접촉에서 사랑을 읽은 반면, 빠른 접촉에서는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특히, 뇌 섬엽에 손상을 입은 이들은 접촉의 의미를 잘 읽어내지 못했습니다. 이는 피부에서 뇌로 이어지는 특별한 감각이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신체적 접촉에는 의사소통의 용도 외에도 권력 관계를 설정하는 역할도 있습니다. 서구의 전문직 사람들은 종종 첫 만남에서 악수를 할 때 손에 일정한 힘을 줍니다. 이 악수는 자신감과 자신의 능력을 의미하며, 이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나는 이 사람에게 일을 맡길 정도로 이 사람을 신뢰하는 걸까?
이 사람에게 우리 애를 맡길 수 있을까?
악수를 강하게 하는 것이 면접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인 연구도 있습니다. 이는 악수가 상대와 신체적으로 만나는 첫 순간이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악수는 또한 동의, 계약, 서명의 역할을 합니다. 신체적 접촉이 본질적으로 가진 위험과 취약성이 바로 이런 사회적 관계를 맺게 하는 기능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실제로 악수는 두 사람이 무기를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고 합니다.
이 신체 접촉의 언어는 일생 동안 우리가 자신의 몸과 자신을 연결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며, 심리적 안정감에도 매우 큰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다른 일련의 연구를 통해 거식증에 걸린 이들이 애정을 담은 신체적 접촉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조사했습니다. 거식증이란 섭식 장애의 하나로 자신의 몸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그 결과 사회적 상호작용을 회피하는 증상을 말합니다.
우리는 거식증 환자가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이 질병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조사했습니다. 두 건의 연구를 통해 우리는 거식증을 가진 이들은 자신의 팔에 부드러운 솔로 자극이 주어졌을 때 정상인에 비해 즐거움을 덜 느낀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거식증에서 회복된 이들도 여전히 신체적 접촉에서 일반인에 비해 즐거움을 덜 느꼈다는 것입니다.
이는 신체적 접촉을 즐겁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특징이 일시적인 것이 아닌, 한층 타고난 특징이며 이 특징이 거식증과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이외에도, 신체적 접촉과 정신 건강의 관계를 보여주는 수많은 연구들이 있습니다. 곧, 인간은 행복을 위해 접촉을 필요로 합니다.
그럼 신체적 접촉이 금기가 된 이 시기가 인간의 접촉 본능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사실 오늘날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인간에게 타인과의 접촉이 더 필요한 시기입니다. 사회적 접촉에 대한 모든 연구결과는 인간이 이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는, 때로 신체적 접촉이 위험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이를 전적으로 나쁜 짓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코로나19는 신체적 접촉이 없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타인에 대한 공포, 감염에 대한 공포, 신체적 접촉에 대한 공포는 우리로 하여금 과거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던 친구들과의 포옹이나 악수, 등을 토닥이는 행동 등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물리적 거리두기는 우리 피부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남기는 셈입니다. 많은 이들이 코로나19가 지나가고 나면 가장 하고 싶은 행동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꼭 껴안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신체적 접촉의 중요성은 우리의 표현 속에도 들어 있습니다. 계속 연락을 취하자(keep in touch)는 말과 당신의 친절에 감동받았다는(touched by your kind gesture) 말에도 접촉을 의미하는 단어가 들어갑니다. 어떤 이들은 기술이 타인과의 새로운 물리적 접촉 방식, 곧 담요를 껴안거나, 화면에 키스를 하거나, 전자기기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등의 행동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예를 들어 런던 대학은 ‘좋아요’나 소셜 네트워크에서 감정적 표현을 의미하는 이모티콘으로 질감이나 물질을 나타낼 방법을 찾습니다.
먼 곳에 있는 두 사람이 서로의 촉감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전자기기가 만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내게 자신의 존재를 느끼게 하고 싶을때 내가 가진 기기가 따듯하고 부드러워지며, 반대로 나의 존재를 필요로 할 때는 차갑고 거칠어지는 그런 기기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기기는 매우 다양한 용도를 가질 것입니다. 신체적 접촉이 부족한 노인들, 혼자 사는 이들, 그리고 고아원의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혼자 사는 사람의 비율은 15%에 이르며, 고독사의 비율 또한 전세계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촉감을 제공함으로써 이런 현실을 바꿀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기기는 진짜 접촉을 대체하기보다는 보조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누군가와의 육체적 접촉을 통한 친밀감은 후각이나 청각, 상대의 체온 등 다른 감각과 함께 자극되는 것으로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자극입니다. 신체적 접촉은 바로 여기, 바로 옆을 의미하며, ‘우리는 지금 여기에 함께 가까이 있다’를 말해줍니다.
오늘날 촉감 외의 다른 감각은 쉽게 디지털화 됩니다. 상대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는 줌을 키면 됩니다. 하지만 신체적 접촉은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설사 촉감이 디지털화 되더라도, 이 공간과 시간의 감각을 만들 수는 없기 때문에 디지털화된 촉감은 진짜 포옹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디지털 애무 기기를 잠깐 끌 때 ‘누군가와 함께 있는 느낌’은 바로 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과 같은 시기에 “신체적 접촉의 르네상스”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저 바보같은 일일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과학적 실험 결과들도 이런 내 생각을 지지합니다. 신체 접촉을 잃을 경우 인간은 커다란 댓가를 치러야 합니다. 인간이 가진 가장 섬세한 언어인 동시에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우리는 지금 만들지 못하며, 원래 가졌던 것까지도 잃어갑니다.
인간은 신체적 접촉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사실은 우리가 코로나 이후 “뉴노멀”을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로 두어야 할 사실입니다. 서로 껴안는 것 만으로도 세상은 조금씩 더 나아질 수 있습니다. 과학자이자 인류의 일원으로써, 나는 접촉의 권리를 주장하며 누구도 접촉에 굶주리지 않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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