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뉴욕타임스에 실린 ‘The Power of Touch, Especially for Men’를 번역한 글입니다.
나는 몇 주 동안 아버지의 손을 잡아야 할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요양원에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지만 그를 방문하는 사람들 (어머니와 세 명의 형제들, 그리고 마흔두 살의 새 부인) 중 누구도 그의 손을 잡아주지 않고 있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폭력과 증오의 상징이었던 그 손을 잡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흑백 영화를 같이 본 뒤, 나는 마침내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 이후로 한 번도 잡아 본 적 없는 그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의 굽은 손가락이 펴지고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이 열리는 것처럼 그는 내 손을 가볍게 잡았습니다. 떠나기 전, 나는 우리 가족의 남자들이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일을 했습니다. 바로 그의 귀에 이 말을 속삭인 것입니다.
“아버지, 사랑해요.”
그때 이후, 나는 미국의 중년 남자들이 다른 남자의 손을 잡기 어려워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비-성적인 접촉이야말로 행복의 중요한 요소라고 말합니다.
마이애미 의대 접촉 연구소 소장 티파니 필드는 접촉이 우리가 태어나 처음으로 배우는 언어이며, 가장 심오한 언어라 말합니다. 필드 박사는 이메일을 통해 접촉은 언어보다 더 즉각적인 효과를 주며 이는 물리적 접촉이 생체전기와 화학물질을 통해 신경 시스템의 긴장을 풀어주기 때문이라 말했습니다.
‘비-성적 접촉의 장점’은 19세기 음료 광고 문구의 느낌이지만 놀랍게도 이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입니다. 접촉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심박을 느리게 만들며 혈압을 낮춥니다. 접촉은 신체의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작업 기억력과 면역 능력을 떨어뜨리는 코르티솔의 농도를 낮추며 이 효과는 여성에게 특히 크게 관찰됩니다.
아무런 비용이 들지 않고, 누구나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부작용 또한 전혀 없는 이런 행동이 이렇게나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는 것은 인간에게 큰 축복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접촉을 회피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이 효과는 무시되고 있습니다.
미국인들은 충분히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편이지만 이탈리아인, 그리스인, 프랑스인 등에 비해 그 친밀감을 말로만 표현하는 편이기도 합니다. 시애틀 퍼시픽 대학의 전 심리학과 학과장인 제이 스키드모어는 이렇게 말합니다.
“미국인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사회-문화적으로 접촉을 줄이는 방향으로 행동해 왔습니다.”
물론 최근 잇따르는 유명인들의 과거 성폭력에 대한 고발이 사람들 사이의 접촉을 더 줄이게 만들 수 있으며 이는 그럴 수 있습니다.
사실 많은 남자들이 친구 간에도 자신의 손을 조심합니다. 소년들의 경우 우연히 다른 동성 친구를 만졌을 때 즉각적으로 듣게 되는 “동성애자!”라는 놀림을 피하고자, 어른들 역시 서로 충분히 친한 사이 임에도 상대와의 접촉이 어색한 불편, 혹은 공포로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런 접촉에 대한 회피는 상대적으로 최근에 일어난 현상입니다.
초기 미국의 여인숙에서는 남자들이 서로 모르는 사람과 같은 침대를 썼으며, 아브라함 링컨의 것을 포함한 최근 발견되고 있는 당시의 편지들은 남자들이 비-성적인 방식으로 여성과의 관계보다 더 감정적이고 육체적으로도 더 친밀한 동성간의 우정을 나누었음을 보여줍니다.
심리학자 오퍼 주르는 20세기와 21세기의 미국 남성들에게 육체적 접촉은 폭력 혹은 성적 접촉만을 의미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남성성을 연구하는 사회학자 마이클 키멜은 이메일을 통해 이성애자 남성들 사이의 육체적 접촉은 스포츠처럼 “동성애를 전혀 연상시키지 않는 마법같은 상황”에서만 일어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2002년 논문지 “청년기(Adolescence)”에 실린 연구는 남성들 사이에서 비-성적 접촉이 사라질 때 손이 가진 폭력성이 더 강조될 수 있음을 보였습니다. 이 연구의 주저자인 필드 박사는 49개의 문화권을 조사했고, 그 결과 “아이들에게 육체적 애정 표시를 금지하는 문화권에서 성인의 폭력 사건이 매우 빈번한” 반면 “아이들에게 충분한 육체적 애정을 표시하는 문화권에서는 성인들 간의 폭력 사건이 거의 일어나지 않”음을 보였습니다.
21세기 남자들을 여자보다 더 일찍 죽게 만드는 한 가지 큰 이유는 바로 스트레스입니다. 여성들은 문제가 있을 때 ‘배려와 친교(tend-and-befriend)’ 전략을 통해 사람들과 협력하며 문제를 해결합니다.
하지만 남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남자들은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 독불장군이 되어 외톨이를 고집하며 종종 자신만의 세계로 도망갑니다. (실제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여성은 남성과 달리 마음을 침착하게 만들고 유대감을 높여주는 호르몬이자 신경전달물질인 옥시토신을 분비해 대처능력을 높입니다. 하지만 최근 연구들은 남성 역시 자신의 배우자와의 애정어린 접촉을 통해 옥시토신을 분비하며, 또한 코를 통해 투입된 옥시토신은 공포감을 낮추며 신뢰와 관용, 공감을 높인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남성이 독불장군처럼 행동함으로써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강해질 수 있다면, 이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억눌러야 하는 압박감과 이로 인해 느끼는 감정이 남자답지 못한 것으로 여겨질 때 (주르 박사는 이를 “젠더 롤 스트레스”라 부릅니다) 남성 역시 더 쉽게 부서지게 됩니다.
주르 박사는 이 과정에서 남성이 더 쉽게 상처 입게 되고 불안과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고 말합니다. 또한 이런 젠더 롤은 남성으로 하여금 정신적 도움을 찾으려는 마음 또한 가지지 못하게 만듭니다. 2000년 UCLA 연구자들은 “남성은 스트레스를 여성보다 더 견디지 못하며” 이 때문에 고혈압, 알콜 중독, 약물 남용 등의 스트레스 장애를 겪게 된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최근 유행하는 포옹 산업(cuddling industry)의 비밀 고객 다수가 이혼한, 교육받은 50대 초반의 이성애자 남성인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는 마약 중독 및 자살을 시도하는 백인 노동자의 수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감정적인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아리조나 대학의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인 코리 플로이드는 2014년 발표한 연구에서 500명 이상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통해 이들이 “애정 결핍(affection deprivation)”을 겪고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플로이드 박사는 이를 “접촉 고픔(skin hunger)”이라 부르며, 이들의 특징으로 외로움, 우울증, 낮은 사회적 지원, 불안 장애, 감정 이해 및 표현 장애 등을 꼽았습니다.
이러한 애정 결핍은 “공포 회피 애착 유형(fearful avoidant attachment style)”과 관련이 있으며 이는 고아가 되어 애정결핍을 겪은 아이들, 그리고 다수 남성들이 겪는 증상입니다. 플로이드 박사는 이메일에서 남자들은 “자신이 기대한 것보다 애정을 덜 받았을때 이를 여자들보다 더 알린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2011년 인디애나 대학의 킨제이 연구소는 성행동 아카이브를 통해 5개국의 중년과 노년의 결혼한 이성애자 커플 1,000쌍에 대한 조사결과에서 포옹과 키스가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여자보다 남자에게 더 크게 나타났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영국의 청년들은 과거의 습관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남성과 남성성(Men & Masculinities)”에는 30명의 이성애자 남학생이 신뢰할 수 있는 동성 친구와 우정의 포옹을 하는 것이 여자 친구와의 포옹보다 더 안전함을 준다고 답했습니다. 이 “브로맨스”는 “여자친구와의 감정 교류에 비해 감정을 더 잘 드러내게 만들면서도 더 안정적으로 유지시키고, 사회적으로도 충만한 느낌을 주며 분쟁을 해결하는 능력 또한 키워”줍니다.
최근 나는 새로운 친구와 맥주를 한 잔 했습니다. (우리가 다른 도시로 이사 온 뒤 내가 외로워하자 아내가 주선해준 자리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서로의 아버지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와 남자들의 감수성을 경멸하는 문화에서 성장하느라 힘들었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여자들이 옳아요.”
부엌의 문이 끼어 이를 여느라 시끄러운 식당에서 나는 말했습니다. “여자들은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친구나 자매와 대화를 나누지요.” 말을 마쳤을 때 문은 마침내 열린 듯 했습니다.
헤어질 때가 되었을 때 나는 아주 친한 친구와도 잘 하지 않는 일을 했습니다. 바로 그를 껴안은 겁니다. 그날 밤에만 두 번째, 닫혀있던 문이 열렸습니다.
원문: 뉴스페퍼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