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당신이 요리사가 되었다고 상상해보자. 오랜 기간 수련을 거친 뒤, 드디어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한 당신은 유명 프로그램 제작자로부터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음식을 만드는 방송에 출연해 달라는 제의를 받게 됐다. 프로그램의 핵심 과제는 얼마만큼 그 지역의 특색을 살리면서도 당신의 정체성을 잘 드러낸 요리를 만들어내냐는 것. 만약 당신이 이런 제의를 받아들였다면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가장 자주, 그리고 많이 맞닥뜨리게 되는 문제 상황은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 아마도 사람마다 각기 다른 다양한 답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지역별로 거주하는 사람들의 입맛 차이를 이야기할 것이며, 또 다른 누군가는 아직 지역별 요리 방식을 모두 섭렵하지 못한 요리사의 경험 부족 탓을 들 것이다. 물론 ‘지역별 재료의 차이’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문제 상황 중 하나. 자, 그럼 혹시 이런 경우는 없을까?
요리사, 즉 나는 지역별로 각기 다른 ’물맛’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사실 굳이 이런 거창한 상상을 하지 않더라도 요리는 물에서 시작해 물로 끝난다. 음식물을 깨끗이 씻어내는 일부터 익혀내는 일, 간 맞추는 일까지 물은 어디 하나 빠지는 일이 없다. 물이 음식의 맛에도 영향을 미치는 건 당연지사. 갖은 재료와 양념을 넣어 만든 서울의 김치보다,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 새우젓 등 기본양념만 넣고 슥슥 버무린 시골 할머니의 김치가 맛있는 또 다른 이유가 여기 있다. 같은 제조법으로 만든 술과 간장도 그 지역의 물맛에 따라 각기 다른 풍미를 풍기며, 조개는 그 지역의 환경과 물의 차이에 맞춰 같은 종이더라도 다른 맛을 낸다.
문제, 아니 철학의 시작
철학에 있어서도 물은 처음부터 문제, 아니 시작이었다. 기원전 6세기경, 세상의 근본을 신이 아닌 물에서 찾는 사람이 등장한 것이다. 서양 최초의 철학자라 불리는 탈레스(B.C. 624~546)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각종 현상을 자연적이고 이성적인 방식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그는 과학적 사고를 바탕 삼아 개기일식과 농작물의 풍년을 예측했던 인물로, 이성적인 사고를 통해 다양한 주변 현상이 신과 같은 초자연적 존재에 일어나지 않음을 확신했다.
본격적인 탐구에 앞서, 그는 스스로에게 ‘신이 아니라면 무엇이 만물의 근원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가 생각하기에 만물의 근원은 “생명에 양분을 제공하고 생명을 유지해주는 것”이어야 하며, “변화와 운동의 근본적인 원인도 자신 안에 갖추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조건을 만족하기 위해선 우리 주변 곳곳에 자리 잡은 물질이 만물의 근원일 가능성이 높을 터였다.
그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이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 필수 불가결하며, 얼음과 수증기로 쉽게 변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는 마침내 모든 물질이 최소한 어떤 단계에서는 물로 존재했을 것이란 결론에 다다랐으며, 이런 추론을 바탕으로 ‘물’을 만물의 근원으로 지목했다.
탈레스, ‘철학’이란 요리를 시작하다
오늘날 우린 기존의 틀을 변형해 만든 수많은 음식들과 마주한다. 우리가 흔히 먹는 ‘비빔밥’은 각 지역의 특색에 맞게 육회와 숙주나물을 얹은 진주비빔밥, 생미역과 국파래 등이 들어가는 통영비빔밥, 사골국물로 밥을 짓는 전주비빔밥 등으로 변형됐다. 또한 오래전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빈민들이 먹던 둥글납작한 빵 ‘피자’는 마르게리타 여왕의 마르게리타 피자와 미국인들에 의해 변형된 형태인 시카고 딥디시 피자 등으로 발전했다. 이렇게 변형된 비빔밥과 피자는 그 기원이 되는 음식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뛰어난 맛을 자랑하기도 한다. 말 그대로 청출어람인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비빔밥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나폴리의 빈민들이 피자가 아닌 다른 음식을 주식으로 삼았다면, 과연 오감을 만족하는 비빔밥과 피자가 지금 우리 앞에 놓일 수 있었을까?
탈레스가 떠나간 지 약 2,600년 뒤를 살아가는 우린 그의 주장에 틀린 부분이나 결함이 많음을 안다. 세상의 근본 물질이 물이 아님은 과학을 통해 증명된 지 오래고, 지진이 일어나는 원인 또한 그의 추론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탈레스가 철학사에 있어 중요한 인물로 여겨지는 것은 그의 사상이 논리의 치밀함이나 독특함을 가졌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의 철학이 여전히 가치를 가지는 이유는 ‘그가 우리 주변의 다양한 현상들을 초자연적인 것이 아닌 자연 안의 무언가를 통해 설명하려고 한 최초의 인물이었음에 있다.
무언가를 다르게 혹은 낫게 만들기는 결코 쉽거나 불필요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은 이런 노력에 비해 수천, 수만 배는 더 어렵고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신화에 의존하던 기존의 믿음을 전복하고, 탐구를 통해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어낸 탈레스는 서양의 철학을 비롯한 가치관 전반을 요리한 최초의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마치 밥 위에 고명을 얹어 비빔밥을 만들어낸 어느 선조, 그리고 처음으로 피자를 빚은 이탈리아 어느 노점의 상인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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