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부인인 질 바이든이 “사상 첫 본업을 지닌 영부인이 될까”란 기사를 봤다. 질 바이든은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이민자 등 소외계층에 영어를 가르치는 교육학 박사라고. 미국은 맞벌이 비율이 꽤 높은 나라다. 그런데 그 많은 대통령 중에서 자기 직업을 가진 영부인이 없었다는 사실은 정치인의 배우자로 사는 인생이 얼마나 힘들고 희생적이어야 하는지를 방증한다.
힐러리 클린턴은 어땠을까? 예일 로스쿨을 나와서 닉슨 탄핵조사위원회 까지 참여한 변호사인 힐러리 클린턴은 당연히 뉴욕이나 워싱턴DC의 유수의 로펌에 진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남자친구 빌 클린턴이 있는 시골 아칸소주에 수십 년간 머물렀다. 아칸소주에 머무르면서도 수입은 남편보다 항상 더 많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힐러리가 아칸소주를 떠나 워싱턴DC로 간 것은 남편이 백악관에 입성하면서부터다. 힐러리가 퍼스트레이디가 되면서 기록 하나가 생겼다. 최초의 석사 이상의 퍼스트레이디가 되었다. 1893년도 아니고 1993년 이전의 퍼스트레이디 그 누구도 석사학위가 없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항상 정치인 내조만 해야 하는 것이 정치인 배우자의 삶이니…
우리나라 정치인은 어떨까? 일단 이희호 여사가 떠오른다. (석사학위 영부인이 1997년도에 청와대 입성했으니 미국보단 약 4년 늦다.) 독일어로 중성을 뜻하는 ‘다스’(das)라는 별명을 가진 이희호 여사는 한 명의 내조를 잘하는 여성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남편에 못지않은, 아니 더하면 더한 주체적인 사회활동가였다.
감옥에 간 남편에게도 “현재는 당신만이 한국을 대표해서 말할 수 있으니 더 강한 투쟁을 하시라”는 말을 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이는 한 명의 아내라기보다는 한 명의 투사로의 정체성이 더 강하다는 증거 아닐까? 남산(?)으로 끌려갔을 때도 많은 민주화 선배들이 겪었던 일을 겪어서 영광!스러웠다고 말하는 당찬 ‘다스’였다.
그러나 이희호 여사도 언제부턴가 남편의 정치적 활동 속에서 투쟁하는 사회활동가 정도로 된 것 같다. 독자적인 수입과 직업을 지닌 사회활동가로 존재하기에는 우리나라 정치적, 사회적 토양이 너무 빈약하다. 특히 남편의 수번이 적힌 수의를 입고 투쟁하는 여사의 사진을 보면 너무 애처롭다. 다른 운동가 부인과 함께 여성여성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혼자 있는 사진은 ‘다스’로서의 포스가 있다.
가장 상징적인 인물은 바로 신은경 전 대변인이다. 신은경 전 자유선진당 대변인은 KBS 9뉴스 간판 앵커였다. 1958년생인 신 앵커가 KBS 앵커가 된 해는 1981년. 불과 24살 때다. 예쁘고 어린 여성이어서 KBS 앵커가 된 것일까? 이후 11년 동안 KBS 간판 9시 뉴스를 계속 차지한 것을 보면 그냥 얼굴마담은 아니었다. 특히 여성 최초로 단독앵커로도 진행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11년을 진행하던 KBS 앵커 자리를 박차고 나와 외국 유학을 결심했다. 한국에서 그렇게 성공하고 잘 나가던 삶을 다 내려놓고 홀연히 유학을 떠나 언론학 박사를 마치고 귀국한다. 그렇게 성공한 앵커를 박차고 나가서 박사학위를 따온 이후의 그녀의 삶은 어땠을까?
결국 그 유명한 ‘때밀이 내조’라는 말을 만든 정치인 내조의 여왕으로 등극하게 된다. 한나라당 박성범 전 의원을 위해 목욕탕을 돌아다니며 유권자들의 때를 밀어주는 때밀이 내조를 통해 정치인 남편을 위해 최고의 내조를 하는 내조의 여왕 말이다. 15대 총선부터 박성범 전 의원 당선의 1등 공신이 신은경이라는 사실은 거의 정설로 통한다.
그러나 18대 총선에서 박성범 의원은 같은 당 나경원 의원에 밀려 공천에서 탈락하게 된다. 남편 대신 당을 바꾸어 자유선진당 후보가 되기도 했다. 언론들은 나경원 의원과 신은경 대변인의 선거 구도를 ‘미모 대결’ 등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게 대한민국 언론의 수준이다.
박원순 전 시장 부인은 원래 남편보다 항상 돈을 잘 버는 인테리어 회사 사장이었다. 남편이 정치인이 되는 것을 매우 싫어해서 선거 때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선거운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결국 인테리어 회사도 접고 남편과 함께 선풍기도 없는 강북 옥탑방에서 기자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사진을 보니 참 짠하더라. 인테리어 회사는 접을 수밖에 없었다. 매출이 나면 다 남편 덕이라는 의혹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생겨서…(변희재 같은 분들)
진보 정치인은 어떨까? 심상정 의원 남편 이상배 씨는 살림과 집안일을 도맡아 하며 내조를 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상규 전 의원이자 전 진보당 대표 얘기는 재미있다. 3명의 아이를 키우는 다둥이 아빠인 이상규 대표는 집회나 투쟁 현장은 물론이고 당무 회의석상 등에도 애들을 데리고 다니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엊그제 우연히 이상규 전 의원 부인 양정진 씨가 최근 박사학위를 따서 출강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국회의원과 당 대표인 남편의 부인이자 애 셋을 키우는 엄마가 박사학위를 따기까지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그리고 남편이 어떤 중요한 당무회의가 있든 집회가 있던 육아 분담의 원칙을 주장한 것도 대단하고 그것을 따라주었던 남편도 대단하다.
하긴 양정진 교수는 강한 육아분담을 주장할 권리가 있다. 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인 김제남 의원이 소위 통합진보당 의원 제명의 캐스팅 보드를 쥐었던 적이 있다. 양쪽이 모두 김제남 의원의 마음을 잡고자 하는 상황 때 뒷얘기 하나.
이상규 의원이 저녁 늦게 김제남 의원과 미팅을 하게 되었다. 집 근처서 만났지만 막상 갈 곳을 못 찾다가 이상규 의원이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다고… 애 셋을 키우는 집안 꼴이 어떤지는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불쑥 김제남 의원이 자기 집에 초대된 부인은 얼마나 놀랐을까.
나중에 김제남 의원에게 그 상황을 들은 적이 있다. 이상규 의원 참 순박하고 소박하다면서. “집안 꼴이 엉망인 것에 개의치 않고 진솔하게 얘기하는 게….” 역사는 사소한 것으로 바뀐다고 하던가. 혹시 그날의 소박한 집이 김제남 의원의 마음을 움직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양정진 교수는 정말 당황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인 배우자의 삶이란…
근데 퍼스트레이디로서 자기 직업을 계속 영위할 수 있는지 여부는 사실 경호와 같은 기술적 문제가 핵심이지 않을까 싶다. 트럼프가 처음 백악관에 입성했을 때, 이방카 트럼프는 같이 백악관에 들어가지 않고 트럼프 타워에 한동안 머물렀다고 한다. 경호에 비상이 생겨서 백악관 경호팀이 백악관 입성을 요구했다는데 트럼프 타워에 머물렀던 이유가 무엇일까?
백악관이 너무 좁아서 살기 불편해서요.
이런 웃픈 이야기가 있다.
만약 질 바이든이 이민자를 위해 영어 교육 업무를 계속한다면 경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아니, 우리나라 영부인이 직업을 영위하려면 경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경호에 너무 많은 국민 세금이 쓰인다면 본인의 꿈과는 무방하게 본인의 커리어를 포기해야 할까? 아니면 세금을 더 쓰더라도 영부인의 삶을 보장해 주어야 할까?
원문: 이상민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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