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승환 ㅍㅍㅅㅅ 대표(이하 리):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박상화 큐피스트 CTO: 창업부터 6년째 글램을 운영하고 있는 큐피스트 CTO 박상화입니다.
리: 글램 앱을 만드는 건 재미있나요?
박상화: 재밌죠. 끊임 없는 실험의 연속이에요. 처음엔 ‘이게 될까?’ 하면서 제품을 개선하고, 변화한 앱에서 사용자들이 어떤 가치를 얻어가는 순간순간이 즐거워요. 원래는 일본계 회사에서 ERP를 개발하고 있었는데, 정말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서비스를 내놓고 싶었습니다.
리: 그래도 어떤 서비스를 만들고 싶었다, 는 생각은 보통 가지잖아요?
박상화: 솔직히 분야는 크게 상관하지 않았어요. 다만 외주 제작이 아닌, 그 서비스의 주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글램에 빠져들 수 있었던 것은, 런칭 초반에 고객은 얼마 없었음에도 굉장히 감동적인 리뷰를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혼을 하게 되었다, 연인이 생겨서 감사하다… 그 중 특히 지방에 직장을 잡은 후,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채널이 없어서 고생하다가 글램 덕분에 인연을 찾았다는 내용이 기억에 남습니다.
리: 캬…
박상화: 저도 창업 전에는 지방에서 직장생활을 한 적이 있었는데,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 보니 굉장히 우울하게 지낸 경험이 있습니다. 실제로 만나보지 못하였지만, 이전의 저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분들이 글램을 사용하면서 더 나은 삶을 살 게 되었다는 내용을 보고, 제가 만들어가는 서비스가 사람들의 인생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런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을 만한 서비스를 만드는 건 굉장히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 그만큼 조심해야 할 것도 많다
리: 글램은 데이팅 앱이잖아요. 데이팅 앱에서 기술을 다루는 게 특별한 점이 있다면?
박상화: 쇼핑몰 등은 인간이 아닌 사물을 보여줘요. 글램은 인간을 보여주기에 훨씬 섬세해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의 매칭이기 때문에 양방향을 모두 고려해야 합니다. 쇼핑몰은 사용자가 가격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가격을 필터하여 검색한 다음 구매하면 됩니다. 상품이 어떤 구매자를 원하는지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글램에서는 자신의 이상형 설정에 맞는 유저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이상형 설정이 교집합이 되는 사용자들이 보여야 합니다. 이런 양방향성을 고려하는 기술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리: 기술적으로도 차이가 있나요?
박상화: 사물은 각 카테고리마다 ‘좋은 제품’이라고 할 기준이 단순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람은 개인화의 끝을 달리는 서비스거든요. 그런 점에서 추천 기술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데이팅 앱은 소셜미디어, 채용 서비스와 닮은 면이 있죠. 메인이 되는 건 사람이니까요.
리: 어떠세요? 서비스를 계속 하면서, 추천 정확도나 매칭율도 높아지던가요?
박상화: 당연히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만… 파면 팔수록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렵습니다. 이렇게 하면 잘 될 거라는 가설로 테스트를 해 봐도, 사용자들은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마음의 변수’가 항상 작용하기 때문이죠. 같은 프로필의 상대를 봐도, 그날 컨디션 따라 반응이 다를 수 있잖아요.
이렇듯 공식으로 풀어낼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지만, 이런 사용자들의 시시각각 변하는 마음까지도 캐치할 수 있도록 연구 중이에요. 사용자가 직접 입력한 이상형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을 넘어 실제 유저들의 방대한 행동 데이터를 수집, 분석하여 사람들 이면에 담긴 취향을 파악하는 추천시스템을 만들고 있습니다.
리: 사람, 그것도 연애와 사랑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이기에 생긴 에피스도는 어떤 게 있을까요?
박상화: 사람들이 데이팅 앱을 쓸 때 ‘가짜 프로필’을 의심해요. 그래서 가짜가 아닌 걸 보여주기 위해 최근 접속일, 현재 접속 여부 등을 표시해주는 기능을 열었어요. 그런데 그때, 사용자들이 좀 민감하게 생각하셨어요. 내 접속 여부를 알리고 싶지 않은 분들도 계시잖아요. “지금 접속했으면서 왜 답장 안 보내냐”는 식으로 시비를 거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요.
리: 그래서 어떻게 하셨나요?
박상화: 바로 빼고, 조금 느슨하게 알려드리는 방식으로 바꾸었어요. ‘3일 내에 접속한 적 있음’ 같은 식으로 표시 방식을 바꾼 거죠.
리: 와, 발빠르네요…
박상화: 기능 하나하나에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요. 유저의 표현 방식도 마찬가지예요. 글램에서는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좋아요’를 보낼 수도 있고, ‘좋아요’ 대신 ‘높은 평가’를 줄 수도 있어요.
엔지니어링 관점에서는 두 가지 모두 상대방에 대한 호감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유저 관점에서는 다릅니다. ‘좋아요’를 보내면 상대와 연결될 기회를 얻을 수 있지만, 소극적인 유저들은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좋아요’ 대신 ‘높은 평가’를 주는 방식으로 감정 표현을 합니다. ‘높게 평가’라는 표현은 소위 “너에게 관심은 있지만 내가 먼저 ‘좋아요’를 보내진 않을 거고, 네가 내게 먼저 더 적극적인 액션을 취해달라”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합니다.
‘틴더’는 시장의 시작, 앞으로 더 큰 가능성 열릴 것
리: 주변에 ‘틴더’ 엄청 쓰던데, 위협받고 있지는 않나요?
박상화: 오히려 시장이 더 넓어지고 있습니다. ‘틴더’가 전세계를 통일하다시피 했잖아요. 그만큼 잠재력이 큰 시장이란 게 증명됐다고 봐요. 서구권에선 틴더 프로필을 만드는 게 마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프로필을 만드는 것처럼 그냥 당연한 일상의 영역으로 들어왔죠. 굉장히 어려운 관문을 깨 준 셈이에요. 틴더가 전 세계 소셜 데이팅의 저변을 넓혀준 덕분에 저희 또한 더 많은 가능성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리: 그래도 틴더가 독점할 거란 위기의식은 없나요?
박상화: 데이팅 앱을 헤비하게 쓰는 분들은, 한 가지 데이팅 앱만 쓰지 않습니다. 각각의 특성에 맞게 여러가지 데이팅 앱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요. 틴더의 한국 진출 이후, 글램의 사용자와 수익도 계속 커지고 있어요.
리: 모든 서비스에 리텐션이 중요한데요, 데이팅 앱이 골치아픈 게 짝이 생기면 떠나잖아요.
박상화: 연애라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오신 분도 계시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아요. 데이팅 외에도 심심해서 눈팅만 하는 분도 있고, 그 경계 쯤에 계신 분들도 있고… 사실 사람이 제일 재미있는 컨텐츠 중 하나잖아요. 그래서 글램도 연애뿐만 아니라 다양한 목적으로 서비스를 사용하실 수 있도록 개선하고 있습니다.
리: 습관화를 위해 어떤 도전을 하고 있나요?
박상화: 예로 관심사가 맞는 사람들끼리 모일 수 있는 ‘모임’도 그중 하나예요. 사람들이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과 대화하기 위해 글램에 접속할 테니까요. 추천인 수를 늘린 것도 마찬가지고요.
리: 추천인 수를 늘리면 과금 가능성은 낮아지지 않나요?
박상화: 글램에서 추천받을 수 있는 사람 수를 늘리면 당장의 수익 모델과 상충하는 부분이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유저들이 글램을 그만큼 더 많이 찾게 만들면 장기적으로 유저 수가 증가하여 추천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는 효과를 낳습니다.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기 위해 습관화가 핵심입니다. 이를 위해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거고요.
성공적인 데이팅 앱, 안에는 끊임 없는 고민이 담겨 있다
리: 틴더 출시에도 매출이 늘고 있다고 하셨는데, 어떤 이유 때문일까요?
박상화: 저희는 매출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연결율’에 집중하지요. 사용자들이 더 많이 매칭되면 자연히 매출이 오른다 생각합니다. 데이팅 앱에서 연결까지 가는 과정은 사용자 탐색 → 좋아요 전송 → 좋아요 수락 → 연결이라는 퍼널을 거칩니다. 이 하나하나의 퍼널을 개선해 나갈 때마다, 고객만족도와 매출이 늘어났지요.
리: 어떤 부분을 개선했지요?
박상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추천 시스템입니다. 쉽게 생각하면, 인기 있는 분을 다수에게 노출하면 된다고들 생각합니다. 사실 커머스 앱이라면 이 말이 맞죠. 다만 글램은 사람이 추천되기에, 너무 많은 인터랙션이 일어나면 스트레스가 됩니다. 그리고 연결률이 올라갈 확률도 낮아지게 돼죠. 그러면 너무 많은 ‘좋아요’를 다 확인하지도 않고, 좋아요를 보낸 사람의 실망도 커지겠죠. 그래서 하루에 다른 사람에게 노출될 수 있는 양을 조정하는 기능을 추가했습니다.
리: 오… 그밖에는 어떤 개선이 있을까요?
박상화: 그리고 사용자의 이상형 설정도 많이 바꿨습니다. 여기에는 유저 피드백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특히 유저들이 민감하게 반응한 부분은 나이였습니다. 20~29세를 선호하는 사용자 A에게 30세 사용자 B가 ‘좋아요’를 보내면 사용자 A는 기분이 상합니다. 이런 피드백을 기반으로 하여 사용자 탐색 단계에서부터 필터를 추가하고 다듬었죠.
리: 살펴야 할 게 많군요.
박상화: 다만 사용자가 설정한 이상형 데이터를 모두 반영하다 보면 글램에서 사용자가 한 명도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최악의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각 사용자마다 소개될 수 있는 후보의 수를 추적하여 사용자가 설정한 값을 기반으로 범위를 조정하거나 부족한 사용자들을 유입시키기 위한 마케팅 캠페인 지표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무모해보이는 실행도 필요하다
리: 안재원 대표님은 같이 일하기 어때요?
박상화: 대표님은 한 가지에 집중하면 거기에만 미치는 분입니다. 그게 양날의 검이긴 한데… 그게 대표님의 매력이고, 그런 점을 높게 평가해서 들어오시는 분들도 계신데… 개발 리드 입장에서는 무모해 보일 때도 있습니다.
리: 혹시 무모함이 화를 일으킨 사건도 있었나요?
박상화: 대표님이 서비스 런칭 일정을 밀어붙였던 적이 있어요. 그러면서 런칭 후 곧바로 태국으로 워크샵을 가자고 했죠. 개발단에서는 초기에는 서비스가 불안정할 수 있으니 지켜봐야 한다, 안 그러면 사달이 날 수 있다고 말렸는데… 대표님이 서비스 런칭하고 기분 딱 좋을 때 워크샵까지 가자고 강행했죠.
리: 어떻게 됐습니까.
박상화: 태국으로 워크샵까지 갔는데 사달이 정말 터진 거예요. 워크샵 이틀째에 알림 시스템이 마비가 됐어요. 채팅을 해도 알림이 안 가니까 난리가 난 거죠. 그게 무려 반나절 정도를 그랬으니까… 엔지니어들은 다 노트북 들고 호텔 바닥에서, 그리고 카페 가서 계속 고치고 있었던… 해외에 있다 보니 한국처럼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기 힘들고… 뭐, 그랬었죠.
리: 그래도 대표님인데 칭찬도 좀 해봅시다.
박상화: 반대로 비저너리하니까 그렇게 몰아붙이기도 하는 거죠. 대표님이 푸시를 하지 않았다면, 개발단에선 아예 런칭을 못 했을 수도 있죠.
리: 그래도 막 몰아붙이면 짜증나지 않습니까…
박상화: 당연하게 생각하진 않지만, 서비스 장애는 그냥 삶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거긴 해요. 만일 이런 걸 하면 유저들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까, 법적 이슈가 있지 않을까… 개발자이자 프로덕트 담당자로 항상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죠. 그런데 그렇게 고민이 너무 많으면 행동을 하지 못하니까요.
프로덕트를 생각하는 관점이 있는 개발자를 뽑고 싶다
리: 전체 직원 중 개발자 비중은 몇 명 정도인가요?
박상화: 14명, 전체 직원의 1/4 정도입니다. 내년 여름 전까지 30명 정도로 늘릴 생각입니다.
리: 1년도 안 돼 2배라니, 왜 이리 많은 개발자가 필요한 거죠?
박상화: 데이팅 앱의 핵심은 연결율이에요. 쉽게 생각하면, 남성에게 엄청 아름다운 여성을 소개해주면 대체로 다들 좋아요를 보내실 거예요. 근데 사실 그건 헛된 희망인 경우가 많아요. 그 여자분에게도 마음에 들어할 만한 남자를 소개해줘야 하잖아요. 서로 좋아요를 보내고 매칭이 될 가능성이 높은 유저를 소개해주는 알고리즘을 만드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리: 그런데 아까 ‘마음의 변수’를 알고리즘적으로 알기 어렵다고 하셨잖아요?
박상화: 맞아요. 하지만 그걸 추구하고 노력은 해야죠. 기본적으로 인구통계학적 지표들을 많이 이용하지만, 쉽게 알 수 없는 요소들을 파헤치려 노력합니다. 시기에 따라 사람이 변하고 취향이 변합니다. 예로 서울에 사는 분만 선호한다고 설정하신 분이, 강원도에 사시는 분에게 좋아요를 보내는 경우가 있어요. 이는 거리가 중요하기는 하나, 먼 거리를 감수하고서라도 호감을 표현하고 싶은 상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상형 설정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개인만의 공식이 있는 것이죠.
리: 이런 변수를 줄이기 위해 어떤 것을 합니까?
박상화: 끝없는 실험이죠. 사용자가 연결까지 가기 위하여 탐색 → 좋아요 전송 → 수락 → 연결의 퍼널이 있습니다. 이 퍼널 자체를 줄이기 위하여 ‘통화’라는 기능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우선 바로 이야기해보고 마음에 들면 ‘좋아요’를 보내는 기능이죠. 굉장히 실험적인 기능이지만 나름대로 기대가 많은 기능이었는데, 사용률이 저조했습니다. 통화라는 방식이 문제인지, 또는 퍼널을 뒤집으면 좀 더 많은 참여를 한다는 가설이 문제였는지… 계속 개선하면서 경과를 보고 있습니다.
리: 진짜 별 걸 다 하네요.
박상화: 그러다 보면, 의외의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모임’ 기능이 있으면 사람들이 관심사에 따라 모이고, 그게 데이팅의 씨앗이 되는 그런 그림을 예상했거든요. 그런데 ‘모임’ 기능을 오픈하고서, 사주 봐 주는 모임이 그렇게 대유행을 할 줄은 몰랐어요. 데이팅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유독 사주에도 더 관심이 있는 건지, 무엇 때문인지는 좀 더 연구하는 중입니다.
프로덕트를 운영하는 마인드의 개발자가 필요한 이유
리: 어떤 개발자를 뽑고 싶으세요?
박상화: 엔지니어로서의 기본기도 중요하지만, 프로덕트를 생각하는 관점이 있는지가 제일 크게 보는 부분이에요. 프로덕트를 생각하지 않으면, 업무에 있어 수동적이 됩니다. 요구사항을 전부 디테일하게 써달라고 하죠. 하지만 프로덕트를 생각하는 컨텍스트가 있으면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부분이 있고, 기획자의 요구사항에 실수가 있더라도 그걸 엔지니어가 수정할 수 있어요. 왜 이걸 하는지를 이해하고 있으니까요.
리: 기획자로서의 역할까지 일부 수행하는 셈이군요.
박상화: 네. 제품을 생각하는 관점이 있는 분들은 “이 아이디어는 이 기술을 더하면 이렇게 발전시킬 수 있겠다” 같은 제안까지 하시죠. 사실 요구사항을 주는 분들이 모든 기술 사항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을 수는 없으니, 반대로 그분들에게 조언도 주며 코웍합니다.
리: 성격적으로는 어떤 개발자가 여기에 맞을 것 같으세요?
박상화: 제품에 관한 오너십과 욕심이 있는 분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희는 개발자가 그 기능을 온전히 이해한 운영자로서의 역할도 수행해요. 내가 개발한 걸 그 이후로도 계속 발전시키고 운영해 나갈 수 있어야 하죠. 편하진 않겠지만, 그게 개발자로서의 성장에 굉장히 큰 밑거름이 될 거예요. 보통 회사에서는 개발하는 모듈이 어디에 사용될지도 모르고 요구사항만 따르는데, 저는 어느 정도 증명만 되면, 해당 모듈에 관한 권한을 풀로 드리거든요.
리: 그러다 삽질하면 어떡해요…
박상화: 거기에 대한 최소한의 시스템적 대비는 있죠. 물론 가끔 문제도 생기지만, 저는 권한을 제한함으로서 생기는 병목보다는, 그렇게 권한을 줘서 빠르게 가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해요. 결국 실무자가 제품의 상황을 가장 잘 알기에, 자유도를 높인 만큼 프로덕은 발전한다고 봅니다. 권한을 가지고 오너십을 발휘해서 서비스의 특정 부분을 맡아 발전시킬 수 있는… 그런 마인드, 그게 중요할 것 같아요.
리: 이를 위해서는 개발팀만 잘해서 될 것 같진 않은데요.
박상화: 맞습니다. 다만 이런 환경이 익숙하지 않은 분도 많기 때문에 마인드셋만 갖추시면 됩니다. 그래서 큐피스트는 크로스 펑셔널한 팀을 지향합니다. 초기 기획에서부터 엔지니어분들이 참여하죠. 단순히 요구사항을 받아서 구현하는 직군이 아니라, 함께 프로덕트를 관심 있게 탐구하면 소프트웨어의 퀄리티가 달라집니다. 작게는 디자인 직군과의 용어통일을 시작으로, 엔지니어들이 알고 있는 기술을 융합한 피처 아이디어까지 내부에서도 시너지 효과를 많이 보고 있지요.
학습하는 개발조직의 정착
리: 혼자 개발하다가 개발자만 15명이 됐는데 어떠세요?
박상화: 아무래도, 개발작업에서 점점 손을 놓고 매니징 요소에 집중하게 되죠. 직접 개발을 점점 못하게 되는게 아쉽기는 하지만, 개발에 집중하는 분들이 제 원래 업무를 가져가는 만큼, 저는 새로운 분야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어서 좋습니다. 한 서비스를 6년 간 개발해 왔으니 정말 깊숙한 정보를 속속들이 다 알게 됐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건 즐거운 일입니다.
리: 거의 프로덕트 오너가 되셨군요.
박상화: 그래서 꼰대 소리도 좀 듣죠. “이 기능은 이렇게 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하는 의견이 나올 때, “그건 2년 전에 다 해봤던 일인데…” 이런 식으로 반응이 나올 때가 있으니까…
리: 그래서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까?
박상화: 컨텍스트를 많이 공유하려고 합니다. 왜 이런 일을 하고, 어떤 목적을 달성해야 하고, 이전에 어떤 히스토리가 있었는지 등 관계된 내용을 최대한 전달합니다. 시간은 걸려도 이래야, 의사소통이 제대로 된다고 봅니다. 그러다 보니 필수는 아니지만 엄청나게 문서화를 해요. 그래서 노션 검색만 하면 모든 프로덕트 히스토리를 볼 수 있습니다.
리: 개발팀만의 독특한 문화도 있나요?
박상화: 학습하는 개발문화가 잘 정착돼 있는 편이에요. ‘I SEOUL U’ 아시죠? 그걸 패러디해서 ‘I DEV U’ 라는 내부 개발자 컨퍼런스를 만들었어요. 분기마다 세션 리스트를 정하고 투표를 통해 인기 순으로 발표를 해요. 또 매주 수요일 오전 11시부터 1시까지 스터디 타임도 가지고요. 관심사별로 그룹을 지어서 스터디하고 실무에 도입하죠.
리: 글램도 나름 6년 고인물 서비스인데, 아예 갈아엎는 것도 생각하고 계세요?
박상화: 저희가 처음엔 PHP로 개발했거든요. 좋은 언어이지만, 미래의 미래를 바라봤을 때, 머신러닝이나 데이터 처리 분야에서는 파이썬이 워낙 강력한 생태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파이썬도 병행하여 개발 중입니다. 앞으로 또 어찌될지 모르니, MSA 아키텍처 도입을 통해 특정 기술의 제약 없이 요구사항을 만족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그래서 개발자를 계속 채용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앞으로의 글램
리: 앞으로의 글램은 어떻게 발전해 나갈까요?
박상화: 확실한 건 여느 소개팅 앱에 머물진 않을 겁니다. 초식남, 남사친, 여사친, 결혼 비율의 감소, 다자간 연애 등 옛날과는 다르게 사람들의 관계가 다양화되고 있어요. 이처럼 다양한 형태의 만남과 사랑이 세분화될 것이고, 글램은 이런 다양한 욕망과 감정을 충족시킬 수 있는 채널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리: 이를 위해 어떤 변화를 꾀하고 있나요, 동성애, 폴리아모리, 이런 카테고리를 막 만들 건 아니잖아요?
박상화: 아직은 초보적이지만 다양한 변화가 있습니다. 먼저 ‘그 사람’을 잘 드러내게 하는 게 우선이에요. 같은 사람이라도 어떻게 자신을 표현하는지에 따라서 다양한 매력을 발견할 수 있게 되니까요. 사진, 인적사항 등 제한적인 자기소개만을 넘어, 더 다양한 프로필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다양한 콘텐츠를 업로드할 수 있는 ‘어필’이라는 소셜미디어 같은 기능을 넣은 것도 이 때문이죠.
리: CTO로서 가지고 있는 엔지니어링 원칙이 있나요?
박상화: 개발팀은 개발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즈니스가 요구하는 속도와 안정성, 그리고 개발 퀄리티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장과 핏을 맞추는 것이 우선이고 제품이 성장할 때 확장을 위하여 좋은 아키텍처와 탄탄한 기술을 발전시키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리: 뒤에서 묵묵히 엄청난 역할을 수행하는 거군요.
박상화: 네. 그러면서도 없는 일도 만들어 나가야죠. 당장 지금도 매칭 엔진 고도화와 머신러닝을 도입으로 정신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프로필 사진 선정 자동화, 어필과 클럽이라는 소셜 기능 고도화, 데이터 파이프라인 재정렬 등 할일이 많지요. 전부 개발팀에서 원해서 발전해 나가고 있습니다.
리: 이 회사에서 언제까지 일하실 것 같으세요?
박상화: 임원진이 다 포기하지 않는 한 쭉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적어도 10년은 더 하지 않을까요?
리: 뭐가 그렇게 맘에 드세요?
박상화: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인터랙션을 하게 만드는 그 자체가 좋아요. 이런 서비스가 그리 많지 않거든요. 그 서비스들 중 살아남은 게 몇 개 안 되기도 하죠. 그중 하나라는 데 굉장히 큰 가치를 느끼고 있어요. 또 하나, 사람의 욕망을 충족시킨다는 것. 이게 정말 큰 가치에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떠올랐던 건 아니지만, 대표님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발견한 가치죠. 같이 시작한 도전이었으니까, 어디까지 우리가 갈 수 있을까 끝까지 가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