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후, 달라진 점은 문장의 길이다. 손톱깎이처럼 딱 자른다. 기계처럼 거침없이 끊는다. 한 문장이 한 줄 반 이상 넘어가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마침표를 소환한다. 퇴고할 때 대부분 하는 일은 문장을 끊어내는 일이다. 마침표를 찍고 또 찍는다.
글을 잘 쓰고 싶었다. 그래서 글쓰기에 관한 여러 책을 읽었다. 또 글 잘 쓴다는 사람들의 책을 뒤졌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건, 단문.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문장을 짧게 쓰는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정말 잘 쓰지 않는 한 만연체로 쓴 글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일기가 아닌 이상 누군가가 읽어주기 바라며 세상에 내놓는 글은 읽는 사람이 읽기 쉽게 써야 한다.
브런치에 올린 초기 글만 봐도 가관이다. 의식의 흐름대로 주저리주저리 마침표 없이 이어진다. 마침표를 쉽게 찍지 못했다. 욕심은 많았고, 방법을 몰랐다. 아직 할 말은 많은데 이대로 끝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쓰기 시작한 글은 머릿속에서 헝클어지고, 결국 문장 속에서 엉긴다. 머릿속에서 정돈되지 않은 생각들을 텍스트로 옮겨낸다. 머리 밖으로 끄집어내 글자로 표현된 생각들을 눈으로 보면 내 생각이 얼마나 엉망인지 알 수 있다. 쉼표도 마침표도 없이 내달리기만 하는 글을 읽다 보면 숨이 찬다.
머릿속이 어지러울 때는 생각들을 머리 밖으로 끄집어내 글로 하나하나 풀어냈다. 그리고 퇴고를 하며 생각을 정리해 다시 머릿속에 집어넣는다. 그게 바로 글쓰기의 힘이었다. 머릿속을 말끔하게 청소하고 정리 정돈해 주는 것. 사람들은 다 자기 안에 답을 가지고 있지만, 쉽게 찾지 못한다. 머릿속 가득한 잡동사니. 그 불필요한 짐들 사이에 정답이 있다. 보통은 그 잡동사니에 가려진 답을 찾기 어렵다. 아니 아예 찾을 엄두를 못 낸다. 그래서 자꾸 밖에서 찾으려고 한다.
문장을 짧게 쓰면서, 생각도 짧아졌다. 문장을 짧게 쓰면서, 확대 해석하는 버릇이 없어졌다. 그 표정은 무슨 의미였을까? 그 말은 어떤 뜻일까? 그 행동은 어떤 메시지일까? 불필요한 의미 부여를 하지 않게 됐다. 드러나는 팩트만으로 짧게 생각하고 넘기게 됐다. 나를 괴롭히던 내가 만든 생각의 덫에 빠지지 않게 됐다.
문장을 짧게 쓰면서 신중해졌다. 짧은 문장 안에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임팩트 있게 전달하기 위해 고심했다. 구구절절 긴 설명이 없이 그저 짧은 문장 그 안에 진심과 본래의 의미를 담고자 노력했다. 많은 단어를 쓰지 못하니 단어 하나를 고르고, 어디서 마침표를 찍을지 신중하게 생각하게 됐다. 글 쓰는 습관은 고스란히 말 습관이 됐다. 내 의도를 제대로 말하기 위해 짧은 문장으로 말했다. 줄임표를 습관처럼 붙이던 애매한 말투를 고쳤다. 딱딱하게 느껴지더라도 선명하게 의사 표현을 하는 게 모호한 것보다 나았다.
문장을 짧게 쓰면서 삶도 간결해졌다. 문장을 간결하게 쓰려면 불필요한 수식이나 허울 좋은 장식을 빼는 게 일이었다. 글을 간결하게 쓰는 버릇을 들이려고 하니 일상에서도 내 곁의 불필요한 것들을 지우게 됐다. 지갑을 뚱뚱하게 만든 철 지난 영수증과 명함들, 옷장에서 몇 해째 방치되던 손이 가지 않는 옷들, 방 안에서 먼지만 쌓여가던 잡동사니들, 냉장고에 쌓여 있던 유통기한 지난 소스 같은 것들을 보이는 대로 족족 내다 버렸다. 귀찮아서, 언젠가는 쓸 거 같아서 품고 있어 봤자 결국 짐이라는 걸 알게 됐다.
마침표를 습관처럼 찍는다.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물어 나를 괴롭혔던 날들에도 마침표가 찍혔다. 깨끗이 잊지 못하고 끌리는 데가 남아 있는 마음, 미련(未練). 그 미련이 쌓여 어리석고 둔하기 짝이 없는 미련한 사람이 되곤 했다. 미련을 지우는 데 마침표만큼 효과 좋은 지우개가 없었다. 생각의 덫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글에도, 삶에도 마침표를 찍는다. 그 작고 동그란 마침표 하나는 모호했던 글도, 인생도 한층 또렷하게 만든다.
원문: 호사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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