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으로 향하는 KTX가 부산역을 막 출발했다. 총 3시간 25분 일정이다. 부산역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머리를 스친 생각 하나. KTX 안에서 글을 써보자. 열차 여행 시간이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라 가정하고 어떻게든 직장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남겨보자고 말이다. 시간이 없다. 목표는 스무 개.
1. 첫 직장, 첫 부서가 중요하다.
크고 좋은 곳이 첫 직장으로 좋다는 말이 아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커리어 여정에서 실무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회사로 정하라는 말이다. 영업을 제대로 배우고 싶다면, 네임 밸류가 더 높은 회사에서 멋져 보이는 마케팅을 하는 것보다 조금 규모가 작더라도 ‘영업 사관학교’라고 불릴 정도로 영업 체계가 갖춰진 회사의 영업팀에서 시작하는 것이 100배 낫다.
내 경우 단지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식품과 화학을 주력으로 하는 회사의 홍보팀에 들어갔다. 홍보팀에서 회사의 여러 소식을 가까이서 접하면서 경영과 전략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내 커리어에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내 경우는 계획한 것이 아니라 운이 좋았던 경우다. 모든 것이 계획한 대로 되란 법은 없지만, 한참을 돌아가지 않으려면 첫 직장, 첫 부서가 중요하다.
2. 한 마디라도 더 건네 보자.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회의 말고 옆 사람과, 팀원들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면 이젠 그러지 말자. 억지로 수다 떨라는 뜻이 아니라. 관심을 갖고 말을 건네 보라는 말이다.
지수 대리님, 이번 프로젝트 어때요? 마케팅팀과 이슈가 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해결이 좀 됐나요?
현수 과장님, 팀 미팅 때 보여주셨던 자료 저한테 공유해주실 수 있나요? 제가 평소에 관심 있던 분야였거든요.
이런 식으로 업무 이야기지만 서로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소재가 될 수 있다. 관심에서 나온 말 한마디가 나의 직장 생활을 즐겁게 바꾼다.
3. 회사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또 다른 나로 변신하자.
회사 밖의 나와 회사 안의 내가 꼭 같을 필요는 없다. 집에서 소심한 사람이 회사에서는 적극적으로 이벤트를 기획하는 직원이 될 수 있고, 딸바보인 아빠가 회사에서는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감사팀 직원이 될 수 있다. 그 사이의 괴리감이 있다고 해서 괴로워하지 말자. 대신 멋진 연기를 하다고 생각해보자.
4. 진짜 멘토를 찾아라.
회사에서 정해주는 멘토 말고, 진짜 멘토를 찾자. 회사 안에 있을 수도 있고, 회사 밖의 커뮤니티에 있을 수도 있다. 내 커리어의 고민을 들어주고, 속 시원한 얘기를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직접 얘기하자. ‘부장님은 제 멘토예요’, ‘준식님은 정말 제 인생의 멘토예요’라고 말이다. 그 순간부터 그 사람은 진짜 내 멘토가 되어줄 것이다.
5. 나이 마흔이 되어서는 이력서 쓰지 말자.
나이 마흔이면 짧게는 10년에서 길게는 15년 이상의 경력이 쌓인다. 적어도 한 분야에서는 잔뼈가 굵게 되고, 적어도 두세 개 서로 다른 회사, 부서, 분야에서 경험이 쌓이게 된다. 때로는 경쟁사에까지 이름이 알려지기도 하고, 회사 내에서 ‘마케팅 하면 김 부장’ ‘전략 하면 박 과장’과 같이 전문가 소리를 듣게 되는 시기다.
또한 외부 네트워크 활동을 많이 하는 경우라면 업무적인 실력뿐 아니라 인성이나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검증이 끝난 경우다. 이 정도 되면, 어느 회사를 가기 위해 이력서를 쓰고 자기를 알리기보다는 이름 석 자만으로도 자신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나를 원하는 회사에서 굳이 이력서를 요청하지 않는다.
6. 내 미래를 내가 속단하지 말자.
‘난 회사에서 책상 뺄 때까지는 나갈 생각 없어’, ‘외국계 회사는 나랑 맞지 않아서 영문 이력서는 애초에 만들지도 않았어’. 직장인 열의 아홉은 자신이 계획한 대로 커리어가 흘러가지 않는다. 첫 부서 발령부터 어긋나기도 하고, 회사가 인수 합병되어 닭 쫓던 개와 같은 신세가 되기도 한다. 가능성은 늘 열어두자. 내가 그 가능성을 걷어차진 말자.
7. 재테크 공부하자.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월급 받으며 일하는 직장인 중에 재테크의 잼병인 이들이 많다. 안정적인 월급이 재테크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물론 투기가 아닌 투자를 해야겠다. 가치 있는 회사를 찾아 주식에 장기 투자하고, 부동산도 적어도 남들 아는 만큼은 알아서 호구가 되지 말자.
8. 회사에만 갇혀 있지 말고 나의 커뮤니티를 찾자.
회사 안에만 있으면 모른다. 회사 밖의 세상이 얼마나 큰지를 말이다. 회사 안에만 있으면 대화의 주제나,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비슷한 사람들밖에 없다. 회사 밖으로 조금만 눈을 돌려보자. 동일한 이슈에 대해서도 정말 다양한 접근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아, 저렇게도 접근할 수 있구나!’ 깨닫는 순간들이 종종 찾아온다. 그리고 정말 다양한 경제, 사회 현상을 주제로 대화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물론 나에게 맞는 커뮤니티를 찾기란 쉽지 않다. 추천하는 것은 나와 결이 맞는 사람이 속한 커뮤니티를 찾아가는 것이다.
9. 회사의 개가 되지는 말자.
한 번뿐인 인생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개가 될지언정 회사의 개가 되어 충성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말자.
10. 돈과 경력을 바꾸진 말자.
돈을 더 준다고 해서 경력을 포기하지는 말자. 지나친 가격 인하로 시장을 혼탁하게 하는 경쟁사에서 회사 직원들에게 현재 연봉의 두 배가 넘는 연봉으로 제안하기도 한다. 아무도 가지 않는다. 건너갔을 때 가치가 덜한 일을 무한반복으로 하다가 버려질 것이라는 미래를 알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현재 회사를 몇 년 더 다니면서 충분히 실력을 쌓고, 자신을 알아주는 곳으로 ‘영전’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11. 공부는 ‘지금’ 시작하자.
직무 관련 공부든, 영어 공부든, 데이터 공부든 한 살이라도 일찍 시작하는 게 몇 배 이득이다. 회사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자발적으로 영어 회화 문장을 매일 외워서 녹음 파일을 올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놀랍게도 영어 실력과 상관없이 젊은 직원일수록 빠르게 외웠다. 심지어 집에서도 해보니 아들 녀석이 나보다도 빨리 외웠다. 공부는 나이가 깡패다.
12. 내가 하는 일은 내 일로 만들자.
내가 하는 일은 모두 내 이력서에 쓸 수 있을 만큼 내 일처럼 하자. 그게 내가 한순간도 시간을 허비하지 않을 수 있는 비결이다. 갑자기 내 일이 아닌 일을 하게 될 경우, 대부분이 입이 쭉 삐져나온다. 잘해도 칭찬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100% 전력을 다하기보다 70–80% 수준에서 자신과 타협한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내 일처럼 여기고 돕는다면 언제라도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을 갖추는 것은 금방이다. 이런 경력은 내가 이력서나 면접에서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정도가 된다.
13.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하자.
요즘은 3년 차, 아니 1년 차만 돼도 신입 직원에게 소위 꼰대질을 한다. 자기 때는 그렇지 않았다는 거다. 본인들도 다 공부하면서 배우면서 컸는데,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 한다. 그러지 말자. 아기 개구리들이 올챙이 적 생각을 해줘야 올챙이들이 아기 개구리로 자란다.
14. 끝맺음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자.
기업은 배와 같다. 대기업은 항공모함 같아서 한 사람이 나가도 거의 흔들림이 없다. 반면에 스타트업과 같이 작은 기업은 한 사람만 나가도 휘청한다. 특히 조직이 작을수록 마지막 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 세상은 넓고 이 바닥은 좁다. 나중에 고객으로 만날 때 어느 한쪽이 낯부끄러운 일이 없도록 끝날 때까지 프로의 모습을 유지하자. 마찬가지로 떠나는 사람에 대해서도 쿨하게 보내줄 줄 알아야 한다.
15. 성장하는 회사에 몸을 담아보자.
대기업은 두 자릿수 성장하는 경우가 흔치 않다. 경기를 잘 타거나 특정 제품이 히트를 칠 경우 10%, 20% 성장하는 경우가 있지만 한 자리 수로 성장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스타트업에 가보면 두 배, 세 배 성장해야 겨우 명함을 내밀 정도로 무서운 속도로 성장한다. 이를 한 번쯤은 경험해보길 바란다.
16. 뒷말은 가급적 하지 말자.
뒷말이 정신 건강에 좋다는 의견도 있지만, 가급적 하지 말자. 정말 해야 한다면 짧고 여운이 없게 하자.
17. 내 연봉에 떳떳해야 한다.
내 연봉이 5,000이라면 회사가 나를 위해 투자하는 총비용은 얼마나 될까? 회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최소 3배, 많은 경우 5배 정도 된다. 평균적으로 2억 정도 투자한다는 뜻이다. 연봉만 주는 것이 아니라, 퇴직금, 세금이 기본적으로 들어가고, 사무실 비용, 교육 비용, 출장 비용, 복지 비용 등이 더해진다. 산술적으로 계산해도 내가 2억 원어치 일을 해내야 회사는 본전인 셈이다. 그 이상을 해내야 회사가 수익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회사에 큰소리치기 전에 먼저 자신이 창출하는 가치가 얼마인지를 돌아보자.
18. 아부까지는 아니어도 센스 있는 직원이 되자.
임원이 직속 상사였던 적이 있다. 임원실 문은 늘 열려 있었는데, 하필 내 자리가 임원실을 마주 보는 자리였다. 하루를 후배 과장이 임원실에서 보고를 하고 있었는데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김 과장, 우리 지난 분기 수치가 얼마였지? 자료 있나?’ 내가 알기로는 그 자료는 김 과장에게는 없었다. 가장 최근에 내가 정리해놓은 적이 있는 자료였다. 바로 그 자료를 상사에게 메일로 보냈다. 동시에 상사가 나를 불렀다. ‘박 과장, 지난 분기 자료 있나?’ 난 바로 대답했다. ‘방금 전 정리된 자료 보냈습니다’ 상사는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김 과장, 박 과장처럼 일을 하란 말이야.
내 행동이 김 과장에게 해가 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 자료의 오너십이 나에게 있었고, 김 과장은 아직 더 배워야 하는 후배였기 때문이다. 센스는 관심에서 나온다. 눈을 열고 귀를 열고 마음을 열면 센스는 저절로 따라오기 마련이다.
19. 상대방을 판단하기 전에 딱 세 번만 생각하자.
직장에서는 정말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나와 크게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판단한다. 그리고 ‘저 사람은 나와 맞지 않아’라고 한번 고정관념이 생기면 그 사람과는 계속 물과 기름의 관계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정말 좋은 사람을 놓치기도 한다.
내가 자주 쓰는 방법 중 하나는 상대가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하는 경우에 ‘왜 그럴까?’ ‘정말 왜 그럴까?’ ‘대체 무엇 때문일까?’ 세 번 생각해보는 것이다. 혼자 생각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주위에 물어보기도 한다. 놀랍게도 세 번 생각했을 뿐인데 열의 일곱은 처음 내 판단이 틀렸다. 누구에게나 사정이 있다. 그걸 놓치고 판단하면 손해는 오로지 나의 몫이다.
20. 가족을 돌아보자.
직장 생활에서 성공해도 부모님이, 자식이, 아내가, 남편이 잘 못 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본인의 커리어와 가족이 충돌하는 경우가 나 역시 수차례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가족을 택했다. 가족을 택한다고 커리어가 죽지 않더라. 피할 곳이 있고, 숨을 구석이 있었다.
서울역 도착 10분 전
이 글을 읽는 모든 직장인들에게 나의 직장인 유언 스무 개 중에 하나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요즘은 그런 걱정을 한다. 나도 꼰대가 아닐까. 그래도 어떻게 하면 꼰대가 되지 않을까를 생각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진심을 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로 했다. 이 글에도 진심이 전해졌길 바라며.
원문: Mark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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