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직장인들은 바쁘다. 직장 업무와 자기계발, 운동, 퇴근 후 힐링에 SNS 활동까지 잘 해내야만 ‘슬기로운 직장인, 인싸’ 소리를 듣는다. 이렇게 여러 가지 과업을 한꺼번에 잘 해내지 못하면 왠지 남들에게 뒤처지는 것 같고, ‘혹시 내가 성인 ADHD가 아닌가?’ 하는 걱정까지 한다.
그러면 한번에 여러 가지를 수행하면서도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 멀티 태스킹 능력은 반드시 필요한 것일까? 그리고 이 능력이 부족하면 과연 문제가 있는 것일까?
보통 우리는 한 가지 일에 집중할 때 점차 익숙해지면 여유가 생기고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우리 몸이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이 디폴트(기본값)로 설정되면 뇌의 공회전 비율은 그만큼 높아지고, 효율성도 떨어진다.
이런 멀티태스킹은 생활 속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런닝머신에서 달리며 음악을 듣는다거나, 밥을 먹으면서 유튜브를 보거나, 공부하면서 음악을 듣는 것 말이다. 여기서 확장되면 친구와 대화하면서 게임을 하고 스마트폰으로 이메일을 확인하거나, 여자 친구와 드라마를 보면서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며 스마트폰으로 다른 친구에게 카톡을 보낸다.
그러나 한 가지 일에 집중할 때 우리의 뇌가 작업 명령 수행에 익숙해질 무렵 생기는 시간의 여유는 또 다른 행동의 수행이 아니라 여분의 생각을 하는 데 쓰여야 한다.
휴식이 필요한 이유: “일시 정지를 누르면, 사람은 그때서야 움직이기 시작한다”
직장인의 업무 처리 방식에 관한 여러 설문조사에 의하면, 우리가 으레 효율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멀티태스킹이 오히려 업무 효율과 집중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많은 기업이 근무할 때 사내 컴퓨터 또는 스마트폰으로 메신저 대화를 나누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스마트폰 자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기업도 있다.
원래 하던 일 이상의 창조적 플러스알파를 위해서는 여백이 꼭 필요하다. 그 공간을 통해 발전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릴 명상이나 공상, 몰입의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멀티태스킹이 아니라 온전히 깊게 집중하는 딥워크(Deep Work)와 몰입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미국의 저명한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L. Friedman)은 그의 저서 『늦어서 고마워(Thank You for Being Late)』에서 이렇게 말한다.
일시 정지를 누르면 기계는 멈추지만, 사람은 그때서야 움직이기 시작한다.
일하는 과정에서의 휴식은 단순한 멈춤이 아니라, 기계적 사고에서 창조적 사고로의 전환, 즉 모드 변환 버튼을 누르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한 가지 일을 오랜 시기에 걸쳐 반복하다 보면 지루해지는 때가 오고, 다른 일을 동시에 해보고 싶은 특이점이 온다. 이때 서너 가지 일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게 되면 언뜻 자신이 아주 효율적이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근무 중에 짬짬이 여자 친구와 메신저로 얘기를 주고받으며 저녁에 볼 영화의 티켓을 예매하고, 식당을 예약하고, 은행 앱으로 송금하며, 주식 창을 띄워놓고 투자를 한다.
하지만 이런 일 처리 방식은 언젠가 문제를 초래한다. 메시지를 엉뚱한 사람에게 잘못 보낸다거나, 잘못된 금액을 송금한다거나, 어이없는 주식 주문 실수로 돈을 벌 기회를 놓치는 경우도 생긴다.
집중력은 서너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면 분산될 뿐 높아지지 않는다. 멀티태스킹이 아니라 제로태스킹이 될 수 있다. 번아웃이 왔거나, 자신이 평소보다 에너지, 체력, 인지 능력이 떨어진 것 같다고 느낀다면 동시에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중요한 일을 처리해야 한다면 더욱더 말이다.
오랜 시간 집중하려면 ‘집중-휴식-집중-휴식’의 사이클을 지켜야 가능한데, 멀티태스킹을 무리하게 하다 보면 피로로 인해 인지 기능이 저하되어 작업 기억력(working memory)에도 문제가 생긴다. 작업 기억력이란 정보를 기억하고, 저장하며, 다시 불러오는 능력을 말한다. 또 기억된 정보 가운데 어떤 것이 중요한지 우선순위를 매겨 필요한 정보를 효율적으로 꺼내 쓸 수 있는 능력도 포함된다.
따라서 작업 기억력이 높고 원활할 때는 더 많은 과제를 효율적으로 중요한 순서대로 처리할 수 있다. 똑같은 조건이나 환경에서도 문제 해결 능력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작업 기억력은 불안 호르몬인 노르에피네프린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쉽게 말하자면 쫓기고 불안한 상태에서는 작업 기억력이 저하된다는 뜻이다. 어느 정도 생각할 시간, 한숨 돌려서 머릿속에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작업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휴식이 전제되어야만 제대로 기억력이 활성화된다.
상사가 당장 일을 끝내라며 압박하는 경우처럼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에서는 불안하고 여유가 없기에 작업 기억력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런 경우 우리 몸은 자동화된 루틴, 즉 조건 반사나 무조건 반사처럼 이미 학습된 인지 능력만을 제한적으로 발휘하기 때문에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작업 기억력은 사용할 수가 없다.
따라서 무리하게 멀티태스킹을 시도하면 뇌 기능이 평소보다 단순해지고 비효율적이 된다.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단순한 기계처럼 작동하게 된다. 이렇게 심신의 균형이 깨지면 결국 한 가지 일도 제대로 해낼 수 없게 된다.
그저, 당신에게 맞는 업무 수행 능력을 따를 것
멀티 태스킹 능력은 필수가 아니다. 그저 집중력을 사용하고 재분포하여 운용하는 방식일 뿐이다.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잘 해내는 사람이라고 해서 하루종일 그 집중력과 생산력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자신의 집중력과 도파민, 뇌의 에너지를 얼마만큼 몰아서 한 번에 쓰느냐, 천천히 고르게 쓰느냐의 차이일 뿐인 것이다.
또한 완벽주의에 꼼꼼한 성향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가 없다. 실수에 대한 불안 때문인데, 이런 성격의 사람들은 업무 수행의 속도보다 정확성을 훨씬 중요한 가치로 평가한다. 또한 일의 성격에 따라서는 창의성이나 효율성보다 묵묵하고 느리지만 실수가 없는 점이 훨씬 중요한 일도 많다.
따라서 본인의 성향과 일하는 방식, 업무의 특징에 대해 파악하고 내가 집중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방식대로 일하면 된다.
한 번에 하나씩 정확하고 꼼꼼하게 일하는 당신, 절대로 멀티 태스킹 능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다. 또한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못 한다고 위축될 필요도 없다. 그저 자신의 장점과 성향이 다른 것뿐임을 명심하시길 바란다.
원문: 박종석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