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이란, A를 표방하는 사회라면 응당 갖춰야할 것이라고 널리 여겨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없는 ‘비상식’이 만연하니 회복하겠다는 자세다. 예를 들어 시장경제라고 표방하면, 대기업 편법 혜택 같은 것 허용하지 말라고! 민주사회라고 표방하면, 표현의 자유를 니 맘대로 규제하지 마. 선진시민의식 어쩌고라면, 가진 놈들일수록 나눔과 베품을 좀 갖추라고. 표방하는 것은 제대로 하자, 뭐 그런 식의 발상이다.
상식이란 보기보다 참 임의적이고 가변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복잡계 사회연구를 하는 던컨 와츠의 근작 “상식의 배반”의 원제, “모든 것은 당연하다: 답을 알고 난 뒤에는”만큼 이 문제를 잘 포착하는 것도 드물다), 폭넓게 사회적 선(善)으로 내세우기가 무척 간편하다.
“진보 대 보수”. 진보를 표방하는 주제에 시대착오 주사질조차 버리지 못하는 이들 때문에 이미지가 많이 왜곡되기는 했다. 하지만 개별 삽질 사례가 아닌 사회적 방향성으로서의 ‘진보’는, 지향하는 어떤 가치가 있으며 그것이 가능해지도록 무언가를 – 보통, 사회시스템을 – 바꾸어내고자 시도하는 것이다(긴 설명은, 이전 글 참조).
그런데 그런 시스템으로 가는 길은, 지금의 ‘상식’을 종종 뛰어넘는다. “아직은 허리띠를 졸라맬 때다”라는 ‘상식’을 넘어 노조를 만들고, 명시적 차별을 금지해가며, 더 촘촘한 사회보장 및 시민들의 사회 참여의 경로들을 천천히 하나씩 늘여온 것이 그런 진보다. 매 걸음마다 비현실적 떼쟁이라고 욕먹었지만, 많은 노력을 들인 후 시간이 지나 여차저차 정착하고 나면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진보다.
그렇기에, 진보 대 보수는, 몇마디 레토릭으로 쉽게 구시대 정치의 유산인양 던져버릴 만만한 것이 아니다. 상식 대 비상식이라고 할 때의 상식은 상실한 듯한 것을 되찾는 정도지만, 진보는 바로 더욱 발전한 모습의 새로운 상식을 만드는 일이다.
게다가 어느 순간이든간에 세상에는 하나의 단일한 상식, 단일한 비상식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사회의 운영방식인 ‘정치’는 여러 입장의 성원들이 지닌 여러 서로 다른 상식들이 엮이고 충돌하는 모습을 지니는데, 진보와 보수는 그런 것을 어떤 쪽으로 다듬어 나가느냐의 방향성이다.
기존에 진보를 내건 정치세력들에게 불만을 품고 청산하고 싶다면, 뭐 그럴 수도 있다(게다가 진보라는 개념을 얼마나 많은 서로 다른 방식을 표방하는 이들이 자기 편할 대로 동원해왔던가!). 수많은 세부 영역에서의 진보/보수 입장들을 무조건 뭉뚱그려서, 억지로 이분법적 진영으로 패키지화하고 한 쪽에 밀어넣는 멍청한 짓에 대한 한탄도 옳다.
하지만, 진보와 보수라는 중요한 사고틀까지 쉬크한 척 얼렁뚱땅 내던지지는 말자는 말이다. “상식적인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하는 소박한 자기위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더 나은 사회인지 어떻게 그런 것을 만들어낼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진전이 이뤄지기를 조금이라도 원한다면.
원문: capcold님의 블로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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