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직구’가 놀랄 만큼 편리해졌죠.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의복 심미안도 높아진 것 같습니다. 더욱이 인스타그램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유명 연예인들의 일상을 아주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수 있게 되면서, 셀럽들이 근래에 즐겨 입고 쓰고 끼고 신는 해외 유명 브랜드를 현장감 있고 시의적절하게 학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좋은 일은 늘 나쁜 일을 동반하는 법이죠. 해외 유명 브랜드의 물건 값이 보통은 아니잖아요?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가뜩이나 궁색한 우리들의 살림이 파탄에 이르는 건 시간문제가 되겠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슬기롭게 대처하기 위해서 제가 내린 잠정적 결론은 그렇습니다.
-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해외 직구 사이트의 정기 세일 기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
- 틈나는 대로 해외 직구 사이트에 접속해 부정기적으로 튀어나오는 특별 세일 아이템들을 매의 눈으로 캐치할 것.
너무 당연한 소리를 해서 싱거운가요? 죄송합니다. 혹시 더 나은 자신만의 방안을 가지고 계신 분은 그 방법을 적극 활용하시길 바랍니다.
스눕피의 브런치 메인 프로필 사진 속 동해 바다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스눕피 씨가 입고 있는 상의는 한 해외 직구 사이트의 세일 기간에 우연히 만난 Paria Farzaneh라는 브랜드의 옷입니다. 상품 결제 이후 구매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인지부조화를 최소화하기 위해 브랜드에 대해 구글링 탐구를 해봤는데요. 이 Paria Farzaneh라는 브랜드, 꽤나 흥미롭습니다.
Paria Farzaneh는 영국 Devon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우스 런던 기반의 동명의 스물 다섯 디자이너 Paria Farzaneh가 전개하는 맨즈 웨어 브랜드입니다. 그녀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이란의 혈통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이란의 디자인 패턴과 실루엣 등을 자신의 브랜드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런던 패션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예 디자이너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오늘은 그녀의 디자인 철학과 배경을 밝히는 여러 인터뷰를 읽으며 나름대로 얻은 인사이트가 꽤나 강력했던 연유로 관련 이야기를 여러분과 함께 나눠볼까 합니다.
나와 내 가족의 옷을 직접 만들어 입는 일, 여러분은 상상이 가시나요? 디자이너 Paria Farzaneh의 말에 따르면 그녀의 가족들은 본인 그리고 가족이 입을 옷을 ‘가능하면’ 직접 만들어 입었다고 하는데요, 특히 그녀의 어머니는 어린 시절부터 그녀가 입고 다닐 옷을 항상 만들어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건 조금 충격적이었습니다. 저는 30년을 사는 동안 줄곧 기성복을 사 입을 줄이나 알았지 직접 의복을 만들어 입어본 적이 없었고 그러한 생각이나 의지를 조금이라도 가져본 적이 없거든요.
역시 유년 시절에는 남들과 비슷한 보편적 경험을 통해 공감 능력을 키우는 것만큼이나, 남들과는 다른 특수한 경험을 통해 새로운 방면의 눈을 떠서 나만의 색깔이 있는 사고를 할 수 있는 물꼬를 트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옷은 직접 만들어 입는다’, 이 문장을 몸소 체험한 그녀는 아무래도 ‘패션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조기 의식 교육을 받은 셈이겠네요. 더욱이 그녀의 할아버지는 재단사였다고 하는군요. 역시 성장 환경은 정말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브랜드 Paria Farzaneh의 특징적인 면모는 역시 독특한 패턴과 무늬에서 두드러집니다. 그녀가 전개하는 남성복은 페이즐리와 꽃, 그리고 기하학적 무늬로 대표되는 이란의 디자인 유산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무늬와 프린트는 Isfahan이라는 이란의 도시에서 모두 수작업으로 진행됩니다. 대부분의 옷들이 이란 물을 한 번씩 먹고 오는 셈인 건데요, 일일이 수작업으로 디자인 작업이 진행되다 보니 모든 개체가 각각 조금씩 다른 불완전한 디자인이 불가피하게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디자인적 ‘결함’이 곧 스페셜한 ‘매력’이 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만들어지는 거죠. 디자이너 Paria Farzaneh도 이러한 ‘사실’을 브랜딩의 요소로 적절히 활용하고 있는 듯합니다. 나름 영리한 스토리텔링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이죠.
결함 내지는 불완전함을 브랜드의 고유 매력으로 승화한다.
‘수작업’, ‘Handmade’ 딱지가 붙은 물건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어떤 아우라를 지니는 것 같습니다. 만든 이의 영혼이 스며들어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느껴지니까요. 거기에 Paria Farzaneh처럼 국가적 정체성과 역사성까지 엮어 넣으면 고풍스러운 콘셉트는 절로 만들어지는 것과 동시에 [까임-방지권]도 함께 획득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왕 ‘국가’를 들먹인 김에 조금 더 덧붙이자면, 디자이너 Paria Farzaneh는 이란이라는 국가의 디자인적 특색을 녹여 브랜딩 하는 것에 일체 ‘정치적’인 목적은 없다고 못을 박고 있습니다. 단지 이란의 패턴, 프린트, 컬러 등을 통해 이란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깨고 사람들이 잘 모르는 새로운 문화의 모습을 알리고 소개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녀의 진실되고 순수한 목적성에 100% 동의를 표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알고 있는 좋은 것들을 누군가에게 성실히 소개하고 싶어 하니까요. 이것은 제가 30년 인생을 살며 절감한 많지 않은 깨달음 중 하나입니다.
패션에 꽤 관심 있으신 분들은 Paria Farzaneh와 컨버스Converse와의 협업 프로젝트를 기억하실 겁니다. 작년에는 One Star Mid 모델에, 2019년 올해에는 클래식 Chuck Taylor 모델에 이란의 패턴을 작정하고 입혔습니다. 아래 사진을 참고해주세요. 정말 예쁘지 않나요? 특히 아래 모델은 언뜻 무라카미 타카시의 작업물이 생각나기도 하네요.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요, 컨버스와 반스 같은 슈즈 브랜드는 협업에 아주 적극적인 편이죠. 환경에 따라 때로 거칠고 투박하게 변하기도 하지만 태생이 순둥이 같이 수줍고 자기를 절제할 줄 아는 컨버스나 반스 같은 브랜드는 Paria Farzaneh처럼 자기주장이 강한 브랜드와의 합이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저 이란의 오묘한 패턴, 다채로운 색감과 컨버스 별과의 무심한 케미 좀 보십시오. 당장 사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이런 죽이는 협업은 정말이지 패션 브랜드 간 윈윈의 가치란 무엇인가를 다시금 깨닫게 합니다. 이런 게 콜라보레이션인 것이죠.
‘크리에이티브’ 작업을 놓고 ‘순서’와 ‘방법’의 문제가 심심찮게 언급되곤 하죠. 예컨대 어떤 소설가는 아주 세밀하게 주제, 소재, 캐릭터 등을 완벽히 기획해놓아야만 그제야 소설 쓰기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반면 또 다른 소설가는 일단 무턱대고 첫 문장을 쓰고 또 다음 문장을 계속 써 나가며 그때그때 내려오는 하늘의 계시를 손 끝으로 전달해 한 편의 소설을 완성시킬 수도 있는 겁니다.
음악과 패션 디자인도 물론 마찬가지일 겁니다. 어떤 게 정답이다, 라는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언급한 ‘순서’와 ‘방법’의 문제란 곧 개인의 가치관과 요령의 차이일 뿐이니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없이 디자인을 드로잉하고 그중 가장 잘 풀어질 것 같은 것들을 추려내어 작업해요. 그런데 저는 먼저 제 머릿속에 생각을 집어넣고 바로 샘플을 만들어요. 그리고 스스로 납득될 때까지 수정해나가죠.
저는 그녀의 이런 태도와 접근 방식이 너무 부럽습니다. 그녀가 비교적 어린 나이에 런던의 패션계를 주무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런 행동-지향적(?) 태도 때문이 아닐까 싶어서요.
Paria Farzaneh라는 브랜드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은 결국 영국의 패션/라이프스타일과 이란의 디자인적 유산과의 ‘이종 결합’ 위에 놓여있습니다. 영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한 해도 빠짐없이 매년 자신의 뿌리 국가인 이란을 방문해 영감을 얻고 왔다는 디자이너 Paria Farzaneh, 어린 시절에는 자신의 인종적 정체성을 드러내기가 싫어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한 모양입니다만, 결국 그녀는 거부할 수 없는 이란인 DNA에 이끌려 정신적 고향에 방문한 것이겠죠.
동서양의 만남, 동서양의 조합이란 말은 사실 어떤 카테고리에 집어넣어도 꽤나 따분한 표현이 되었지만, 그것의 결과물은 언제나 신선하여 흥미로움을 자아내죠. 게다가 이 조합에 ‘예측불가성’이 짙게 개입하면 또 얘기가 달라집니다. 영국의 도시 감성과 전통적 테일러링 그리고 ‘이란’의 디자인 유산의 만남이라는 이 뜬금없는 조합은 결국 패션 브랜드라면 모두 탐낼 만한 지고의 가치인 ‘멋’과 ‘재미’를 동시에 잡아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태껏 보고 듣지 못했던 조합으로 새로운 감각을 자극한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인 것 같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광고를 공부했는데요, ‘훌륭한 크리에이티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두고 한 유명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님이 대학 전공 특강에서 했던 말씀이 떠오릅니다. 훌륭한 크리에이티브란 동떨어져 있는 듯해 보이는 것들을 하나로 엮어 또 다른 차원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요.
18F/W에서 Paria Farzaneh가 선보인 맨즈웨어 디자인은 이란 남성들의 작업복과 직업(군인, 회사원 등)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실제로 한 국가 속 남성들의 직업, 그리고 그것의 역할과 특징 등으로부터 곧잘 영감을 받는다는 그녀의 흥미로운 관점(남자 모델을 캐스팅할 때, 모델의 외형을 보기보다 대화를 통해 관심사와 가치관을 파악하여 그것에 맞게 룩을 완성한다는 그녀의 참신한 캐스팅 방법이 이 부분에서 이해가 됩니다)을 들여다보며 저는 ‘디자인’과 ‘예술’의 실체를 생각합니다. 고고하거나 고상한 개념만을 추구하며 젠체하는 이상주의가 아니라, 매일 부지런하고도 정교하게 작동하는 ‘현실’의 기반 위에 또 다른 멋이나 새로운 기능 등을 더해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예전에 ‘호안 미로’ 전시회에서 본 ‘민중 예술에는 속임수가 없다.’라는 말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람의 본디 타고난 성품을 대변하든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가치관이나 취향을 보여주든, 외면을 대표하는 멋인 ‘의복’은 분명 그 사람의 핵심적인 매력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에 늘 신중하고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요.
차별화와 개성이 하나의 ‘덕’으로 평가되는 요즈음입니다. 다른 이들처럼 보이길 원치 않는 사람들과 ‘변화’를 만들어내길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옷을 만든다는 디자이너 Paria Farzaneh의 Paria Farzaneh에 관심 한 번 가져보시죠. 가격이 조금 세니까 새로운 세일이 시작되면 저도 하나 더 살까 합니다. 같이 사시죠.
원문: 스눕피의 브런치
표지 이미지 출처
- dazeddigital.com
참고
- 「Interview: Paria Farzaneh on Collaboration, Counter-Culture and the Converse One Star Hotel」(Complex)
- 「The menswear designer challenging Western ideas of Iran」(Dazed)
- 「Back to London for Paria Farzaneh」(office)
- 「Paria Farzaneh is Bringing Iran to the Main Stage of London Menswear」(Another Man)
- 「RE-SEE: PARIA /FARZANEH A/W 19 MENSWEAR」(SHOW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