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초, 대학원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기였다. 각자 자신만의 회사를 만들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정립하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나는 밥이 맛있는 쌀 브랜드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고민을 거듭한 끝에 브랜드 이름을 ‘에씨르(Ecir)’라고 지었다. 글로벌 시대에 맞게 고급스러운 브랜드로 런칭할 의도였다. 왠지 있어 보이는 이름이라 모두들 한눈에 혹했다. 사실은 ‘rice’를 거꾸로 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뭔가 새로운 걸 내놓고 싶은데 좀처럼 생각이 풀리지 않을 때면 일단 뒤집고 본다. 그러면 진부한 생각에 금세 신선함이 더해진다. ‘stressed’를 거꾸로 읽어보라. ‘desserts’가 된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을 때 반대로 생각해보면 디저트 같은 달콤함을 만날 수도 있다.
G마켓의 ‘뒤집기’
G마켓의 스마일 캠페인은 2018년을 뜨겁게 달군 대세 아이돌 ‘워너원’을 모델로 내세워 이커머스 업계 1위의 대세감을 강조하고자 했다. 하지만 워너원의 역동적인 춤과 노래는 이미 다른 광고에서 너무 많이 소비된 상태였다. 그래서 반대로 생각해보았다.
워너원이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을 보여주자.
이렇게 방향을 잡고 아주 정적이고 느긋한 분위기의 영상을 제작하기로 했다. 먼저 보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동양의 산수화가 펼쳐진 공간을 만들었다. 그 공간 위에 워너원 멤버들을 화보 모델처럼 세우고 시조 풍의 내레이션을 올렸더니 낯설고 묘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득이 되게 득이 되고, 재빠르게 재빠르다.
이런 식으로 같은 단어를 반복해서 읊조리며 서비스의 특장점을 능청스럽게 강조했다. 워너원이라는 핫한 모델을 전혀 다른 방식의 크리에이티브로 풀어낸 것이다. 그동안 워너원에게서 볼 수 없었던 희소성 있는 매력 덕분에 10–20대 젊은 소비자는 G마켓 광고를 ‘무한 반복’했다.
나이키의 ‘뒤집기’
나이키는 ‘반대로 생각하기’ 크리에이티브 전략으로 유명한 브랜드 중 하나다. 1996년 독일 베를린 마라톤 대회 때 일이다. 베를린 마라톤 대회의 공식 스폰서는 아디다스로, 유명한 마라톤 선수들의 스폰서 역시 아디다스가 장악했다. 나이키는 이 판에 용감하게 뛰어들어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이긴 다윗이 되게 해줄 똘똘한 광고대행사를 수소문했다.
나이키가 선택한 곳은 카피라이터 출신 에릭 케셀스(Eric Kessels)와 아트 디렉터 요한 크라머(Johan Kramer)가 공동 창립한 네덜란드의 광고대행사 케셀스크라머(kesselskramer)였다. 엉뚱한 광고를 많이 만들어내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들은 역시나 남다른 아이디어를 냈다. 강력한 우승 후보 대신 마라톤 참가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을 찾아 그를 후원하기로 한 것이다. 주인공은 78세의 하인리히 할아버지였다. 두 젊은 광고인은 하인리히 할아버지를 베를린 마라톤 대회 최고의 이슈 메이커로 만들기로 작정한다.
78세 노인이 42.195킬로미터를 달리다니 완주가 가능할까?
건강에는 이상이 없을까?
모두가 이 노인에게 관심을 가지리라 확신했다. 하인리히 할아버지를 모델로 “달려라 하인리히, 달려라!(Go, Heinrich, Go!)”라는 카피를 더해 만든 포스터를 베를린 시내에 도배했다. 할아버지만의 주제가도 테크노풍으로 선보였다. 이 노래는 라디오 방송에도 소개가 되고 나이트클럽에서도 틀었는데 반응이 엄청났다. 하인리히 할아버지에 대한 소책자도 제작해 베를린 시민들에게 배포했다.
마침내 마라톤 대회가 시작되었다. 경기가 진행되는 내내 어떤 선수가 우승할 것인지보다 하인리히 할아버지가 어디쯤 달리는지, 과연 완주는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 더 컸다. 자연스레 방송국 카메라도 하인리히 할아버지를 자주 비출 수밖에 없었다. 베를린 시민들의 응원은 뜨거웠고 할아버지는 제일 마지막으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하인리히 할아버지는 당초 예상보다 늦게 도착했는데, 이 역시 방송국과의 인터뷰 때문이었다고 한다. 누가 봐도 베를린 마라톤 대회의 주인공은 하인리히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가 입었던 반바지, 티셔츠, 양말, 운동화에 또렷이 박힌 나이키 로고가 부각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나이키의 인지도는 덩달아 급상승했다. 모두가 1등을 생각할 때 나이키는 꼴찌를 생각했고 제일 나 이 많은 참가자를 내세워 기상천외한 광고 캠페인을 펼쳤다. 엄청난 마케팅 비용으로 베를린 마라톤 대회를 후원했던 아디다스가 아니라 용기 있는 크리에이티브 전략을 짠 나이키의 완벽한 승리였다.
편집하는 머리
거대한 벽이 눈앞에 놓여 있다고 쫄지 말자. 그 벽(wall)을 넘어뜨려 길(way)로 바꾸는 데 필요한 건 어쩌면 거대 자본보다는 반짝이는 기지다. 그 기지의 실마리는 ‘반대로 생각하기’에 있을 확률이 높다.
일탈도 해본 놈이 잘한다. 생각의 일탈은 자유니까 최대한 자주 해보자. 아예 습관으로 만들자. 우선 평소에 쓰는 단어를 무작정 뒤집어 읽어보거나 써본다. 맨날 아무 감흥 없이 접하고 사용하던 단어도 반대로 읽어보면 신선하게 다가온다. 뒤집어도 말이 되는 단어들을 찾다 보면 의외로 많다.
- 이용 / 용이
- 성숙 / 숙성
- 진부 / 부진
- 주차 / 차주
- 성실 / 실성
- 계단 / 단계
- 치유 / 유치
- 자살 / 살자
- 정부 / 부정
- 급조 / 조급
앞뒤를 뒤집었을 때 서로 문맥이 통하는 단어, 전혀 상관없는 의미가 되는 단어, 상반되는 뜻이 되는 단어까지 다양한 재미를 발견할 수 있다. 또 이 단어들의 말맛을 잘 살리면 광고 카피로도 활용할 수 있다.
- 역경은 당신의 인생에 의미 있는 경력으로 남을 것이다.
- 계단을 오르듯 단계를 밟아가다 보면 경지에 오를 지경에 이른다.
- 마음이 조급하면 급조하게 된다.
- 진부한 생각은 부진한 결과를 만든다.
- 여기 주차한 차주 누구예요?
- 생각을 숙성하다 보면 성숙한 아이디어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 이용하기에 용이하다.
- 유치한 말장난에 마음이 치유되었다.
- 정부는 그 사실을 부정했다.
어떤 방향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도 모양과 의미가 달라진다. 곰을 수평으로 뒤집으면 문이 되고, 롬곡옾눞을 수평으로 뒤집으면 폭풍눈물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종일 뚫어져라 쳐다보는 스마트폰의 액정 화면 대신 뒷면을 열심히 본 적 있는가.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는 누가 정해놓은 순서일까. ‘하파타카차자아사바마라다나가’로 빠르게 읽기만 해도 벌써 새로움이 느껴지지 않는가. 의식의 흐름대로 써놓은 글을 반대로 다시 써보는 건 어떨까. 맨날 듣는 노래도 반대로 들어보고 좋아하는 영화를 반대로 재생해보는 것도 좋다.
영화 〈달마야 놀자〉를 보면 이런 관점에서 쉽게 문제의 답을 내는 장면이 나온다. 스님이 주인공에게 “깨진 독에 물을 채워라”는 말도 안 되는 숙제를 낸다. 주인공은 긴 고민 끝에 강물에 깨진 독을 넣는 것으로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한다. 반대로 생각하다 보면 생각보다 쉽게 실마리가 풀릴 수 있다. 반대로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보자. 생각만큼은 얼마든지 청개구리가 되어도 좋다.
[이채훈] ‘생각 근육’을 길러주는 이채훈 CD의 습관형성 북토크
2시간 동안 20년 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게 듣는 ‘누구나 좋은 기획자, 마케터,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훈련방법’. 수많은 히트 광고를 제작한 이채훈 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책을 출간했습니다.
저자 이채훈은 광고 경력 20년 차로 ‘아재 개그’ 광고를 선보일 정도로 언어유희를 사랑해 회사에서는 ‘초딩’으로 불리며, 자신의 탁월한 아이디어는 모두 ‘재능’이 아닌 좋은 습관을 꾸준히 실천하는 ‘노력’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왜 이 강의를 만들었나?
“대충 살자.”
“열심히 살 뻔했다.”
이런 말이 유행하는 시대에 ‘단련’이라는 말은 좀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광고계에서 시시때때로 2루타 심심하면 홈런을 치는 크리에이터 이채훈은 단련을 이야기한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더 크리에이티브하게 ‘남들보다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지금 하는 일이 기획이든 콘셉트든 디자인이든 매번 새로운 결과물을 내놓는 일이기에 매일이 막막하다. 막막함의 이유는 단 하나.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더 좋아할지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신입사원 시절부터 광고를 총괄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기까지 오직 이 고민에만 몰두했다. 15초였던 광고 시간이 6초로 줄어들고 예산마저 1억 원 이하로 줄어드는 동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에 관한 고민과 그 밀도는 한결 높아졌다. 그는 최고의 아웃풋을 만들기 위해 특별한 방법을 동원하는 대신 하루 한 장씩 흑백사진을 찍고, 세 줄씩 일기를 쓰고, 한 시간씩 달리는 습관으로 생각 근육을 단련했다.
오랜 시간 꾸준히 달리다 보면 러너스 하이라는 황홀경을 마주하게 된다. 좋은 아이디어가 뿜어져 나오는 시기인 ‘크리에이티브 하이’도 계속된 생각의 뜀박질 중에 찾아온다. 생각이 달릴 수 있도록 ‘생각 근육’을 만드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생각 근육을 온몸으로 단련하는 습관이 쌓이면 누구나 크리에이티브해질 수 있다고 그는 확신한다.
달릴 준비가 됐다면 속도를 얼마나 낼 것인가를 판단해야 한다. 딱 반걸음만 앞서 달리는 노하우가 중요하다. 그런 다음 사람들이 공감하는 선에서 살짝만 비틀면 홈런이다. 소위 대박 광고들이 모두 그렇게 만들어졌다. 한가지 유의사항이 있다. ‘대박’ 아웃풋은 정답을 만들기 위해 몸을 사리는 과정이 아니라 있는 힘껏 틀리는 과정에서 나온다는 것.
실패를 두려워하면 오히려 정답에 다가서는 길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 역시 실패가 두려워 돌다리만 여러 번 두드리는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돌다리를 두드리면 깨지기만 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위험한 돌다리를 두드리는 대신 튼튼한 다리를 만들기로 했다.
물에 휩쓸리지 않는 돌을 하나씩 가져다 빽빽한 다리를 만들어가듯 작은 습관들을 단련하자. 그러다 보면 강 건너에서 반짝이는 탁월한 아이디어를 누구나 매일같이 만날 수 있다. 멈추지 않는 한 모든 걸음은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저자 본인이 그 성공의 증거다.
연사님을 소개합니다
광고 경력 20년 차, 그가 자주 듣는 말이다. 아재개그 광고를 선보일 정도로 언어유희를 사랑해 회사에서는 ‘초딩’으로 통한다. 하지만 공중파에 태울 수 있을까 싶은 파격적인 광고는 우려와 달리 해마다 히트를 친다. 오늘도 1990년대생을 붙잡는 핵인싸가 되기 위해 몸부림친다.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동 디자인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신입사원 시절 ‘모두 살색입니다’ 캠페인으로 대한민국공익광고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수상자 자격으로 칸 국제 광고제 영 라이언 컴피티션(Young Lions Competition) 대한민국 대표로 참가해 4강에 올랐다. 이후 번뜩이는 감각을 부단히 유지하며 아트 디렉터를 거쳐 현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한다.
2018년 G마켓 스마일 도시락 캠페인이 유튜브 1,000만 뷰, 2019년 G마켓 반려견 쇼핑 금지 캠페인이 또다시 1,000만 뷰를 기록해 ‘2,000만 뷰의 남자’로 불린다. 버거킹 와퍼 시리즈, 빙그레 바나나맛우유 캠페인, G마켓 하드캐리 캠페인, 삼성전자 갤럭시노트8 애니메이션 캠페인, 삼성화재 다이렉트 ‘모바일로 바로’ 캠페인, 맥스웰하우스 콜롬비아나 마스터 캠페인 등을 제작해 세대 불문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칸 국제 광고제, 뉴욕 페스티벌, 원쇼 광고제 등 세계적인 광고제에서 수상했다. 2018년 서울AP클럽이 선정한 올해의 광고인상, 대한민국광고대상 은상, ‘국민이 선택한 좋은 광고상’에서 문화체육부장관상을 수상했다. 다수의 집행 광고가 광고인과 소비자의 지지를 얻어 국내 최대 광고 포털인 TVCF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누가 들으면 좋을까요?
- 직장 생활에 도움이 되는 습관을 기르고 싶은 분들
- 아이디어, 기획력 싸움을 해야 하는 분들
- 생활에서 사소한 변화를 꿈꾸는 분들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기획과 콘셉트는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갑자기 샘솟지 않는다. 최고의 아웃풋은 평범한 인풋을 다듬는 것에서 시작된다!
커리큘럼
- 순수한 시각 기르기
- 관찰하는 눈
- 기록하는 손
- 편집하는 머리
- 단련하는 몸
딱 반걸음만 앞서 나가 공감대가 허락하는 맨 앞에 서라! 남들보다 반보만 앞서 나간다는 뜻의 영선반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너무 앞서 나가지 않고 살짝만 비틀어주면 이런 반응이 나오거든요.
이거 대박이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사람들이 공감하는 범위에서 아이디어를 찾아 얼마나 비틀지 판단하는 감각을 기르기 취해 저는 위의 다섯 가지를 갖추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이 과정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강연 안내
- 날짜: 11월 12일(화)
- 시간: 저녁 7:30–9:30 (저녁 9시까지 북토크 + 30분 Q&A)
- 장소: 위워크 삼성역 2호점 (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 518) 10층 라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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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료증 발급 가능합니다.
- 세금계산서 발급 가능합니다. 사업자등록증을 [email protected]로 보내주세요.
- 모든 강의는 부가세가 포함된 강의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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