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이 끝나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한 외국인이 수십 년간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 평범한 빨간색 우체통을 DSLR로 정성 들여 찍었다. 매일 지나다니는 길이라도 그 길의 가로수가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히 알지 못하듯, 매일 지나다니던 길에 놓인 우체통에 눈길 한번 준 적이 없었다. 나는 있는지도 몰랐던 우체통을 외국인은 보물이라도 만난 듯 카메라에 담았다.
우리는 같은 길 위를 다른 마음으로 걸었다. 나는 점심을 먹고 남은 일을 하기 위해 사무실로 복귀하는 무거운 마음으로, 외국인은 멀리 여행을 떠나와 설레는 마음으로. 아닌 게 아니라 해외여행만 가면 모든 게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가.
나만 해도 경복궁과 광화문 같은 위대한 문화유산이 집 근처에 있어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반면, 외국 관광지에만 가면 감탄사를 연신 쏟아낸다. 눈을 반짝거리며 하나라도 놓칠까 골목골목을 샅샅이 둘러본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내가 우체통을 찍는 외국인을 보며 그랬듯이 별것 아닌 것에 감탄하는 나에게 오히려 감탄할지 모른다.
태도가 새로움을 결정한다
광고 촬영을 하다 보면 같은 곳도 다르게 담아내야 한다는 압박을 많이 받는다. 해외 촬영은 제작비가 많이 들어 나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고, 국내 로케이션의 경우 괜찮은 곳들은 이미 많이 알려져 신선한 맛이 떨어진다. 더구나 이 좁은 땅에서 광고는 하루에도 몇 편씩 온에어되는데 거기서 거기인 장소를 새로운 신으로 담아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때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하는 광고 한 편을 만났다. 2014년 외국 광고대행사 위든+케네디 도쿄(WIEDEN+KENNEDY TOKYO)가 제작한 나이키 광고 ‘승리의 룰’ 시리즈였다. 한국인이라면 익숙한 일상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이를테면 삼각지역 근처의 한 웨딩홀. 화면 가득 잡힌 웨딩홀 옥상에서 박지성이 테니스를 치다가 날아온 테니스공을 헤딩으로 넘겨버린다.
웨딩홀 옥상을 저렇게 역동적인 공간으로 볼 수도 있구나 싶었다. 우리나라 사람이 등장하고 우리나라에서 촬영했는데도 더없이 이국적으로 보인다. 학교 교실부터 시작해 분식점, 아파트, 경비실, 동네 골목까지 우리 주변의 흔하디흔한 풍경을 담았을 뿐인데 소위 ‘때깔’이 다르다. 외국인 감독의 눈으로 바라본 한국은 말 그대로 ‘타국’이었다.
분명 같은 공간과 풍경인데 이렇게 다른 그림이 만들어질 수가 있나? 왜 나는 수도 없이 지나치던 집 근처, 회사 골목 풍경을 이런 마음가짐으로, 이런 눈길로 바라보지 못했을까? 새로움을 발견한다는 것은 익숙한 개념에서 낯선 가치를 찾아내는 작업이다. 공간이나 사물은 하나의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 우리가 익숙한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이기 때문에 다른 이야기를 놓치는 것뿐이다. 결국 어떻게 바라보느냐, 그 태도가 새로움을 결정한다.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상하이 거리에서 한 커플이 서로를 지그시 쳐다본다. 남자가 스마트폰을 꺼내 연인의 사진을 찍으려는 듯 카메라를 인물 사진 모드로 설정한다. 그러자 시끄럽던 소음과 행인들이 사라지고 텅 빈 도심에는 커플만이 남는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매력이 속속들이 드러난 상하이를 만끽하며 커플은 영화 같은 데이트를 즐긴다.
사랑하는 연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때면 오직 그 사람만 보인다는 내용으로 피사체는 또렷하게, 배경은 흐릿하게 찍어주는 인물 사진 모드를 강조한 애플의 아이폰 광고다. “focus on what you love”라는 영어 카피를 “주관적 애정 시점”으로 번역한 아이폰 7의 감각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애정 어린 시점으로 바라보면 같은 풍경도 같은 풍경이 아니게 된다. 이 광고를 보다가 오롯이 사랑스러운 연인만을 남기면서 드러난 상하이 풍경에 푹 빠져버렸다. 실제로 상하이를 여행할 때는 보지 못했던 멋진 거리가 제대로 보였다. 어쩌면 그동안 내가 주변 풍경을 ‘전지적 무관심 시점’으로 바라봐온 것은 아닐까.
관찰하는 눈
판타스틱!
최근 고프코어(gorpcore) 스타일로 실용적인 어글리 패션 트렌드를 선도한 패션 디자이너 키코 코스타디노브(Kiko Kostadinov)가 지난해 동묘 시장을 둘러보고 외친 말이다. 그는 동묘 벼룩시장에서 만난 할아버지들의 과감한 패션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심지어 동묘 거리를 세계 최고의 패션 거리라 극찬하며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스웨그(swag) 넘치는 동묘 어르신들의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미화원이나 공사장 인부 등이 입은 작업복이나 유니폼에서 영감을 얻어 작업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어르신들의 색감 강렬한 등산복 점퍼와 정장 바지의 믹스 앤 매치, 배꼽 위까지 바지를 끌어 올린 하이웨이스트 스타일, 통기성 좋은 작업용 티셔츠 위에 걸친 알록달록한 팔 토시 같은 아이템이 외국 패션 디자이너에게는 쇼킹한 룩북(lookbook), 그 자체였던 것이다.
최근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닷컴에서는 ‘호미’가 히트 상품이 되기도 했다. EBS ‘극한직업’이라는 방송에도 소개된 경북 영주의 대장간 장인이 직접 만들어 판매 중인 호미는 아마존닷컴 원예 톱 10에 이름을 올릴 만큼 인기가 높다. 국내 판매가보다 훨씬 비싼 가격임에도 불티나게 팔린다. 해외에서 연일 주문이 들어와 대장간에서 잔업을 해도 물량을 뽑아내지 못할 정도라고 하니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호미는 주로 시골에서 밭일을 할 때 쓰는 농사 기구 정도로 인식되어 있다. 일반인은 크게 관심도 없고 실제로 사용할 일도 많지 않다. 그런데 외국인들은 정원을 가꿀 때 쓰는 손삽보다 호미가 더 실용적이라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호미는 목 부분이 ㄱ자로 꺾여 있어서 서양 손삽보다 힘을 덜 들이고 훨씬 편하게 땅을 팔 수 있었다. 그렇게 호미는 서양의 혁명적인 원예 도구로 자리 잡았다. 호미의 존재가 그들에게는 위대한 발견이었던 것이다.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조선 시대 배경의 좀비 드라마 〈킹덤〉 역시 해외에서 큰 이슈가 되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보다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핫한 모자가 있었으니,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너무도 익숙한 ‘갓’이다. 외국인들이 “드라마 속 사람들이 모두 멋진 모자를 썼다”와 같은 리뷰를 올리면서 한국의 전통 모자는 유례없는 뜨거운 관심을 받게 되었다. 이런 분위기 덕분에 갓 역시 아마존닷컴에서 히트 상품으로 자리했다.
사극에서 늘 볼 수 있어 아무런 감흥도 없던 갓에 외국인들은 “오 마이 갓!” 하며 연일 감탄사를 쏟아낸다. 우리에게는 그저 전통 소품에 불과한 갓에 외국인들은 멋진 디자인이라고 찬사를 보내며 실제로 구매까지 한다니 놀라운 일이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 갓을 사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지 문득 궁금해진다.
독특한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은 몸뻬, 발을 후끈하게 만들어주는 재래시장 최고의 인기 상품 요술버선, 이태리타월이라고 불리는 때수건, 엄마와 아이를 따뜻하게 하나로 묶어주는 포대기, 냄새를 완벽하게 잡아주는 스테인리스 반찬통, 음식의 온기를 오래오래 전해주는 돌솥, 구수한 감칠맛으로 외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쌈장, 시골 할머니 댁 필수 아이템인 촌스러운 무늬의 극세사 호랑이 담요까지. 우리에겐 지나치게 흔해서 귀하게 대접받지 못하는 물건들을 외국인들은 독창적인 디자인과 실용성을 높이 평가해 사들인다.
이뿐 아니다. 외국인들은 한글까지도 달리 본다. ‘옷’이 라는 글자는 사람으로, ‘훗’이라는 글자는 모자 쓴 사람으로 보인단다. ‘꽃’은 왼쪽을 보는 사람, ‘우유’는 춤추는 두 사람, ‘웁’은 욕조에 들어간 사람처럼 보인다고 하니 우리에게는 글자지만 그들에게는 그림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흔하다는 이유만으로 멋진 풍경과 멋진 물건, 멋진 아이디어를 놓치며 살진 않은가? 놀라움은 꼭꼭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떡하니 널려 있다. 결국 바라보는 태도가 전부다. 이 단순한 사실을 일깨워준 외국인 렌즈를 나의 눈에 장착해보자. ‘스위스’가 산과 산 사이에 창을 든 사람의 모습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익숙함이 새로움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다.
[이채훈] ‘생각 근육’을 길러주는 이채훈 CD의 습관형성 북토크
2시간 동안 20년 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게 듣는 ‘누구나 좋은 기획자, 마케터,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훈련방법’. 수많은 히트 광고를 제작한 이채훈 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책을 출간했습니다.
저자 이채훈은 광고 경력 20년 차로 ‘아재 개그’ 광고를 선보일 정도로 언어유희를 사랑해 회사에서는 ‘초딩’으로 불리며, 자신의 탁월한 아이디어는 모두 ‘재능’이 아닌 좋은 습관을 꾸준히 실천하는 ‘노력’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왜 이 강의를 만들었나?
“대충 살자.”
“열심히 살 뻔했다.”
이런 말이 유행하는 시대에 ‘단련’이라는 말은 좀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광고계에서 시시때때로 2루타 심심하면 홈런을 치는 크리에이터 이채훈은 단련을 이야기한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더 크리에이티브하게 ‘남들보다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지금 하는 일이 기획이든 콘셉트든 디자인이든 매번 새로운 결과물을 내놓는 일이기에 매일이 막막하다. 막막함의 이유는 단 하나.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더 좋아할지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신입사원 시절부터 광고를 총괄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기까지 오직 이 고민에만 몰두했다. 15초였던 광고 시간이 6초로 줄어들고 예산마저 1억 원 이하로 줄어드는 동안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에 관한 고민과 그 밀도는 한결 높아졌다. 그는 최고의 아웃풋을 만들기 위해 특별한 방법을 동원하는 대신 하루 한 장씩 흑백사진을 찍고, 세 줄씩 일기를 쓰고, 한 시간씩 달리는 습관으로 생각 근육을 단련했다.
오랜 시간 꾸준히 달리다 보면 러너스 하이라는 황홀경을 마주하게 된다. 좋은 아이디어가 뿜어져 나오는 시기인 ‘크리에이티브 하이’도 계속된 생각의 뜀박질 중에 찾아온다. 생각이 달릴 수 있도록 ‘생각 근육’을 만드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생각 근육을 온몸으로 단련하는 습관이 쌓이면 누구나 크리에이티브해질 수 있다고 그는 확신한다.
달릴 준비가 됐다면 속도를 얼마나 낼 것인가를 판단해야 한다. 딱 반걸음만 앞서 달리는 노하우가 중요하다. 그런 다음 사람들이 공감하는 선에서 살짝만 비틀면 홈런이다. 소위 대박 광고들이 모두 그렇게 만들어졌다. 한가지 유의사항이 있다. ‘대박’ 아웃풋은 정답을 만들기 위해 몸을 사리는 과정이 아니라 있는 힘껏 틀리는 과정에서 나온다는 것.
실패를 두려워하면 오히려 정답에 다가서는 길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 역시 실패가 두려워 돌다리만 여러 번 두드리는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돌다리를 두드리면 깨지기만 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위험한 돌다리를 두드리는 대신 튼튼한 다리를 만들기로 했다.
물에 휩쓸리지 않는 돌을 하나씩 가져다 빽빽한 다리를 만들어가듯 작은 습관들을 단련하자. 그러다 보면 강 건너에서 반짝이는 탁월한 아이디어를 누구나 매일같이 만날 수 있다. 멈추지 않는 한 모든 걸음은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저자 본인이 그 성공의 증거다.
연사님을 소개합니다
광고 경력 20년 차, 그가 자주 듣는 말이다. 아재개그 광고를 선보일 정도로 언어유희를 사랑해 회사에서는 ‘초딩’으로 통한다. 하지만 공중파에 태울 수 있을까 싶은 파격적인 광고는 우려와 달리 해마다 히트를 친다. 오늘도 1990년대생을 붙잡는 핵인싸가 되기 위해 몸부림친다.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동 디자인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신입사원 시절 ‘모두 살색입니다’ 캠페인으로 대한민국공익광고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수상자 자격으로 칸 국제 광고제 영 라이언 컴피티션(Young Lions Competition) 대한민국 대표로 참가해 4강에 올랐다. 이후 번뜩이는 감각을 부단히 유지하며 아트 디렉터를 거쳐 현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한다.
2018년 G마켓 스마일 도시락 캠페인이 유튜브 1,000만 뷰, 2019년 G마켓 반려견 쇼핑 금지 캠페인이 또다시 1,000만 뷰를 기록해 ‘2,000만 뷰의 남자’로 불린다. 버거킹 와퍼 시리즈, 빙그레 바나나맛우유 캠페인, G마켓 하드캐리 캠페인, 삼성전자 갤럭시노트8 애니메이션 캠페인, 삼성화재 다이렉트 ‘모바일로 바로’ 캠페인, 맥스웰하우스 콜롬비아나 마스터 캠페인 등을 제작해 세대 불문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칸 국제 광고제, 뉴욕 페스티벌, 원쇼 광고제 등 세계적인 광고제에서 수상했다. 2018년 서울AP클럽이 선정한 올해의 광고인상, 대한민국광고대상 은상, ‘국민이 선택한 좋은 광고상’에서 문화체육부장관상을 수상했다. 다수의 집행 광고가 광고인과 소비자의 지지를 얻어 국내 최대 광고 포털인 TVCF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누가 들으면 좋을까요?
- 직장 생활에 도움이 되는 습관을 기르고 싶은 분들
- 아이디어, 기획력 싸움을 해야 하는 분들
- 생활에서 사소한 변화를 꿈꾸는 분들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기획과 콘셉트는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갑자기 샘솟지 않는다. 최고의 아웃풋은 평범한 인풋을 다듬는 것에서 시작된다!
커리큘럼
- 순수한 시각 기르기
- 관찰하는 눈
- 기록하는 손
- 편집하는 머리
- 단련하는 몸
딱 반걸음만 앞서 나가 공감대가 허락하는 맨 앞에 서라! 남들보다 반보만 앞서 나간다는 뜻의 영선반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너무 앞서 나가지 않고 살짝만 비틀어주면 이런 반응이 나오거든요.
이거 대박이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사람들이 공감하는 범위에서 아이디어를 찾아 얼마나 비틀지 판단하는 감각을 기르기 취해 저는 위의 다섯 가지를 갖추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이 과정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강연 안내
- 날짜: 11월 12일(화)
- 시간: 저녁 7:30–9:30 (저녁 9시까지 북토크 + 30분 Q&A)
- 장소: 위워크 삼성역 2호점 (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 518) 10층 라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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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료증 발급 가능합니다.
- 세금계산서 발급 가능합니다. 사업자등록증을 [email protected]로 보내주세요.
- 모든 강의는 부가세가 포함된 강의료입니다.
- 신청 시 적어준 휴대폰 번호로 강의 안내 문자를 보내드리니 꼭 문자를 확인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