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더 좋은 회사를 다닐 자격이 있다』의 저자 김나이 님의 사전 동의를 얻고 제작하는 콘텐츠입니다.
버티는 시대가 아닌 옮기는 시대의 도래
이제 이직은 회사를 오래 다니지 못하는 끈기 없는 사람들이 아닌, 내 삶에 있어 새로운 커리어 제2막을 시작하는 이들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뿐 아니라 이제는 경력만 쌓이면 직장을 옮기는 것을 장려하는 분위기며, 이에 맞춰 직무와 회사를 내게 맞춰 추천해 주는 플랫폼도 계속 생겨난다. 실제로 원티드, 리멤버 등에서는 내 경력을 입력하면 이에 맞춰 헤드헌터나 플랫폼에서 내 이력과 관련된 직무와 회사를 추천해주는 서비스를 운영한다.
40–50대 직장인 분들에게 이 서비스를 직접 보여주면 모두 충격적인 표정을 짓는다. 과거 ‘직장은 무조건 힘들어도 버티는 거야.’ ‘그게 다 사회생활이야.’라는 기조로 삶을 살아온 그들에겐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패러다임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제 이직은 개인의 인생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광고에서도, 사회적 분위기도 왜 이직을 장려하는 것일까.
다니던 회사와 일을 바꾸는 이직이라는 행동이 우리에게 익숙하게 다가오게 된 가장 큰 계기는, 경제와 사회의 패러다임이 변하며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평생직장은 천연기념물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평생직장이 사라진 구체적인 계기는 무엇일까. 그 계기는 바로 다름 아닌 기술의 발전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다른 모든 사회적 원인보다 이 원인이 직관적으로 모든 상황과 관련이 있다.
사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기존의 기술을 생업으로 삼던 사람들이 위협받는 현상은 꾸준히 반복돼왔다. 기계가 보급되며 수공업으로 일하던 사람들의 일자리가 점차 사라지게 되었고, 컴퓨터가 보급되며 단순 사무직 종사자 수가 대폭 줄어든 게 대표적 예시이다. 그리고 이제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사고체계까지 인간보다 우월한 단계로 발전 중인 인공지능과 필연적으로 부딪혀야 하는 운명이다.
물론 지금은 우리가 생활 속에서 체감할 만큼 인공지능을 경험하진 않지만, 언젠가는 인공지능에 의해 우리의 일자리가 대체될 수도 있다는 위협감에 사는 것이다. 결국 정리하면 변화의 속도가 점점 빨라져, 이에 살아남기 위해 이직을 장려하는 세상으로 사회의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기업도 이러한 흐름을 피할 수는 없다. 기술의 발전이 혁신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좋은 회사’의 사고 체계가 완벽하게 바뀌었다. 이제 이름 있는 유명한 회사, 굴지의 대기업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그곳이 내 평생직장일 수는 없으며, 과거보다 더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워져 다음 회사를 선택하거나,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자기계발 서적에서는 포기하지 말고 꿈을 향해 달리라는 의미 없는 말들만 무한 반복한다. 그러나 좋은 회사의 기준이 바뀌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좋은 회사를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이고, 나는 현실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자기계발서에도 나오지 않는 이직하는 법은 무엇일까? 커리어 액셀러레이터 김나이 님이 정리한 몇 가지 방법을 살펴보자.
사표를 던지기 전: 몇 가지 질문해보기
1. 성장: 조직원을 성장시키는 회사인가? 소진시키는 회사인가?
모두가 선망하는 대기업 경영전략실 재무팀에서 9년간 일한 C는 최근 이직을 고민하며 저를 찾아왔습니다. 조금만 더 ‘버텨’ 승진을 하고, 이 회사에서의 임원을 노리는 커리어 패스를 생각해 볼 만도 한데, 회사에서 벗어나려 하더군요.
남들이 보기엔 크고 좋은 회사죠. 막상 안에서 보면 미래가 안 보입니다. 9년을 다녀도 할 수 있는 일은 굉장히 파편화되어 있고요. 더 늦기 전에 주도적으로 가능성을 발견하는 업무를 해보고 싶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책임지는 일도 하고 싶고요.
제 실력으로 ‘진짜’ 일을 해보고 싶어요. 지금까지 홀로 일을 배워왔거든요. 팀원 8명에 제가 팀장을 맡았는데 솔직히 버거워요. 체계적으로 일도 배우고 싶고, 직급에 맞는 리더십을 발휘해보고도 싶은데, 보고 배운 게 없으니까, 큰 조직으로 가고 싶어요. 그게 제가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거라 생각하고요.
기업이 성장하지 않는 사회에서 개인의 성장은 획일화될 수 없습니다. 모두가 같은 회사, 같은 간판을 염원하던 때는 끝났다는 것이지요. 성장이란 키워드 앞에서 다른 사람과의 비교는 무의미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성장의 기준과 정의는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보세요.
- 이 일을 하고 나면 당신에게 무엇이 자산으로 남을지 판단되는 일을 하나요?
- 상사 혹은 동료로부터 당신이 한 일의 결과물에 대한 피드백을 충분히 받나요?
- 일하면서 무엇인가 깨닫고, 쌓여가나요?
- 명함에서 회사 간판을 떼고 당신 이름만 남았을 때 스스로 독립할 힘을 기르는 일을 하나요?
‘성장’을 키워드로 우리는 이런 고민을 해보아야만 합니다. 이 질문의 대답이 부정적일 때, 이직을 생각해보아야 하고요.
2. 연봉: 내가 생산한 가치에 합당한 보상을 받는가
돈이 전부가 될 수 없지만 돈은, 중요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아무리 의미와 재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일이라도, ‘먹고사니즘’이 충족되지 않으면 지속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고 일의 의미나 재미만 찾는 것은 고행길입니다.
자신이 받는 연봉을 최대한 냉정하게 평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종사하는 업계의 상황에 비추어 내가 창출하는 가치를 냉철히 따져봤을 때, 연봉이 여전히 불만족스럽다면 이직을 고려할 때입니다. 이와 더불어 장기적으로는 연봉에 대해 이런 생각들을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는 일을 하면서 연봉도 잘 받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 내가 스스로 연봉을 결정하는 사람이 될 수는 없을까, 그러려면 어떤 과정을 구체적으로 거쳐야 할까?
- 연봉이 계속 우상향해야 할까, 어떤 상황에서 하향 조정도 가능할까 ?
- 돈은 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할까?
3. 인간관계: 긍정적인 집단에 속해 있는가
직속 상사는 좋은 분이세요. 리더십도 있고 비전도 있고. 문제는 직속 상사 위 본부장이에요. 제가 미운가 봐요. 너무 ‘갈궈요’. 어떤 걸 보고해도 한 번에 통과되는 법이 없고,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로 계속 트집이고. 이렇게 살다가 말라 죽을 것 같아요.
어떤 회사든 ‘또라이’는 꼭 있고, 자신의 성과를 부풀리거나 남의 성과를 뺏어가는 사람도 꼭 있습니다. 전혀 말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거나, 혹은 노력을 해보았는데도 나아지는 바가 전혀 없다면, 같이 일하는 동료나 상사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때마다 조심스럽고 부담스럽다면, 그때는 이직을 고민해보세요.
매사 부정적이고 당신의 기를 갉아먹는 사람들이 회사에 가득 차 있다면 버티지 마세요. 아무리 긍정적이고 파이팅 넘치는 사람이더라도 그런 상황은 당신을 갉아먹을 수밖에 없어요.
지금 한국 기업은 과도기입니다. 수직적 커뮤니케이션이 익숙한 기성세대와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이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가 함께 회사를 다니면서 세대 간 충돌이 벌어지는 것이죠. 지금 당신이 겪는 인간관계의 괴로움은 이런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속 성장하던 과거 산업화 시대와는 달리 지금은 오픈 이노베이션, 창의성,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이 곧 기업의 핵심 경쟁력입니다. 그런 경쟁력을 갖춘 회사로 옮기는 것은 해 볼 만한 일입니다.
좋은 회사는 면접 질문부터 다르다
- 업무를 진행하며 멘붕한 적이 있나요? 언제 어떤 일로 멘붕했고 어떻게 대처했나요?
- 공개적으로 본인의 실수 혹은 본인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한 적이 있나요
어느 날 저는 한 스타트업의 자기소개서 항목을 보고 멘붕에 빠졌습니다. 돌려 말하지 않는 직설적인 화법, 손에 잡히지 않는 미래보다 현재의 ‘개인’에 초점을 맞추고 개개인의 실제 생각과 경험을 묻는 구체적인 질문들이 지금껏 보아온 전통적인 기업들의 질문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에요.
전 직원이 밀레니얼이고, 밀레니얼을 타깃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 회사는 자기소개서 항목도 밀레니얼의 가치관을 그대로 담았습니다. 저는 곧바로 대기업·중견기업의 자기소개서 항목을 검색해보았습니다. ‘○○ 취업을 선택한 이유와 입사 후 회사에서 이루고 싶은 꿈’, ‘10년 후 이루고자 하는 목표’, ‘성장 과정’을 묻는 회사들이 많았어요.
평생직장을 넘어 평생직업도 없어진 밀레니얼에게 이 질문이 과연 얼마나 유효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질문에 진정성 있는 답변을 할 수 있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요. 출근길에 오르는 직장인들이 늘 가슴 속에 사표를 품고 다니고 신입 사원 퇴사율이 30%에 이르는 이유 중 하나는, 회사의 이런 질문에서부터 시작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요.
입사 6년 차 A는 ‘당장 이직할 것은 아니지만 지금 다니는 회사를 계속 다니면 도태될 것 같다’며 저를 찾아왔습니다. A는 남부럽지 않은 대기업에, 팀 이름도 도전적인 ‘스타트업 TF’에 소속되어 있었는데요. 회사의 기존 프로세스에 막혀, 세상의 변화를 빤히 보면서도 그 변화의 방향에 맞춰 일을 진행할 수 없는 부분이 가장 답답하다고 했습니다.
의사 결정자들이 실무진을 믿고 맡기지 않아 주도적으로 일을 할 수 없는 부분도 이 회사에서의 커리어를 고민하는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이런 와중에, 옆자리 15년 차 차장은 입버릇처럼 “나처럼 오래 회사 다니지 말라”고 한다 해요. A는 “지금부터 회사 ‘밖’ 커리어를 준비하지 않으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3년간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에 성공한 B의 솔직한 이직 사유는, ‘구성원 개개인의 생각을 전혀 존중하지 않고, 사람을 쓰고 버리는 회사’ 때문이었습니다. B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정말 사랑했던 회사였어요. 그런데 회사가 점점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그는 대학 시절부터 그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었다고 했는데요. 입사 지원자가 많아서였을까요. 임원들은 공공연히 “너 아니어도 여기 와서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많아” “하기 싫으면 나가”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조직 구성원을 ‘존중’하지 않는 회사에서 미래를 그린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흔히 밀레니얼의 키워드를 #소확행 #워라벨 등으로 꼽고, 이들이 예전 세대보다 일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하지 않는다고 하지요.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성장하지 않는 시대에 불안한 그들은 어느 때보다 자신의 실력을 쌓고 성장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요즘 애들은 포부가 없다, 멘탈이 약하다’고 결론 내리기 전에 왜 그들이 회사에 별 기대를 하지 않는지 그 실제를 들여다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원문: 고석균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