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1994년 원작을 안 본 분에 한해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는 프라이드 랜드에서 심바의 탄생을 알리면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보고 있으면 골 때립니다. 사자의 먹잇감들이 와서 탄생을 기뻐하고 절을 합니다. 얘들 대체 뭔가요? 상식적으로 사자의 개체 수 증가 → 더 많은 먹잇감 필요 → 더 많이 잡아먹힘이므로 심바가 태어난 순간 ‘아 X펄 X됐네’를 외쳤어야 합니다. 착한 사자는 죽은 사자뿐이죠. 노예근성이 따로 없습니다.
아무튼 심바가 등장합니다. 혈통만 믿고 날뛰는 철부지입니다. 머리도 좋고 노오오오력 하지만 혈통에 밀려 왕이 못된 삼촌 스카 앞에서 아주 패드립을 치고 난리도 아니거든요. 어쩌면 스카가 왕위찬탈을 한 것도 심바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저저저 무뢰한 어린놈 밑에서 신하 노릇 할 바엔 저지르고 만다 뭐 이런 거겠죠. 역사적으로도 혈통빨 믿고 날뛰는 놈들은 그 뒤끝이 좋지 못했읍니다,,,
심바가 하는 꼴을 보면 ‘무파사가 자식 교육을 개판 쳤구나’라는 게 느껴집니다. 실제로도 교육이 개판입니다. 무파사가 얘기하는 삶의 순환(circle of life)론이 그겁니다. 초식동물을 사자가 먹고 사자가 죽어 풀에 먹히는 순환을 따른단 거죠. 개소리하고 있습니다. 영화 내 사자가 한 10마리 정도 나오던가요? 사자에게 뜯어 먹혀 죽어 풀에 먹히는 초식동물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왕정과 신분제를 공고히 하는 세뇌 교육인 거죠. 심바도 싹수가 노랗습니다.
하지만 위대하신 스카 장군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밀리는 혈통을 노오오오력과 지략으로 극복하셨죠. 그래서인지 스카 장군님은 비쩍 마르셨습니다. 아마 무파사와 그를 따르는 귀족 사자 집단이 스카 장군님을 견제해 밥도 안 준 탓이겠죠. 그래서 쥐나 잡아먹으며 연명하는 거고요.
거기다 스카 장군님은 위대한 혁명 이념이 있습니다. 하이에나와의 공존을 꾀한 것이죠. 하이에나가 누굽니까? 사자들한테 먹이를 털리며 탄압받는 동물이죠. 즉, 귀족인 사자들에게 핍박받고 수탈당하는 자들입니다. 핍박당하고 수탈당하는 하이에나들과 공존하며 다시는 굶지 않겠다고 하는 위대한 이상과 동기에 연대하지 않을 자가 누굽니까? 그런데 감히 심바 사자 새끼 이놈이…
결국엔 스카 장군님은 왕을 시해하는 데 성공합니다. 원래 일타쌍피로 심바까지 보내버릴 수 있었는데 무능한 혁명동지들 둘 때문에 첫 번째 몰락의 씨앗이 남아버리죠. 왕위에 오르고 혁명동지들인 하이에나와의 공존을 추구합니다. 공약 실천력이 대단하죠.
아니나 다를까 귀족 세력이자 적폐들인 사자들 표정이 띠껍습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왕위를 찬탈하고 나서 왕권 강화를 위해 귀족들을 한 번씩 갈아주는 게 필요했죠. 하지만 스카 장군님은 마음이 약하셔서 숙청은 못 하시고 자꾸 대연정만 생각하셨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몰락의 씨앗이었죠. 킬세민님, 킬방원님, 킬체님 그립읍니다,,,
스카 장군님이 딱히 통치를 잘못한 것도 없습니다. 영화에선 동물을 너무 많이 잡아먹었다고 했는데 원래 초식동물의 수가 줄어들면 그 먹이인 풀이나 나무가 훨씬 무성해져야 합니다. 근데 보면 아주 나무건 풀이건 바싹 말랐습니다. 이건 그냥 기상이변이에요. 기상 이변으로 풀이 다 말라 죽으니 초식동물이 떠난 거고요.
여기서 고작 사자 한 마리가 뭘 합니까? 기우제 안 지낸 거요? 실사 영화니 사자가 기우제 지내는 장면이 나올 수도 없죠. 그런데 또 이 귀족 쓰애끼들이… 하여간 귀족들은 정기적 숙청을 해줘야 반항을 안 하는 법입니다. 지나치게 자애로우셨던 스카님 흑흑…
그동안 심바 이 사자새끼는 뭘 했냐 하면… 티몬과 품바라는 히피놈들 만나서 벌레나 빨고 앉아 있었습니다. 보면 다 맛이 갔어요. 약을 너무 하면 그렇게 됩니다. 약을 그렇게 해대니 비구름에서 아빠를 보는 헛것을 보고 암사자인 날라에게 처발리는 거죠. 원래 성체 수사자는 암사자 여러 마리가 달려들어도 이기기 어렵습니다. 근데 1:1로도 처발릴 정도면 뭐 말 다 했죠.
근데 이 벌레나 빨던 무능한 약쟁이가 갑자기 자신이 왕이 되겠다며 프라이드 랜드로 돌아온 거죠. 기가 막힙니다. 하다못해 나루토에서도 노오오력이 나오는 마당에… 당연히 스카 장군님의 개혁 조치가 마음에 안 들었던 귀족놈들 입장에서야 대립 왕이 등장했으니 강력 푸시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아… 또 이렇게 개혁과 혁명이 좌절됩니다… 아아…
실제로 스카가 실각하자마자 비가 내리고 다시 풀이 자라납니다. 심바 이 사자새끼는 운이 좋아도 이렇게 운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이 약쟁이의 복귀가 더 늦었으면 스카 장군님이 이끄신 프라이드 랜드는 다시 풍요를 찾아 후대로 잘 계승되었겠죠. 아쉽습니다…
이 영화의 교훈은 두 가지입니다. 일단 숙청을 아끼지 마라(ex. 킬방원, 킬세민, 킬체)와 뭘 해도 운빨은 못 이긴다가 바로 그것이죠.
영화 내용을 이야기했으니 영화 자체에 대한 이야기도 해봅시다. 실사판 〈라이온 킹〉은 갈피를 못잡은 영화입니다. 뮤지컬 영화가 되든가 극화가 되든가 둘 중 하나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뮤지컬 영화는 포기한 거 같단 느낌이 들었습니다. 원작만큼의 속 시원한 느낌이 드는 노래가 하나도 없어요. 심지어! ‘Be Prepared’는 짧은 데다 아무런 임팩트가 없습니다. 저는 정말로 준비하고 있었단 말이죠. 그 곡을 극장에서 들으면서 빤쓰에 지릴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나 실패했습니다… 야! 그걸 왜! 왜 건드려!
게다가 날라의 성우가 비욘세입니다. 그러면 적어도 날라가 3곡 정도는 불러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비욘세가 ‘심바 X까 내가 개짱이다’라는 노래를 불러줬으면 저는 극장에서 납득했을 겁니다. ‘그래 저 무능한 히피 약쟁이 심바보단 날라가 개쩔지’라고요. 근데 아니 이게 뭐야! 비욘세 불러놓고 왜 노래를 1곡, 그것도 듀엣곡밖에 안 시켜? 〈라이온 킹〉 실사 영화가 혹시 비욘세의 직업 체험 프로그램이었나요?
제대로 극화로 갈 거라면 적어도 표정을 모션 캡처해서 동물들이 표정 연기를 하게끔 해야 했습니다. 원작인 1994년 〈라이온 킹〉에선 겉은 동물일지 몰라도 표정이나 눈빛은 인간의 그것이었죠. 이미 우리는 앤디 서키스의 혹성탈출 시리즈를 통해 동물의 외형이라도 감정을 전달하는 게 가능하단 걸 봤습니다(물론 유인원이라 그나마 쉬웠던 거긴 하죠).
그런데 이번 실사 〈라이온 킹〉은… 그냥 실사입니다. 원작을 실사로만 바꿔서 이게 디즈니 영화인지 내셔널지오그래픽인지 모를 정도입니다. 감정 연기는 빠져있고 노래는 뒤로 후퇴를 했으니 원작에 비해 여러모로 아쉬운 영화가 될 수밖에 없죠.
차라리 ‘이럴 거면 이야기 구조를 좀 바꾸는 게 낫지 않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원래 디즈니가 잘하던 게 그거잖아요? 남의 이야기는 부담 없이 잘 바꿨지만 자기들 오리지널 이야기(엄밀히 따지면 오리지널도 아니죠, 셰익스피어가 웁니다)라서 부담스러웠던 걸까요? 아무튼 원작을 기억하는 사람 입장에선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원문: 김영준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