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 설계(Happiness By Design)』의 저자 폴 돌란의 두 번째 책 『Happy Ever After: Escaping the Myth of the Perfect Life』에서 발췌, 편집 후 The Guardian에 게재한 「The money, job, marriage myth: are you happy yet?」을 번역한 글입니다. 「① 돈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기」에서 이어집니다.
이번에는 돈이나 부 말고 성공에 관한 담론의 덫을 살펴봅시다. 여기서 단연 중요한 요인은 일자리, 즉 직업입니다. 그냥 아무 일이나 해선 안 되겠죠, 소위 말하는 ‘번듯한 직장’이 중요하고, 그 직장에서 ‘잘 나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제가 책 『행복 설계(Happiness By Design)」에서도 들었던 일화를 여기에도 소개합니다.
몇 주 전에 오래 알고 지낸 친한 친구 한 명과 오랜만에 저녁 식사를 같이 하게 됐다. 내 친구는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미디어 회사에서 일하는데, 그날 저녁 내내 내게 한 이야기라고는 회사 생활이 얼마나 끔찍한지, 일이 얼마나 재미도 없고 보람도 없는지에 관한 이야기밖에 없었다. 직장 상사는 이래서 싫고, 동료는 저래서 싫고, 출퇴근도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가 쉼 없이 이어졌다. 그런 이야기를 한참 하고 난 뒤 헤어지기 전에 친구는 느닷없이 이렇게 말했다.
“물론 미디어랜드(MediaLand)라는 회사에서 일하는 건 정말 멋진 일이야.”
사실 이 일화는 흔히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성공이라는 가치와 개인이 스스로 느끼는 행복이 얼마나 서로 동떨어져 있을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이기도 합니다. 즉 사회적으로는 분명 누구나 선망하는 직업이 있고 반대로 남들에게 내세우기 뭣한 직업이 있다지만 개인이 그 일을 하면서 느끼는 만족과 보람, 행복은 이런 사회적인 평판과 전혀 무관할 때가 많다는 겁니다.
제 친구는 많은 사람이 선망하는 회사에 다녔지만, 정작 자기가 하는 일에 의미를 찾지 못했고 심지어 일하는 시간을 고통으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에 좋은 회사에 다녀서 멋지다고 한 말은 개인의 행복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사회적 평판을 이야기한 것일 뿐입니다.
사실 미디어랜드는 그 친구가 오랫동안 일하고 싶어 하던 회사였고, 부모님은 딸이 다니는 회사 이름을 자랑스레 이야기하고 다니시며, 다른 친구들은 회사 이름만 듣고도 부러움을 숨기지 못하는 멋진 회사가 맞습니다. 그러니 남들이 하는 얘기를 종합해보면 미디어랜드에서 일하는 건 멋진 일이란 말이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게 조금만 솔직해져 봅시다. 일하면서 고통을 느끼는 직장이 어떻게 좋은 직장일 수 있을까요? 세간의 평판으로 자기 자신을 기만하는 건 결국, 오래 가지 못합니다.
직업에 관해서도 ‘담론의 덫’이 아주 탄탄하게 형성돼 있습니다. 변호사와 꽃집에서 일하는 플로리스트(florist)라는 직업을 비교해보죠. 평균적으로 꽃집에서 일하면 변호사로 일하는 것보다 수입이 적습니다. 그러니 수입만으로 좋은 직업과 안 좋은 직업을 나누자면 변호사가 플로리스트보다 좋은 직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미디어랜드에 다니는 제 친구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좋은 직업을 가르는 기준이 벌이에 국한되어선 안 됩니다.
사실 얼마를 버느냐는 좋은 직업을 판별하는 데 전혀 중요하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더 중요한 요인은 매일 그 일을 하면서 얼마나 행복을 느끼느냐는 인식일 겁니다. 지난 2012년에 도시 직능 조합에서 다양한 직군에서 일하는 사람 2,2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를 보면 일하면서 행복하다고 느끼는지 묻는 말에 그렇다고 답한 사람의 비중이 꽃집에서 일하는 사람은 87%, 변호사는 64%였습니다. 2013년에 밀레니얼 세대를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도 거의 같았습니다.
전통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직업으로 꼽히는 일들은 행복의 관점에서 보자면 좋은 직업에 들기 어려웠습니다. 지난 2014년 레가텀 연구소가 낸 보고서는 직업군에 따라 소득과 삶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했습니다. 가장 소득이 높은 직군은 어렵잖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대기업 임원들이 대표적이죠. 고위 관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재밌게도 자기 삶에 대한 만족도가 가장 높은 직군은 기업 임원들의 비서로 나타났습니다. 비서들이 받는 돈은 당연히 임원이나 부처의 수장보다 낮을 테니, 돈으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없다는 명제가 다시 한번 증명된 셈입니다. 이 밖에도 소득이 딱히 높은 축에 들지 않지만, 대체로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난 직업으로는 성직자, 농부, 피트니스 강사 등이 있었습니다.
꽃다발을 만들고 다듬어 팔거나 헬스장에서 다른 사람에게 효과적으로 운동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일을 직업으로 삼기로 한 사람들이 법을 공부해 법조인이 된 사람보다 원래 더 밝고 행복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이를 확인하려면 같은 사람을 오랜 시간 관찰, 연구하는 종단 연구(longitudinal studies)가 필요합니다.
지금 단계에서는 몇 가지 가설을 세워볼 수 있는데, 먼저 법조인이 되기로 한 사람들은 “꽃이 좋아서 꽃집에서 일하기로” 한 사람보다는 아무래도 주위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직업을 결정하는 데 좀 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사람이라고 가정할 수 있습니다.
일터의 환경 측면에서 보더라도 꽃집과 법무법인의 차이를 짐작할 수 있기도 합니다. 꽃집이라는 공간은 늘 자연을 마주하는 곳이고, 내 노동의 결과물이 곧바로 상품으로 나와 손님에게 기쁨을 주며 금전적으로도 보상을 받는 구조죠. 게다가 꽃집을 찾는 손님들은 플로리스트의 손길을 원해서 오는 사람들인 만큼 ‘나는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늘상 하게 됩니다. 또한 업무량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편이죠.
플로리스트 가운데 약 80%는 매일 꽃꽂이를 비롯해 쓸모 있는 기술을 연마하는 데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보람은 곧 행복으로 이어지죠. 매일 일상적으로 겪는 경험에서 행복을 찾는 일은 사회적으로 ‘좋은 직업’이라고 대우받는, 누구나 선망하는 직업이라고 해서 반드시 보장되지 않는 중요한 요인입니다. 그런 좋은 직업을 가지고도 날마다 보람은커녕 고통 속에 진저리를 치며 하루하루를 억지로 버티는 사람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성공에 관한 ‘담론의 덫’은 어떤 직업을 가지고 무슨 일을 하느냐 뿐 아니라 일을 얼마나 많이 하느냐까지 규정하려 듭니다. 정답은 꽤 간단합니다. 할 수 있는 한 다른 것을 희생하면서 더 열심히, 더 많이 일해서 돈을 더 많이 벌어야 성공한 삶이라는 거죠. 실제로 사람들은 소득이 오를수록 일을 더 하면 추가로 벌 수 있는 돈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우리가 쓸 수 있는 시간을 점점 더 돈과 결부해 생각하게 되는 거죠.
그리고 시간을 돈으로 환산해 생각하기 시작하면 여가 활동을 통해 얻는 즐거움이 줄어드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마음을 비우고 재충전해야 할 시간에 ‘이 시간에 일했으면 얼마를 더 벌었을 텐데’ 하는 생각에 사로잡힌다면 그럴 만도 합니다. 또 이런 경향이 사실이라면 소득이 높은 사람이 전체 사회의 평균 정도를 버는 사람보다 매일 행복을 덜 느끼리라는 것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쓸 수 있는 모든 시간을 돈을 더 벌기 위해 일하는 데 쓴다면 행복을 찾을 여유는 없을 테니까요.
미국 시간 활용 조사(American Time Use Survey)를 다시 한번 살펴봅시다. 일주일에 21~30시간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며 뚜렷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삶을 살았습니다. 만족도가 높았죠. 30시간이 넘어가면 일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불행해졌습니다. 이 결과는 성별에 관계없이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많이 일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긴 시간을 일하면서도 크게 힘들어하지 않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기는 합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너무 좋고 만족한 나머지 자발적으로 더 많이 일하는 사람도 있고요. 저도 개인적으로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특히 제가 쓰고 싶던 책을 쓸 때는 하루에 몇 시간을 들여도 전혀 힘들지 않았고요.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제 동료 연구자들도 비슷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가 사회 전체를 놓고 보면 흔하지 않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만큼 제가 운이 좋아 이런 일을 하게 된 거라고 하는 편이 솔직할 겁니다.
대부분 사람이 일을 더 많이 하기로 선택하는 이유의 근저에 또다시 ‘담론의 덫’이 등장합니다. 가능한 한 오래 일해서 돈을 더 벌어야 성공한다는 명제가 꽤 설득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야근과 밥도 제때 못 먹는데 밥 먹듯이 반복되는 초과 근무는 그 시간에 일해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과 보람 때문이 아니라 어떻게든 직장에서 살아남고 더 좋은 자리로 승진하기 위한 ‘자발적인 선택’일 때가 많습니다.
수많은 업종, 직군에서 야근이 당연시되고 오래 일하는 것이 미덕이 됐습니다. 금융, 광고회사, 법조인, 교육을 비롯한 공공 부문, 게다가 초과근무 수당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예술계에서도 이런 일이 수시로 일어납니다. 제일 먼저 출근해서 제일 늦게 퇴근하는 것이 성실함의 표본이자 미덕으로 칭송받는 문화에서 사람들은 잠을 줄이고, 건강을 해쳐가며 일터에 자기 자신을 옭아매게 됩니다.
지난해 저는 채널5의 〈Make Or Break?〉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됐습니다. 하루에 보통 16시간 정도 촬영이 계속되는 강행군이 일주일에 엿새 꼴로 4주 동안 이어졌습니다. 고작 한 달 남짓한 시간이었고, TV 프로그램 진행자보다 몇 배는 힘들게 일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든지 많다는 걸 모르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더위를 특히 못 견디는 제가 멕시코의 뜨거운 여름날에 에어컨도 잘 안 나오는 차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하루에 4시간씩 오가며 촬영 순서를 기다리는 일은 정말 고역이었습니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았습니다. ‘원래 방송국 일이 다 이렇게 힘들고 시간 대중이 없으니’ 그걸 훈장이라면 훈장으로 여기자는 자세로 일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측면이 분명 있겠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을 일만 하다 보면 생산성도 떨어질 테고, 무엇보다 개개인의 행복은 내팽개치게 되리라는 생각에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의를 제기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원문: 뉴스페퍼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