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라노스와 엘리자베스 홈즈의 몰락으로 보는 사짜 감별법」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기왕 엘리자베스 홈즈에 대한 글을 썼으니 한 마디만 더하도록 하죠. 홈즈는 유니콘으로 떠올랐을 때 마크 주커버그, 스티브 잡스,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 등 다른 대학 중퇴자(브린과 페이지는 대학원 중퇴자만요ㅋ) 로써 성공한 IT 기업가들과 비견되었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그들과 같은 위치에 오를 것이라고 여겨졌고요.
그러나 그들과는 달리 홈즈는 지금 이 꼬락서니가 되었습니다. 무슨 차이가 있었을까요?
저는 그 근본적인 차이를 산업계의 차이라고 봅니다. 즉 나머지는 IT업계인 반면, 홈즈는 헬스케어 비즈니스를 했죠. 그 근본적 차이가 지금 같은 결과를 낳았구요. 어떻게 그런 차이로 이어진 걸까요?
1. 헬스케어 업계는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IT산업에 비해 헬스케어 산업은 ‘사람으로 구실’ 하기 위해서 필요한 진입 장벽이 높습니다. 즉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는 학부만 마치고, 혹은 학부 중퇴자로도 얼마든지 탑 레벨로 활약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프로그래밍을 하여 수준급의 개발자가 되는 사람도 많죠.
반면 헬스케어 업계는 다릅니다. 학부를 졸업해봐야 개발자로 치면 ‘Hello, World’ 띄울 급도 안 되는 사람이 많죠. 의사라면 최소 메디컬 스쿨, 대학원 석박사 정도는 해야 그나마 사람대접받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창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연구를 하건 수년의 연구는 해봐야 할지 말지 감이 잡히죠. 또 대개 학계의 경험과 산업계의 경험이 다릅니다. 그래서 시간이 더 소요됩니다.
결론적으로 헬스케어 업계에서 창업을 하기 위해서 소요되는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요?
궁극적으로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헬스케어 연구/산업의 경우 높은 불확실성과 실패가 필연적으로 따라붙습니다. 그러니 헬스케어 산업 창업에 필요한 높은 기준은 아마도 ‘더 많은 실패의 경험’일 것입니다. 이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창업하기 위해 더 많은 연구 경험이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은 더 많은 ‘실패 경험’이 있는 사람을 찾는 것에 가까울 것입니다. 실패 확률이 높은 이 바닥에서 생존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서죠.
아마 홈즈도 대학 1학년 마치고 창업하는 것이 아닌, 학부 졸업해서 대학원에서 한 번 거하게 ‘참교육’ 당했거나 바이오텍 인더스트리 경험을 쌓았다면 이 꼴 안 당하지 않았을까요.
2. 헬스케어 산업은 (당연히)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또 헬스케어 산업은 IT에 비해 필연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 많은 규제와 인허가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왜 그래야만 할까요?
페이스북 같은 웹사이트를 학부 중퇴생이 런칭해서 잘못됐다 하더라도, 그걸로 사람이 죽거나 다치지는 않습니다. 최악의 상황이래 봐야 개인정보 유출이나 돈 좀 나가는 정도겠죠. 휴대폰 잘못 만들어도 이걸로 사람을 죽이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홈즈가 하려고 했던 사업은 잘못하면 사람 잡는 일입니다. 진단에서 잘못되는 것은 크게 두 가지겠죠.
- False positive : 질병이 아닌데 질병이라고 진단을 내리는 것. 즉 병에 걸리지 않은 정상인이 질병에 대한 치료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건강에 악영향을 미칩니다.
- False negative : 질병인데 질병이 아니라고 진단을 내리는 것.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 치료를 받지 않게 됩니다. 당연히 악영향을 끼칩니다.
잘못된 웹사이트가 미치는 영향과 정확도가 떨어지는 진단 방법이 미치는 영향의 파급 효과는 천지차이로 다릅니다. 전자는 너님의 개인정보가 노출되는 정도겠지만, 후자는 너님의 개인정보가 지옥으로 이관됩니다 (…)
이런 상황이다 보니 헬스케어는 당연히 IT와는 비교가 안 되는 규제와 인허가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실제로 제품을 출시해 수익을 내기까지 거치는 장벽은 비교가 안 됩니다. 당연하죠. 잘못된 약이나 진단기기의 허가는 사람을 실제로 잡고, 회사는 수십억 불의 피해 소송에 휘말립니다. 탈리도마이드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문제는 사람들이 ‘유니콘, 유니콘’ 하면서 IT와 헬스케어 산업을 한 묶음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IT의 빠른 의사결정과 사업 진행에 익숙한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 헬스케어 쪽은 정말 거북이 같을 겁니다. 그러나 그 거북이걸음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산업적 특성을 무시하고 기업 식으로 헬스케어 사업에 뛰어들다 보면 당신은 홈즈 꼴로 쪽박을 차거나, 더 잘못하면 수천수만 명의 피해자를 내는 사태의 주범으로 몰리는 분위기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3. 이른 창업을 하고 싶다고요? 산업군을 잘 선택합시다
『BAD BLOOD』를 읽어보면, 닷컴 붐 시절에 돈 좀 만졌던 홈즈의 남자친구가 테라노스의 COO로 일하며 저지른 수많은 문제들이 익히 나와 있습니다. 그가 일했던 닷컴 시절 IT기업에서는 그래도 됐나 보죠. 하지만 그런 습관은 결국 헬스케어 산업이었던 테라노스에 치명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니 잘 모르면 가만히나 있는 것이 좋습니다.
아마 홈즈도 IT산업에 투신해서 웹서비스나 앱 개발하는 회사를 세웠더라면 꽤 성공한 인물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놈의 ‘피 한 방울’로 인류의 질병을 치료하는 어쩌고 자기가 만든 환상에 너무 사로잡혀서 문제였죠.
1줄 요약 : 자신의 적성에 맞는 산업군을 선택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