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rvana의 추억: 20년 전 떠난 커트 코베인을 추억하며 에서 이어집니다.
Nirvana는 Kurt Cobain의 자살로 인한 활동 중지 전까지 세 장의 정규 앨범과 한 장의 b-sides/미발표곡 음반, 그리고 한 장의 unplugged live 음반을 발매했습니다. 그 중에서 데뷔작인 ‘Bleach’ (1989)는 어떻게 보면 가장 주목 받지 못하는 음반 중 하나인데요, 꽤 많은 분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Bleach’는 ‘Nevermind’를 먼저 만난 이후 접했던 음반이라서 그런지 큰 감흥은 받지 못했던 음반입니다.
하지만 이 음반은 이후 Nirvana가 들려줄 사운드의 기본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는, 그런대로 괜찮은 음반입니다. 평점을 매기자면, B+ 정도?
수록곡들은 대부분 2-3분 정도의 길이로, 순수하고 거친 느낌이 지배적인 전형적인 punk 음반입니다만… ‘About a Girl’이나 ‘School’, ‘Love Buzz’, ‘Negative Creep’ 같은 곡은 ‘Nevermind’에서 느껴지는 단단하고 찰진 사운드와는 다른 다소 어설프고 단순한 사운드 속에서도 Nirvana 특유의 에너지와 독특한 느낌의 코드 진행, 그리고 Kurt 특유의 질러대기와 가사 뭉개기가 전면에 드러납니다.
전설의 등장: Nevermind (1991)
1. Smells Like Teen Spirit / 2. In Bloom / 3. Come As You Are / 4. Breed / 5. Lithium / 6. Polly / 7. Territorial Pissings / 8. Drain You / 9. Lounge Act / 10. Stay Away / 11. On a Plain / 12. Something In The Way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너무나 유명한 음반에 대해서 소개를 하려고 하면, 막상 별로 쓸 말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 앨범이 그렇습니다. 특히나 Nirvana, 그리고 이 음반 ‘Nevermind’가 몰고 왔던 폭풍과도 같은 파급력과 대중음악史 적인 영향력은 이미 지난 글에서 설명한 바가 있으니 굳이 이 글에서 또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구요.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음악 자체를 똑바로 듣기가 힘든 음반이 되어버리긴 했습니다. 음반이 발매된 후 갑작스럽게 록 음악 차트에서 주목을 받으면서 앨범 판매가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하던 그 시절, 그러니까 지금처럼 음악 외적인 요소들 (Kurt Cobain의 자살이라든가, Nirvana가 이후 일으키게 된 폭풍과 같은 음악계의 변화)을 전혀 알 수 없이 비교적 음악에 집중해서 이 음반을 들었을 때의 느낌을 생각해보면 앨범의 첫 머리에 실린 ‘Smells Like Teen Spirit’의 첫 기타 인트로를 듣는 순간 그냥 한 방에 확 이들에게 사로잡혀 버린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처럼 Led Zeppelin의 ‘Stairway to Heaven’의 기타 인트로만큼,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도 더 유명한 기타 인트로 4마디로 듣는 이를 한순간에 굴복시키고(!) 바로 파워 있게 두드려대는 Dave Grohl의 드럼과 묵직한 Krist Novoselic의 베이스 라인, 그리고 Grunge Rock이라는 음악 장르 명명의 기원이 된 거칠고 지글거리는 디스토션 잔뜩 걸린 기타가 싹 합쳐져서 들어오는 ‘Smells Like Teen Spirit’의 시작 부분은, 한 평론가의 문구처럼 ‘순간 청취자의 주변을 진공 상태로 만들어버리는 듯한 먹먹함’을 안겨줄 정도로 흡입력이 강했습니다.
앨범의 후반부는 개성 넘치는 전반부와는 달리, 비교적 직선적인 느낌으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짧은 punk 곡으로 채워져 있는데요, 이 앨범까지만 해도 Kurt는 우울증이나 성공에 대한 부담감과는 거리가 있던 시절이라 즐겁게 소리지르고 뒤엉키지 않은 순수한 느낌으로 질주합니다. 덕분에 듣는 이도 별 생각 없이 신나게 헤드뱅잉하면서 스트레스 풀 수 있구요.
영미권 팝음악과 록음악에 약간의 관심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꼭 가지고 있어야 할 음반이라고 감히 이야기하고 싶네요.
커트 코베인의 정신세계: In Utero (1993)
1. Serve the Servants / 2. Scentless Apprentice / 3. Heart Shaped Box / 4. Rape Me / 5. Frances Farmer Will Have Her Revenge On Seattle / 6. Dumb / 7. Very Ape / 8. Milk It / 9. Pennyroyal Tea / 10. Radio Friendly Unit Shifter / 11. Tourette’s / 12. All Apologies
생전의 많은 인터뷰를 보면, Kurt는 흔히 말하는 ‘언더 정신’이나 ‘비상업적인 순수함’과는 거리가 있는, 분명히 성공을 꿈꾸면서 음악을 만들고 앨범을 발매했던 뮤지션이었습니다. 하지만 ‘Nevermind’가 만들어 낸 성공은 그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거대한 규모였고, 그러한 성공이 주는 엄청난 압박감은 원래부터 (행복하지 못했던 과거로 인해서 기인한) 약간의 우울증과 정서적인 불안함을 가지고 있던 Kurt를 완전히 망가뜨려 버렸습니다.
이 앨범은 그렇게 망가져 버린 Kurt의 정신 상태를 정말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음반입니다. 이 앨범은 그가 자살하기 전 마지막으로 녹음한 앨범인데 (이 앨범 발매 약 7개월 후 Kurt는 권총 자살을 하죠),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자살과 연관짓지 않고 생각하는 일 자체가 어려운 음반입니다.
물론 저를 비롯한 많은 음악팬들이 발매 직후 이 음반을 샀을 때는 Kurt가 자살을 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음반의 뒤틀리고 우울한 어두움에 깜짝 놀랐던 것도 사실입니다. 분명, Kurt는 복선을 깔아 놓았던 것이지요.
‘Nevermind’에서 보여주던 즐거움과 약간의 유머, 그리고 직선적이고 신나는 질주감은 이 앨범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대신 훨씬 더 꼬이고 거칠며 복잡한 음악들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약간의 블랙 유머에 가까웠던 지난 음반의 자켓과 무언가 음습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번 앨범의 자켓 분위기의 대조 (특히 씨디 뒷면, 부서진 태아 모형들이 널부러져 있는 사진)가 그런 분위기의 전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지요.
기타 소리는 더 지글거리고, 드럼은 정말 금방이라도 부서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거칠게 두드려댑니다. 멜로디는 장조와 단조를 마구잡이로 오가면서 듣는 이를 혼란스럽게 하고, 목소리는 뒤틀릴 대로 뒤틀려 있지요. 중간중간 부드러운 곡들도 있는데, 이 부분 역시 마치 조울증 걸린 사람의 감정변화처럼 분노와 파괴 본능에서 갑작스럽게 슬픔과 우울함으로 전환됩니다. 게다가 가사들은 허무주의와 끝 모를 절망감, 분노로 가득차 있지요.
‘Nevermind’도 대단한 앨범이지만, 이 앨범의 이 기묘한 어두움과 분노, 허무, 강렬함은 이전까지 어떤 뮤지션의 어떤 음반에서도 만나기 어려웠거니와 앞으로도 만나기 어려울 종류의 독특함이라고 감히 이야기하고 싶네요.
하지만, 그러한 망그러짐과 뒤틀림 속에서도 Kurt 특유의 흡입력은 빛을 발합니다. ‘Heart Shaped Box’나 ‘Dumb’, ‘Pennyroyal Tea’ 등의 수록곡들이 특히 그러한데, 예전에 어떤 평론가가 묘사한 것처럼 ‘마치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어린 고아 소녀의 커다란 눈망울을 바라보는 듯한’ 그런 종류의 우울함과 슬픔이 뒤섞인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곡인 ‘All Apologies’는 음악 자체로는 가장 대중적이고 밝지만 묘하게 대치되는 가사 때문인지 왠지 모르게 처량한 느낌을 주는 곡인데요, Kurt의 솔직한 자기 고백과 희망/절망이 뒤섞인 가사가 마치 그의 미래를 암시하는 듯 합니다. 관심 있는 분은 꼭 가사를 직접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이러한 매력 덕분인지, Nirvana의 팬들 중에서는 ‘Nevermind’보다 ‘In Utero’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도 제법 많습니다. 그리고, 저 개인적으로도 ‘Nevermind’처럼 아무 때나 즐기면서 들을 수는 없지만 이 음반이 더 ‘대단하다’라고 느끼구요.
커트 코베인 사후 유작: MTV Unplugged In New York (1994)
1. About a Girl / 2. Come As You Are / 3. Jesus Doesn’t Want Me For a Sunbeam / 4. The Man Who Sold the World /5. Pennyroyal Tea / 6. Dumb / 7. Polly / 8. On A Plain / 9. Something In The Way / 10. Plateau /11. Oh, Me / 12. Lake Of Fire / 13. All Apologies / 14.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처음에 Kurt의 ‘실종’ 소식을 접했고, 곧바로 ‘권총 자살한 시신이 발견되었다’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던 것은 94년 4월초, 그것도 막 햇볕이 따스해지기 시작하고 모든 것들이 살아나는 것과 같은 생동감이 느껴지기 시작하던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AFKN FM 라디오 에서 흘러나온 ‘Breaking News’를 처음에는 믿지 않았는데 (제가 영어 청취력이 부족해서 잘못 들었나 했습니다), 우리나라 신문과 방송에도 조그맣게 그의 죽음 소식이 나오는 것을 보고는 그게 사실임을 알게 되었죠.
어린 마음에 (당시 고등학생…) Nirvana를 좋아하는 다른 친구와 함께 조촐하게 촛불 켜놓고 나름대로 ‘우리들만의 추모식’ 같은 것도 해주고 그랬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우습기도 하지만 저에기는 당시 나름 굉장히 심각하고 슬픈 일이었습니다. 눈물도 흘리고 그랬던 것 같네요.
그런 갑작스러운 죽음과 죽음 이후 온갖 괴소문 (‘아직 어딘가에 살아 있다’라는 이야기와 온갖 배경이 난무하는 각종 타살설 등등… 특히 Kurt의 죽음에 얽힌 찜찜한 부분들이 제법 많아서 이런 뒷 이야기들이 계속 나왔지요. 커트의 죽음에 관한 불편한 진실들이 궁금하신 분은 이안 핼퍼린이라는 사람이 쓴 ‘커트 코베인, 지워지지 않는 너바나의 전설’이라는 책을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이 조금씩 진정되어 갈 즈음인 11월, Nirvana는 본작 ‘MTV Unplugged In New York’을 발매합니다.
사실 이 앨범은 1993년 11월, 즉 ‘In Utero’ (1993) 음반 발매 직후 MTV의 한 프로그램인 ‘Unplugged’ 코너에서 Nirvana가 했던 공연 실황을 담은 음반입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열린 공연인 만큼, 공연 직후 앨범 발매 이전에도 이미 몇 개의 음원이 사전 배포되어 라디오에도 가끔 소개가 되기도 했구요.
‘Smells Like Teen Spirit’이나 ‘Lithium’과 같은 강렬한 록음악이 어쿠스틱 음악으로 바뀌는 진귀한 경험은 할 수 없지만, 꽤 많은 Nirvana의 곡이 어쿠스틱으로 바뀌어서 실렸습니다. 대부분 예상할 만한 선곡 (‘Something In The Way’, ‘All Apologies’, ‘Polly’, ‘Dumb’)이고 몇 곡은 약간 의외의 선곡 (‘Pennyroyal Tea’, ‘On a Plain’)이긴 하지만요.
그런데, 이 앨범에는 Nirvana 자신들의 곡 뿐만 아니라 많은 다른 뮤지션들의 곡을 어쿠스틱 스타일로 리메이크한 버전이 많이 들어 있는데, 사실 Nirvana 기존 곡보다 이 노래들에서 들을 수 있는 Kurt의 목소리와 편곡 능력이 이 앨범의 중요 감상 포인트입니다.
그 중에서도 David Bowie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The Man Who Sold the World’, 그리고 전설적인 folk계의 원로 뮤지션 Leadbelly의 노래로 유명한 고전 포크 음악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의 아름다움은 Nirvana를 좋아하지 않는 팬들에게도 가슴 저미는 느낌으로 들려오는 아름다운 리메이크입니다. 특히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의 마지막 절규 부분은, Kurt의 자살이라는 사실과 맞물려 팬들의 심장을 헤집어 놓을만한 슬픔을 느끼게 합니다.
이 앨범은 Nirvana의 그 어떤 앨범보다도 내면적이고, 솔직하며, 풍부한 감수성이 담겨 있는 음반입니다. Kurt는 이 앨범에서 과장된 분노와 긴장감을 버리고 정말로 편안하고 부드럽게 곡과 음악에 몰두하며 조용조용 노래를 하고 있는데요, 파워풀한 에너지와 격렬한 헤드뱅잉 음악의 상징인 Nirvana의 정규 앨범에서는 느낄 수 없는 Kurt의 감성적이고 여린 측면을 꾸밈 없이 드러냅니다.
뭐랄까, 음악인이자 예술인, 그리고 자연인으로서의 Kurt의 모습이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그런 음반이 아닐까 싶네요. 역시나 팝음악/록음악의 팬이라면 누구나 한장씩 가지고 있어야 할 음반.
R. I. P. Kurt
그 외의 Nirvana의 음반들로는 ‘Nevermind’ (1991)와 ‘In Utero’ 앨범 사이에 발매된, 꽤 듣는 재미가 쏠쏠한 미발표곡 모음집 ‘Incesticide’, 잡다한 single들 모음집인 박스 셋트 ‘Singles Box Set’ (1996), 녹음 상태와 뒷 마무리가 참 아쉬운 라이므 음반 ‘From the Muddy Banks of the Wishkah’ (1996), 온갖 데모 버전과 미발표곡 버전이 막 섞여 있는 전형적인 팬 서비스 용 세 장 짜리 앨범 ‘With the Lights Out’ (2004), 그리고 작년에 발매된 실황 음반 ‘Live at Reading’ (2009) 이 있습니다.
솔직히 위에 소개한 각종 박스 셋트나 미발표곡 모음집 등은 Nirvana (혹은 Grunge Rock 음악)의 팬이 아니라면 굳이 구매할 필요는 없지만, 실황 음반 ‘Live At Reading’ 만큼은 정말 추천하고 싶네요. ‘Live At Reading’에 대한 짧은 리뷰는 여기를 클릭하세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게 Nirvana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요, 뭐 워낙 유명하고 인기도 많은 밴드라 이미 이런 저런 많은 이야기들이 있고 음악 구해서 듣기도 어렵지 않은 밴드죠. 그냥 나의 A+ 음반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또 제 개인적으로 저의 지금까지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던 한 밴드에 대한 언젠가는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부족하나마 짧게 풀어봤습니다.
원문: KT의 delicate한 음악 세상 / 편집: 리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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