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중 수집형 RPG의 캐릭터 판매를 둘러싼 BM과 게임 디자인 비교 1부」에서 이어집니다.
3. 음양사
도탑전기류 게임은 중국 시장에서 하나의 성공적인 템플릿이 되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수집형 RPG와는 전혀 다른 방향을 지닙니다. 지속적으로 캐릭터가 추가되며 이 캐릭터들을 수집하는 재미보다는 캐릭터들을 위로 위로 계속해서 성장시켜나가는 재미에 초점을 맞추지요.
하지만 이런 수직 성장은 운영이 길어질수록 신규 유저의 정착을 방해합니다. 출시 초기에 대량의 마케팅으로 부어 넣은 유저를 계속 잃어나가는 형국이 되는 것이죠. 또한 캐릭터 수직 성장이 깊어질수록 신 캐릭터의 효용이 줄어들기 때문에 캐릭터를 추가하지 않는 구성이 유리합니다. 한마디로 텐센트가 괜찮은 IP를 사와야 동작하는 모델이라는 거죠.
실제로 오리지널 도탑전기를 제외하면 텐센트가 IP 붙여 만든 도탑전기류 게임들만이 생존해왔습니다. 그런데 모든 퍼블리셔가 텐센트가 아니고, 모든 게임이 IP 게임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도탑전기류 게임의 단점은 완벽하게 일본식 수집 게임의 장점에 대응합니다. 텐센트가 아니고, IP 기반 게임을 만들 게 아니라면 일본의 수집 게임에서 힌트를 얻어 새로운 수집형 게임을 만드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런 탈 도탑전기의 신호탄을 가장 크고 화려하게 쏘아 올린 것은 음양사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출시 당시엔 고품질의 일본 색채가 진한 아트웍으로 큰 유명세를 탔습니다만 사실 그보다는 기존의 도탑 전기와 완전히 다른 메타 게임 구조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음양사는 얕게 잠깐 플레이한 기억에 의존하기 때문에 실제와 다른 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적해주시면 반영하겠습니다.)
3-1. 캐릭터의 획득을 가챠 중심으로 제한
음양사는 도탑전기류 게임들과 달리 캐릭터에 SR, R 등의 희귀도를 부여합니다. 희귀도가 높을수록 성능이 확연히 좋은 대신 획득이 어렵고, 희귀도의 성장은 불가능합니다. 특성에 따라 희귀도가 낮아도 유용한 캐릭터가 일부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 희귀도가 성능의 절대 지표입니다.
그리고 플레이를 통한 캐릭터 및 조각 획득이 굉장히 제한됩니다. 백귀야행이나 던전 탐색의 도전 모드 등 캐릭터의 조각을 얻는 방법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일반 행동력이 아닌 도전권을 소모하는 식으로 조각/캐릭터를 획득할 수 있는 콘텐츠에의 접근이 도탑전기류보다 훨씬 강하게 제한됩니다.
또한 이렇게 플레이로 조각을 얻는 캐릭터의 종류가 제한되거나, 랜덤성이 강하게 부여되어 희귀도가 낮은 캐릭터는 어느 정도 획득할 수 있지만 도탑전기류처럼 안정적으로 원하는 캐릭터의 조각을 획득할 수는 없습니다. 등급이 강하게 구분되고 캐릭터의 수급을 가챠로 한정한 점, 가차 10개에 캐릭터 1개를 보장하는 도탑전기류 게임과 달리 가챠에선 캐릭터만 나오는 점은 오히려 일본식 가챠 게임에 가깝습니다.
물론 아예 무료 젬을 모아 가챠를 돌리거나, 이벤트에서 공급되는 소수의 캐릭터를 제외하면 무과금으로 캐릭터를 획득할 방법이 아예 없는 일본식 가챠 게임보다는 무과금자에게 조금 더 우호적일 수 있습니다만 근본적으로는 가챠의 가치를 높이고, 가챠 판매를 중시하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사실 그 뒤의 성장 구조를 보면 절대로 일본식 가챠 게임보다 우호적이라고 보기도 힘들긴 합니다.
3-2. 꽝에 의미를 부여해 손해를 보지 않도록 보장하는 진화
음양사의 캐릭터들은 희귀도 외에 곡옥의 개수로 표시되는 등급(이하 편의상 성급으로 표시하겠습니다)이 있습니다. 성급은 희귀도와 별개로 1성부터 6성까지 존재하며 성급이 높을수록 동일 캐릭 동일 레벨이라도 능력치가 높고, 최대레벨도 더 높습니다.
캐릭터는 희귀도에 무관하게 2~4성인 상태로 획득하는데 3, 4성의 확률은 낮고 대부분 2성으로 획득하지만 현재 성급과 같은 성급의 캐릭터를 현재의 성급 만큼 소모하는 진화를 통해 성급을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3성 캐릭터를 4성으로 만들기 위해선 다른 3성 캐릭터 3개가 필요한 거죠(같은 캐릭터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 성급 성장이 음양사를 도탑전기나 일본식 가챠 게임과 구분 짓는 주요 요소 중 하나입니다.
5성 캐릭터를 최고 등급인 6성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선 재료로만 5성이 5개 필요합니다. 5성 1개는 4성 5개를 재료로 진화시켜야 하므로, 4성 25개가 소모되지요. 이 과정을 게임 중 가장 쉽게 획득하는 2성 캐릭터로 환산하면 300개가 필요합니다. 무지막지한 양이죠. 가챠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꽝이 바로 여기서 진화 재료로서의 의미를 부여받습니다. 또한 희귀도가 낮다고 하더라도 성급이 높다면 (낮은 확률이지만 4성까지 획득 가능) 그 자체로 3성 4개, 2성 12개를 대체하기 때문에 높은 가치를 부여받지요.
1부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캐릭터의 희귀도를 구분 짓는 방식이라는 관점에서 일본 가챠 게임과 도탑전기류 게임은 완전히 대척점에 있으며 서로 장단점이 교차됩니다. 일본 가챠 게임은 희귀하고 강한 WISH 캐릭터를 강조함으로써 욕망을 부추기고, 이 WISH 캐릭터를 얻었을 때의 기쁨이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다량 발생하는 실패의 아픔을 상쇄합니다. 반면 도탑전기류는 모든 캐릭터를 동급으로 배치함으로써 WISH 캐릭터에 대한 자극은 적지만 뭘 얻든 전체 덱이 성장하게 함으로써 실패라는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습니다.
음양사의 곡옥 등급과 진화는 양자의 장점만을 아주 절묘하게 합쳐놓은 그림입니다. 희귀도가 나뉘었기 때문에 WISH에 대한 욕망은 부추기지만, 진화에서 다량의 꽝을 흡수함으로써 여전히 가챠 상품이 최소한의 가치를 지닙니다. 물론 일본식 가챠 게임에서도 꽝으로 나온 부산물들을 레벨업 재료로 갈아 먹이는 최소한의 쓸모가 있긴 합니다만, 레벨업 재료는 플레이를 통해서도 얻기 때문에 그 가치가 그렇게 높지는 않습니다. 그냥 무쓸모하진 않다는 수준이죠. 골드로 매각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음양사의 진화 재료는 대량으로 필요하지만 플레이를 통해선 획득하기 힘들기 때문에 훨씬 높은 가치를 지닙니다.
한편 가챠에서 중복 당첨된 캐릭터를 쌓아 올리는 한계돌파 혹은 초월 시스템도 눈여겨볼 만 합니다. 통상 한계돌파는 최종 완성까지의 당첨 수를 높이기 때문에 수익성에 도움이 되지만, 그 효과가 크면 클수록 낮은 확률에 도전해야 하는 사용자의 스트레스를 높입니다. 그래서 효과(필수성)와 난이도 사이에 균형이 필요하죠. 음양사의 캐릭터들은 3~4개의 스킬이 있는데 같은 캐릭터를 재료로 사용하면 랜덤하게 1종의 스킬 레벨이 올라갑니다.
스킬 레벨에 따라 캐릭터 성능이 크게 변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반드시 밟아야 하는 필수 성장 요소입니다. 이렇게 한돌의 비중이 커지면, 게다가 랜덤성까지 가미되면 고과금자들로부터 더 많은 지출을 끌어내지만 동시에 사용자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기 마련입니다. 여기서 모든 캐릭터의 한돌에 사용할 수 있는 와일드카드인 검은 달마가 끼어듭니다.
핵과금러 폐과금러라면 가챠를 통해 SSR을 몇 개씩 뽑아서 한돌할 수 있지만 그만큼을 투자할 수 없는 사람은 간간이 얻는 검은 달마를 통해 그만큼의 돈을 투입하지 않고도 SSR 한계돌파를 맛보게 해줍니다. 확률을 낮게 유지하면서도 어느 정도 스트레스를 관리할 장치를 배치한 것이죠. 이는 마찬가지로 한계돌파의 깊이가 깊은 벽람항로에서 모든 캐릭터의 한계돌파에 사용하는 부린으로 한계돌파의 어려움을 다소 낮춰주는 것과 동일한 이치입니다.
3-3. 플레이를 강조하는 성장-보상체계
음양사는 캐릭터를 거의 가챠로만 판매한다는 점에선 일본 가챠게임과 유사해 보이지만, 깊은 성장 단계와 그에 기반한 보상의 질적/양적 향상을 중심으로 장기 플레이를 유도한다는 점에선 단기 콘텐츠를 중심으로 하는 일본 가챠 게임보다는 기존의 도탑전기류 게임과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사실 전투 참가 경험치의 비중이 높고, 아이템 파밍을 강조한다는 점에선 외려 한국식 수집형 게임과 더 가깝다고도 볼 수 있지요.
중국이든 일본이든 최근 게임들은 전투에 참여한 캐릭터에겐 경험치를 지급하지 않거나 비중을 줄이고 원하는 캐릭터에 경험치를 넘겨줄 재료를 지급하는 추세입니다. 새로 얻은 저레벨 캐릭터를 육성하기 위해 덱에 밀어 넣고 더 약한 전력으로 게임을 진행해야 하는 스트레스를 없애고 신캐 획득과 육성의 재미만 취하는 디자인이죠.
하지만 음양사는 이런 최근의 흐름을 거스릅니다. 전투에 참여한 캐릭터에게만 경험치를 지급하고, 경험치 전용 캐릭터같이 이전할 자원은 거의 지급하지 않습니다(강화 전용 재료가 존재하지만 이벤트 등에서 굉장히 드물게 제한적으로 공급됩니다). 소탕도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새로 얻은 캐릭터를 육성하기 위해선 반드시 덱에 포함시켜야 합니다. 다행히 직접 참여는 하지 않지만 경험치는 60% 받아가는 슬롯이 2개 있어서 새 캐릭터의 획득이 약한 덱으로 약한 던전을 도는 경험으로 바로 이어지진 않습니다.
이렇게 최근의 추세를 거스르는, 소탕도 거부하면서 다소 빡빡한 경험치 지급 구조를 채택한 것은 개인적으로는 조금 납득이 힘들긴 합니다만, 그로 인해 얻을 효과를 몇 가지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는 플레이 시간의 물리적 점유입니다. 도탑전기류 게임의 경우 통상적으로 행동력은 전부 소탕으로 태우고, 나머지 콘텐츠를 플레이하는 데 하루 약 1시간가량 소진합니다. 플레이어 입장에서 편하긴 하지만 그만큼 남은 시간과 돈을 다른 게임에 투자하기도 쉽습니다.
최종 허들을 간신히 넘어 오픈 전까지 기대가 높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수 사용자의 2번째 3번째 게임으로 운영하기보다는 시간을 점유해 전체적인 사용자 풀의 규모는 줄더라도 해당 사용자들에겐 1번째 게임으로 운영하고자 하는 전략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MMORPG가 강세였던 넷이즈의 경험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지요. 뭐 결과적으로는 1위 게임이 시간까지 잡아먹는 초대박이 났습니다만.
두 번째는 가챠에 대한 가치 강화입니다. 아까 설명드린 진화에는 한가지 제약이 붙습니다. 진화의 재료는 레벨에 무관하지만 진화의 대상은 반드시 해당 성급에서의 최대 레벨에 도달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한 캐릭터를 최대 레벨에 도달시키기 위해선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해당 캐릭터로 전투에 참여하거나, 최소한 60%의 경험치를 챙겨가는 관람석에 앉혀야 합니다. 재료로 사용되는 5성 4성 또한 각기 만렙을 찍은 상태에서 진화작을 해야 하지요. 다량의 남는 꽝을 진화로 흡수할 수 있지만, 물리적인 시간이 많이 소요됩니다. 하지만 캐릭터는 전투 외에 다른 캐릭터를 갈아 먹이는 것으로도 경험치를 얻고 레벨을 올립니다. 효율은 나쁘지만요.
음양사는 이 지점에서 가챠를 수집의 특권뿐 아니라 시간 단축 서비스로도 활용합니다. 가챠를 많이 돌려서 캐릭터가 남아도는 고과금 사용자라면 전투에 끼워서 경험치를 먹이는 대신 캐릭터를 갈아 먹이는 것으로 바로 진화를 마치고 최신 최강의 캐릭터를 바로 갖고 노는 것이죠. 반면 캐릭터가 부족한 무과금/소과금이나 갈아 먹일 정도로 캐릭터가 남아돌지는 않는 중과금은 효율이 좋은 던전에서 경험치를 수급하는 소위 쫄작을 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냅니다.
3-4. 어혼 – 입문은 쉬고 완성은 어려운 장비 파밍
전투를 통해 경험치 외에 캐릭터에 장착할 장비를 얻는다는 점 또한 기존 도탑전기류 게임보다는 한국 게임과 유사하지만 역시 디테일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의 수집형 게임의 장비는 기존의 PC 혹은 콘솔 RPG 문법을 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캐릭터마다 무기/방어구/장신구 슬롯이 있고 무기는 공격력을 주로 올려주며 방어구는 방어력을 올려주는 식이죠. 또한 칼은 물리 속성의 공격력을, 지팡이는 마법 속성의 공격력을 올려준다는 등의 기존의 관습을 통해 아이템의 기본적인 기능을 플레이어에게 전달합니다.
음양사의 어혼 역시 캐릭터에게 장착/해제할 수 있고 장착 시 캐릭터의 능력치를 더해준다는 측면에서 이런 장비에 속합니다만, 기존의 아이템 형태를 중심으로 한 문법이 아닌, 블레이드 & 소울의 보패와 같은 관념적인 형태를 띕니다. 아래 스크린숏을 보시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장비와 어혼의 차이는 아이콘의 형태가 아닌, 장비가 게임 내에서 의미를 부여받는 체계의 차이입니다. 무기/방어구는 자유로운 조합을 전제로 개별 아이템이 독립적으로 완결되어있습니다. 일부 아이템들은 스탯 보너스를 동반한 세트 구성을 가지긴 하지만 모든 아이템이 세트에 속해있는 것은 아니며, 세트 효과 또한 전체 보너스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다른 스펙이 동일하다면 세트 효과 보너스를 받을 세트 구성을 선호하겠지만, 효율에 따라선 일부러 세트를 포기하는 상황도 가능하지요.
하지만 블소의 보패나 음양사의 어혼은 태생적으로 어떠한 세트의 일부임을 강조합니다. 당장 아이콘만 봐도 세트를 상징하는 공통된 그림을 사용해 어떤 세트인지, 같은 세트인지 아닌지 한눈에 알아보도록 하지요. 그리고 기능적으로도 어혼이 가진 기능의 대부분이 세트 효과에 몰렸습니다. 2피스 효과는 공격력 +18, 치명타 +20%와 같이 단순한 스탯 보너스를 더해주지만 4세트 효과는 차원을 달리합니다. HP가 30% 이하인 유닛에게 50%의 추가 피해, 상태 이상에 걸린 아군의 속도 30 증가 등과 같이 전투에 큰 영향을 줄 변수를 더해줍니다.
이렇게 강력하고 개성 있는 세트 효과가 횡적으로 널리 분포되었기에 어혼은 기본적으로 캐릭터가 가진 특성을 유지한 채 성능을 강화하는 정도를 넘어서 캐릭터를 다루고 운용하는 방법 자체를 바꿀 수 있습니다. 전략의 폭을 크게 넓힐 수 있지요. 이런 세트 효과의 강력함에 비하면 개별 어혼의 기본 스탯은 비중이 매우 떨어집니다. 우선 세트를 맞춘 이후에 같은 세트의 고등급/고레벨 장비로 교체하면서 스펙을 향상하지요.
보통은 전략의 폭이 넓으면 좋은 게임이라고는 합니다만, 사실 저는 그게 모든 게임이 보편적으로 가져야 할 덕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드코어 게이머들은 이런 폭넓은 전략을 재미로 받아들이겠지만, 캐주얼한 사용자들은 재미보다는 게임의 난이도로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특히 전통적 의미의 게임이라기보다는 엔터테인먼트 서비스에 가까운 부분 유료화 게임에선 전략의 폭을 좁히고 목표와 보상을 더 선명하게 강조하는 것이 더 유리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도탑전기류라거나 쿵푸팬더3 등 이전의 중국식 게임들은 아이템을 아예 갈아 끼우지 못하게 하거나, 일렬로 우열을 나누고서는 상위 템으로만 교체 가능하게 하는 등 선택지를 줄임으로써 빨간 점만 따라가는 것으로 어려움 없이 성장의 즐거움만 누리도록 했지요. 그에 비해 캐릭터에 어울리는 어혼을 찾고, 조합하고 배치해야 하는 음양사는 분명히 난이도가 높습니다. 대신 음양사의 어혼은 다른 게임들보다 훨씬 더 장기 운영에 유리한 구조가 있습니다.
운영 측면에서 어혼이 갖는 가장 큰 의의는 저렴한 개발 비용으로 게임에 큰 변화를 준다는 것입니다. 수집형 게임을 운영하면서 게임에 변화를 가져다주는 가장 기본적이고 확실한 방법은 새 캐릭터를 추가하는 것이지만 이게 그렇게까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성장 구조가 깊을수록 신캐로의 전환이 힘들기도 힘들지만, 기본적으로 캐릭터를 계속해서 찍어낸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비쌉니다. 사람 손이 많이 가요. 확밀아 같은 카드 게임이야 그림 한두 장이 전부였지만, 최근의 스마트폰이 요구하는 퀄리티를 맞추려면 콘셉트, 원화, 모델링, 애니메이션 등 단계별로 막대한 인력이 투입됩니다. 일부를 아웃소싱할 수도 있지만 기획적으로 ‘캐릭터’를 구상하고 구체화하고 가다듬는 것도 꽤나 비용이 드는 일이죠.
하지만 2D 아이콘 1개와 옵션으로 구성된 어혼은 캐릭터보다 제작 비용이 압도적으로 저렴합니다. 3D 모델을 만들고 리깅하고 애니메이션 입힐 필요도 없고 별개의 연출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음성을 녹음할 필요도 없지요. 과거 확밀아 시대의 카드 게임처럼 콘텐츠 개발 비용이 매우 낮지요. 하지만 음양사의 어혼은 능력치를 담은 컨테이너를 넘어서 캐릭터의 성격이나 용법을 바꾸는 강력한 세트 효과가 있습니다. 새로운 어혼 즉, 새로운 세트 효과를 추가함으로써 게임상에 새로운 캐릭터를 추가하는 것과 유사한 수준의 변화를 가져오지요.
이 변화는 캐릭터 X 세트 효과의 조합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곱연산으로 나타납니다. 어혼 1개를 추가하면 기존에 있던 캐릭터 수 만큼의 새로운 조합이 탄생하고, 캐릭터 1개를 추가하면 다시 어혼 개수만큼의 조합이 추가됩니다. 개발하고 운영하는 입장에서 가성비가 아주 탁월합니다.
어혼이 수집되고 소비되는 과정 또한 눈여겨볼 만합니다. 기본적으로 아이템 파밍이라는 것이 랜덤성에 의존하는 것이긴 합니다만, 음양사의 어혼 파밍은 이 랜덤성을 극소수의 성공과 대다수의 실패의 이분법으로 나눈 대신 어혼의 종류, 슬롯, 등급, 기본 능력치 등 다양한 층위에 뿌려놓습니다. 그래서 플레이어는 특정한 어혼 얻기부터 시작해 세트를 완성하도록 해당 어혼의 특정 슬롯 얻기, 더 높은 등급의 어혼들로 세트를 채우기, 원하는 능력치를 가진 어혼으로 채우기 등의 순서로 파밍을 완성해나가며 목표를 좁혀나갑니다.
거시적으로 봤을 때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만 원하는 결과물을 얻는다는 점은 한국식의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 과정의 질은 다릅니다. 오랜 시간을 들여 한 부위씩 맞춰나가는 저빈도 고효과의 성장이 아니라 일단 낮은 등급으로 한 세트를 완성했다가 점차 등급을 높여나가고 능력치를 맞추는 등 입문 단계에서 어렵지 않은 작은 성취를 이룬 뒤에 계속해서 목표를 높여나가면서 점진적으로 발전해나가는 형식입니다. 입문은 쉽지만 마스터는 어렵게, 그 과정에서 계속해서 성취감을 느끼고 동기를 부여받을 캐주얼한 디자인이죠.
새로운 어혼을 추가했을 때의 콘텐츠 수명이 길다는 것 또한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대체로 상위권 사용자들이 콘텐츠 고갈을 호소하고 그런 유저들을 위해 신규 콘텐츠를 추가하는데, 기존의 자원을 활용해 새 장비를 생산한다거나, 장비의 등급을 올릴 수 있는 구조의 게임에선 오히려 그런 사용자들이 축적된 잉여 자원으로 콘텐츠를 빨리 소진해버릴 위험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어혼은 그런 자원의 직접적인 재활용은 피합니다. 획득한 잉여 어혼을 다른 어혼의 경험치 재료로는 사용할 수 있지만 없던 어혼을 만들어내거나 어혼의 등급을 올리지는 못합니다. 따라서 상위권 사용자도 새로운 어혼을 얻기 위해선 새롭게 파밍을 해야 하는 것이죠. 상위권 사용자들의 기득권은 고난이도 던전에서 더 높은 등급의 어혼이 나오는 것으로 보장됩니다.
3-5. 동아시아의 디자인을 망라해 중국식 수집형 RPG를 재정의하다
정리하자면, 음양사는 중국에서 만들어졌고 중국에서 흥했다는 것을 제외하면 도탑전기와는 공통점을 찾기 힘든, 전혀 다른 구조를 가진 게임입니다. 오히려 중국 밖에서 인기 있는 수집형 게임들의 요소를 중국식으로 재해석하고 재창조해낸 게임에 가깝죠. 성장과 그로 인한 보상 상향을 미끼로 장기 플레이를 유도한다는 중국의 감성을 기반으로 가챠를 통해 지속적으로 캐릭터를 판매하는 일본의 판매 방식을 차용하면서도 게임 내 아이템 드랍을 통해 성장을 이전할 수 있는 형태로 제공하는 한국의 메타 게임 구조를 받아들였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이런 이종교배는 각각의 장점만을 합친 궁극체를 배출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게임은 각 요소가 서로 밀접하게 맞물려있는 하나의 유기체이기 때문에 대상이 정말 작고 독립적인 경우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경우 요소 하나만 옮겨서는 효과를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원래의 구조와 충돌하면서 역효과가 나기 쉽죠. 본질적으로 저렙 지역들이 무인지대로 방치될 수밖에 없는 WOW의 기본 구조 위에 필드 콘텐츠를 얹었다가 망했던 리프트의 사례처럼요.
음양사는 길드워2처럼 기존의 성공한 게임에 차별 요소로서 새로운 디자인을 더하기보다는 원하는 콘셉트를 세우고 그에 맞춰 게임의 구조를 재정의한 쪽에 가깝습니다. ‘플레이에 대한 성장을 보상으로 제공하면서도 신 캐릭터를 지속적으로 판매하는, 장기 운영이 가능한 게임’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각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외부 디자인을 참고한 것이죠.
특히 외부의 디자인을 단순히 이식한 것이 아니라 각 디자인이 갖는 의미와 동작 원리를 파악한 뒤에 이를 중국의 토양에 맞게 새로 재구성하고 업그레이드한 부분이 많습니다. 한국 수집형 RPG의 장비처럼 플레이에 대한 보상으로서의 성장을 다른 캐릭터에게 자유롭게 이전할 수 있는 형태로 구현하면서도 양의 축적이 아닌 랜덤에 기반한 파밍에 비중을 둔 어혼처럼 말이죠. 이 바닥에서 정말 찾기 힘든, 레퍼런스의 제대로 된 벤치마킹 사례라고 봅니다.
3-6. 한/중/일의 문화 차이
이렇게만 써놓으면 중국뿐 아니라 한국 일본에서도 대히트를 쳐야 할 것만 같은데 실은 중국 외에서의 성과는 중국 내에서의 흥행에 비하면 다소 초라하긴 합니다. 가장 눈에 띄는 일본풍의 그래픽이 한국에선 비호감이었다거나, 진짜 일본인이 보기엔 중국인이 보는 쿵푸 팬더처럼 어색하다거나 하는 등의 콘텐츠의 문제도 있겠습니다만, 시스템 측면에서 보자면 저 대통합 작업이 결국은 중국이라는 시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이 중국 밖에서 크게 성공하지 못한 핵심 원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를 들어 다수의 꽝을 소모해 진화로 이어지는 과정은 중국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땐 꽝에 가치를 부여하는 세련된 디자인일 수 있지만, 애초에 꽝은 쓸모없음을 전제로 당첨되었을 때의 효용을 강조하는 일본 시장에서는 오히려 당첨의 즐거움을 깎아 먹는 요소일 수 있습니다. 힘들게 혹은 운 좋게 SSR을 얻었는데 이를 전력으로 쓰기 위해선 가챠로 300장의 꽝을 먹어야 한다면 이는 당첨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빚으로 느껴지는 것이죠.
스킬 성장의 형식을 띤 한계돌파 또한 SSR 확률이 1%로 낮은데도 2한돌 이상을 요구할뿐더러, 심지어 특정 스킬 레벨이 올라야만 큰 효과가 나는데 어떤 스킬이 오를지는 랜덤이라 한돌의 천장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굉장히 가혹하게 여겨집니다. 도탑전기로 단련된 중국적 관점에선 끝없는 한계돌파가 당연하고, 심지어 아무 캐릭터에나 쓸 수 있는 와일드카드인 달마를 공급하는 점이 후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만.
한국의 수집형 RPG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저로서는 음양사가 한국에서 인기를 끌지 못한 이유를 찾기가 곤란하긴 합니다만 몇 가지 의심 가는 구석이 있습니다. 일단 캐릭터 획득이 거의 가챠로 고정되어 있고, 저레어 캐릭터로 고레어 캐릭터를 획득할 수 없다는 점에서 게임이 불공정하다고 여겨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실질적인 효용이 없다시피 한 도탑전기류의 VIP 시스템조차도 극렬히 비토당하는 시장이니까요.
양보다 랜덤에서 오는 질의 차이에 집중하는 어혼 파밍 또한 노가다에 강한 전투민족인 한국 유저들의 감성에는 맞지 않을 수 있겠죠. 한국 수집형 게임들과 음양사에 대해 연구하신 분이 계신다면 첨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4. 창람경계(아홉 번째 하늘)
일본식의 가챠 판매를 중시한 중국산 수집형 게임의 다른 사례로는 창람경계(苍蓝境界)를 들 수 있습니다. 그랑블루 판타지를 연상케 하는, 미려한 일본풍의 그래픽이 인상적인 게임으로 한국에선 아홉 번째 하늘이라는 이름으로 서비스 중이죠.
글을 쓰기 시작할 무렵엔 사전예약 중이었는데 그사이 출시되어버렸습니다. 중섭에서 플레이했고, 한국 서비스 개시할 즈음엔 플레이를 중단했기 때문에 디테일에서 약간의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가챠 확률이나 금액, 가챠 마일리지 등은 중국 서버 기준입니다(한국 서버는 가챠 확률이 절반, 가챠 마일리지 샵에서의 마일리지 가격은 2배 정도로 중국 서버보다 더 박합니다).
4-1. 더 일본식에 가까운 캐릭터와 메타 구성
창람경계 역시 음양사와 마찬가지로 기존의 중국 게임들과 달리 희귀도를 엄격하게 구분 짓습니다. 희귀도는 일본 게임들처럼 별의 개수로 표현되는데, 5성은 5성이고 4성은 4성입니다. 4성이 5성이 되는 일은 없습니다. 다만 음양사가 일본 디자인에서 힌트를 얻어 중국식으로 디자인된 게임이라면 창람경계는 일본의 가챠 게임을 기본으로 중국의 감성을 녹여낸 게임에 가깝습니다.
당장 위의 스크린숏에 나온 캐릭터 정보만 보더라도 희귀도 외에 원소 아이콘으로 표시되는 속성 메타, +3 등의 숫자로 표현되는 한계돌파, 직업 구분 등 전통적인 일본의 수집형 가챠 게임에서 자주 보이는 장치들을 활용함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속성 메타와 직업 메타는 이 게임을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 스크린숏 좌상단에 표현된 것처럼 화-수-풍의 가위바위보와 빛-어둠의 상극 구조로 구성된 속성 메타는 게임의 모든 콘텐츠에 적용되어있습니다.
모험 스테이지, 파밍 스테이지, 레이드 등 게임의 모든 스테이지엔 5가지 속성 중 한 가지가 지정되어 있으며, 플레이어는 해당 속성에 강세를 보이거나 최소한 열세는 아닌 속성으로 덱을 짜서 도전합니다. 하나의 덱은 4개의 캐릭터로 구성되므로, 속성별로 유리한 속성 덱을 짜려면 20여 개의 캐릭터가 필요합니다.
성급에 의한 구분, 속성 메타와 직업 메타 등으로 다수의 캐릭터가 필요하지만 캐릭터는 가챠를 통해서만 공급됩니다. 수집 구조가 다소 가혹하긴 합니다만, 최고 등급인 5성의 확률이 3%이며 가차를 구매하는 유상 재화인 젬을 게임 초반에 상당히 많이 퍼주고 젬 외에 계약소환이라고 해서 일종의 무료 가챠권이 게임 중 보상으로 종종 공급되기 때문에 무과금이어서 초반에 캐릭터가 없어 덱을 꾸리지 못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물론 무과금으로 속성별 5성 덱을 꾸리긴 힘들지만요.
속성 메타 직업 메타가 존재해서 많은 캐릭터가 필요하긴 하지만 성급이 떨어지는 캐릭터들의 활용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하루 30번 사용할 수 있는 ‘성계’라는 콘텐츠가 이를 보완합니다. 소녀전선의 군수지원처럼 최대 3명의 캐릭터로 조를 짜서 임무를 맡기면 일정 시간이 지난 뒤에 속성별 원소의 정수나 경험치 재료, 기타 희귀 재료를 획득하는 콘텐츠입니다.
성계를 진행 중인 캐릭터는 다른 성계에 보낼 수 없을 뿐 일반 던전이나 레이드 등에선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군수지원보다 더 캐주얼합니다. 고급 재료가 드랍되는 콘텐츠의 클리어 진도와 관계없이 성계 활용만으로 고급 자원이 나오는 성계가 열리기 때문에 활용성이 높습니다.
각 캐릭터는 특정 성계에서 보너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전투에서 사용하지 못할 저등급 캐릭터라고 해도 성계에서 쓸모가 생깁니다. 또한 한 번에 여러 성계 임무를 동시에 돌릴 수 있기 때문에 등급이 낮더라도 캐릭터가 많으면 한 번에 여러 성계를 돌리는 식으로 덜 귀찮아질 수 있습니다.
4-2. 캐릭터의 레벨 성장
창람경계는 특이하게도 스토리가 진행되는 메인 스테이지와 실제로 성장하기 위해 돌아야 하는 파밍 스테이지가 분리되어있습니다. 스토리 스테이지는 위에서 보시는 것처럼 초회 클리어 시에 약간의 젬을 제공하지만 그 외 보상이 빈약합니다. 반복 플레이 시 경험치 재료나 속성별 진화재료를 주긴 하지만 소비하는 체력(행동력) 대비 굉장히 적은 양입니다. 메인 스테이지는 1) 스토리 진행, 2) 성장의 체감, 3) 무료 젬의 공급만을 담당하며 실질적으로 플레이어는 파밍 스테이지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파밍 스테이지는 기본적으로 제일 위의 경험치 재료 파밍 스테이지와 그 아래의 속성별 진화재료 파밍 스테이지로 나뉩니다. 각 스테이지엔 추천 레벨과 속성이 부여되어있습니다. 레벨이 높을수록 더 강한 적을 상대하고 승리했을 때 더 좋은 경험치 재료나 속성 원소가 드랍되죠.
속성별 원소 파밍 스테이지들은 당연히 해당 속성이 부여되어 있고 스테이지로 구성되어있고 경험치 파밍 스테이지는 속성이 번갈아가며 배치되어 있습니다. 파밍 스테이지는 메인 스토리 스테이지보다 훨씬 많은 행동력을 소비하는데, 150점을 다 소진하는 데 약 10분이면 충분합니다.
창람경계는 기본적으로 전투 참여에 대해선 경험치를 지급하지 않고, 게임 중 보상으로 얻는 경험치 재료를 소모해 경험치를 쌓고 레벨을 올리는 구성입니다. 하지만 경험치 조달보다도 위 스크린숏에 나온 것 같은 속성별 원소를 얻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각 캐릭터들은 성급에 관계없이 기본적으로 25레벨이 한계로 잡혀 있고, 원소를 사용하는 캐릭터 해방을 통해 이 한계 레벨을 여러 단계에 걸쳐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경험치 재료는 등급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원소는 레벨 개방이 진행될수록 더 상위의 원소를 요구하지만 하위 등급의 원소를 합쳐서 상위 등급의 원소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상위 등급의 원소를 얻기 위해선 캐릭터를 키워서 상위 난이도의 원소 던전을 클리어해야 합니다.
4-3. 장비의 수집과 성장
기본적으로 캐릭터의 성장은 속성 원소의 수급에 크게 좌우됩니다. 원소 던전을 클리어해 원소를 얻고, 얻은 원소로 한계 레벨을 개방하고, 레벨을 올린 뒤에 다시 상위의 원소 던전에 도전하는 형식을 반복하지요. 하지만 속성의 상관관계가 이 흐름을 끊어버릴 수 있습니다.
화 속성 원소 던전은 화 속성이기 때문에 상위 화 원소 던전에 도전하기 위해선 수 속성 캐릭터를 키워야 하고, 수 속성 캐릭터를 키우기 위해선 목 속성 캐릭터가 필요한데 목 속성을 키우기 위해선 화 속성이 필요한 무한 루프에 빠지기 쉽죠. 그래서 존재하는 또 하나의 성장축이 바로 장비입니다.
창람경계의 캐릭터는 최대 4개의 장비를 장착할 수 있습니다. 장비는 활이나 부적 등의 형태를 띄긴 하지만, 이 형태는 그냥 그림일 뿐 아이템의 유형에 따른 슬롯 제한은 없습니다. 장비 또한 성급과 레벨이 있어 성급과 레벨이 높을수록 성능이 좋습니다. 성급은 획득 시에 결정되며 캐릭터와 마찬가지로 성급을 올릴 방법은 없습니다.
레벨은 장비 경험치 재료를 소모해 올리며 동일한 장비를 소모하는 돌파를 통해 한계 레벨을 높여갑니다. 또한 정해진 수치 보너스 외에 스킬도 부여되어 있습니다만, 이 스킬은 장비의 속성과 캐릭터의 속성이 일치해야만 발동되며 다른 장비를 스킬 경험치 재료로 사용해 스킬 레벨을 올릴 수 있습니다. 즉, 장비는 기본적으로 다른 장비들을 소모하며 성장하는 구조입니다.
장비를 습득하는 방법은 크게 제작과 레이드로 구분됩니다. 레이드는 고난이도 던전에서만 5성 장비가 드랍되는 반면, 제작은 랜덤하게 최대 5성까지의 장비가 드랍됩니다. 제작에 사용되는 원소는 가장 등급이 낮은 원소들이며, 특별히 상위 원소를 사용해 높은 성급의 장비를 얻는 장치는 없습니다.
따라서 덱의 성장 단계에 따라 레이드와 제작의 비중이 바뀝니다. 게임 초반엔 제작을 통해 얻은 장비로 원소 던전의 진도를 돌파하고 충분히 성장하고 나면 5성 장비가 드랍되는 레이드에 도전하는 것이죠.
가챠를 통해 뽑은 5성 캐릭터로 게임을 진행하면 100레벨까지의 육성 자체는 그렇게까지 어렵진 않습니다. 특히 덱이 성장할수록 경험치 재료든 원소든 고급 재료가 다량으로 드랍되기 때문에 일단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굉장히 수월해집니다. 캐릭터 육성을 마친 사용자들은 새 캐릭터가 나오길 기다리면서 장비 파밍을 엔드 콘텐츠로 즐깁니다.
이 장비 파밍 역시 앞서 언급한 음양사의 어혼처럼 랜덤성에 의한 질적 파밍에 중점을 둡니다. 어떤 속성의 장비를 얻을지는 제작 레시피나 레이드에서 선택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낮은 성급을 아무리 많이 얻어도 높은 성급으로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일단 5성 장비를 획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5성 장비 중에서도 물공템 마공템 등 장비를 입히고 싶은 캐릭터에 어울리는 장비를 얻어야 하죠. 하나만 뽑아선 한계 레벨이 25에 불과하기 때문에 높은 레벨로 키우기 위해선 같은 장비가 또 여러 벌 필요합니다. 아주 고급 사용자라면 스킬에 랜덤하게 부여되는 2개의 부가 효과도 파밍의 대상이 됩니다. 어혼과 같은 세트 효과는 없지만, 어혼처럼 원하는 물건이 나올 때까지 계속 파밍을 진행해나가는 구조입니다.
음양사의 어혼이나 창람경계의 장비나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은 동일합니다. 기본적으로 플레이에 대한 보상 중 일부를 캐릭터에 귀속되지 않고 다른 캐릭터로 자유롭게 옮길 수 있는 형태로 제공하는 것이죠. 하지만 장비 성급의 수직적 성장을 차단함으로써 저등급 장비를 양으로 채우기보다는 얻기 어려운 희귀한 장비를 획득하는 데 집중시킵니다.
장비가 부족할 땐 저등급 장비도 착용하지만 어느 정도 장비가 모이고 나면 저등급 재료는 고등급 재료를 육성하는데 사용하는 재료로 사용되지요. 사실 이런 구조는 일본식 가챠 게임의 캐릭터 가챠와도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4-4. 일본식의 이벤트 운영
이벤트에 대한 운용도 도탑전기류 게임보다는 일본식 게임에 가깝습니다. 도탑전기류 게임의 이벤트는 크게 과금을 촉진하는 과금 이벤트와 콘텐츠 플레이 및 리텐션을 강조하는 플레이 이벤트로 나뉩니다. 과금 이벤트는 위쪽 스크린숏처럼 특정 기간 동안의 누적 충전한 금액(현금)이나 사용한 젬의 양을 기준으로 미션을 걸어 보상을 지급합니다. 플레이 이벤트 역시 주로 기간 한정 미션의 형식을 띕니다.
좌하단 스크린숏의 경우 원정스테이지 클리어 횟수에 따라 단계적으로 보상을 줍니다. 우하단 스크린숏은 이벤트 기간 모험 스테이지에서 하단의 4가지 아이템이 추가로 드랍되게 하고, 이 아이템을 모아서 골드나 진화재료, 캐릭터 조각으로 바꾸는 형식입니다. 춘절이나 국경절 같은 대목 시즌엔 전용 콘텐츠를 투입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이벤트용 콘텐츠를 추가하기보다는 있는 콘텐츠를 미션을 통해 활용하는 형식이죠.
반면 창람경계는 일본의 가챠 게임과 유사하게 전용 콘텐츠와 신규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이벤트를 활용했습니다. 이벤트 기간 동안 이벤트 맵이 새로 생기고, 이벤트 스토리가 진행됩니다. 이벤트 스테이지의 드랍도 좋고, 이벤트에서 나오는 토큰으로 보상을 얻을 수도 있지요. 그래서 이벤트가 진행 중일 땐 파밍 스테이지를 돌기보다는 이벤트 스테이지를 도는 것이 유리합니다.
특히 이런 이벤트의 핵심보상으로 4성 캐릭터가 걸려있다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이미 5성 덱을 꾸리는 사용자들에게도 저 4성을 수집해야 한다는 목표가 부여되고, 무과금 사용자에겐 최고는 아니지만 쓸만한 캐릭터를 얻을 경로가 됩니다. 일본식 가챠 게임과 동일한 동작 원리죠. 다만 캐릭터 1개와 맵, 스토리 등 이벤트에서 소비되는 콘텐츠가 크고 아름답기 때문인지 1부에서 예로 들었던 시노마스처럼 끊임없이 공급되지는 않고 월 1회 이하의 빈도로 갱신됩니다.
4-5. 가챠 중심의 판매 전략과 마일리지를 통한 가치 보전
BM 역시 기본적으론 역시 행동력엔 누진제를 적용하지 않고 정량으로 파는 대신 가챠에 집중하는 일본식 게임의 틀을 따릅니다. 도탑전기와는 달리 가챠에선 무조건 캐릭터가 나오며 10연 가챠 혹은 10회 구매에 대한 명시적인 보정은 없는 대신(10연 가챠에서 4성이 하나도 없는 경우는 보지 못했기 때문에 내부적으로는 보정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0연 가챠는 1연 가챠 10개 대비 10%를 할인해주죠.
하단 왼쪽에서 두 번째에 1일 1회에 한해 매우 소량의 유상 젬으로 단가챠를 구입하는 옵션이 보이는데 이 또한 일본의 가챠 게임에서 자주 보이는 옵션입니다. 그리고 일반 가챠 외에 한정 캐릭터가 들어간다거나 확률에 변동이 있는 스페셜 가챠를 따로 판매하는데, 이런 스페셜 가챠에는 가격이나 비용 등이 구매 횟수에 따라 변동하는 스텝업 가챠 등이 반영되기도 합니다. 이 또한 일본식 모델이죠. 장비 가챠가 별도로 있어 효율은 낮지만 사용자가 원한다면 가챠로도 장비를 입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게임에서 보기 드문 요소가 한 가지 있는데, 가챠 구매 시 사용한 젬 만큼 돌려받는 창옥입니다. 일종의 가챠 마일리지인 이 창옥을 사용하는 상점이 별도로 존재해 5성 장비, 골드, 한계돌파(초월)재료, 스킬 랜덤 변환에 사용되는 황금망치 등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가챠의 최소 가치를 보장하고자 하는 중국적 감성이 발현된 것으로 봅니다. 가챠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창옥 상점에서 필요한 물품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가치는 보장된다는 것이죠.
4-6. 하지만 가챠 가치 보전 실패
하지만 실제로 가챠 구매 시의 만족도가 높냐면 절대로 아닙니다. 일단 저 창옥상점을 제외하면 가챠에서 나온 꽝을 자원으로 활용할 방법이 전무합니다. 보통 캐릭터를 가챠로 판매하는 게임들은 필연적으로 쌓일 수밖에 없는 저등급의 중복 캐릭터들을 키우고자 하는 캐릭터의 성장 재료로 소모시키는 활용처가 존재합니다. 레벨업 재료로 갈아 먹인다거나, 소녀전선의 코어처럼 공용 한계돌파 재료로 전환하는 식이죠.
하지만 창람경계는 이런 재활용이 불가능합니다. 획득한 캐릭터는 영구히 남아서 처분할 방법이 없고, 중복 캐릭터가 당첨될 경우 무조건 자동으로 한계돌파를 시켜버립니다. 3성을 한돌해봤자 어차피 게임의 핵심인 5성에는 못 미칠뿐더러, 5성이라고 해도 1한돌 2한돌 쌓을 때 오는 체감 효용이 크지 않습니다. 원하는 신규 5성이 아닌 다른 모든 결과물은 사실상 꽝입니다.
캐릭터를 활용할 수 없는 대신 창옥을 주긴 하지만 창옥 상점 또한 사실 따지고 보면 그다지 효용이 높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구매할 상품이 한정되는데 그다지 매력적이라고 볼만한 상품이 많지 않습니다. 골드야 썩어 넘치고, 5성장비라고 해도 속성별로 18개씩 준비된 5성 장비 중 가장 성능이 떨어지는 2종만을 제공합니다.
캐릭터에 추가 스킬 포인트를 찍게 해주는 천혜의 열매, 어느 캐릭터든 한계돌파에 사용할 각성의 열매, 장비 스킬의 랜덤 항목을 재추첨 시켜주는 황금망치 정도가 그나마 의미가 있습니다. 그나마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건 스킬 포인트건 한계돌파건 랜덤 리셋이건 간에 어느 정도 양을 쌓았을 경우엔 그 효용이 나오지만 구매 제한 걸린 횟수대로 2개 1개 5개 정도로는 써봤자 큰 효용이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어쨌든 청옥상점 밖에선 구하기 힘드니 완전히 무의미하다고는 보기 힘들다는 거죠. 0.1은 0보단 크잖습니까.
문제는 이 구매 횟수 제한이 일 단위가 아니라 월 단위라는 거지요. 천혜의 열매, 각성의 열매, 황금 망치를 살 만큼 다 사도 한 달에 청옥 1.4만 개 못씁니다. 아무 5성 한번 볼 때마다 청옥이 1만 개씩 쌓이고, 특정 캐릭터 (주로 신규 한정) 노리고 들어가는 저격 가챠에선 수만 개씩 쌓이는 것을 감안하면 정말 극히 일부죠.
5성 확률이 3%이니 아무 5성 하나 띄우는 덴 33.3가챠가 필요합니다. 1가챠 당 청옥 300개이니 5성 하나당 청옥 1만 개 정도가 쌓입니다. 가챠를 산 보상으로 주는 청옥이 뭔가 푸짐하게 보이긴 하는데, 실제로는 아무 영양가가 없습니다. 마치 예전에 콘솔 게임 사면 십수 장씩 딸려오던 웹하드 업체들의 10만 원권 쿠폰처럼 말이죠.
특히 위 스크린숏처럼 가챠 조금 돌렸더니 3성들이 죄다 강제 풀한돌 되어버려 30창옥으로 돌려받기 시작하면 정말 이 게임이 나를 약 올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나마 이건 중국서버 사정이고요, 한국 서버의 경우 가챠 확률은 더 낮고, 금액 대비 지급되는 창옥은 더 적은데, 창옥 상점에서 상품들의 가격은 더 높습니다…
4-7. 어딘가 빈약한 성장 템포
사실 이런 식의 애매한 보상감은 창람경계라는 게임 전체에 걸친 굉장히 암울한 특성이기도 합니다. 레벨이든 초월이든 장비 성장이든 간에 각종 성장 콘텐츠들이 여러 단계로 쪼개져 있긴 한데 정작 플레이 콘텐츠에서는 난이도 격차가 크기 때문에 자잘한 단계의 성장이 크게 체감되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거죠. 캐릭터 레벨은 처음엔 25가 한계였다가 이후 40, 60, 80, 100으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원소 던전의 권장 레벨은 20, 40, 55, 70입니다. 경험치 재료는 충분한데 레벨 한계 개방을 위한 원소가 부족해서, 단숨에 새 한계 레벨로 치고 올라갈 땐 효용이 느껴지지만 뚫고 난 뒤에 경험치를 먹이면서 레벨을 올리는 단계에선 그 효용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그 단계에서 효용을 체감할 콘텐츠가 존재하지 않아요.
그런데 성장 한도를 뚫는 과정은 또 지리합니다. 만땅으로 채워둔 행동력을 원소 던전에 털어 붓는 데는 5~6판, 물리적으로는 10분밖에 걸리지 않는데 그렇게 자연회복분을 다 털어 넣는다고 충분한 양의 원소가 들어오는 것도 아닙니다. 특히 상위로 갈수록 더 높은 등급의 원소가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정체감을 강하게 느끼죠.
여기에 플레이타임도 짧으니 게임 플레이가 굉장히 허무하게 느껴집니다. 물론 소탕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도탑전기류 게임도 실질 플레이타임은 짧지만 대신 성장 단계를 촘촘하게 쪼개고, 그에 대응하는 스펙의 콘텐츠를 빼곡하게 배치해서 이만큼 왔고 이만큼 성장했다는 등의 피드백을 꼬박꼬박 줍니다.
캐릭터의 성장이 정체되었을 때 의지할 장비 성장 역시 템포가 지리한 편에 속합니다. 레이드를 통해 장비를 파밍한다고는 하지만 그게 그렇게 쾌적한 환경은 아닙니다. 창람경계의 레이드는 오버히트의 레이드와 같이, 본인이 먼저 보스를 때려서 방을 개설하거나, 남이 개설해둔 방에 들어가서 보스를 때리는 형식입니다. 원하는 사람들과만 공유하는 비밀방을 만들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열려있는 구조이고 한 스테이지에 최대 20명까지 들어갑니다. 방을 개설할 땐 행동력을 소비하지만, 남이 개설한 방에 참전하는 데엔 아주 소량의 골드만을 소비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여러 레이드를 순회하면서 막 돌 것 같은데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한 플레이어는 동시에 1개의 레이드 스테이지만 공략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스를 잡아서 클리어되든, 시간제한에 걸려 실패 처리되든 기존의 스테이지가 끝나지 않으면 새로운 스테이지에 도전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1~3위에게만 유의미한 보상이 지급되기 때문에 보스 총 데미지의 20% 이상씩을 깎아내릴 능력이 안 된다면 다 잡혀가는 보스에 숟가락 얹고 적은 보상에 만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혼자 20~30%씩 깎아낼 능력이 있더라도 후발 주자들이 달라붙어 주지 않으면 보상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죠. 최상위 플레이어들에게도 드랍률이 썩 좋지는 않지만 계속해야만 하니 ‘이걸 언제 다 하나’ 싶은 콘텐츠이고, 그 아래 플레이어들에겐 ‘이걸 어떻게 하나’ 싶은 아주 애매한 콘텐츠입니다. 물론 혼자 돌을 씹어먹으면서 죽은 파티 되살려서 혼자서 돌파할 수도 있습니다만, 이게 레이드에서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플레이는 아니잖습니까?
4-7. 안 하느니만 못했던 ‘최소한의 중국화’
음양사가 일본식 가챠 게임의 요소를 중국의 기준에서 재해석한 게임이라면, 창람경계는 일본식 가챠 게임에 필요 최소한의 중국적 요소를 선별적으로 추가한 게임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최소한의 중국적 요소라고 한다면 1) 장기 플레이를 통해 체감할 수 있는 깊은 성장 단계, 2) 가챠에서 원하는 캐릭터를 뽑지 못했을 때 보장되는 최소한의 가치에 해당하겠죠. 하지만 음양사가 1년 내내 차트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20위권 내를 유지한 반면 창람경계는 발매 초기 잠깐 40위권을 유지하다가 금방 광속으로 순위권을 이탈해버렸습니다.
이 둘의 차이는 역시 ‘재해석에 기반한 파괴적 창조’와 ‘원본을 유지한 최소한의 수정’에 있다고 봅니다. 창람경계는 검증된 일본식 가챠 게임의 구성을 기반으로 검증된 중국적 요소를 접합했지만 그 접합이 굉장히 얄팍합니다. 깊은 성장 단계는 그 성장을 체감할 콘텐츠의 깊이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일본 가챠 게임들이 콘텐츠들을 듬성듬성 배치할 수 있는 것은 성장의 깊이가 얕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도탑전기류 게임들의 콘텐츠 난이도가 촘촘하게 빼곡히 배치된 것은 그만큼 성장의 깊이가 깊기 때문인 것이죠. 하지만 창람경계는 성장의 깊이는 깊으면서도 이를 체감할 만큼의 콘텐츠를 배치하지 못했습니다.
가챠 구성과 꽝에 대한 보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한계 돌파는 깊은데 1~2단계로는 티도 안 나고, 그렇다고 최대 10단계까지 파고 들어가자면 확률이 낮아서 엄두가 안 납니다. 창옥 상점이 있어 가챠의 최소 가치가 보장된다고는 하는데 막상 들어가 보면 살 물건이 없습니다. 가챠 팔아 돈은 벌고 싶은데 콘텐츠 만드는데 투자하기는 싫고, 뽑아서 손해는 안 본다는 느낌은 주고 싶은데 또 막상 파는 입장에서는 손해 보고 싶지는 않은, 굉장히 얄팍한 계산이 너무나 눈에 뚜렷하게 보이지요. 이렇게 얄팍하게 배치된 콘텐츠들이 유기적인 시너지를 내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아까 음양사를 길드워2 같은 게임이라고 했는데, 창람경계는 그보다 1년 먼저 출시했다가 순식간에 쪼그라든 Rift를 연상시킵니다. 기본 시스템은 검증된 베스트 셀러인 WOW를 그대로 차용하고, 여기에 플러스알파 요소로 필드 콘텐츠를 더해서 Post-WOW 자리를 노리겠다는 나름 훌륭한 전략을 세웠으나, 지역을 ‘소모’하면서 지나간다는 WOW의 기본 한계에 부딪혀 필드 콘텐츠가 죽어버렸던 비운의 게임이죠. 나무를 심으려면 땅을 파야 하는 겁니다. 그냥 줄기를 잘라다가 땅에 꽂는다고 뿌리가 돋아나진 않는 법이죠.
5. 영원한 7일의 도시
한편 제 블로그에서 여러 차례 소개한 바 있는 영원한 7일의 도시(이하 영7) 또한 수집형 게임으로써 기존의 도탑전기에서 벗어난 BM과 메타 구조를 취했습니다. 게임 자체에 대한 디테일은 이전의 포스트를 참조하시고, 중요한 부분만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5-1. 3중으로 구성된 캐릭터 메타와 그를 활용하는 콘텐츠들
수집형 게임으로써 ‘수집’을 강조하는 방법엔 2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앞서 살펴본 음양사는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메타보다는 캐릭터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을 전제로 한 최강 덱 조합에 중점을 둔다면 창람경계는 일본 게임들처럼 가시적인 속성 메타를 중심으로 한 캐릭터 풀의 확장을 강조하지요. 이런 관점에서 영7은 속성 메타를 강조하는 일본 게임에 가깝습니다.
영7은 굳건함(刚) > 기교(巧) > 영민함(灵) > 굳건함(刚)으로 이어지는 3색의 가위바위보 속성 메타를 기본으로 클래스 조합에 의한 메타, 공격 속성 조합에 의한 메타 등 3중의 메타 체계를 가집니다. 거의 모든 콘텐츠에 3종 중 1종의 속성이 기본적으로 부여되고, 3개 캐릭터로 파티를 꾸리기에 3속성 X 3직업군 = 9종의 주력 캐릭터를 확보할 것을 요구합니다.
출시 이후엔 특정 직업군으로 플레이할 때 더 유리하다거나, 많은 캐릭터를 가지면 더 유리하다는 식으로 캐릭터 풀의 확장에 더 많은 비중을 주는 콘텐츠가 추가되어왔습니다. 관련한 내용은 별도의 포스트로 이미 발생했으니 해당 포스트를 참고 부탁드립니다.
5-2. 가챠 중심의 캐릭터 획득과 성급 성장
각 캐릭터는 처음 획득될 때의 등급(이하 태생등급)이 C < B < A < S 의 4단계 중 1개로 정해져 있습니다. 라이유이는 태생 S급, 카지는 태생 C급 이런 식이죠. 등급을 통해 캐릭터의 우열을 명시적으로 표현하고, 희귀하지만 등급이 높은 캐릭터를 뽑도록 유도하는 것은 캐릭터를 주력 상품으로 삼아 가챠로 판매하는 수집형 RPG의 일반적인 문법이며, 가챠를 시간단축 서비스로 판매하는 도탑전기가 앞서 언급한 음양사/창람경계와 구분되는 지점입니다.
도탑전기류 게임의 성급 성장은 개별 캐릭터 전용 조각을 사용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모든 캐릭터에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만능조각은 보너스 개념으로 굉장히 드물게 공급되죠. 그래서 나중에 추가된 신캐를 획득한다고 해도, 성급 성장에 필요한 해당 신캐의 조각을 다량으로 수급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신캐를 키워서 전력으로 사용하기가 어렵습니다.
해당 신캐 조각이 나오는 스테이지는 없거나, 있다고 해도 굉장히 고스펙에 배치되어 접근성이 떨어집니다. 설령 스테이지에서의 조각 파밍이 가능해도 하루에 최대 3개 정도밖에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조각을 모아 성급을 올리는데 터무니없이 많은 시간이 요구되죠. 조각을 모으기 위해 가챠를 돌릴 수도 있지만, 가챠의 특성상 원하는 신캐의 조각만 얻을 수는 없기 때문에 신캐 조각을 얻는 동안 이미 성급이 높은 기존 캐릭터의 조각을 더 많이 얻기 때문에 계속해서 신캐는 기존 캐보다 뒤처집니다.
반면 영원한 7일의 도시의 성급 성장은 모든 캐릭터에 공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만능 조각인 영혼 파편을 기본으로 삼습니다. 오히려 특정 캐릭터의 육성에만 사용할 수 있는 특정 캐릭터 영혼 파편이 보너스 개념으로 이벤트나 업적을 통해 제한적으로 공급되지요.
영혼파편은 게임의 일간 콘텐츠를 플레이를 통해서도 일정량 얻을 수 있지만 가챠에서 이미 가진 캐릭터가 중복 당첨되었을 때 대량으로 얻습니다. (중복된 캐릭터의 등급이 높을수록 많이 떨어집니다.) 성급 성장이 무한히 이어지는 도탑전기류 게임과 달리 성장급 성장 상한이 존재하기 때문에 잉여의 영혼 조각이 축적되고, 이를 신캐의 성급 성장 재료로 사용해 신캐를 얻기만 하면 바로 전력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저격 가챠에서 대량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중복 당첨에서 만능조각인 영혼파편을 지급한다는 부분 또한 눈여겨봐야 합니다. 가챠에서 다량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꽝’을 수직 성장의 귀중한 재료로 사용해 가챠의 최소 가치를 높인다는 방향성은 음양사와 유사한 구석이 있습니다만, 영7쪽이 더 세련되고 캐주얼합니다.
음양사는 성급 성장에 많은 시간을 요구합니다. 성급 성장의 대상이 되는 고등급의 신캐도, 재료로 사용할 꽝도 파티에 넣어서 게임을 플레이해야만 레벨이 오르고, 레벨이 올라야 성급이 성장하지요. 영7은 이런 과정이 생략됐습니다. 신캐의 레벨은 플레이어의 계정 레벨에 맞춰지기 때문에 굳이 데리고 플레이할 필요도 없고, 영혼 파편 역시 수량만 맞으면 계속해서 밀어 넣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평소에 축적한 자원을 밀어 넣어 순식간에 전력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성장시키는 문법은 오히려 도탑전기나 음양사보다는 하얀 고양이 프로젝트 같은 일본 게임들에 가깝다고 봅니다.
5-3. 성급 성장을 통해 적은 수의 캐릭터를 최대한 활용
태생 등급은 다르지만 등급을 성장시킬 수 있고 등급이 같으면 성능이 대등해지는, 일본식 가챠와 도탑전기가 묘하게 섞인 이런 구조는 기본적으로 캐릭터의 수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영7은 음양사보다도 메타 구조가 강조된 게임입니다.
이런 다층 메타를 통해 수평 성장을 강조하는 수집형 게임들은 필연적으로 그 메타를 받쳐줄 많은 양의 캐릭터를 필요로 하지요. 3속성에 6개 직업이니 최고 등급에 18종의 캐릭터가 필요합니다. 직업을 근접/원거리/보조 이렇게 3개의 직업군으로 압축해도 최소 9종의 캐릭터가 필요하지요. 이는 최고 등급을 구성하기 위한 최소한이며, 그 아래 등급을 채우기 위해선 그보다 2~3배씩은 더 많은 캐릭터가 필요합니다.
문제는 영7이 주력 상품인 캐릭터의 생산 단가가 꽤 비싼 게임이라는 점입니다. 일단 당장 일본에서도 보기 힘든 고품질의 3D 그래픽이 많은 시간과 인력을 필요로 합니다. 이 정도 퀄리티면 외주로는 기대할 수 없거나, 자체 제작과 비교해도 만만치 않을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요.
액션 RPG라는 장르 또한 비용을 높입니다. 음양사나 창람경계와 같이 플레이어가 캐릭터를 직접적으로 조작하지 않는 턴제 게임들은 기본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파라미터 조합과 이펙트를 바꿔가며 더 저렴한 비용으로 캐릭터의 다양성을 표현하기 수월합니다. 하지만 직접 캐릭터를 조작해야 하는 액션 RPG에서 캐릭터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선 캐릭터를 기획하고 구현하는데 많은 자원이 소모됩니다. 일반적인 2D 일본 게임처럼 SSR 미만은 버려질 것을 염두에 두고 값싸게 찍어낼 수가 없는 환경이죠.
이렇게 캐릭터 제작 단가가 비싼 3D 게임에서 캐릭터의 물량을 확보할 방법은 그동안 여러 가지로 연구된 바 있습니다. 품질이 떨어지는 양산형 캐릭터들을 가챠에 포함시키는 게임도 있었고, 붕괴 3rd처럼 하나의 Asset을 기반으로 약간의 변종을 만든 뒤 속성을 달리 배치해 별도의 캐릭터로 취급하는 게임도 있었습니다. 혹은 우타 마크로스처럼 3D 캐릭터와 가챠로 구입하는 게임 토큰을 별개로 취급하는 경우도 있었죠.
하지만 위 경우는 뽑아봤더니 몬스터가 나오더라, 이미 가진 것과 거의 똑같이 생긴 물건을 다른 물건이라고 팔더라, 뽑는 건 숫자가 적힌 그림이더라 이런 식으로 가챠로 캐릭터를 뽑는다는 재미가 일부 퇴색됩니다. 물론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처럼 캐릭터의 매력과 상품성이 확실하다면 카드 그림만 바꿔도 잘 팔립니다만 이는 굉장희 희귀한 케이스라고 봐야겠죠.
영7은 성급 성장을 열어둠으로써 이 문제를 영리하게 회피합니다. 태생 등급이 낮은 캐릭터도 성급 성장을 통해 태생 등급이 높은 캐릭터와 대등한 성능을 가지기 때문에 적은 수의 캐릭터로도 다층적인 메타 구조를 소화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태생 등급이 높은 캐릭터의 가치를 낮추진 않습니다.
일단 성급 성장에서 많은 자원이 소비되기 때문에 높은 등급에서 시작하는 것이 자원을 많이 절약해줄뿐더러, 수치적으로는 대등하더라도 막상 캐릭터를 사용해보면 스킬 구성 등의 차이 때문에 역시 태생 등급이 높은 캐릭터가 더 강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중복 당첨되었을 때 더 많은 자원을 지급해주기도 하고요. 따라서 성급 성장이 모두에게 열려있는 것과는 별개로 높은 등급의 캐릭터는 높은 가치를 지니고, 낮은 확률을 배당받을 명분을 확보합니다.
5-4. 레벨 공통화로 캐릭터 활용성 증대
성급 성장은 돈의 힘으로 금방 극복합니다만, 이것이 돈만 내면 무조건 캐릭터를 최고로 성장시킬 수 있다거나, 돈을 내지 않으면 아예 성장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가챠 게임이라고 해도 사용자가 시간을 들여 플레이하는 것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지속적인 플레이를 유도할 수 없고, 플레이가 유도되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 과금 또한 제한됩니다.
캐릭터의 성장이라고 하면 보통 캐릭터의 성장과 장비에 의한 성장 2가지를 생각합니다. 전자는 다음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과 그 효과가 정해져 있는 확정적 성장 콘텐츠인 반면 후자는 랜덤하게 취득하는 성장 콘텐츠입니다. 또한 전자는 캐릭터에 귀속되어 타 캐릭터에 이전시킬 수 없지만 후자는 원하는 캐릭터에 넘겨줄 성장 콘텐츠라는 차이도 있지요.
캐릭터 성장의 가장 대표적인 장치는 캐릭터 레벨에 의한 성장이 될 것입니다. 최근의 게임들은 세션에서 얻는 경험치로 캐릭터를 직접 성장시키기보다는 경험치를 넘겨줄 자원 형태로 지급해 새로 얻은 저레벨 캐릭터로 굳이 플레이하지 않아도 되는 추세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플레이를 강요하는 음양사가 다소 이질적이라고 비판했죠).
영7은 한발 더 나아가 아예 캐릭터의 레벨 성장을 생략했습니다. 캐릭터에 레벨도 있고, 레벨이 오르면 능력치가 오르긴 하지만 이 레벨을 올리는 과정이 없이 그냥 플레이어 계정의 레벨에 맞춰버립니다. 마치 KOTOR나 매스 이펙트 같은 게임에서 직접 사용하지 않은 동료 캐릭터들도 플레이어 캐릭터와 함께 레벨이 오르는 것처럼 말이죠.
플레이에 참가시킨 캐릭터에게만 경험치를 주든, 경험치를 자원 형태로 공급해서 원하는 캐릭터에 투자하게 하든 본질적으로 캐릭터별로 경험치와 레벨을 따로 관리한다는 것은 결국 한정된 자원을 분배하는 성장 콘텐츠며 그 결과 자원을 많이 투입한 캐릭터와 적게 투입한 캐릭터 간에 전력 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부분 게임은 이 전력 차를 당연한 게임의 규칙으로 정의합니다.
하지만 영7은 수집한 신캐의 활용성을 굉장히 중시하는 게임입니다. 신캐를 열심히 잘 팔기 위해선 돈 들여 얻은 신캐의 강력함을 금방 체험할 수 있어야 하죠. 그런 관점에서 캐릭터 레벨을 플레이어 계정 레벨과 동기화시킨 것은 오래 플레이한 것에 대한 누적 보너스로서의 성장을 부여하면서도 신캐의 활용성을 높이는 괜찮은 방안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행동력을 추가로 구매해 경험치를 몰아주는 것이 불가능한 게임 구조도 영향을 줬겠지요.
5-5. 콘텐츠 고갈을 극도로 억제한 장비 성장
모든 캐릭터에 공통적으로 적용되었던 레벨 성장과는 달리 장비 콘텐츠는 다른 게임들처럼 1개의 장비를 1개의 캐릭터가 장착하는 형식을 유지합니다. 경험치-레벨은 캐릭터에 귀속되어 다시 회수할 수 없지만 장비는 기존 캐릭터에게서 벗겨서 신캐에 끼워줄 수 있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이 장비를 통한 성장이 실질적으로 플레이를 통한 성장의 핵심축이 됩니다. 하지만 장비의 획득 경로와 성장 방식에 있어선 다른 게임들과 다소 다른 양상을 띕니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장비에 무기, 방어구, 장신구 이런 구분이 없다는 겁니다. 유형 구분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슬롯에 대한 구분도 없죠. 그냥 아이템마다 코스트가 정해져 있고, 캐릭터마다 정해진 코스트 범위 내에서 장착할 수 있습니다. 장비를 실체가 있는 것(Equipment)이 아닌 가상의 능력치 컨테이너로 간주하는 점은 같은 제작사의 음양사와 유사합니다. 하지만 음양사가 장비 파밍의 ‘완성’을 전제로, 캐릭터의 수직 성장과 장비의 수직 성장이 서로 선순환을 이루게 한 것과는 반대로 영7의 장비 콘텐츠는 완성되지 않기 때문에 지속되며 고갈되지 않음을 강조합니다.
성장하면 더 높은 난이도의 콘텐츠에 도전하고, 더 높은 난이도의 콘텐츠에선 더 나은 보상이 지급되고, 다시 그 보상으로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는 지속적인 플레이를 유도하는 검증된 모델이긴 합니다만, 장기 운영이라는 측면에선 콘텐츠의 소비가 계속 가속화될 수 있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더 높이 성장한 유저가 더 좋은 장비를 더 많이 획득하기 때문에 콘텐츠를 더 빨리 소진시키는 것이죠. 동일한 자원을 투입했을 때 상위권 고인 물보다 하위권이 더 큰 효용을 누릴 수 있어야 최상위층의 자원을 효과적으로 소모시키면서도 하위권을 계속해서 중상위권으로 올려 정착시킬 수 있는데, 이런 가속 구조는 반대로 최상위권의 기득권을 강화시키고 신규 유저나 복귀 유저의 정착에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영7은 수직 성장과 장비 파밍을 분리함으로써 이 콘텐츠 고갈 문제를 회피하려 합니다. 장비가 드랍되는 콘텐츠들은 대부분 수직 성장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어떤 콘텐츠를 플레이하더라도 장비 파밍의 질은 일정하게 유지되고, 획득한 장비를 소진시키는 합성 과정을 통해서만 높은 등급의 장비를 얻을 수 있어요.
그래서 오래 플레이한 사용자는 더 많은 장비를 축적하고, 이를 통해 더 높은 등급의 장비를 장착함으로써 더 나은 능력치를 부여받지만 그것이 지속적으로 더 쉽게 획득할 수 있는 기득권으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또한 합성은 재료로 사용된 4개의 장비 중 1개를 승급시키는 구조이기 때문에 새로운 장비가 추가되어도 기존의 사용자와 신규 사용자가 이를 소진하는 데 동일한 시간을 보내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런 승급 구조는 장비 콘텐츠의 소비 속도에 대한 가속을 인정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원하는 아이템을 모두 얻어서 가장 높은 등급까지 끌어올리는 파밍의 끝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에 영7은 합성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고 등급인 금색에 다른 금색 장비를 재료로 소진해 기본 능력치(세련) 혹은 추가 능력치(돌파)를 랜덤하게 리셋시키는 콘텐츠를 배치함으로써 장비 성장의 끝을 지워버립니다.
어떤 결과를 얻더라도 그보다 더 나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있는 반면, 아무리 많이 시도하더라도 기존의 결과가 누적되진 않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끝없이 재료를 소모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많은 자원을 투입하면 결과적으로 더 나은 결과를 보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랜덤이기 때문에 해당 단계에 막 진입한 뉴비에게도 기회는 열려 있고, 정해진 범위 내에서의 랜덤이기 때문에 유저간 전력 차도 감내할 수 있는 수준으로 통제됩니다. 장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전의 포스트를 참고해주세요.
5-6. 수직 성장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기 힘든 플레이 콘텐츠 구조
앞서 살펴본 것처럼 성급 성장, 장비 성장, 레벨 성장 등 각각의 성장축의 디자인 자체도 굉장히 특이합니다만, 사실 영7의 성장 구조에서 가장 특이한 부분은 그런 성장과 게임 콘텐츠와의 관계입니다. 지속적인 플레이와 과금을 유도하기 위해 성장과 콘텐츠를 연결 짓는 다른 대부분의 게임과 달리, 영7은 대다수 콘텐츠에서 성장을 분리시켰거든요.
당장 메인이 되는 스토리 모드의 전투 스테이지의 몹들도 게임을 계속 진행해나가다 보면 조금씩 강해지긴 하지만 다음 단계로 진행하기 위해선 더 성장하라는 식의 장벽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냥 게임을 플레이하면 자연히 오르는 레벨 기반으로 적당히 난이도가 올라가요. 장비를 파밍하는 코옵PVE인 시공난류나 레이드도 플레이어 스펙에 맞춰서 파티를 맺어주고 스테이지 난이도도 그에 맞춰 설정됩니다. XX 장비를 얻기 위해선 AA 레이드를 깨야 하는데 AA 레이드를 깨기 위해선 YY 장비 셋을 맞춘 6성 캐릭터 몇 개가 필요하다 뭐 이런 게 없어요.
플레이어는 그냥 언제나 적당히 깰 스테이지로 보내집니다. 랜덤한 도전 과제가 나오는 딜 측정 콘텐츠인 흑문 시련은 0에서 시작해 점점 난이도가 높아지는 콘텐츠로 스펙을 올리면 더 멀리까지 가서 더 많은 점수를 얻을 수 있으나 그걸로 끝입니다. 점수에 따라 보상이 올라가긴 하지만 그 변별력이 굉장히 미미하지요. 수직 성장 콘텐츠는 있는데, 수직 성장을 요구하거나 활용하는 플레이 콘텐츠는 없는 묘한 게임입니다(흑문시련은 난도를 높여가면서 도전할 수 있는 주간 콘텐츠로 변경되었습니다만, 글을 작성한 시점은 그보다 이전입니다).
유일하게 수직 성장을 요구하는 콘텐츠로는 ‘기억 전당’이 있습니다. 10개의 스테이지로 구성된 ‘기억’ 들이 순차적으로 배치되어있어서 기억의 흐름에 따라서 또한 한 기억 내에서도 스테이지의 흐름에 따라 요구 스펙이 점점 증가하는 구성입니다. 위 스크린숏을 예로 들자면 좌상단의 ‘플로라의 기억’을 깨야 하단의 ‘웬지의 기억’이 열리고, 우측의 ‘베라의 기억’은 플로라를 깬 상태에서 ‘베라’의 스토리를 클리어해야 열립니다. 이 순서에 따라 베라 > 웬지 > 플로라 순으로 요구 스펙이 높아지고 각각의 기억 내에서도 1스테이지부터 10스테이지까지 요구 스펙이 점차 증가합니다.
각 기억의 10개 스테이지를 모두 클리어하고 나면 해당 캐릭터나 해당 캐릭터의 스킨을 얻는데, 이 캐릭터와 스킨은 가챠로도 얻을 수 없고 오직 기억 전당의 클리어를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습니다. 개발사는 일반 플레이는 캐주얼하게 즐기면서 이 기억전당의 유니크한 보상을 통해 수직 성장에 대한 동기를 부여받고, 수직 성장을 체감하길 원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기억 전당이 수직 성장의 보람을 느끼는 콘텐츠라기보다는 오히려 수직 성장의 정체감만 느끼는 콘텐츠로 동작한다는 데 있습니다. 기억전당 초반부는 요구 스펙이 조금씩 늘어나며, 이는 초반의 레벨업과 성급 성장으로 쉽게 돌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요구 스펙의 격차가 커지는 반면 성장은 둔화합니다. 성급 성장은 가챠로 금방 고갈되어버리고 레벨업과 장비 성장으로 스펙을 끌어올려야 하는데 둘 다 일간 플레이 횟수와 획득량이 제한되어있고 성장에 의해 보상이 늘어나지 않는 구성이기 때문에 굉장히 쉽게 성장 정체에 빠지는 반면 사용자 입장에선 이를 해결할 방법이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수직 성장 속도가 둔화하는 것 자체는 수직 성장이 있는 게임에선 굉장히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콘텐츠의 반복 가능성과 보상 구조에서 영7의 기억 전당은 구조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다른 게임들은 이미 클리어했거나 클리어할 수 있는 콘텐츠에선 계속해서 보상을 줍니다. 단지 다음 스테이지를 깨서 더 나은 보상을 얻을 권리를 못 할 뿐이죠. 하지만 영7의 기억전당이 주는 보상은 클리어할 때 한번만 주어집니다. 보상을 한번 받고 나면 그 스테이지는 더 이상 플레이할 수도 없고 보상을 받을 수도 없어요. 성장의 결과에 대한 보람은 휘발되어버리고 계속해서 깨지 못해서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부정적인 경험만 남는 거지요.
수집형 게임으로써 성장에 대한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캐릭터를 갖고 노는 재미에 집중한다는 방향 자체는 일본의 가챠 게임을 어느 정도 벤치마킹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본 게임들도 플레이의 누적이 게임 내에서의 나은 보상으로 연결되는 고리는 기본적으로 유지합니다. 최고 난도에서 나오는 보상이면 신캐를 금방 키우고, SSR을 적당히 가지면 최고 난도까지 올라가는 과정이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으며, 최고 난이도의 콘텐츠를 추가하는 빈도가 낮기 때문에 성장에 대한 압박을 가하지 않을 뿐이지 성장에 대한 대가는 착실하게 돌려줍니다. 영7처럼 극단적으로 성장과 보상의 루프를 날리진 않았어요.
5-5. 성장과 무관한 이벤트 구성
성장은 있으나 성장을 부추기지 않는 이 묘한 감성은 이벤트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중국의 도탑전기류 게임과 일본의 가챠 게임은 이벤트를 다루는 방식 자체가 굉장히 상이합니다. 앞서 몇 번 말씀드렸지만 요약하자면 중국 게임의 이벤트는 기존 콘텐츠를 활용하는 추가 미션 형식입니다. 일본 게임의 이벤트는 기간 한정으로 제공되는 번외 추가 콘텐츠이며, 특히 이벤트의 빠른 클리어를 통해 성장의 보람을 전달하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소녀전선이나 벽람항로와 같은 중국산 칸코레류 게임의 경우엔 성장이 도움을 주는 추가 번외 콘텐츠라는 점에선 일본 게임과 유사합니다. 그러나 값싸게 만들어 빨리 소비시키는 단기 콘텐츠가 아니라 몇 달에 한 번 대규모 사이즈로 투입되어 개발사도 유저도 가진 자원을 왕창 태워버리는 초대형 스케일이라는 점에선 약간의 차이가 있지요.
위 영상은 슈타인즈 게이트 콜라보 이벤트인데요, 콜라보 전용 콘텐츠가 있고, 이 콘텐츠를 플레이 해 얻는 보상을 쌓아 올려서 최종적으로는 한정 캐릭터인 긴타로를 얻습니다(다른 2종의 콜라보 캐릭터는 가챠에서만 나오지만 긴타로는 이벤트를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습니다).
전투는 그 과정에 양념처럼 들어갔을 뿐, 전투 난이도가 이벤트의 진행을 가로막는다거나 고난도 전투에 도전해 더 나은 보상을 받아 이벤트를 빨리 졸업할 수 있게 하는 장치들이 없습니다(유일하게 슈타게 콜라보 이벤트가 난이도/보상을 나눴으나 그 변별력은 미미했습니다). 이벤트 조기 완료의 열쇠는 플레이어의 성실성입니다. 이벤트 행동력을 돈으로 살 수 없고, 6~8시간 분량 이상으로는 쌓이지 않기 때문에 상한을 초과되어 날리는 분량 없이 계속해서 행동력을 써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이벤트 구성들은 기본 상설 콘텐츠가 비교적 느리게 추가되며 빨리 소진되는 와중에 계속해서 접속해서 플레이하며 놀 거리를 던져주며 그 보상으로 아직 성장이 더딘 무과금, 저과금, 뉴비들을 끌어올리고는 있습니다만 본질적으로는 성장에 대한 보람을 체감하지는 못하게 한다는 점에선 일본 게임과 큰 차이가 있지요.
5-7. 게임이라기보단 전자 피규어 전시장과 같은 구성
개발사 입장에선 이 게임을 수집형 액션 RPG가 아닌 연애 어드벤처 게임으로 봐달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만, 그 관점에서 봐도 게임을 계속 플레이하는 것에 대한 동기 부여가 약합니다. 매달 1개의 스토리 라인과 3개의 엔딩(퍼펙트 엔딩, 해피 엔딩, 실패 엔딩)이 추가되는 페이스인데 그래봤자 2~3일이면 공략이 나오고 금방 고갈되어 버립니다. 이론상으로는 게임 시간 1일 치 분량의 행동력을 얻는데 물리적 시간으로 1일이 걸려 2개 엔딩을 보는데 보름이 소비되어야 하지만 이벤트 등으로 행동력이 추가 공급되기 때문에 그보다 훨씬 빨리 스토리가 고갈되는 것이죠.
사실 스토리 콘텐츠가 고갈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게임을 왜 계속 플레이해야 하는지가 불분명하다는 점입니다. 캐릭터 레벨이든 장비든 게임을 플레이하면 그 결과로 캐릭터가 성장하는 장치는 존재하는데, 이 장치가 게임 플레이에 영향을 주지 못하고 따로 놉니다. 스토리를 진행해나가면 경험치가 쌓이고 레벨이 올라가고 장비가 쌓여서 조금 강해진다는 느낌은 있지만 어차피 성장이 스토리 진행을 가로막지 않기 때문에 열심히 플레이했건 하지 않았건 새로운 스토리를 보는 덴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파밍 콘텐츠인 시공난류 역시 자동적으로 나와 유사한 전투력을 가진 파티와 함께 오토로 콘텐츠가 술술 깨지죠. 랜덤한 도전과제가 나오는 딜 측정 콘텐츠인 흑문 시련에선 성장이 느껴지긴 하는데 보상의 변별력이 약하기 때문에 스펙을 높여서 고득점을 올리고 랭킹에 올라갈 필요성은 적습니다.
그런 점에서 영7은 게임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전자 피규어 전시장과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매달 새로 나오는 캐릭터가 이뻐서 갖고 싶고, 30~50만원 정도 들여서 뽑으면 며칠 갖고 노는 재미는 있지만 그 ‘갖고 놈’ 이상의 즐거움을 주지 못하는 것이죠.
지속적인 성장을 핵심 동력으로 삼는 중국 게임은 물론이고, 수집에 의미를 두는 일본 게임과 비교해도 수집 이상의 재미를 주지 못합니다. 발매 초반 30위권에 머무르다 미쿠 콜라보로 10위권 안쪽까지 찍었음에도 이후 100위권 밖으로 밀려나 신캐 나올 때만 40위권 정도에 하루 이틀 머무르는 지금 성적이 이런 콘텐츠 구성이 가지는 한계를 방증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5-8. 수직 성장 콘텐츠의 강화
그런 문제를 인식한 것인지, 2월 이후의 업데이트에선 수직 성장을 강조하는 콘텐츠가 많이 보강되었습니다. 일단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능력해방’ 입니다. 위 스크린숏처럼 각 캐릭터마다 생명력, 공격력(물공캐는 물공, 마공캐는 마공), 방어력(물방마방 공통) 세 가지 항목에 대해 레벨이 존재합니다. 각 항목에 대응하는 재료를 소모해 경험치를 쌓아 레벨을 올리면 그에 따라 캐릭터 능력치도 더해집니다. 그리고 세 항목 모두 현재의 단계에서의 만렙을 찍으면 다른 희귀 자원을 소비해 다음 해방 단계로 넘어갑니다.
이 능력해방에 쓰이는 자원은 요일 던전을 통해 수급하도록 구성했습니다. 3가지 능력치는 각기 3개의 속성에 대응하고 매일 그중 한 종류의 속성 던전이 오픈됩니다. 10개의 스테이지로 구성되어 높은 난이도에 도전할수록 더 많은 양을 가져갑니다만 속성별 3캐릭씩만 있으면 되고 난이도 상한이 높지 않기 때문에 부담을 느낄 정도로 하드코어한 콘텐츠는 아닙니다. 특히 이 요일 던전은 랜덤하게 절차적으로 생성되도록 해 반복에 의한 피로를 덜 느끼도록 구성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전 포스트를 참고해주세요.
템 파밍에 있어서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일단 여러 캐릭터가 같은 장비를 동시에 장착하도록 바뀌었습니다. 이전엔 일반적인 다른 게임들처럼 1개 장비를 1개 캐릭터에만 장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장비 파밍이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돈을 마구 쏟아부어 가챠에서 장비를 왕창 뽑아내지 않는 한, 소수의 주력 캐릭터에만 좋은 장비를 채웠죠. 하지만 이젠 여러 캐릭터가 같은 장비를 장착할 수 있기에 종류별로 1개씩만 최고 등급으로 키워내는 것으로 장비 파밍의 양이 줄었습니다.
대신 특정 캐릭터 전용 장비가 강화되었습니다. 캐릭터 전용 장비 자체는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주로 신캐 출시에 맞물려서 해당 캐릭터의 특성을 강화할 수 있는 특수 효과가 붙은 전용 장비를 가챠 구입에 따라오는 마일리지 포인트나 이벤트 보상 등으로 지급했죠. 이 전용 장비를 모든 캐릭터에 확대 적용하면서, 전용 장비 성장 시스템을 추가했습니다. 장비 자체의 레벨 외에 전용 장비 싱크로 레벨에 따라 특수 효과가 더 증가하거나 추가되는 형식입니다.
예를 들어 위 스크린숏에 나온 긴타로의 전용 장비의 경우 기존엔 공격 시 일정 확률로 위성 레이저 공격을 발생시키는 효과만 붙어있었었습니다만 개편 이후엔 해당 효과를 싱크로 1레벨에 부여하고 싱크로 2레벨이 되면 기존 효과에 더해서 교체 에너지를 사용해 이 캐릭터로 전환될 때 4초간 소유한 신기사의 데미지를 20% 올려주는 효과가 추가됩니다. 싱크로는 9단계까지 있으며 성장시킬수록 더더욱 강해집니다.
싱크로 레벨을 올리기 위한 경험치는 캐릭터 전용 장비 조각을 소비해서 획득할 수 있는데 다른 캐릭터 전용 장비의 조각을 소모해도 경험치를 얻을 수 있지만 동일 캐릭터 장비의 조각이나 만능 장비 조각을 사용하면 더 많은 경험치를 얻을 수 있습니다(퍼즐 앤 드래곤에서 같은 속성의 몬스터를 재료로 쓰면 더 많은 경험치를 얻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3개 스테이지 모두 중간 과정에서 스폰되는 적의 종류와 위치 등에 요소에 랜덤한 변수가 많이 섞여 동일 스테이지를 반복하더라도 플레이 경험에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또한 최종 보스는 동일하지만 보스 패턴이 아주 강력하기 때문에 여전히 도전적이며, 각 스테이지의 맵 형상에 의해 공략법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만신전과 마찬가지로 여러 번 반복하더라도 반복 피로를 느끼기 힘든 구성이죠.
시공안개는 보통-어려움-악몽-지옥의 4가지 난이도로 나뉘며 난이도에 따라 특정 캐릭 전용 장비 혹은 만능 장비 조각을 구입하는데 필요한 시공 포인트를 차등 지급합니다. 지옥 난이도에선 판당 2500점가량이 지급되어, 일주일 한도인 10판 클리어하면 전용 아이템을 1개 구입할 수 있습니다. 난이도 편차가 큰 만큼 보상 편차도 커서 악몽 난이도는 판당 1500점가량을 지급합니다. 성장과 보상의 루프를 이전보다 확실하게 정착시킵니다.
이 특정 캐릭터 전용 장비는 게임의 수익성 증대에도 기여합니다. 일단 특정 캐릭 전용 장비 가챠가 추가되었습니다. 장비가 꽝으로써 섞여 나오던 일반 가챠와 달리 특정 캐릭터 전용 장비 혹은 그 조각이 드랍되기 때문에 시공 안개에서의 시공 포인트 수급이 갑갑한 사용자들을 욕구를 충족시킵니다.
캐릭터 전용 장비의 등급 성장 또한 매출 견인 요소 중 하나입니다. 기본적으로 캐릭터 전용 장비는 보라색이며 합성 재료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캐릭터 전용 장비의 패시브 효과는 특수 효과로 취급되기 때문에 코스트 대비 능력치가 일정 수량 낮게 책정되어있는 데다 기본 등급도 보라색인 상태에선 일반 금색 장비보다 전투력이 떨어집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선 캐릭터 전용 장비도 금색으로 승급시켜야 하는데 캐릭터 전용 장비는 ‘합성’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진화’를 사용해야 합니다. 진화는 희귀 아이템을 갈아서 획득할 수 있는 희귀재료 혹은 가챠를 7개 구입할 때마다 얻는 마일리지 포인트를 소진합니다. 희귀 아이템을 빠르고 쉽게 얻는 법은 가챠이고, 마일리지 포인트를 입수하는 방법도 가챠입니다. 매달 30~50만 원으로 신캐 뽑고 나면 살 게 없는 게임에서 새로운 ‘지를 거리’가 추가된 것이죠.
수직 성장 콘텐츠를 강화하는 한편으로 기존의 수직 성장 콘텐츠인 기억 전당에도 약간의 개선이 있었습니다. 스테이지를 클리어하지 못한 채로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일정량 수치를 올려주는 버프가 붙도록 한 것이죠. 이는 유저 개인이 느끼는 정체감을 일정 부분 덜어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억 전당에서만 얻는 신캐 및 스킨을 즐길 유저의 폭을 넓혀줌으로써 비싸게 제작한 신캐/스킨의 활용성을 높입니다. 여기에 물리적인 시간을 장벽으로 세움으로써 핵과금 고인 물의 기득권도 설득력 있게 보호해주면서 말이죠.
5-9. 수집형 게임에 대한 실험은 현재진행형
영원한 7일의 도시는 여러모로 굉장히 특이한, 실험적인 게임입니다만 이 실험은 결국 ‘생산 단가가 높을 수밖에 없는 고퀄리티 3D 게임을 어떻게 하면 장기간에 걸쳐 적은 비용으로 운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됩니다.
안정적인 장기 운영이라는 측면에선 시간이 지날수록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유저 성장의 양극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수직 성장 중심의 게임이 아닌, 수평 성장 중심의 수집 게임이라는 방향이 도출됩니다. 콘텐츠 생산 비용 문제는 캐릭터의 성급 성장을 뚫어서 활용성을 높이고 플레이 콘텐츠는 절차적으로 생성시키거나 절차적으로 재사용하는 방향으로 해결하지요. 수직 성장의 스트레스가 낮기 때문에 콘텐츠에 대한 기대 또한 낮다는 것도 콘텐츠를 재활용할 자산이 되었지요.
첫 달 이후 200위권 밖에서 돌다 신캐가 가챠에 포함될 때만 이틀 정도 50위권 안에 고개를 들이미는 것을 보면 이 시도가 시장에서 성공한 것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도탑전기류 게임이나 MMORPG의 흥행을 보면 중국 시장은 수평 성장보다는 수직 성장의 즐거움에 더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것 같네요. 물론 수집형 게임인 FGO는 중국에서도 신 가챠 투입 시 2위까지 오르곤 합니다만 그건 깡패 IP를 꼈으니까 예외로 쳐야겠죠.
그 이후의 행보가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단 6개월 사이에 게임이 수직 성장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180도 바뀌었거든요. 오픈 스펙과 비교하면 거의 리부트라고 볼 정도로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변화가 굉장히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는 겁니다. 콘텐츠와 자원이 추가되고 게임을 운영하는 메타가 바뀌었지만 그 과정에서 플레이어가 가진 자산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따라오지 못하면 뒤처진다거나, 모아뒀던 것들이 무가치해지는 일 없이 게임을 더 재미있게 만드는 콘텐츠들이 늘어났고 이를 따라가는 것만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방향이 바뀌었어요.
사실 신캐 가챠가 유일한 소득원인 상황에서 돈만 생각한다면 훨씬 쉽고 확실한 방법이 있습니다. 캐릭터를 더 많이 파는 것입니다. 오픈 이후 1개월에 한번 3개 정도의 캐릭터가 추가되고 이 중 2개가 가챠에 배당됩니다(1개는 기억 전당 보상으로 풀립니다). 문제는 가챠에서 이 신캐 2종을 획득하는데 드는 30~50만 원 정도 되는데 이 이상 돈을 쓸 곳이 없다는 것이죠.
더 많은 캐릭터를 더 자주 가챠에 추가하면 매출은 오릅니다. 기억 전당에 얹을 캐릭터를 가챠에만 넣어도 신캐 올클리어 비용이 올라갑니다. 혹은 2~3마리를 한꺼번에 넣을 것이 아니라 2주 단위로 흩어 넣어도 매출을 올립니다. 물론 저항이야 있겠지만 복잡한 속성-직업 메타가 있기 때문에 파워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면서도 상품 가치를 일정 시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넷이즈는 이런 쉬운 길이 아닌 정공법을 택했습니다. 캐릭터를 뽑아서 갖고 논다는 핵심 콘셉트는 버리지 않고 유지하면서 그 위에 수직성장을 자연스럽게 얹어놓아요. 혹은 수직 성장이 원래 콘셉트를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부여됩니다. 예를 들어 캐릭터 전용 장비만 하더라도 돈만 생각한다면 능력치를 강하게 설정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오히려 능력치는 낮춰 잡고 다양한 패시브 효과로 원래 캐릭터가 가진 특성을 강화합니다.
사실 돈만 놓고 본다면 넷이즈 같은 거대 기업이 2차원 게임이라는 니치 마켓에 뛰어든다는 것을 상상하기 힘듭니다. 심지어 믿을만한 IP도 없이 말이죠(텐센트는 전격문고와 계약해 전격문고: 영경교조를 준비 중이고 넷이즈는 이미 어떤 마법의 금서목록을 출시했습니다). 하지만 영원한 7일의 도시를 사업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실험 프로젝트라고 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기존 도탑전기류는 물론 음양사와도 다른, 장기적으로 운영할 새로운 수집형 게임의 디자인을 라이브 상에서 테스트하고 수정해본다는 건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죠. 어차피 돈은 몽환서유와 음양사가 넘치도록 벌어주니까요.
영7은 제가 개인적으로 매우 사랑하는 게임입니다. 게임 자체도 재미있고 캐릭터도 매력적이지만 디자인적으로 다양한 실험을 하고 이를 수정해나가는 과정을 살펴보는 것 자체가 굉장히 행복합니다. 한국 서비스가 개시된 만큼 다른 분들도 한번 이 실험의 관찰에 동참해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정리
이상으로 도탑전기를 베이스로 하지 않은 중국의 수집형 RPG 게임 3종의 구조를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이 게임들은 캐릭터의 수집 경로를 가챠로 한정하면서 등급을 강하게 구분 짓고, 캐릭터의 수직 성장에 어느 정도 제한을 둬서 지속적으로 퉁비하는 새 캐릭터를 판매하며, 플레이를 통한 수직 성장으로 장기적인 플레이를 유도한다는 공통된 전략을 취합니다. 다만 이를 실행하는 방법론에 있어서는 각기 차이를 둡니다.
창람경계의 경우는 일본 게임에서 자주 보이는 속성 메타와 중국 게임이 중시하는 가챠 가치 보장과 깊은 수직 성장을 더해놓은 게임입니다. 하지만 양쪽의 요소가 유기적으로 융합되기보다는 단순하게 접합되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꽝을 다른 카드 육성에 사용하지 못하고 해당 카드의 한계 돌파만으로 제한함으로써 오히려 꽝의 가치가 떨어지고 캐릭터 육성만 힘들어졌습니다. 대신 지급하는 마일리지는 사실상 아무런 가치가 없고요.
수직 성장은 그 중요성에 비해 체계가 굉장히 빈약합니다. 수직 성장의 깊이에 비해 성장 축의 종류도 적고 그 단계도 너무 듬성듬성 나뉘었습니다. 강캐 뽑은 걸로 한방에 쭉 하고 밀고 나가는 재미도 없고, 캐릭터를 차근차근 키워나가는 재미도 없습니다.
음양사는 꽝을 갈아서 당첨캐에 밀어 넣는다는 일본식의 BM에 꾸준한 플레이와 그로 인한 성장을 중시하는 중국의 개념을 합쳐놓았습니다. 그 템포가 경쾌하지 못하다는 인상은 있지만, 중국에선 납득할만한 템포인 것으로 보입니다. 성장에 관해선 가챠를 통한 캐릭터의 수집 외에 플레이를 통한 장비 수집의 재미를 강조하는 부분이 특기할 만합니다. 사실 장비 수집을 통해 성장한다는 개념 자체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를 더 강하고, 강한 만큼 얻기 힘든 장비를 획득해나가는 수직 성장이 아닌, 개성 넘치는 장비들을 캐릭터와 조합함으로써 다양한 가능성을 확보해나가는 수평 성장으로 풀어낸다는 점이 신선합니다. 또한 이 과정을 어혼 세트 맞추기→등급 높이기→옵션 맞추기 등으로 세분화해서 꾸준히 일정 단계의 성취를 느끼고 다음 단계에 도전할 수 있도록 끌어간다는 점이 굉장히 탁월합니다.
영원한 7일의 도시는 쌓인 꽝을 주요 캐릭터 육성 재료로 활용한다는 방향은 일본식에 가깝지만 이를 도탑전기와 유사하지만 더 캐주얼한 방향으로 풀어냈습니다. 캐릭터를 더 자주 많이 배출할 수 있다면 훨씬 유의미한 성과를 얻지 않았을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성장 체계에 있어서는 캐릭터의 수집에 의한 수평 성장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수직 성장이 존재하지만 이를 강요하지는 않고 다양한 캐릭터를 수집하고 조합하면서 갖고 노는 재미를 강조한 게임이었죠.
하지만 수집 게임치고는 핵심 상품인 캐릭터가 너무 늦게 그리고 적게 공급되어 수익성이 나쁩니다. 그리고 수직 성장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는 만큼 수직 성장에 대한 동기 부여도 약했죠. 최근은 개성적인 캐릭터 수집의 재미라는 콘셉트를 유지하면서도 수직 성장을 강조하고는 있습니다만 그게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는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음양사를 제외하고는 아직 중국에서 성공적인 수집형 RPG가 나오지는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음양사를 카피해서 성공한 게임도 나타나지 않았고 음양사를 성공시킨 넷이즈조차도 음양사를 베이스로 신작을 만드는 게 아니라 영7을 통해 새로운 디자인을 시험했습니다. 수집의 재미와 중국이 좋아하는 수직 성장의 재미를 서로 교차시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가 봅니다.
원문: 잡상그룹부설게임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