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30일 홍콩의 김용(金庸) 선생이 94세를 일기로 돌아가셨습니다. 며칠 전에는 국문학 연구의 대가 김윤식 선생이 돌아가셨는데, 제 나이 또래의 한국 ‘독서인’들에게는 그야말로 한 시대가 완전히 저물어가는 느낌이 듭니다. 김윤식 선생의 죽음이 이광수, 임화 등 한국 근대문학의 거두들이 새롭게 조명되었던 1980-1990년대 한국 국문학 연구의 황금기를 돌아보게 한다면, 김용 선생의 죽음은 역시 비슷한 시기에 한국 대중소설계를 강타했던 중국무협문학의 붐을 머릿속에 떠오르게 하는군요.
1980년대 중반, 중학생이었던 저는 학교 근처 서점을 제집 드나들 듯하면서 『영웅문』 시리즈가 새로 나오지 않았는지 확인하곤 했습니다. 여러분은 중국어 원서 제목으로 익숙한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의 한국어판이 당시에는 각기 『영웅문』 1, 2, 3부 총 18권으로 고려원 출판사에서 차례로 출간되었습니다. 당시 제 또래의 학생들은 그 ‘허황된’ 영웅담에 쏙 빠져 뒷권이 나오기를 학수고대하며 이미 읽은 앞권을 책장이 다 닳도록 읽고 또 읽었죠.
당시 번역된 김용 선생의 작품은 『영웅문』 시리즈만이 아니었습니다. 『소오강호』는 『아 만리성!』으로, 『벽혈검』은 『대승부』로 번역되어 역시 인기를 끌었습니다. 제가 가장 사랑한 작품은 『연성결』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영웅문』 시리즈를 다 버리고 난 뒤에도 『연성결』은 끝까지 남겨두고 틈만 나면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제게 김용 선생의 소설은 그저 ‘무협지’가 아니었습니다. 제 어린 시절의 감성을 채우고 형성시킨 청춘의 교과서나 다름없었습니다. 저뿐 아니라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청춘을 보낸 수많은 한국 젊은이가 김용 소설의 영향 아래에 있었습니다.
언젠가 그 치명적인 영향력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우리 세대의 정신에 깊은 흔적을 남겼는지 ‘고고학적인’(?) 연구가 이뤄졌으면 합니다. 우리의 정신에 영웅주의와 남성중심주의를 확산시켰든, 아니면 정의의 실현에 대한 강박을 심어주었든 그 연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상관없습니다. 단지 김용 소설의 수많은 등장인물이 머나먼 이 남한 땅에서 얼마나 거대한 족적을 남겼는지 온당한 평가가 이뤄졌으면 합니다.
김용 선생의 죽음에 대한 추모열은 당연히 지금 중국에서도 뜨겁습니다. 한 중국 동영상을 보면 독특한 사화(沙畵) 형식으로 김용 소설 중 어떤 캐릭터가 최강의 고수인지 시청자들로 하여금 음미하게 해주는군요.
동영상에서 묘사된 각 캐릭터는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김용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드라마, 영화의 주인공입니다. 저는 잘 분별하기 힘들지만 마지막 캐릭터가 누구인지는 똑똑히 알고 있습니다. 바로 『소오강호』의 최강자 동방불패입니다. 동성애자 캐릭터로서 전설적인 여배우 린칭샤가 호연을 했지요.
하지만 생전에 김용 선생은 본인의 소설이 한국에서 불러일으킨 열풍에 대해 그리 좋은 감정이 없었습니다. 1980년대 중후반에 번역된 본인 소설의 한국어판 70여 권이 모두 해적판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한국은 국제저작권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여서 그의 모든 작품이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번역되었습니다.
게다가 번역의 질도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본래 김용의 소설은 고룡이나 와룡생 등의 다른 중국무협작가의 작품과 달리 중국 문화의 깊이가 남다릅니다. 중국 각 지역의 풍물에 대한 묘사와 고전 문학의 인용문이 상당히 풍부합니다. 그런데 당시 한국 출판사들은 오직 ‘무협지의 재미’에만 주목한 나머지 그런 가치 있는 부분들을 거의 삭제했습니다. 그 결과 번역서에서는 원문의 30% 정도가 누락되었습니다.
이런 형편이었으니 김용 선생이 만족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1988년 한국이 국제저작권협약에 가입한 이후, 김용 선생은 한국에서 본인의 작품이 정식 출간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200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겨우 김영사와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의 한국어판 출판권을 계약했지요.
하지만 이 세 작품의 정식 번역본은 과거처럼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정식 번역본의 내용과 문체가 이미 『영웅문』 3부작에 길들여진 옛 독자들의 취향과 거리가 멀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눈에 정식 번역본은 무협소설이 아니라 ‘중국 고전’처럼 보였습니다. 호흡이 느리고 묘사가 많아서 읽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이렇게 된 데는 지난 10년간 한국 무협소설계의 변화가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습니다. 그 사이 한국에서는 중국의 토종 무협이 점차 인기를 잃고 한국 작가들의 ‘신무협’이 완전히 헤게모니를 장악했습니다. 『묵향』 같은 ‘환협’(판타지+무협), 『비뢰도』 같은 코믹 무협이 대여점을 가득 채우면서 한국 무협독자들은 중국 정통 무협소설에 대한 관심이 완전히 식어 버렸습니다.
따라서 『영웅문』 3부작을 읽었던 옛 독자든 읽지 않은 새 독자든 김용 선생의 정식 번역본을 들춰볼 동기 자체를 잃어버리고 말았죠. 단지 김용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와 영화에나 눈길이 끌릴 뿐이었습니다. 결국 2000년대 이후 한국무협은 중국무협과 완전히 결별했으며 그 흐름 속에서 김용 소설도 우리와 멀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문: 김택규의 페이스북
※ 「② ‘웹소설’이라는 변수의 등장」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