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선동, 비약, 음모론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특히 음식 가지고 겁주는 건 더욱 그렇죠.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조금이라도 위험하다 싶은 것은 극도로 회피함으로써 생존해 온 진화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몸에 나쁠 수 있는 음식에 대해 경계하는 심리는 이해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통계와 확률의 지식이 축적된 현대 사회입니다. 위험 요소에 대한 대체적인 확률들은 어느정도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위험이 발생할 확률은 무시한 채 일부의 나쁜 결과만 과대 포장하여 그걸 먹으면 당장이라도 큰일날 것처럼 선동하는 사례가 지나치게 많습니다.
위험을 감수하거나 회피하는 정도는 사람마다 크게 다르므로 특정 음식이 나쁘다고 생각하여 먹지 않는 것은 자유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기준을 남에게 강요하거나, 위험을 과대포장하여 선동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1. 우유 공포 마케팅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
와이프가 제 딸아이(7살)를 자주 데리고 갔던 한의원이 있습니다. “X소아과 한의원”이라는 곳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다닌 뒤로 와이프가 아이에게 우유를 먹이지 않는 것입니다. 우유가 애들 잔병을 일으키는 근원이라며 열변을 토합니다. 전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이를 데리고 그 한의원을 가보고 이유를 알았습니다. 아이에게 우유를 1개월만 안먹이면 잔병이 싹 없어진다는 식으로 관련 내용을 걸어놓았더군요. 저런 식으로 단정적인 진단을 내리면 부모들은 굉장한 전문성이 있는 것처럼 느끼고 혹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한의원이 그렇게 인기가 좋은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나중에 연말정산할 때 저 한의원에 쓴 돈을 확인하니 정말 화가 나더군요. 몇 백만원을 쓰게 만드는 상술… 정말 짜증났습니다.
정말 우유가 그렇게 나쁜 음식일까요? 우유는 인류가 고대부터 먹어온 음식입니다. 현대로 올수록 훨씬 많이 먹게된 음식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면 인간의 수명이 현대에 와서 더 줄었거나 건강이 더 나빠졌습니까?
현대인의 건강이 좋아진 것이 우유가 아닌 다른 여러 이유 때문이라고요? 맞습니다. 그러면 왜 건강이 나빠진 것은 우유 때문이라고 단정하는 걸까요? “우유의 불편한 진실”에서 말하는 우유의 해악을 하나하나 살펴봅시다.
2. 골다공증 유발? 반대 근거와 연구가 훨씬 많다
우유가 골다공증을 유발한다고 합니다. 칼슘이 많다고 해서 몸에서 칼슘을 많이 흡수하는게 아니라네요. 오히려 칼슘음 빼나간다고 합니다. 근거는 ‘우유 소비량과 대퇴골 경부 골절 발생률’입니다.
위 그래프가 보여주는 것만으로 인과관계를 단정짓기는 힘듭니다. 실제로 상관성이 있다고 한들, 대퇴골 경부 골절이 우유 소비량과 연관이 있다고 볼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히려 골다공증은 육류 소비와 연관이 많다고 하는데, 저 그래프에서 튀어나와 있는 미국, 뉴질랜드, 스웨덴 이런 나라들이 대표적으로 육류 소비를 많이 하는 국가들입니다.
그렇다면 위 주장에 반대한 측의 논거를 살펴볼까요? 최근 한 연구에서는 우유 칼슘과 뼈 무기질의 관계를 조사하기 위해 미국 유타 주에 사는 9~13세 여학생들에게 일 년 동안 더 많은 우유와 유제품을 섭취하도록 했습니다. 참가 대상 여학생들은 하루에 728~1400mg 이상의 칼슘을 섭취하기 위해 우유와 유제품을 먹었습니다. 그 결과 척추의 뼈 밀도가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뉴질랜드 더니든 병원의 알리사 골딩 박사는 우유를 즐겨 먹는 어린이가 성장 발육이 좋고, 우유가 키를 크게 하는 성장판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반대로 우유를 마시지 않는 어린이 50명을 살펴본 결과, 4명만이 적절한 칼슘을 섭취한다고 밝혔습니다. 팔 골절률에서도 우유를 마시는 어린이에 비해 3배 이상 높다고 합니다.
이 밖에 미국의 퍼듀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연구팀은 채식주의자에게 올바른 식품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자주 섭취하는 식품군의 칼슘 흡수를 비교하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 결과 칼슘 흡수량은 우유, 요구르트, 배춧잎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참조링크는 위 문단과 같음)
아무리 봐도 전 반대측의 논거가 훨씬 다양하고 구체적인 것 같습니다.
3. 소화요소가 없다고 소화를 못 한다? 소도 풀을 소화시키지 못한다
우유가 유해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우유는 소 젖이지 사람이 먹는 음식이 아니며 유아가 먹는 음식이지, 소아 이후에 먹는 음식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 증거로 성인은 우유를 소화시키는 효소인 락타아제를 분비하지 않는다고 하죠.
서양인들은 진화과정에서 성인도 락타아제를 분비하는 식으로 돌연변이가 일어났지만 동양인들은 그렇지 못하여 70% 이상이 락타아제를 만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당이 소화되지가 않아서 설사나 위경련을 유발하는 유당불내증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소가 풀을 소화시키지 못한다는 것은 알고 계십니까? 소는 소화요소를 이용해서 풀을 먹는 것이 아니라 박테리아의 도움을 받아 풀을 썩혀서 흡수합니다. 소화요소가 없다고 해서 못 먹는 음식이라는 말하는 것은 우스운 발상입니다.
유당불내증이 있는 사람이라도 우유를 데워서 조금씩 먹으면 점차 우유를 잘 소화하게 됩니다. 락타아제를 조금씩 만들어 내는 것이지요. 만약 유아나 소아가 유당불내증으로 고생한다면 안 먹으면 됩니다. 우유만 먹으면 설사하는 어린이들이 가끔 있기는 합니다. 그런 아이들, 혹은 어른들은 검진을 받고 유당불내증이 심하다는 진단을 받으면 우유를 안 드시면 됩니다. 이런 진단을 받으시는 분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4. 우유가 아토피 유발? 주요 아토피 항원이지만 다른 음식도 마찬가지
우유가 아토피를 유발한다고도 합니다. 우리 아이는 아토피 증세가 거의 없기 때문에 아토피에 관해서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기는 합니다. 하지만 아토피는 알러지의 일종입니다. 즉 과다면역 반응이라는 것이지요. 결국 아토피에 반응하는 항원(생명체에 들어와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물질)이 무엇이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4세 미만의 중등도-중증 아토피 피부염 환아에서 식품 항원에 대한 양성률은 달걀 흰자가 42.7%로 가장 높았고, 우유 21.3%, 대두 11.2% 순이었습니다. 즉 우유는 주요한 아토피 항원 중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검사 결과 우유가 아토피 항원이 아니라면 우유는 마셔도 되는 음식입니다. 원래 아토피가 없는데 우유를 먹어서 아토피가 생긴다는 것은 어디에서도 증명된 바가 없습니다. 무조건 우유가 아토피에 좋지 않다고 단정하여 아이에게 우유를 먹이지 않는 것은 영양 관리상 좋지 않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우유가 아토피 주요 항원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계란, 빵, 생선까지 다 먹지 말라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부모가 잘 검사하고 아이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항원을 안 먹이면 됩니다.
5. 소가 스트레스 받아서 해롭다? 갇혀 사는 닭과 돼지는 어떻게 먹으라고
이번엔 감성에 호소하는 우유 반대론도 살펴봅시다. 우유가 생산과정에서 매우 잔인한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인체에 해로울 수 있다고 합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젖을 생산하기 위해 강제로 송아지를 떼어놓으면 암소가 큰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 때 생산한 우유는 몸에 해롭다는 겁니다.
물론 공장식 축산은 동물권과 동물의 질병 예방이라는 입장에서 저 역시 반대합니다. 허나 만일 저 논리가 맞다면 스트레스를 받는 엄마의 젖을 먹는 아이는 모두 해로운 음식을 먹고 있는 것이 됩니다. 아프리카에서 매초마다 눈치보면서 젖을 먹이는 초식동물들은 얼마나 나쁜 젖을 생산하는 걸까요?
저는 어릴 때 개고기를 먹겠다고 개를 나무에 묶어놓고 몇 시간을 패서 죽인후 먹는 어른들을 보고 경악했습니다. 저렇게 나쁜 행동을 했으니 벌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위의 논리대로 라면 제 바램이 이루어 질수도 있었을 겁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개가 죽어갔으니, 그 개고기는 독약이 되었을테니까요.
하지만 그 어른들 중 한 분이 저희 아버지시고 지금도 건강하게 잘 지내십니다. 공장식 축산은 지양해야겠으나, 그것을 이유로 근거 없는 이야기를 유포하는 것 역시 함께 지양해야 할 것입니다. 참고로 닭이나 돼지는 더 심한 환경에서 키워집니다.
6. 암을 일으킨다? 우유만 보지 말고 다른 요인부터 살펴봐라
이제 슬슬 클라이막스로 가봅니다. 음식을 가지고 겁을 줄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공포스러운 단어… “암”입니다. “우유의 불편한 진실”에서는 우유를 많이 먹으면 전립선 암으로 사망할 확률이 높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아래 그래프를 보여줍니다.
위의 그래프는 전립선암 사망률을 가지고 공포를 조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제 암연구소에 가셔서 통계를 보면 좀 다른 점이 눈에 띕니다. 앞서 서양인은 성인도 락타아제를 분비하지만, 동양인은 그렇지 않다는 논거만 가져다 쓰더니 이제는 인종 문제는 쏙 빼놓은 겁니다. 동양인은 전립선암에 잘 걸리지 않습니다. 전립선암은 대부분 북미, 유럽, 호주에서 대부분 많이 걸리는 암입니다.
혹 시 이걸보고 북미, 유럽, 호주 사람들이 우유를 많이 먹어서 전립선암에 걸린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겠네요. 이건 골다공증 사례랑 마찬가지입니다. 저 지역에서 전립선 암이 많이 걸리고 우유를 많이 마신다고 해서 우유가 전립선암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인류가 콜라를 마시며 수명이 길어진 게 아닌 것처럼요.
전립선암의 위험인자로 가장 유력한 것은 나이, 인종, 가족력입니다. 미국의 연구에 따르면 70대가 전립선암에 걸릴 확률은 40대에 비해 130배 높습니다. 그리고 미국 흑인 남성은 세계 어느 인종보다 전립선암에 걸릴 확률이 높고 전이의 확률도 높습니다. 가족력이야 대부분의 암에서 문제시되는 요인입니다.
더 공포를 조장하는 말도 나옵니다. 우유의 성장호르몬이 암을 유발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전립선암 뿐만 아니라 어떤 종류의 암이든 우유를 많이 먹으면 성장이 촉진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합니다. 믿고 싶은 분은 믿으세요… 우유가 효율적 영양원이긴 하지만, 안 먹는다고 아주 크게 탈 나는 것도 아니니까요…
7. 고지방이 문제다? 우유보다 지방 적은 음식 별로 없다
전립선암이 고지방 때문에 발생한다고 하는 연구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유가 또 공격받죠. 네, 그렇다고 칩시다…
그럼 우유는 정말 고지방 음식일까요? 식품의 콜레스테롤 및 지방 함량표를 확인하겠습니다.(100g 기준) 보통 우유는 100g에 지방이 3.2g 있습니다. 저지방 우유는 1.5g 밖에 안됩니다. 일부 어패류를 제외하면 우유보다 지방이 덜 들어간 음식을 찾는 것이 더 힘듭니다.
전립선암의 원인으로 지방을 지목한다면 우리는 우유보다는 육류 섭취를 의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역시 앞에서 얘기한 골다공증과 비슷한 결론을 얻을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이것도 막연한 가정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럼 우유가 암의 원인이라는 주장에 대한 반대측의 논거를 살펴보겠습니다.
반대측 전문가들은 우유를 정기적으로 마시면 우유의 단백질과 지방이 식도와 위벽의 점막을 보호해 식도암, 위암과 같은 소화기계 암 발생률이 낮아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우유와 유제품을 섭취하면 암을 유발하는 위험물질이 감소하거나 암세포 생장이 억제되고 위암, 위염, 위궤양, 대장암, 난소암, 갱년기 이전 유방암, 직장암, 결장암 발병률을 낮춘다고 합니다.
이명희 박사는 칼슘, 유당과 비타민D가 풍부한 우유는 대장암을 예방하는 기능성 식품이라고 주장합니다. 최근의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유에 풍부한 칼슘이 대장암 예방에 큰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또 갱년기 이전의 여성들은 하루에 1회 이상의 저지방우유 또는 탈지우유를 먹는 사람이 한 달에 3회 이하로 저지방 유제품을 먹는 사람에 비해 유방암 발생이 현저히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합니다.
불편한 근거를 만들어내는 ‘우유의 불편한 진실’
자, 어떻습니까? 인과의 오류를 범하기 쉬운 데이터, 게다가 의도된 추출을 통해 조작이 가능한 데이터. 그렇게 했음에도 상관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데이터에 기반한 주장을 계속 믿으시겠습니까?
그래도 난 불안하다 하시는 분은 우유를 안 드실 겁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그렇게 행동하도록 유도하거나 강요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더군다나 공영방송이 저런 비약과 억측이 난무하는 영상을 내보내어 대중들의 불안을 자극하는 행태는 지탄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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