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점유율의 함정: 10명 중 8명이 안드로이드를 쓴다고? (원문)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간단한 개념 하나 소개하자. 소프트웨어 그리고 IT 산업을 이해하는 핵심 개념 중 하나가 바로 의존성이다. 간단히 말해서 A의 입출력이 B의 입출력에 따라 결정될 때, A는 B에 의존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운영 체제는 cpu에 의존한다. cpu마다 거기에 맞는 명령 코드셋을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cpu의 명령 코드셋이 바뀌면, 운영체제 역시 거기에 맞게 고쳐 줘야 한다. 응용 프로그램(소위 앱)들은 다시 이 운영체제에 의존적이다. 파일 조작이나 네트워크 통신 등을 위해 운영체제에 이런저런 요청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맥용 애플리케이션은 리눅스나 윈도우에서 돌아가지 않는다. 한국어 화자의 말을 영어 사용자가 알아듣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 개념 하나만으로 상당히 많은 것들이 설명된다.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한 때 마이크로소프트(MS)는 전세계 데스크탑 시장의 97% 가량을 장악한 적이 있다. 도대체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그건 간단한데, 기업 필수품인 오피스 제품이 MS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당연히 MS의 운영체제에서만 돌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MS의 운영체제는 무서울 정도로 많이 팔릴 수밖에 없다.
미묘한 일이 벌어지는 것은 바로 여기서부터다. MS의 운영체제가 널리 쓰이기 때문에, 앱 개발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Mac용 제품보다 MS 운영체제에 의존하는 제품을 만드는 게 더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인력 수요가 있으니, 자연히 개발자들도 MS용 프로그램을 만드는 법을 배우게 된다. MS 개발자의 수가 압도적이니 고급 개발자도 많고, 좋은 앱도 많이 나온다. 좋은 앱을 쓸 수 있으니까 소비자들은 다시 MS의 운영체제를 사고, 이는 다시 MS에 의존하는 앱들을 증가시킨다.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상대방 플랫폼은 그야말로 초토화된다. 한 때 Mac의 점유율은 2%대까지 떨어지기까지 했다. 출판이나 디자인 쪽 필수 앱들이 Mac 전용이라 전멸을 모면했을 뿐이다. 이렇게 소프트웨어 플랫폼에서 점유율은 실로 절대적이다. 리눅스와 같은 공개 플랫폼이 강력한 이유 역시 같은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 공짜로 갖다 쓸 수 있으니까 점유율이 높고, 점유율이 높으니 너도나도 의존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다른 플랫폼이 생존할 여지가 안 생기는 식이다.
안드로이드 대 iOS
그렇다면 안드로이드와 iOS의 경우는 어떻게 될까? 안드로이드가 점유율을 역전해서 더 높으니까, iOS 플랫폼은 패배자고 조만간 사라질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점유율은 대체재 관계에서만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서 운영체제와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은 서로 대체재 관계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자를 장악한 MS와 후자를 장악한 Oracle이 동시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이건 CPU도 마찬가지. Intel cpu와 IBM cpu는 용도가 전혀 다르다. 전자는 일반 가정용/사무용 PC에 쓰이지만, 후자는 고부하를 견뎌야 하는 기업 전용 서버에서만 쓰인다. 둘은 대체재가 될 수 있는 영역이 매우 한정되어 있고, 그렇기 때문에 IBM 입장에서는 Intel의 압도적인 점유율이 큰 문제가 안 된다. IBM이 매년 돈을 갈퀴로 걷어들일 수 있는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렇게 점유율은 대체재 관계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그렇다면 안드로이드와 iOS는 대체제 관계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체재가 될 수가 있긴 한데 그 영역이 한정되어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휴대폰 시장은 앱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시장에서부터 기존의 피처폰 시장에 해당하는 영역까지 굉장히 넓다. 애플의 아이폰이 팔리는 시장은 대체로 전자 쪽에 몰려 있다. 반면 안드로이드는 위 시장 전체에서 다 팔린다. 넓은 범위의 장치들에서 사용되는 운영 체제이기 때문이다. 둘이 겹치는 영역이 전체 시장 영역에 비해 그리 크지 않으니까, 대체재가 될 수 있는 영역도 좁다. IBM cpu와 Intel cpu가 대체재 관계가 될 수 있는 영역이 한정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안드로이드 광신도들이 멍청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친구들 눈에는 위 글이 “애플에게 불리한 수치의 의미를 깎아내림으로써 애플을 추켜올리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 점유율이 어떤 경우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건 흡사 비행기보다 자동차가 많으니 자동차가 비행기를 이겼다고 하는 수준이다. (안드로이드 폰과 아이폰의 성능 차이가 흡사 자동차와 비행기 수준으로 차이가 난다는 의미는 아니다.) 비행기와 자동차는 겹치는 수요가 극도로 한정적이다. 그 수많은 안드로이드 폰 중에서 아이폰의 대체재가 될 수 있는 것은 갤럭시를 비롯한 일부일 뿐인 것과 마찬가지다.
그냥 저 글은, “안드로이드의 점유율이 훨씬 높긴 하지만 스마트폰 앱 개발하는 입장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 정도의 의미일 뿐이다. 글 서두에서 언급하듯이 말이다. 좀 더 친절하게 풀어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앱을 활발하게 소비하는 소비자들로 한정하면, 전체 소비자 집합과는 달리 iOS 쪽의 점유율이 더 높다. 따라서 앱 개발사 입장에서는 더 적은 수고로도 돈이 잘 벌리는 애플 플랫폼에 집중하는 게 더 낫다.” 이런 의견은 업계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비슷비슷한 평가인지라, 별로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20년 전 “데스크탑에는 MS 운영체제가 많이 깔려 있으니까, MS용 앱을 만드는 게 Mac용을 만드는 것보다 낫다.” 하던 거하고 별로 다른 얘기도 아니라는 얘기다.
안드로이드는 휴대폰 운영체제인가?
여기까지 써놓고 보니 애플빠들의 승리에 도취된 웃음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다. 그런데, 아직 승리의 축배를 들기엔 이르다. 나는 앞에서 안드로이드를 ‘넓은 범위의 장치들에 사용되는 운영 체제’ 라고 했다. 왜 ‘스마트폰 운영체제’ 라고 하지 않았을까?
간단하다. 안드로이드는 스마트폰만을 위한 운영체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안드로이드는 로봇에서부터 사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을 포괄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iOS와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틀림없이 애플은 매우 성공적인 기업이고, 수많은 앱 개발사들을 자신들의 운영체제에 의존시킴으로써 강력한 생태계를 구축했다. 그런데, 잠시 휴대폰 시장에서 눈을 돌려 보면 어떨까? 모든 사물이 인터넷에 연결되고 로봇이 일반화되는 날이 오면, 거기에서 사용되는 앱들도 그만큼 중요해지게 된다. 이들은 어느 운영체제 위에서 돌아갈까? 과연 누구한테 의존하게 될까? 로봇 세계에서 휴대용 디바이스 세계의 애플, PC 세계의 MS와 같은 위치에 서게 되는 건 누굴까? 현재 시점에서, 과연 누가 챔피언의 자리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그저 가십거리에 불과하던 뉴스들이 하나씩 연결되어 보이기 시작한다. 구글은 최근 6개월간 로봇 업체 7개를 인수한 데 이어 4족 보행 로봇으로 유명한 보스턴 다이나믹스마저 인수했다. 작년 말에는 자동차 회사 네 곳과 함께 안드로이드 동맹을 결성했으며, 안드로이드의 창시자 앤디 루빈은 그동안 로봇 관련 업무를 하다가 최근 알려지지 않은 부서로 옮겼다. 이미 몇년 전부터 안드로이드 탑재 장치를 우주 개발에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중이며 엊그제는 무려 3조 원의 돈을 들여 사물 인터넷 업체를 인수했다. 이런 뉴스들을 볼 때마다 나는 궁금해진다: 10년 뒤, 나와 내 친구들은 어떤 플랫폼에서 돌아가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고 있을까? MS, 애플을 잇는 플랫폼의 지배자는 대체 누가 될까?
내가 애플빠들에게 짜증을 내는 이유는 바로 이런 걸 이해 못하기 때문이다. 이 친구들은 애플이 어떤 매커니즘으로 고객을 붙잡아 놓고 있으며 돈을 벌고 있는지 이해를 못 한다. 전기 회로에서부터 운영체제, 웹과 앱이 상호 작용하는 양상에 무지한 것은 기본이요 전체 시장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것은 옵션이다. 이 친구들한테 IT 산업이란 그냥 손 안에 든 스마트폰 이상이 아니다. 실제로 나는 예전에 이 친구들한테서 “IBM? 그거 망한 회사 아니야? 거기로 인턴 가서 뭐 하게?” 하는 말을 수도 없이 듣고 뒷목을 잡았다. 아니, 매출이 조단위인 회사가 망한 회사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나는 이 친구들이 휴대용 디바이스로 웹 서핑 이상의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애플과 잡스를 무조건적으로 추종하고 삼성 등 재벌 대기업을 깎아내리면 자기가 스마트한 인간이 된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안드로이드의 진짜 가치를 못 알아보고 휴대폰 시장 점유율만 보고 있는 안드로이드 광신도들도 한심하지만, 이 친구들은 갑절로 짜증난다. 내가 애플이 왜 챔피언이며 지금까지 얼마나 근사한 솜씨를 구사해 왔는지를 설명할 때마다 애플빠로 몰리게 되는 건 이 친구들 탓이 팔 할은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내 짜증 물어내, 이 시키들아.
소경 대 소경
이 정도면 내가 점유율 얘기가 나올 때마다 뒤집어지게 웃는 이유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언급할 필요조차 없는 멍청한 논쟁이기 때문이다. IT산업에 관련된 논의를 하면서도 이 산업에서 뭐가 중요한지, 뭐가 결국 돈이 되고 권력이 되는지, 현재 트렌드가 뭐고 여기에 이 사안이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하나도 없다. 있는 거라곤 한심스러운 숫자 놀음과 의미 없는 악다구니 뿐이다. 이런 걸 보면서 배꼽을 잡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어쨌거나 이런 얼빠진 논쟁에 우르르 몰려다니며 악을 써대는 양측 광신도들을 보다 보면, 실로 신약성서의 한 구절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시궁창에 빠진 뿐이다. (마태오 15:14)” 30년 꼴랑 산 내가 이런 말 하기엔 뭐하지만, 인생은 이렇게 한심한 짓에 낭비하기엔 너무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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