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Guardian의 「‘There’s a lot of fakery’: insiders spill on the dirty tricks behind wildlife photos」를 번역한 글입니다.
캄캄한 밤, 흰개미가 모여 사는 개미 언덕에서 만찬을 즐기는 개미핥기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입니다. 둔덕에 붙어있는 딱정벌레 애벌레들이 내는 불빛과 밤하늘의 별빛이 어우러져 경이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브라질의 사진작가 마르시오 카브랄이 촬영한 이 사진은 지난해 “올해의 야생사진전”에서 당당히 입상했습니다.
그러나 사진 속 개미핥기가 진짜가 아니라는 의혹이 제기됐고, 제대로 된 해명을 내놓지 못한 카브랄은 끝내 상을 박탈당했습니다. 문제의 사진 속 개미핥기의 유력한 모델은 바로 아래 사진에 있는 개미핥기로, 카브랄이 사진을 찍었다고 한 그 국립공원 입구 옆에 전시해 놓은 박제 모형입니다.
카브랄은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지만, 카브랄이 정말로 박제한 모형을 촬영한 뒤 사진전에 출품했다면 그는 야생사진전이라는 대회 이름을 깡그리 무시하고 실로 뻔뻔한 거짓말을 한 셈이 됩니다. 게다가 진실이 어떻든 이미 이런 논란이 벌어진 것만으로도 ‘자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은’ 사진이라는 표현이 과연 어디까지 진실일지에 관해 이 분야에 따르던 의혹이 더욱 커졌습니다.
유명 잡지에 실릴 만한 수준의 사진을 찍으려고 교묘하게 연출한 사진을 찍은 뒤 자연의 모습을 포착한 것처럼 꾸미는 일은 사실 흔하다고 합니다. 사람이 가둬놓고 키우는 동물을 어떻게 행동하도록 훈련한 뒤 잠깐 자연에 풀어놓고 사진을 촬영하기, 곤충을 나뭇가지 같은 데 붙여놓거나 얼려놓은 곤충을 놓고 사진을 촬영하기, 피사체인 동물이 카메라에 가까이 오도록 미끼로 유인하기 등 공공연하게 알려진 ‘꼼수’만 해도 다양합니다.
미국 사진작가 클레이 볼트는 “속임수도 가지가지”라고 말합니다. 그는 올해의 야생사진전 심사위원이기도 합니다. 대회를 주관하는 영국 자연사박물관은 엄격한 “출품 원칙”을 공개했습니다. 또한, 심사위원으로 사진작가로서의 윤리성을 검증받은 인물은 물론 생물학적 전문성을 갖춘 인물과 디지털 사진 편집에 능통한 이까지 두루 포진해 있지만, 이런 사태가 심심치 않게 발생합니다.
지난 2010년에는 스페인 사진작가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가 상을 받았다 취소돼 상금 1만 파운드(약 1,460만 원)도 다시 빼앗겼습니다. 심사위원들은 면밀히 조사한 결과 로드리게스가 마드리드 야생동물원에 사는 (사람 손에 길든) 이베리아 늑대 한 마리를 마치 야생에서 촬영한 것처럼 꾸몄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로드리게스는 몇 달 동안 인내심을 갖고 추적한 결과 어렵게 포착한 사진이라며 혐의를 부인했지만, 그의 해명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볼트는 “대회 제목부터 야생 사진전인 만큼 동물들이 반드시 야생에 사는 동물이어야 한다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야생에 직접 가지 않고도 야생 사진을 찍기 가장 좋은 장소는 역시 가장 야생스러운 곳이겠죠. 실제로 운영하는 사냥터나 사냥용 농장, 동물보호소 같은 곳이 바로 이런 곳입니다.
실제 야생동물이 서식하는 대자연에 나가 한참을 기약 없이 기다리지 않아도 여기에 가면 원하는 동물을 바로 촬영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 몬태나주에 있는 트리플디(Triple “D”)라는 곳에서는 아예 사진작가들에게 150~500달러를 받고 90분 동안 동물 모델들을 찍을 수 있게 해줍니다. 시베리아 호랑이, 회색곰, 설표, 늑대, 퓨마에 이르기까지 모델은 다양합니다.
이런 농장에서 사육하는 동물은 애초에 관상용을 염두에 두고 잡은 동물이기 때문에 하나같이 잘생겼습니다. 게다가 대개 잘 먹고 덜 움직이다 보니 살도 통통하게 오른 경우가 많죠. 이렇게 가둬놓고 기르는 동물이 사람들에게는 더 익숙해진 탓에 사람들은 정말 야생동물의 모습을 보면 실망하거나 낯설어하기도 합니다. 캐나다의 야생 전문 사진작가 알렉스 스트라찬은 말합니다.
여기 사진이 두 장 있다고 칩시다. 하나는 진짜 야생에서 찍은 날렵하다 못해 비쩍 마른 몸매의 퓨마입니다. 낭떠러지 바위틈에 몸을 숨겼는데 진눈깨비 때문에 얼굴은 흐릿하게 보일 뿐입니다. 다른 하나는 농장에서 사육하는 퓨마예요. 잘 먹어서 그런지 몸집도 좀 더 크고 털은 누가 관리라도 해준 것처럼 부드럽게 윤기가 나죠. 그 위에 새하얀 눈이 펑펑 내리니 그 모습이 꽤 장관입니다. 아, 그리고 물론 가둬놓은 동물이니 훨씬 더 가까이서 확대해서 찍을 수 있었죠. 동물학자나 자연생태 전문가라면 야생에서 스스로 살아가는 퓨마의 모습을 더 반기겠지만, 99%의 일반인들은 당연히 더 잘 나온 사진, 더 늠름한, ‘퓨마다운’ 모습을 좋아할 겁니다.
조류 전문 사진작가인 캐나다 출신의 로라 카예는 사냥으로 잡아 가둬놓고 기르는 동물을 촬영하는 것 자체는 전혀 문제 될 게 없다고 말합니다. 물론 그 동물을 제대로 보살펴준다는 가정이 따르지만요. 다만 사진 속 동물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이 사진을 어떻게 찍었는지 사실대로 밝혀야 한다는 겁니다.
카예는 올빼미 같은 특정 동물을 찍기 위해 미끼를 활용하는 방식이 더 우려스럽다고 말합니다. 지난해 초, 누군가 자연에서 정말 만나기 어려운 커다란 회색올빼미를 찾아 사진에 담은 비법을 안다며 카예를 불렀습니다. 오라고 한 장소로 가봤더니 이미 카예 말고도 초청받은 사진작가들이 여럿 있었죠.
정말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보기 힘든 올빼미가 사진작가들이 카메라를 들이댄 바로 앞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사냥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비결은 금방 드러났습니다. 농장 주인이 애완용 쥐를 사서 10분에 한 번씩 올빼미가 내려다보는 땅으로 던져준 겁니다. 그럼 올빼미는 기다렸다는 듯이 쥐를 사냥했고, 사진작가들은 그 모습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올빼미가 쥐를 사냥해 잡아먹는 모습을 이보다 생생하게 담을 수 있기 어려울 겁니다. 그야말로 굉장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셈이죠. 그렇지만 이건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야생동물이 먹잇감을 사람에게 의지하게 되는 순간 야생성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야생성을 잃은 야생동물은 사진작가들이 돌아가고 난 뒤에도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그녀는 또한 야생동물의 삶에 최대한 끼어들지 않으며 조심스럽게, 그래서 정말 고생하며 자연에서 진짜 야생동물의 모습을 담는 사진작가들의 노력이 보상받지 못하게 되는 점도 아쉽다고 지적합니다.
연출된 사냥 장면은 5분이면 금방 찍고 갈 수 있지만, 야생에서는 하루가 걸릴지 일주일이 걸릴지 기약이 없어요.
몸집이 큰 동물들이 길든 행동을 연출하는 정도의 수고만 하면 그만이라면 사진 한 장을 위해 곤충이나 작은 파충류, 양서류가 치러야 할 대가는 훨씬 끔찍하기도 합니다. 클레이 볼트도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사람들은 작은 생명체에게 상대적으로 더 거리낌 없이 몹쓸 짓을 하곤 하죠. (너무 빨리 움직이면 사진이 잘 안 나오니까) 냉동고에 얼어 죽지 않을 만큼만 넣어뒀다가 사진을 찍기도 하고, 초강력 접착제를 써서 어디에 고정한 뒤 사진을 찍거나 아예 투명한 철사 같은 거로 묶어놓고 찍기도 해요.
인터넷 사진동호회 게시판에만 가도 거미나 집게벌레에 어떤 연고 제품을 발라놓으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다든지, 아니면 잠자리나 개미를 냉동실에 20분 정도 넣어두면 사진 찍기 딱 좋을 만큼 천천히 움직인다는 식의 각종 팁이 버젓이 쓰여 있습니다.
2015년에 촬영된 사진 한 장이 인터넷에서 많은 사람의 극찬을 받았습니다. 특히 사진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은 정말 신기한 장면을 포착했다며 감탄할 수밖에 없는 사진이었습니다. 작은 개구리가 딱정벌레 등에 탄 채 마치 로데오 게임을 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습니다.
입을 벌린 개구리의 모습은 얼핏 의인화해서 보면 그 순간을 즐기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사진작가는 “이 사진은 자연에서, 통제된 환경에서 촬영한 것이지만, 구체적으로 연출하거나 조작한 건 전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일어날 법한 장면을 찍은 것이라고 해도 몇몇 전문가는 인간이 동물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정황이 나타난다며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먼저 사진 속 개구리는 밤에만 움직이는 야행성 동물입니다. 그런데 낮에 이 사진이 찍혔다는 건 그 자체로 깨어있지 않아야 할 시간에 억지로 깨어있었다는 뜻입니다. 또한, 입을 벌린 것도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고 위협을 느낀다는 뜻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그리고 디지털로 사진을 보정하는 단계가 남습니다. 색을 좀 더 뚜렷하게 입히고, 배경도 손을 봅니다. 물속에서 찍은 동물 사진의 배경에 바다를 떠다니는 쓰레기나 부유물이 찍혔으면 이를 지워버리는 작업이 대표적입니다. 따로 찍은 동물 사진만 원하는 배경에 오려 붙이기도 합니다.
디지털상에서 사진을 고치고 보정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발견하기 쉽기도 하고, 이름 있는 사진전에는 대개 보정을 거치지 않은 원본 파일을 제출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스트라찬도 “디지털로 보정한 작업은 쉽게 알아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영국의 야생 전문 사진작가 데이비드 슬레이터는 “전문 사진작가 가운데 완전히 결점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솔직히 인정했습니다. 사진작가로만 생계를 이어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말 아무것도 가공하지 않은 순수한 사진만 찍겠다고 하면 아마도 영영 사진을 출품할 기회조차 잡지 못할 겁니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윤리적 기준을 낮춰가며 스스로 타협하지 않을 수 없는 거죠.
슬레이터는 누구보다 사진작가의 경제적 어려움을 잘 압니다. 그 유명한 “원숭이 셀카” 작품을 출품했던 슬레이터는 과연 그 사진의 저작권이 사진작가 슬레이터에게 있는지, 아니면 직접 사진을 찍은 볏이 달린 짧은꼬리원숭이에게 있는지, 아니면 누구에게도 없는지를 둘러싸고 실로 오랫동안 법정 다툼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 사진은 전 세계적으로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 만큼 유명해졌지만, 정작 원작자라고 할 수 있는 슬레이터는 이 사진으로 돈을 한 푼도 못 벌었습니다. 오히려 문제의 원숭이를 대변해 슬레이터에게 저작권 침해 소송이 제기되자 소송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부업을 해야 했을 정도로 내몰리기도 했습니다. 볼트도 언론계 전반이 재정적인 압박에 시달리면서 윤리적으로 문제 있는 사진이라도 수요가 점점 높아진다는 데 동의했습니다.
예산이 워낙 모자라다 보니 그저 뭐라도 있으면 일단 인터넷에 올리고 보는 수준이죠.
볼트는 사진이 진본인지, 조작의 흔적은 없는지, 윤리적인 문제는 없는지 등을 원칙대로 꼼꼼히 확인하는 매체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비롯한 몇 곳밖에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슬레이터는 또한 연출하고 조작된 사진이 난무하다 보니 진짜로 공을 들여 찍은 훌륭한 사진도 일단 의심을 받고 보는 세태가 생겨났다고 말했습니다. 2009년 그는 영국 야생사진전에 풀잎 위에서 잠이 든 꿀벌 한 마리의 모습을 포착한 작품을 출품했습니다. 사람들은 죽은 벌을 주워다가 풀 위에 얹어놓고 찍은 것 아니냐며 사진을 쉬이 믿지 않았습니다.
정말 고생해서 찍은 진짜 자연의 모습인데도, 사람들이 믿어주질 않더군요.
데이비드 야로우는 사진 예술가입니다. 그의 작품 가운데 코끼리나 사자 등을 촬영한 흑백사진은 특히 유명해 수천만 원을 줘야 살 수 있는 작품도 있습니다. 그런데 야로우는 사육하며 훈련한 늑대나 치타를 피사체로 사진을 찍어 작품을 만든다는 사실을 거리낌 없이 밝힙니다. 그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찍은 야생 사진이냐, 아니면 예술가의 손길을 거친 예술작품이냐에 따라 연출 혹은 조작을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저는 예술가예요. 사진을 찍지 않고, 작품을 만드는 것이 제 일입니다. 예술에는 아무런 제약이 따르지 않습니다. 배경에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 화산이 분출하는 모습을 넣고 그 화산을 다스베이더가 넘어오는 장면을 조합한 사진을 두고 이게 현실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지 누가 문제 삼겠어요?
야로우는 카브랄의 개미핥기 논란에 관해 작가의 예술성이 보인다며 전직을 권유했습니다.
(문제가 된) 사진을 보니 한 편의 훌륭한 예술작품 같더군요.
원문: 뉴스페퍼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