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대학에 입학하면서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에서 나와 자취를 시작했다. 주말에는 가급적 집으로 가긴 했지만, 동네 친구들과 놀거나 사람들을 만나느라고 늦은 밤에 들어가 아침 일찍 나오는 생활이 반복됐다. 부모님 입장에서 지금 생각해 보면 집을 여관처럼 생각하고 잠만 자고 가는 아들이 원망스럽진 않아도 아쉬운 마음은 있으셨을 것 같다. 그런 생활이 너무 반복되면 가끔씩 식사나 한번 같이하자고 일부러 거리를 둔 말씀을 건네셨다.
그래도 그때는 2주일에 한 번은 얼굴을 비추기도 했으나, 결혼하고 나선 방문이 더 뜸해졌다. 연락이라도 자주 드리려고 마음은 매번 먹지만 결국 뭐가 그리 바쁘고 정신없이 사는지 마음에서만 그친다. 생각해보면 길어봐야 1~2분이 넘지 않을 텐데 말이다. 이따금 전화 드리면 뭐가 그리 급하신지 뭐에 쫓기듯 전화를 빨리도 끊으신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은 특별히 내 삶에 이래라저래라 이야기하지 않으셨다. 학교 다니는 기간 동안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고3 시절에도) 공부하라는 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나질 않는다. 누나는 어릴 때부터 아주 모범생이었다. 초등학생 시절 내가 어쩌다 상을 하나 받아오면 아무렇지 않게 2개의 상을 가지고 집으로 들어왔다. 전교 1등을 도맡아 했고, 좋은 대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니 공부도 열심히 하지 않는 내가 답답해 보였을 법도 한데 공부하라는 압력을 가하신 기억이 거의 없다. 내 옷차림이나 다른 결정마저도 존중해 주시는 편이었다. 처음 노랗게 머리를 염색하고 들어왔을 때도 약간 놀라긴 하셨지만 뭐라고 꾸짖지는 않으셨다. 대학생 때 양쪽 다 귀를 뚫고 들어왔을 때는 보수적인 아빠에게 혼날 각오를 하고 들어갔지만 이해해주셨다. 그때는 몰랐지만 자식을 향한 믿음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학창시절 내 의사를 존중해주셔서 그랬는지, 나도 특별히 부모님께 무언가를 요청하거나 학교에서의 일을 말로 꺼내지 않았다. 중학교 때는 농구밖에 안 했으니 할 말이 별로 없었고, 고등학교 때는 야간자율학습 끝나도 들어오면 자기 바빴으니 딱히 이야기할 게 없었다. 대학교 때부터는 나가서 살았으니 더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고. 대화는 줄어들었고 그런 관계가 유지되었다.
이러니 특별히 전화를 드린다고 해도 시시콜콜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게 어색하기만 해서, 무심히 별일 없는지 한번 물어보고 건강관리 잘하시라는 말을 끝으로 짧은 통화를 마치곤 했다. 점점 전화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결혼해서 장모님/장인어른께도 안부 전화를 자주 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부모님께도 잘 못 하던 전화가 처가에 쉬이 될 리 없었다.
보건사회연구원이라는 기관에서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3,000여 가구를 대상으로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거는 횟수를 조사했다. 결과는 1년에 37회로 1달 평균 3번의 전화를 거는 것으로 나왔다. 부모님께 열흘에 한 번꼴로 안부 전화를 하고 있다는 말이다. 자주 못 하는 이유도 함께 물었는데 1. 쑥스러워서 2. 용건이 없어서 3. 바빠서라는 대답이 나왔다. 내 경우를 생각해 볼 때 전화를 자주 못 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횟수는 열흘에 한 번은커녕 한두 달에 한 번이니 평균을 낮추는 데 일조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관 기사 하나도 눈에 띈다. 자녀와 주 1회 이상 전화통화를 하고 월 1회 이상 왕래를 한 노인을 조사해보니,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3년 뒤 우울증이 발생할 위험이 36%나 낮았다는 기사다. 이런 기사를 읽으니 뭔가 가슴 한켠에서 죄송한 마음과 후회가 밀려온다. 단순히 전화 한 통과 월 1회 왕래로 우울증 발생 위험을 그렇게나 낮출 수 있었다니… 괜스레 먹먹했다.
요새는 워낙 홀로 사시는 노인분들이 많아서 독거노인 대상 사랑의 안부전화 서비스를 지자체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곳도 제법 많아졌다. 이런 노력은 참 고맙다. 전화를 받으시는 노인분들도 고마운 마음이 들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자식이 직접 하는 전화는 어떨까, 모르긴 해도 더 좋아하시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색하고 쑥스럽지만 주기적인 안부전화를 시작해보자는 결심을 했다.
평일 하루씩 본가와 처가에 번갈아 전화를 드리면 일주일에 한 번은 전화를 드릴 수 있을 테니 그렇게 시도해 보기로 했다. 생각만으로도 무척 쑥스럽고, 마음먹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 과연 이번에는 잘 이어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긴 한다. 그래도 또다시 실패하더라도 시도해보고 싶었다.
포털에 안부전화라고 검색을 하니 ‘안부전화 알리미’란 앱이 검색이 된다. 들어가 보니 ‘이 앱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해당 통화 상대와의 통화 내역을 확인하여 최근 며칠간 통화가 없었다면 잊지 않고 전화를 할 수 있도록 알림을 띄워줍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보인다. ‘그래 이렇게라도 도움을 받아봐야겠다’는 맘으로 다운로드를 받아서 설치했다.
평소 내일을 당연히 생각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산다. 생명이라는 게 내 마음대로 되면 좋겠지만, 현실은 내일 당장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인생이다. 그래서 오늘과 현재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며 산다. 그런 내가 왜 유독 부모님은 언제까지 나를 기다려주실 거라고 생각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살아 계실 때 잘해라.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특별히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왠지 그런 생각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것 자체가 두렵기도 했다. 사실 아이가 태어나서 부모님이 할머니/할아버지가 되셨지만, 아직도 부모님을 노인이라고 하기에는 어색함이 크다. 일전에는 아빠가 일하시다가 손을 크게 다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실을 나는 한참 후에나 알았다. 걱정하고 염려할까 봐 나한테는 말씀 안 하신 거였다. 알고 나서 참 많이 속상했다.
요새 넷플릭스에서 즐겨보는 SUITs 라는 미드가 있다(한국에서도 장동건/박형식 주연으로 방송하고 있다). 거기에 마이크 로스라는 주인공이 나오는데 부모님이 안 계시고 할머니 손에 자라서 할머니를 엄마같이 생각하며 지내곤 했다. 로스가 변호사가 되면서 많은 일을 처리하느냐고 바빠져서 할머니를 계속 돌볼 수가 없어 할머니는 요양원에 머물게 되셨다.
거동이 점점 불편해지는 할머니를 가까이서 돌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로스는 어렵게 받은 회사 보너스로 햇볕이 잘 드는 집을 마련하고 기뻐한다. 드디어 할머니를 새로운 집으로 초대했다. 할머니는 로스가 왜 이리로 불렀을까 의아하겠지만 문이 열렸을 때 환한 웃음으로 맞이하는 로스를 보며 기뻐하실 것이다, 이런 상상을 하며 로스는 마지막 가구와 집기를 정리하고 청소하는 데 여념이 없다. 이때 “띵동” 들리는 초인종 소리. 로스는 서둘러 현관으로 달려간다. 문을 열며 “써프라이즈!” 라고 외치고 할머니를 맞이한다.
하지만 할머니가 있어야 할 그곳엔 로스의 직장동료가 서 있었다. 회사에 로스를 찾는 전화가 계속 왔었다고… 요양원에서 온 응급 전화였다고 말하는 로스의 직장동료의 표정은 차마 전할 수 없는 소식을 들고 온 사람의 표정 그 자체다. 예상했듯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로스에게 전했다. 결국 할머니는 로스가 깜짝 선물로 준비한 집을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신 것이다. 로스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에 괴로워하고 절망한다.
아무리 괴로워하고 절망한들 시간은 돌이킬 수 없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기도 했고 TV에서 드라마나 영화로 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는 것에 마음을 쏟지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내 탓이다. 이제는 더 늦기 싫었다.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날 마침 하늘에서 눈이 내렸다. 내리는 눈을 핑계로 전화를 걸었다.
기다렸다는 듯 밝은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부터 들려온다. 괜시리 마음 한켠이 뜨거워진다. 애써 담담한 척 거긴 눈은 많이 오지 않는지? 별다른 불편한 점은 없으신지? 저녁은 드셨는지? 등 몇 가지 물어보고 나서 짧은 단답형 대답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 그게 다였지만 왠지 마음이 따듯했다.
몇 해 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94〉를 볼 때 다음 대사가 나레이션으로 흘러나왔다. 아직도 잊지 못하는 명대사다.
서울 생활 4개월 차 대학 첫 여름방학이 다가올 무렵 우리는 친해졌고, 가까워졌고, 익숙해졌다. 그리고 딱 그만큼 미안함은 사소해졌고, 엄마는 당연해졌다.
순간 머릿속이 멍해지고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항상 있는 공기처럼 부모님은 그렇게 계셔야만 했고, 그래서 너무 당연해졌다. 절대 당연해져선 안 되는 관계인 걸 알면서도 알게 모르게 사랑을 당연히 권리인 양 받아 누렸다. 이렇게 다시 자주 전화 드리기로 마음먹었지만 솔직히 얼마나 또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사랑이 당연하다고 생각되지 않도록 몇 번이고 다시 마음먹고 다시 전화하고, 찾아가 볼 생각이다. 사랑합니다!
원문: Peter Kim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