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는 ‘공유경제’를 이끄는 신물류 인프라로, 누군가에게는 ‘일자리 창출’의 수단으로, 누군가에게는 ‘사회적 비용 감소’의 촉매로, 누군가에게는 ‘먹고사니즘’으로 다가오는 지하철. 노인복지법에 따라 65세 이상 어르신의 지하철 무임승차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지하철 물류 생태계를 ‘일자리 관점’에서 바라봤다.
결론은 지하철 물류가 ‘일자리 창출’의 수단은 될 수 있지만, 그것을 ‘좋은 일자리’라 부르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이다. 단순히 일자리의 양적 증대 이전에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조금은 한산한 이른 오후의 2호선 지하철. 삼성동에서 취재를 마치고, 낙성대 사무실로 돌아가는 중에 진기한 광경을 봤다. 경로우대석에 한 어르신이 앉아 계셨는데, 그 앞에는 두 손 가득 쥐기도 벅차 보이는 백화점 쇼핑백이 한 가득이다. 소위 ‘백화점택배’라고 불리는 백화점간 재고 보충물류를 하는 이들이다.
지하철퀵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백화점택배’는 오토바이퀵보다 20~30% 낮은 가격에 제공되는 ‘지하철퀵’보다도 훨씬 낮은 건당 2,500원(업체 기준)이 안 되는 단가에 거래가 된다. 당연히 ‘한 건’ 운송으로는 효율이 나올 수 없다. 규모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서울 각 지역 백화점의 물량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과 같은 허브에 모여 배송지별로 분류된다. 이후 지하철 배송원들이 각 지역별로 배송될 백화점 쇼핑백을 바리바리 들고 이동하는 구조다. 어찌 보면 이 또한 ‘허브앤스포크’다.
백화점택배는 ‘어르신’과 ‘지하철’이 있기에 할 수 있는 사업이다. 노인복지법에 따라 지하철 ‘무임승차’가 가능한 65세 이상 어르신과 ‘지하철’ 역세권 근처에 위치한 백화점의 입지가 맞물려 탄생했다. 지난 8월 한 퀵서비스업체가 “수도권 전역 3,000원 당일배송을 한다”는 내용을 발표해 업계에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이 가격은 ‘백화점택배’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가능한 가격이었다.
지하철퀵의 탄생, 서비스 대신 ‘단가’
지하철퀵은 서비스 대신 ‘가격 경쟁력’을 선택하여 시장에 진입했다. 오토바이 퀵서비스에 비해 20~30% 낮은 단가에 진입하여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지만, 그 서비스는 오토바이 퀵서비스에 비해 뒤쳐질 수밖에 없다. ‘속도’는 당연히 느리고, 고객 입장에서 ‘어딘가 답답하고 미안해지는’, ‘뭔가 설명을 계속 해줘야 찾아오시는’ 어르신 기사의 배송은 그리 달갑지 않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퀵서비스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참 낮은 ‘단가’는 지하철퀵의 경쟁력이 되며, 산발적인 샘플운송이 필요한 의류·봉제업체들이 주로 이용하는 화주가 된다.
이 과정에서 지하철퀵업체는 ‘영업’과 ‘배송기사 관리’를 맡으며, 지하철퀵 배송기사들이 받는 임금의 30% 가량을 수수료로 취득한다. 여기에 일부 교통비를 지원하는 것을 제외하면 대략 28-29%가 실제 업체가 취득하는 수수료가 된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행 오토바이 퀵서비스업체가 23%의 수수료를 취득하는 것에 비해서 다소 비율이 높은 이유는 ‘어르신’ 배송기사들에 대한 관리 비용이 한 몫 한다는 설명이다.
지하철퀵업체 A사 대표는 “지하철퀵 업체는 어르신들에게 배송과 관련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가이드 한다. 전화 받고 배차하는 것은 물론, OO역 1번 출구의 왼쪽으로 가라는 자세한 위치 안내까지 일일이 하고 있는데, 이게 다 인건비”라며 “오더와 비례하여 ‘인건비’가 내려가야 하는데, 이쪽 업계에서는 오히려 인건비가 올라가는 것이 가장 큰 숙제다. 어떻게 보면 저희가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을 바보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밝혔다.
일자리 창출 수단인가
한 편에서는 지하철퀵을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사회적 소외계층(노인, 장애인)을 위해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는 업계의 주장도 있다.
물론 지하철퀵서비스를 제공하는 어르신의 월수익이 현행 최저임금에 한창 못 미친다는 것은 이 업계 관계자도 알고 있다. 그러나 어르신들이 경력 단절이 되며 느끼는 소외감이 상당하며, 지하철퀵 일을 함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고 그 자체가 사회적 비용 절감 효과가 있다는 관계자의 설명이다.
지하철퀵업체 B사 대표는 이렇게 밝혔다.
“지하철퀵 일자리의 가장 큰 강점은 유연성이다. 잠깐 하고 싶은 분들도 하고 싶은만큼 일을 할 수 있고, 사실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니다. 어느 정도 운동도 되고, 다른 지하철퀵기사를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되니,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좋은 일자리가 되지 않나 생각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학계의 주장도 있다. 유정훈 아주대학교 교통시스템학과 교수는 말한다.
“지하철퀵은 강압적으로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노인들이 자유롭게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시장이기 때문에 이를 보고 노인들을 착취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노인들이 일을 함으로써 얻는 보건효과와 만족감도 크기 때문에, 최저임금 관점에서 노인들의 임금을 바라보기도 어렵다.”
좋은 일자리, 정말일까
그러나 노동환경을 바라보는 지하철퀵 배송기사들의 시각은 다소 달랐다. 어찌됐든 일은 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형편없는 ‘수익’에 대한 불만은 공통적으로 갖고 있었으며, 근무환경 또한 열악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올해로 77세인 노 씨는 지하철퀵을 한 지 5년이 넘어간다. 노 씨는 ‘돈’을 바라보고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밖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을 뭐라도 해봐야지 하는 마음에 지하철퀵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시점 노 씨가 바라보는 지하철퀵 일자리의 문제는 ‘돈’이다. 노 씨에 따르면 5년 전 기준으로 한 달 70만 원 정도는 벌었지만, 현 시점에는 그것의 절반밖에 안 되는 돈을 벌고 있다고 한다.
“70만 원은 노인들 수입으로 적은 편이 아니며, 외부활동을 하는 것에 대한 나름 만족스러운 보상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많은 노인들이 택배기사로 유입되면서 일감은 떨어졌고, 건당 비용으로 돈을 받는 지하철 택배업계 특성상 당연히 수익도 줄어들었다.”
현 상황에선 일을 하다가 ‘점심식사’라도 한다 치면, 하루 버는 돈이 얼마 남지 않는 상황이라는 게 노 씨의 주장이다.
노 씨는 지하철퀵 업무환경 또한 점차 악화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바로 어제만 해도 주문을 받으러 갔더니 무려 12kg 가량의 물건을 옮겨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며 “특별히 법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업계 통상 5kg 이내의 화물을 옮기는데, 고령자가 12kg의 화물을 들고 장거리를 오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 말했다.
물론, 지하철 택배기사들 중에는 비교적 젊거나 건강한 노인도 있고, 그렇기에 무거운 화물을 옮기는 기사들도 있다. 그래서 고객의 불만은 더 늘어난다고 하는 게 노 씨의 주장이다. 고객으로부터 “전에는 배송이 가능했는데, 왜 지금은 안 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장애인등록증(복지카드)’를 통해 2년 동안 지하철퀵을 하고 있는 또 다른 지하철퀵 배송기사 박 씨는 ‘먹고 살려고’ 지하철퀵을 시작했다고 한다.
“지하철퀵의 수익성이 점점 악화되고 있으며, 먹고 살 수 있는 다른 일만 있다면 굳이 지하철퀵 일을 하고 싶지 않다.”
“값싼 운임은 물론이고, 30%의 수수료와 지하철 이외의 추가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비용이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제일 큰 문제는, 일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박 씨에 따르면 만약 밥을 먹으면서 일을 하게 되면 하루에 1만 원도 벌기 어렵다고 한다. 앞서 노 씨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박 씨에 따르면 지하철퀵기사에 대한 ‘인간적인 대우’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지하철퀵 사업주는 물론, 고객들도 기사에 대한 막말을 서슴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박 씨는 지하철퀵 배송기사를 ‘더러운 직업’이라 표현했다.
지하철퀵업체 A사 대표는 “지하철퀵기사의 가장 큰 고충은 수익이다. 실질적으로 9시부터 나와서 일을 한다고 한다면 일을 안하고 대기하는 시간이 1/3을 차지한다. 기사숫자에 맞는 충분한 주문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라며 “수익문제는 배송기사는 물론, 업체가 함께 공유하고 있는 문제다. 그렇기에 업체는 최대한 주문을 만들어서 기사들의 대기시간을 줄이고자 노력한다. 기사들이 돈을 벌러 나온 것이지 봉사하러 나온 것은 절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지하철 물류’에 대한 지자체의 입장
물류 인프라로 여객수단인 ‘지하철’을 운영하는 것에 대하여 ‘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시의 입장은 어떨까.
서울시는 여객과 노동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지하철 물류는 얼마든지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CJ대한통운과 서울 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가 올해 12월까지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도심물류시스템’ 개발이 대표적인 협업 사례다. 분류거점에서 배송거점 인근까지 지하철을 택배화물의 대량운송 수단으로 활용하고, 역사 내 물류시설에서의 분류 및 지상으로의 이송과 지상에서의 배송을 일자리 소외계층들이 맡는 방식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대현 서울특별시 교통기획관은 밝혔다.
“서울교통공사에서 많은 승객이 몰리는 ‘러시아워’는 어렵지만, 한산한 시간과 한산한 노선을 활용하여 물류를 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주 소량의 물건은 할 수 없고, 상당한 물량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지하철 물류 활용의 비용과 효과 측면에서 타당성이 있는지 연구가 돼야할 것으로 본다.”
이 기획관은 또한 “사람이 없는 시간대에 몇십 분 정도 지하철을 물류로 활용하는 것은 법적인 체계 안에서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다만, 복선이 아닌 단선체계인 국내 지하철 특성상 하루 3~4시간밖에 정비를 하지 못한다. 그 중간에 ‘화물지하철’이 다니면 안전과 관련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노동자의 삶의 질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에 그런 부분까지 함께 고려해야 될 것”이라 설명했다.
사회적 합의를 찾아서
이 기획관은 지하철퀵의 ‘저임금 문제’에 대해서는 ‘시장경제’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서울시는 ‘시민’들을 위해 지하철을 운영하는 기관이기에, 물류사업인 ‘지하철퀵’은 수요와 공급이 조정하는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어르신들이 지하철퀵 배송기사로 이용하는 것이 불편하다면 자연히 일을 안하게 될 것이고, 일을 안하게 된다면 지하철퀵업체는 어르신들이 필요해서라도 돈을 더 주는 등 대우가 달라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어르신들이 돈을 벌고자 지하철을 이용하든, 복지 개념으로 일을 하든, 지방자치단체인 서울시가 이를 규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이 기획관의 입장이다. 다만, 지하철퀵으로 인해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편리한 지하철 이용이 방해 받는다면 그것은 고민할 문제가 된다.
이 기획관은 “만약, 지하철퀵 화물로 인해 여객이용에 장애가 생기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심한 부분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도록 안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우리 어르신들의 시민의식과 준법정신도 투철하여, 그렇게 안내한다면 다른 사람들을 충분히 배려해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리해보자면, 지하철퀵은 ‘일자리 창출’의 수단은 맞지만 ‘좋은 일자리 창출’의 수단은 되지 못한다. 앞서 만난 지하철 배송기사 노 씨는 지하철 퀵서비스를 ‘좋은 일자리 창출’로 보는 시각이 있다는 기자의 질문에 “지하철 퀵서비스 기사를 본인이 직접 3일만 체험해본다면, 그런 말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양적인 일자리 창출 이전에, ‘좋은 일자리’란 무엇인지 더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
원문: CLO 물류로 보는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