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대로이다. 당신은 고양이를 절대 이길 수 없다. 왜냐하면, 고양이가 당신보다 훨씬 재미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글을 쓰든, 카드뉴스를 만들든, 영상 콘텐츠를 기획하든, 혹은 ppss와 같은 유사언론을 운영하든 다 상관없다. 무조건 고양이가 더 재밌다.
아마 당신은 ‘최고의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방송과 인터뷰 등지에서 <유튜브 영상으로 연 수입 XXXX원?> 같은 타이틀로 소개되는 몇몇 유튜버나 스트리머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이 글의 도입부를 읽으면서 ‘뭐야 찌질이새끼가… 고양이가 도X나 X도서관처럼 돈을 벌 수나 있냐? 농담도 더럽게 못 하네’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난 농담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당신이 콘텐츠를 기획할 때 가장 경계하고 무서워해야 할 대상은 옆 동네 콘텐츠 제작사가 아니라 고양이이기 때문이다.
콘텐츠 크리에이터로서의 고양이가 얼마나 위대한지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인간이 어떤 콘텐츠로부터 흥미와 재미를 느끼는지를 짚고 갈 필요가 있다. 본인이 백 년에 한 번 나오는 천재 콘텐츠 기획자로서 철저하게 권위에 의존한 소견을 내보자면 콘텐츠의 가장 본질적인 핵심은 예측 불가능성(Unpredictability)과 정체성(Identity)의 두 가지로 압축된다. 괜히 있어 보이고 싶어서 괄호치고 영어를 쓴 부분은 양해해주길 바란다(Sorry).
고양이의 위대함 그 첫 번째 : 태생적 예측 불가능성
인간은 패턴을 분석하는 동물이다. 수천 년 전 나일강의 범람주기를 예측하고, 천체의 움직임을 분석해 날짜를 추측하고, 게임 진행에서 계속 막히는 보스의 공격패턴을 계산해 클리어하는 것까지 모두 인간의 본능적 특성인 ‘패턴 분석’으로부터 나왔다.
소위 적응력으로 묘사되는 이 능력은, 모든 것을 분석 가능하고 예측 가능한 영역으로 끌어들이지 못하면 불안해하는 인간의 본질적 강박관념으로부터 기인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은 늘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부터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흑사병, 진주만 습격, 혹은 암과 교통사고 같은.
그런데 웃긴 사실은, 인간은 본능적으로 파악이 완료된 패턴에 대해서는 금방 싫증을 느끼고 지루해한다는 점이다. 당장 멀리 갈 필요 없이 영화 한 편을 보더라도 그렇다. 시작부터 온갖 클리셰 남발에 뻔하디뻔한 전개로 흘러가는 영화는 높은 확률로 재미가 없다.
애초에 결말이 뻔한데다 재미도 없는 영화를 끝까지 보고 있을 이유는 많지 않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어떤 게임이든 처음 플레이할 때가 제일 설레고 재미있는 법이며, 몇 번 더하다 컴퓨터의 플레이가 눈에 보이게 되는 시점부터는 확연하게 흥미가 감소한다. 예측 가능성과 확실성은 인간에게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동시에 무료함과 지루함을 느끼게 만든다.
그래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예측불가능한 것에 흥미를 느끼고, 관심을 갖고, 집착한다. 뻔한 영화 대신 강렬한 반전과 스릴이 있는 영화를 선호하고, 계산된 컴퓨터의 플레이보다 창의적이고 제멋대로인 사람의 플레이를 좋아한다.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를 좋아하는 이유 역시 수원 삼성이 바르셀로나 FC를 이길 확률이 조금이라도 있기 때문에, 백 년 넘게 우승을 못 하던 구단이 월드시리즈에서 트로피를 거머쥐는 이변이 있기 때문이다. 존 콜트레인이 재즈의 신으로 추앙받는 이유도 불규칙적인 창조성이라고들 한다. 요컨대 예측 불가능성은 인간으로 하여금 본능적인 호기심과 탐구욕을 자극하며, 위대하고 멋진 콘텐츠에 있어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 할 수 있는 셈이다.
고양이는 태생적으로 이 예측 불가능성을 탑재하고 있는 생물이다. 유튜브에 ‘cat’을 검색해보라. 예측 불가능한 고양이의 행동과 반응들이 셀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이유도 없이 높은 곳에 올라갔다가 떨어지고, 가만히 자고 있는 개를 두들겨 패는가 하면, 토스터기에 화들짝 놀라 공중제비를 돌기도 한다.
머리에 봉투를 쓰고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피아노를 연주하거나 심지어 직립보행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고양이도 있다. 일설에 의하면 최근 커뮤니티 등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반사회적 댓글을 다는 존재가 사실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라는 이야기까지 돌고 있으니 이 얼마나 무섭고 놀라운 존재란 말인가?
고양이의 위대함 그 두 번째 : 치명적 정체성
요즘 같은 세상에 브랜딩이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다. 오늘날 대중들은 정말이지 많은 브랜드로부터 둘러싸인 채 살아가고 있고, 개중에서 마음에 들거나 필요한 것들을 골라 나(개인)의 정체성으로 포함시킨다. 결국 세상의 모든 제품과 서비스, 그리고 콘텐츠들은 사람들이 얼마나 갖고 싶어하는 브랜드로 자리를 잡느냐 하는 싸움이 되어버렸다. 이런 측면에서 브랜드의 경쟁이란 곧 정체성의 대결이기도 하다.
그래서 좀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강렬한 정체성만 갖고 있다면 서비스나 제품의 질 따위는 달리 중요하지도 않다. 어디 사람들이 샤넬, 루이비통 가방을 가죽에서 땀이 나거나 덤으로 딸린 드론이 가방을 자동으로 들어주는 기능이 있어서 사는 것이 아니다. 샤넬과 루이비통이라는 매력적 브랜드가 내 정체성 형성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제품도 없어서 못사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아이돌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트와이스의 팬들은 과연 트와이스의 음악이 정말 음악적으로 매력적이라서 듣는 것일까? 정답은 ‘아니다’ 이다. 사실 팬들 입장에서 트와이스가 어떤 음악을 내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물론 음악이 좋으면 더 좋은 거지만,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갑자기 내일부터 음악방송에 나와가지고 북 치고 장구 치고 아쟁을 연주하면서 판소리를 한다고 한들, 팬들은 욕은커녕 응원과 박수를 보내줄 것이다. 아마 욕은 박진영한테 하겠지….
팬이라는 건 결국 그런 것이다. 내 자식 같은 아이들이 뭘 해도 귀엽고 사랑스럽게만 보이는 법. 결국, 사랑받는 캐릭터와 정체성을 구축하는 것이 콘텐츠 생산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고양이는 역사적으로 가장 매력적이고 치명적인 정체성을 가진 동물이다. 약 일만 년 유구한 인간의 역사 속에서 거의 모든 동물이 인간에게 무릎을 꿇었다. 인간이 들고 있는 불과 칼 그리고 총 앞에서 순순히 가죽과 고기를 상납하기 바빴던 동물들 사이에서, 크게 두 종류의 동물이 인간으로부터 꾸준히 사랑받고 보호되어왔는데… 바로 개와 고양이다.
이 두 동물은 오늘날 가장 인기 있는 반려동물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인간의 마음을 뺏기 위한 전략은 극단적일만큼 큰 차이가 있었다. 개는 인간의 도우미 내지 친구가 됐고, 고양이는 인간의 주인이 됐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주인의 말을 듣지 않는다. 애초에 인간을 주인이라고 생각을 하지도 않는다. 어떤 자료에 의하면 고양이는 인간을 그저 ‘자신보다 조금 더 큰 고양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어디 감히 밥 좀 주고 재워주고 씻겨주고 발톱도 깎아주고 가끔씩 간식 좀 던져준다고 해서 고양이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아니, 그건 노예다. 마구 날리는 털에도 불구하고 꾹꾹 참으면서, 툭하면 일을 방해하고 물건을 부수는 데다 할퀴기까지 하는 생물에게 반항 한 번 못하는 인간이 노예가 아니라면 대체 뭘 노예라고 할 수 있는가? 아끼던 옷을 다 할퀴어놨다고 삐져서 누워 있다가, 고양이가 꾹꾹이 한 번 해주면 거기 미쳐서 간식을 갖다 바치는 것들이 노예가 아니면 뭐가 노예냐고.
이처럼 주인을 섬기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의 길을 가는 고양이의 정체성은 그야말로 독보적이다. 고양이는 인간을 개 콧구녕만치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냥 자기가 꼴리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할 뿐이고, 인간은 그냥 그런 고양이의 본질적 모습을 사랑하고 좋아할 뿐이다.
이 같은 고양이의 모습은 콘텐츠 기획, 창작자 및 사업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콘텐츠 한 건 한 건마다 트래픽이 얼마 나오지 않을까, 혹시나 사람들에게 부정적 반응이 있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면서, 매일 대중영합적 콘텐츠만 찍어내다 정체성을 잃어가는 매체들이 얼마나 많은가.
퀄리티와 품질처럼 방법론적인 접근을 하면서, ‘이 콘텐츠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구구절절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는 콘텐츠는 대체로 구린 경향이 있으며 곧잘 실패하고 만다. 왜냐하면, 부분의 합이란 전체와 같지 않고,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데 필요한 것은 몇 가지의 특장점이나 문장으로 쉽게 정의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애초에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사랑스럽고, 갖고 싶게 만드는 것들은 어느 하나 특출난 부분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완벽한 하나의 우주인 까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고양이가 사랑받는 이유를 ‘작고 귀여워서’ ‘도도한 매력이 있어서’ ‘털이 부드러워서’ ‘꼬리가 달려서’ ‘자는 모습이 예뻐서’ ‘발에 달린 육구의 감촉이 대단해서’ 등등으로 분자화하기 바쁘다. 그러나 고양이는 그냥 고양이 그 자체라서 사랑받는 것이다. 고양이라는 존재 자체가 인간에게 끝없는 흥미와 영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며, 계속해서 교감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도록 하기 때문이다.
전국의 애견인과 강형욱 선생님에게는 미안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콘텐츠 기획자의 입장에서 강아지보다는 고양이가 훨씬 매력적인 캐릭터라는 걸 부정하기 어렵다. 실제로 찰스 디킨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마크 트웨인과 윈스턴 처칠 등 내로라하는 문학계의 거장들도 고양이 앞에 무릎을 꿇고 엉엉 울며 영감을 구걸했다고 하니 이 얼마나 무섭고 놀라운 존재란 말인가?
결론
그래서 결론은 무엇인가? 어쩌면 위와 같이 논리정연하고 반박 불가능한 사실의 나열들이, 일류 콘텐츠 창작자 및 사업자를 꿈꾸고 있는 당신에게 회복 불가능한 절망감을 안겨주었을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난 직후의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어떤 수를 써서도 이길 수 없는, 미지의 경쟁자가 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두렵고 슬픈 일이다. 지구에 고양이가 존재하는 한 콘텐츠 사업자는 늘 고양이 아래에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인간이 고양이만큼의 강렬하고 꾸준한, 완전무결한 콘텐츠를 개발하는 방법은 없단 말인가?
정답은 ‘있다’ 이다. 지난해 미국의 유명 농구선수 케빈 듀란트로 말미암아 유명해진 금언을 상기해보자.
“If you can’t beat them, Join them”
역사적으로도 이게 답이었다. 이길 수 없다면 같은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미 수없이 많은 콘텐츠 사업자들이 고양이를 이용 혹은 벤치마킹하여 돈을 긁어모으고 있으며, 이에 따라 고양이 간식 제조, 캣타워 주문제작 등의 부가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추세다.
다행히 고양이들은 자기네들이 가진 무한한 창조성과 아이덴티티의 가치를 자각하지 못하는 모양이므로, 우리 인간은 이를 이용해 비열하게 밥을 벌어먹으면 되는 것이다. 날 믿어라. 콘텐츠의 미래와 본질은 고양이에게 있다.
고양이… 고양이가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