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 정말 오랜만에 봤다. 여태까지 ‘임’을 두 번 본 적 있었는데, 이번에 세 번째로 임을 보게 됐다. ‘임’은,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에서 나오는 임이다. 갑에서 멀어질수록 고용도 불안정하고, 급여도 적으며, 이런저런 일들로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는 것, 업계에서 조금만 굴러본 사람들이라면 다들 아는 사실.
개발자들도 막무가내로 좋은 대접만 해 달라는 것 아니다. 대부분의 개발자는 실력이 높은 사람은 많이 받고, 실력 낮은 사람은 적게 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실력 쌓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고.
문제는 실력이 어떠냐와 상관없이 임금이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경우가 꽤 있다는 거다. 어떤 업체에 소속되어 있느냐에 따라, 어떤 계약관계로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일하느냐에 따라, 실력과는 상관없이 임금이 차별된다. 만화에 그린 것처럼, 정말 완전히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월급이 백만 원이나 차이가 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아무리 세상이 엉망이라지만 이건 좀 아니지 않나. 똑같은 일을 하는데 급여가 저렇게 차이가 나다니. 이건 기본적으로 SI 바닥의 하도급 구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이 늪에 빠지면 정말 헤어나갈 길이 없다. 일을 관두지 않는 이상, 제대로 학습하고 능력 키울 시간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하루하루 일당벌이 인력으로 전락하는 건 시간문제. 이쪽 상황이 이렇다.
이런 상황인데도 하도급이 관행이니, 하도급이 사라지면 중소기업이 망하니 그런 소리 할 텐가. 사실 하도급이 사라지면 제대로 개발하는 중소기업은 오히려 살아난다. 중간에 수수료나 떼먹으며 돈 놀이 하는 업체들이 죽는 거지.
어쨌든 이 와중에 정부부처 장관님이라는 분은 또 SW 인력 22만 명을 양성하겠단다. 그렇게 키운 22만 명이 다 어디로 가겠나. 대다수는 만화에 나온 저런 구조에 편입되는 거다. 지금도 개발자 공급이 부족하지 않은 현실에서, 22만 양성은 개발자 저가 공급을 통해서 결국은 다 죽으라는 소리가 된다.
제발, 부디, 억지로 양을 늘려서 저가 공급하려고 하지 말고, 환경 조성과 정비에 힘써서 자연스럽게 인력들이 유입되게 해 주기 바란다. 아울러, 새로운 인력 키우는 것보다, 실력 있는 사람들이 해외로 떠나지 않게 만들어주는 게 우선이다. 22만이 아니라 222만을 양성해도, 이런 현실에서는 결국 실력 있는 사람들은 해외로 다 떠나버리기 때문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밖에 안 된다.
참조) OKJSP에 올라온 공지 글 : 미래창조과학부 장관님께 드리는 공개질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