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후, 북한
① 김정은의 생존과제: 과거로의 회귀
② 북한 붕괴: 네 가지 시나리오
③ 통일이냐 영구분단이냐
‘김정일의 안정’ 시대를 끝내고 극적인 위기를 촉발시킬 시나리오는 현재 네 가지 정도가 있는 것 같다. 개혁 시도와 지도부 내 파벌 충돌, 자발적 봉기, 그리고 중국에서의 반란이 전염되는 경우이다.
최후의 위기의 첫 번째 시나리오는 중국이나 베트남과 유사한 개혁의 시도이다. 이러한 발언은 필자가 이전에 말한 것과 모순되는 것으로 비칠지 모른다. 필자는 북한의 지도부가 중국 스타일의 개혁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위험을 이해하고 있으며 그런 위험을 감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첫 번째 시나리오: 위험(개혁)의 감수 가능성
그러나 이는 김정일 시대의 북한 지도부의 맥락에서 말한 것이다. 지금 북한 지도부는 변화하고 있다. 김정은이 대부분의 조언자들을 자기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사실이나 이들은 대부분 70~80대로, 곧 교체될 것이다. 이미 김일성의 동료들의 손자뻘인 북한의 젊은 귀족들이 고위직으로 도약하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김정은의 조언가와 친구들이 대부분 그의 아버지를 돕던 이들의 자식들이거나 가까운 친척이라 하여 이들이 중요한 사안에 대해 아버지 세대와 크게 다른 의견을 갖지 못한다는 건 아니다. 김정은 자신을 포함하여 이들은 중국의 개혁이 가져온 화려함에 매료되었을 수 있다.이들은 중국의 당 관료들이 한 것처럼 자신들을 배불리고 권력을 증대시키면서 중국의 성공을 흉내내고 싶어할 수 있다. 이들은 북한의 민초들이 처한 곤경에 미안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귀족정의 역사는 잔혹한 약탈 귀족들과 가학적인 군주들의 후예들이 때로는 지나치게 많은 동정심을 갖는다는 걸 보여준 바 있다.
그래서 이들은 아버지들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여긴 위험을 감수하려 들 수도 있다. ‘평양의 봄’은 새로운 지도자들에 의해, 욕심과 이상주의 그리고 순진함에 의해 시작될 수 있다. 외신들은 그러한 ‘평양의 봄’에 대해 크게 열광하면서 장밋빛 희망을 보일 것이다. CNN의 기자들이 김일성 광장 옆에 맥도널드 매장이 열리는 데에 열광하는 기사를 쓰는 모습이나 학생들에게 과감하게 김일성 또한 몇몇 실수를 저질렀으며 따라서 위대한 수령의 정책도 85% 정도만 옳았다고 평가해야 한다 말하는 대담한 북한 학자와의 인터뷰를 보도하는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들을 외신들은 상당한 열의를 갖고 반기면서, 이러한 것들이 북한 문제가 스스로 해결되고 있음의 증거로 보도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엉터리 보도와 장밋빛 기대에 혹해서는 안 된다. 개혁하는 북한은 결코 김일성과 김정일 시대의 억압적이고 침체된 북한보다 결코 안정적이지 못할 것이다.
암시장 상인들과 노동당원: 분단의 계속을 원하는 유일한 집단
미래의 개혁 정부가 정권을 오랫동안 유지시킬 수 있는 공포와 회유, 그리고 물질적 인센티브의 적절한 균형을 찾아내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개혁가들이 중국을 설득하여 개혁의 실험 전체에 필요한 돈을 대도록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중국 자금의 대규모 유입을 얻어내려면 중대한 정치적 양보나 주권을 일부 포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중국은 투자를 너무 위험하다고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장의 장사꾼들에 대해 보다 긍정적인 접근도 도움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암시장의 장사꾼들과 당 기관원들이 기초적인 이해 관계를 공유하고 있다는 걸 간과하곤 한다. 이 두 집단들은 북한이 당분간 분단된 국가로 유지되기를 바라는 거의 유일한 집단들이다. 만일 북한이 자본주의 국가로 전환하게 된다면 약간의 식량 창고를 가진 사람은 수퍼마켓 체인점의 CEO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의 기업이 남한의 거대 소매 업체들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물론 한반도를 최대한 분단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개발 독재’가 북한에 등장하게 된다면 본 필자는 이를 진심으로 환영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저자를 냉소적이고 비정하다며 비난할 것임을 잘 안다. 어떠한 체제도 완벽하지 않으며 개발 독재이든 아니든 독재는 끔직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정권에서 평범한 북한 주민들의 삶은 크게 개선될 것이며 그러한 정권은 국제 무대에서도 덜 도발적이 될 것이다.
어떠한 의미에서는, 매우 큰 충격을 남길(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보게 될 것이다) 전면적인 민주주의로의 급전환보다 더 선호할 만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개혁주의적인 권위주의 정권을 유지하는 것은 영원히 외줄타기를 하는 것과도 같을 것이다. 이미 말했던 것처럼 부유하며 자유롭고 매우 매력적인 남한의 존재 때문이다. 그래서 본 저자는 미래의 북한 개혁가(김정은이든 다른 누군가이든)는 덩샤오핑의 운명보다는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운명을 맞이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북한 대중과 남한 사람들, 그리고 서방의 언론으로부터 존경과 찬탄을 받겠지만, 북한의 개혁가들은 곧 더 급진적인 변화와 (결국에는 이루어질) 굉장히 부유한 남한과의 통일에 장애물로 여겨질 것이다.
이러한 압력은 불행한 개혁가들에 대한 대중의 불만 폭발은 물론이고 어쩌면 정권의 붕괴까지 초래할 수 있다. 1991년의 소련의 경우와 다른 점이라면, 북한의 경우는 그 종국이 폭력적이 될 위험이 더 높다는 데 있다. 순진한 개혁가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로 자신들이 운이 좋기를 바라야 할 뿐이다.
두 번째 시나리오: 지도부 내 정파 갈등
최후의 위기를 촉발시킬 다른 가능성은 최고 지도부 내에서 심각한 정파 갈등이 발발하는 것이다. 이것이 두 번째 시나리오이다. 이러한 정파 갈등은 유력한 관료들이 숙청당하는 형식으로 일어나거나 쿠데타의 시도(성공이냐 실패냐는 별로 중요치 않다)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책을 쓰는 시점에서 그러한 정파 간 충돌의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물론 외신들은 평양 내부의 정파 갈등에 대해 쓰는 걸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소문에 근거한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식적으로 정파는 존재할 것이다. 북한의 지도부는 단합을 유지하고 대오를 흐트리면 안 된다는 걸 잘 이해하고 있기는 하지만 어떤 것도 영원할 수는 없다. 차세대 지도부는 공개적으로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또는 정파 갈등에서 밀려난 측이 싸움을 계속하고 갈등을 공개적으로 만든다든지 심지어는 폭력적으로 확산시킬 수도 있다. 한 장성이 바로 내일이라도 사형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정권의 장기적 안정성에 대해서는 그리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시나리오가 다른 식으로 발전할 경우 외국의 세력이 야망을 가진 사람들을 선동하여(물론 중국 외에는 누구도 그런 모략을 부릴 위치에 있지 않다) 비이성적으로 보이는 구세력에 도전하게끔 만들 수 있다.
원인이야 무엇이든 간에, 그런 공개적인 충돌은 북한 정권의 안정성을 위협할 것이다. 지도부의 분열은 엘리트가 현재의 상황을 통제할 능력이 없다는 징표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이 경우 이전에는 유순했던 많은 사람들조차도 자신들의 불만을 드러내기 시작할 것이고, 예상할 수 있듯이 정권의 말로를 위험하게 만들 것이다.
세 번째 시나리오: 대중의 불만 폭발
가능한 세 번째 시나리오는 대중의 불만이 자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2011년 아랍 세계에서 목도한 것과 비슷한, 지역의 폭동이 순식간에 전국적인 혁명 운동으로 번지는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튀니지의 시골 마을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던 과일 행상이 공개적으로 자살하자 폭동이 일어났고 눈깜짝할 새에 아랍의 몇몇 독재국가들을 무너뜨렸다. 아마도 1980년대 후반의 동구권에서 가장 억압적인 공산주의 정권이었던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 정권은 테미소아라라는 작은 마을의 유명한 사제를 비밀경찰이 체포하려고 했다가 무너졌다.
오늘날 북한 주민들은 2011년의 튀니지나 1989년의 루마니아를 흉내내기에는 너무 겁먹고 소외되어 있으며 서로를 불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제는 조금씩 약해지고 있고 공포는 줄어들고 있으며 가능한 대안들에 대한 지식이 퍼지고 있다. 장기적으로 볼 때(우리는 지금 장기적인 관점에 대해 말하고 있다. 아마도 2020년대쯤) 북한에서도 아랍의 봄과 유사한 시나리오가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네 번째 시나리오: 중국의 체제 불안이 북한에 전염되는 경우
네 번째 시나리오는 중국의 불안 상태가 전염되는 것이다. 시민 불복종이나 폭동이 북한에 일정한 영향을 미칠 나라는 중국이 유일하다. 현재 중국의 ‘개발 독재’는 안정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만일 중국 정권에 대해 대규모의 도전이 발생한다면 이는 북한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시나리오들은 복합될 수도 있다. 그리고 필자는 이 짤막한 스케치에 모든 가능성을 담았다고 생각지 않는다. 게다가 현 단계에서 주변국들은 북한의 위험성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는 걸 선호함에도 불구하고 주변국들은 이런 상황이 발생할 때 거기에 얽히게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북한의 대내적 대외적 독특함 때문에, 북한 정권의 단계적이고 관리 가능한 변화나 영속적인 생존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머지않아 북한은 위기에 빠져들 것이며, 십중팔구 그것은 갑작스럽고 격렬할 것이다.
(편집, 짤방: 김수빈)
이 글은 안드레이 란코프의 신간 <리얼 노스 코리아>의 ‘보론: 향후 20년, 북한에서는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를 출판사의 허락 하에 재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