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후, 북한
① 김정은의 생존과제: 과거로의 회귀
② 북한 붕괴: 네 가지 시나리오
③ 통일이냐 영구분단이냐[/note]
솔직히 이야기하자. 미래를 내다본다는 것은 인간의 능력 너머의 일이다. 역사 속에서는 모두가 예상했던 것들이 일어나지 않았던 경우나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중대한 변화가 일어난 경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렇지만 필자는 여기서 북한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추측하고자 한다. 물론 여기서의 논의가 근본적으로 추측에 근거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위기는 필연적, 그러나 오래 가진 않을 것
북한의 장래는 세 가지 단계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단계는 현재의 안정 단계이다. 이는 ‘김정일의 안정’이라고 일컬어질 수 있겠으나 김정은 시대에도 어느 정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의 현재 체제는 지속이 불가능하며 개혁 또한 불가능하다. 따라서 ‘김정일의 안정’은 극적인 위기로 끝날 것이다.
이러한 위기를 촉발시킬 요인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위기가 전개될 방법 또한 여러가지이다. 그러나 북한은 분명 계속 불안 상태를 유지하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의 위기가 혼란스럽고 위험하며 격렬할 수는 있어도, 그 기간은 상대적으로 짧다고 예상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새로운 정치적 경제적 체제가 곧 등장하게 될 것이다.
북한에 대한 신문 기사를 읽으면, 북한을 두고 지도자들은 의미 없어 보이는 무력시위를 일삼고, 그 주민들은 언제나 살인적인 기근에 대한 두려움 속에 사는 미친 독재정권이라 여기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북한에서 무력시위는 사실 세심하게 조율된 외교행위의 일부분이며 내부의 경제적, 정치적 상황은 대부분의 신문 기사들이 말하는 것처럼 암울하고 불안하지는 않다 (물론 암울하기는 하다).
북한의 경제/정치 상황은 언론보도처럼 암울하진 않아
물론 지난 몇 년간 어쩌면 또다른 기근이 발생할 정도까지로 식량 사정이 악화된 때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볼 때, 지난 5~10년 동안 북한의 경제 상황이 대단한 정도는 아니지만 분명 개선되어 왔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경제 지표는 부정확하지만 2005년경 북한의 GDP가 위기 발생 전인 1980년대의 수준을 얼추 회복했다고 보여주고 있다. 북한 경제에 대한 가장 믿을 만한 평가를 제공한다고 하는 한국은행의 추정에 따르면, 2000~2011년의 북한 GDP는 평균적으로 매년 1.4% 성장했다.* 비록 대단치는 않은 성장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은 성장이다. 물론 이 수치의 정확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관점을 견지해야 한다. 북한 경제에 대한 세계 최고의 전문가 중 하나인 마커스 놀런드는 “북한 경제에 대해 소수점이 찍혀 나오는 자료를 절대 믿으면 안 된다”고 즐겨 말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증언이나 관측들은 이 조금 낙관적인 추정을 뒷받침한다.
영양실조는 여전히 흔하지만(수십 년 동안 그랬다) 2000년 이후 북한에서 굶어죽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밑에서부터의 자본주의’는 사회의 계층화를 가져왔지만 새로운 중산층은 이제 김일성 시절에는 들어보지 못한 물건들을 구입할 여력을 가졌다. DVD 플레이어는 흔하다. 냉장고는 아직 드물기는 하나 더는 예외적일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가정집의 컴퓨터도 이제는 엄청난 부의 상징이 아니다.
보다 부유해진 평양: 교통체증과 샤넬 부띠끄
이러한 발전은 특히 평양에서 돋보인다. 한때는 차가 하나도 없이 텅텅 비어있는 것으로 유명했던 평양의 대로는 이제 1970년대의 모스크바를 연상시킨다. 교통량이 엄청 많은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차들을 분명히 볼 수 있다. 도로가 넓지 않은 평양의 오래된 부분에서는 심지어 교통체증까지도 접할 수 있다. 과거에는 결코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방문객들과 부유한 평양 시민들은 최근 평양에 많이 생겨난 고급 레스토랑에서 다양한 미식을 즐길 수도 있다. 싸구려 중국제 샴푸가 부유함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시절은 지났고 이제는 평양의 부띠끄에서 샤넬을 손쉽게 살 수 있는 시대이다.
경제 상황이 천천히 개선되는 것이 북한 정권에게는 실제로는 위험할 수도 있다. 급진적인 개혁을 하지 않아도 북한이 어느 정도 성장할 수는 있겠지만 중국이나 남한과 비교할 만한 성장률을 달성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적 문제를 촉발시킬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여겨지는 커다란 소득 격차는 점차 더 벌어질 것이다. 동시에 매일 매일의 먹고 사는 걱정을 덜게 된다는 것은 북한 시민들이 보다 많은 시간을 생각하고 대화하고 서로 어울릴 수 있게 됨을 의미한다. 이는 북한 정권에게 좋은 소식은 아니다.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사람들이 정말 절망적일 때 혁명을 시작하게 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런 때에는 사람들이 육체적인 생존을 위해 투쟁하느라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약간이지만 불충분한 생활상의 개선이야말로 권위주의 정권이 가장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다.
가장 이성적인 (북한 정권의) 생존 전략: 과거로 회귀한다
북한 정부에게 가장 이성적인 생존 전략은 개혁을 회피하고, 내부의 반항에 대해 무자비 정책을 계속하며, 자본주의 제도의 자발적인 성장을 최대한 억제하고 가능하다면 과거로 되돌리는 것이다. 김정일은 이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의 뒤를 이은 젊은 후계자가 이것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온전히 알게 될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10~20년 간 북한 정권의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성공할 가능성은 꽤 높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성공은 치명적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경제적 침체가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중심부가 더 오래 붙들고 있는 만큼 주변국, 무엇보다도 남한과의 격차는 더욱 커지며 차후 폭발이 일어날 가능성 또한 커진다.
정부가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하더라도 북한을 김일성이 다스리던 1960년대와 1970년대 같은 상황으로 돌려놓을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는 북한의 ‘민족주의적 스탈린주의’가 성립 가능했다. 왜냐하면 북한은 산업 경제의 필요를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미개발 자원들이 많이 있었고, 그래서 당시 많은 북한 주민들이 이를 받아들일 용의가 있었으며 심지어 체제를 지지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국제 정세 또한 반세기 전에는 많이 달랐다. 1950년대에 북한은 아시아 대륙에서 가장 발달된 경제를 구가하고 있었으며 가난한 독재국가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리고 디지털 시대의 도래 이전에는 주민들을 격리시키고 정보를 차단시키는 것이 상당히 쉬웠다.
북한의 최후 위기는 결코 막을 수 없다
상황은 변했다. 스탈린주의의 약속에 대한 초기의 열광은 오래 전에 증발해버렸다. 북한은 경제적인 능력이나 개인의 자유 모든 면에서 희망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뒤떨어져 있다 (평범한 북한 주민이 보기에는 중국만 해도 진정한 민주국가로 보인다). DVD 플레이어, 테이프, 트랜지스터 라디오, 그리고 점차 늘어나는 컴퓨터 등의 새로운 매체 덕택에 북한 내부에도 정보가 들어오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천천히 정부에 대한 두려움을 잊고 있으며 점차로 사적인 자리에서 위험한 정치적 주제를 입에 올리고 있다. 이는 북한 정권의 장기적인 미래를 어둡게 만든다. 북한의 최후 위기는 연기시킬 수는 있겠지만 어떠한 수로든 막을 수는 없다.
현재 진행 중인 세대 교체는 북한 정권에게 특별히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 35세 미만의 북한 주민들은 이전의 세대와 매우 다르다. 이들은 강도 높은 이념 주입을 받은 적이 없으며 모두가 신문이 완전한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는 세상에서 살았다. 이들은 나라가 모든 것을 제공해 주던 시절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들 중 많은 이들에게 국가와 그 관료들은 기생충의 무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바깥의 나라들이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알며 대부분은 북한이 남한에 비해 가망이 없을 정도로 뒤떨어져 있음을 알고 있다. 그들은 국가 차원의 폭력이 줄어든 완만한 시대에서 자랐으며 그래서 위험한 주제에 대해 말하기를 그리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 새로운 세대는 김씨 가문에게 심각한 문제를 안겨줄 수 있지만 이 문제가 극심해지기까지는 10~20년 정도가 걸릴 것이다.
이 글은 안드레이 란코프의 신간 <리얼 노스 코리아>의 ‘보론: 향후 20년, 북한에서는 무엇이 일어날 것인가’를 출판사의 허락 하에 재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