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5억 년 이전 캄브리아기에는 그야말로 폭발이라는 표현으로도 모자랄 정도로 갑자기 다양한 동물문이 대거 출현했습니다. 현생 동물문의 조상이 이 시기 다 등장했다고 해도 될 정도인데, 물론 이 시기 등장한 여러 생물 가운데는 후손 없이 사라진 종들도 많습니다. 그들의 생김새는 매우 기괴해서 현생 동물종과의 연관성을 알아내기 힘든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이들 가운데 바로 하벨리아 옵타타 Habelia optata가 있습니다. 버제스 혈암군에서 발견된 이 기묘한 생물체는 2cm 정도 되는 몸통과 비슷한 길이의 꼬리를 지닌 작은 생물체로 살아 생전에 복잡한 머리 구조를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2차원으로 눌린 모습으로 화석화되어 대체 어디에 속하는 동물인지 파악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토론토 대학과 로열 온타리오 박물관의 고생물학자들은 하벨리아의 생전 모습을 최대한 세밀하게 복원해 이들의 족보를 밝혔습니다. 이전 연구에서 이들이 절지동물과 가까운 동물이라는 점은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절지동물문은 매우 큰 집단입니다. 사실상 현생 동물종의 대부분을 포함하는 그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벨리아는 턱과 같은 구조물이 보였기 때문에 대악류 (mandibulate)의 일종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절지동물의 분류는 문헌마다 차이는 있지만, 삼엽충류, 협각류(chelicerate), 대악류의 세 아문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삼엽충은 멸종 그룹이고 현생 그룹은 협각류와 대악류입니다. 협각류는 거미, 전갈, 진드기 같이 협각이라는 입 앞에 작은 부속지를 지닌 것이며 대악류는 곤충과 갑각류를 포함해 양 옆으로 벌어지는 턱을 지닌 종류입니다.
이번 연구에서는 하벨리아가 사실은 협각류에 가깝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복잡한 입 주위의 부속지 가운데 협각 (chelicerae)과 비슷한 부속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입 주위의 부속지가 하나가 아니라는 점은 이들이 단순히 협각류가 아니라 그 곁가지에 해당하는 근연 그룹임을 시사합니다.
하벨리아는 협각 이외에도 머리에 있는 다섯 쌍의 작은 다리 같은 부속지로 먹이를 잡고 쉽게 뜯어먹을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따라서 당시에는 그 크기에서 매우 무서운 포식자 가운데 하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많은 동물들처럼 결국 후손없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과유불급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부속지의 숫자가 너무 많은 것이 반드시 유리하지는 않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협각류는 협각을 독니로 발전시키거나 (거미류) 혹은 협각 옆의 더듬이 다리를 집게발로 진화 시켜 (전갈과 바다전갈류) 효과적으로 먹이를 잡을 수 있게 진화했습니다. 하지만 초기에는 이보다 더 다양한 디자인이 경쟁적으로 진화했다가 결국 가장 효과적인 것들이 살아남아 후손을 남겼을 것입니다. 따라서 하벨리아는 경쟁에서 사라진 디자인을 보여주고 있지만, 동시에 캄브리아기 대폭발 시기의 다양한 생물상을 보여주는 증거 가운데 하나인 셈입니다.
원문: 고든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