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판 위의 체스이자 야구’와 같은 휠체어컬링
9회 말 2아웃에서의 투구 하나를 앞두고 모두가 지켜보는 긴장감, 과연 넘어설 것인가 막아낼 것인가 양 팀이 숨죽이며 침을 꼴딱 삼키는 이 짜릿한 상황.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 경기 중 하나인 야구를 시청해본 적 있다면 모두들 이 긴장과 희열을 공감할 것이다.
사실 대다수의 스포츠는 숨을 한번 들이켰다 내쉴 사이의 속도로 경기의 승패가 결정된다. 그러나 반대편에는 마치 야구와도 같이 호흡을 깊게 갖고 전략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느림의 미학’가운데서 꽃피우는 신중함을 추구하는 스포츠도 있다.
이러한 ‘느림의 미학’이 여름과 가을 야구로 상징될 수 있다면, 겨울철 동계 스포츠 중에는 컬링이 있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에서도 역시 컬링과 휠체어컬링을 올림픽의 주요 종목으로 채택하여 경기를 진행할 예정이다.
서구 사회에서는 ‘빙판 위의 체스’라는 세계적 별칭을 갖고 있는 고도의 지능 스포츠 컬링.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체스보다는 야구가 더 익숙한 우리에게는 어쩌면 컬링의 그 긴장감 넘치는 매력이 9회 말 2아웃을 연상시키는 야구와 가깝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빙판 위의 야구’와도 같은 컬링, 특히 일반 컬링 종목보다 상대적으로 간소한 게임 규칙으로, 더욱 야구가 추구하는 야생적인 감각과 즉각적인 판단을 연상시키는 패럴림픽의 휠체어컬링.
과연 휠체어컬링은 어떤 종목일까? 대한민국 휠체어컬링 장애인 국가대표 선수들은 어떻게 평창 패럴림픽 출전을 준비하고 있을까? 이번 12월 칼럼을 통해 한국 휠체어컬링팀과 ‘빙판 위의 체스이자 야구’로 불리는 휠체어컬링 규칙 등 전반적인 사안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휠체어컬링 국가대표팀, 전 세계에 파란을 일으키며 등장하다.
마땅히 연습할 수 있는 휠체어 컬링장조차 국내에 전혀 없던 2010년 당시, 밴쿠버 동계 패럴림픽에 처음 출전한 대한민국 장애인 국가대표 컬링팀은 상당한 실력과 팀워크로 전 세계에 파란을 이끌었다.
단 첫 출전만에 은메달을 획득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단지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권 국가 전체에 있어 의미 있는 기록이었다. 이 대회에서 얻은 은메달은 휠체어컬링 불모지인 아시아권 최초의 메달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한국의 휠체어컬링이 마땅한 훈련 인프라도 갖춰지지 않은 실정이었음을 감안한다면, 갓 데뷔한 국내 대표 팀의 세계 정상급 휠체어컬링 성적은 더욱 놀랍지 않을 수 없다.
휠체어컬링 국가대표 선수들은 비수기의 수영장을 얼려 그 얼음판 위에서 휠체어컬링 연습을 하거나, 태릉선수촌의 컬링장에서 일정이 없는 새벽녘에 틈틈이 연습해 세계 경기에 출전해야만 하는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불완전한 과정 속에서 완전한 성숙함을 자랑한 대한민국 휠체어컬링팀의 경기력은 세계에 커다란 휠체어컬링팀의 탄생을 알렸다. 이를 통해 한국 휠체어컬링의 향후 잠재력과 그 가능성을 선보일 수 있었다.
특히 컬링 경기가 중, 장년층 사이에서 보편화되어있는 유럽권 사회에서는 컬링과 휠체어컬링을 모두 대중적인 스포츠로 인식하고 관련 경기 소식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권 국가에서는 컬링과 휠체어컬링 모두 생소한 스포츠 종목으로서 아직 대중들에게 크게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그들의 대단한 성적과 달리, 국가대표 휠체어컬링팀의 존재가 아직까지 크게 부각되지 않은 아쉬움이 남아 있다. 시설의 열악함, 지원의 열악함, 대중적 인식의 열악함 등 이 숱한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꽃피워낸 2010년의 기록은 사뭇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휠체어컬링 조명하기: 경기 방식에 대하여
컬링을 쉽게 표현하자면 빙판 위에 놓인 과녁(하우스)을 향해 스톤을 굴려 점수를 획득하는 경기라고 표현할 수 있다. 더욱 쉽게 요약하자면, 과녁을 향해 돌을 던져 가까이 포진시킴으로써 더 높은 점수를 획득하는 팀이 승리하는 경기이다.
이러한 컬링 경기의 모습을 보고 컬링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알까기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아주 다른 말은 아니다. 사실 컬링의 역사 또한 간단한 규칙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오래전 영국의 스코틀랜드 지방에서 얼음판 위에 돌덩이를 굴려 즐기던 간단한 놀이 방식이 발전해 오늘날 컬링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돌이켜보자면, 알까기보다는 번갈아가며 공격과 수비를 담당하는 공-수가 정해져있는 야구의 순서가 보다 더 유사해 보인다. 알까기는 단지 상대편의 돌을 판으로부터 다 낙하시키는 것만이 목적이지만, 야구는 정확한 투구를 통해 공격과 수비를 수행하고 그 과정에서 점수를 득점하거나 방어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컬링과 휠체어컬링의 득점 규칙은 복잡하지 않다. 차례로 스톤을 굴려 하우스의 정중앙을 향해 근접한 팀의 스톤만이 점수를 획득하는 간단한 방식이다. 따라서 상대팀은 서로 하우스에 근접하고자 하는 동시에, 상대팀의 스톤을 밀어내기 위해 투구의 전략을 신중하게 짜야 한다.
특히 휠체어컬링은 컬링 종목보다 투구 방식이 더욱 원초적이며 간단하다. 일반 컬링 종목은 빗자루와 같이 생긴 ‘스위퍼’를 이용하여 스톤이 굴러가는 빙판길을 수시로 닦으면서 빙판의 마찰력을 감소시키고 움직임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지만, 휠체어컬링은 스위퍼를 통한 제어 없이 오직 투구만으로 포석이 결정된다.
스위퍼를 생략한 이 방식은 장애인 선수들의 이동 제약을 고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스톤을 굴리는 것만으로 게임이 진행되는 방식은 마치 야구 경기에서 투수가 던진 공이 득점 승부를 좌우하는 단순한 방식과 같다.
휠체어컬링이 더 거칠다는 표현도 바로 이로부터 유래한다. 투구가 곧장 득점으로 이어지는 이 방식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휠체어컬링은 저항력을 줄이는 스위퍼 작업 없이, 거친 빙판 아래 스톤을 던져 원초적으로 승부하기 때문이다.
스톤을 던지는 선수는 총 4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네 명의 선수가 순서대로 스톤을 던지는데, 이러한 선수의 차례를 두고 리드-세컨드-서드-스킵 포지션이라고 호칭한다.
휠체어컬링에서 리드 선수는 처음 스톤을 투구하는 주자인 만큼, 첫 투구를 통해 빙판의 질을 파악하는 탐색꾼의 역할을 수행한다.
향후 우리 팀이 스톤을 던지는데 있어 어느 정도의 힘을 실어 어느 방향으로 던지는 것이 가장 적합한지를 직감적으로 파악하고 분석하는 임무를 담당하고 있다. 세컨드 선수와 서드 선수는 리드 선수의 정보를 바탕으로 득점에 신중을 기하는 골 결정력이 있는 선수들로 구성된다.
마지막으로 스킵 선수는 이 팀의 주장으로서, 모든 선수 중 가장 마지막으로 투구하는 만큼 하우스에 놓여있는 상대의 스톤을 밀어내거나 마지막 우리 팀 득점의 쐐기를 결정하는 막중한 역할을 맡고 있다.
쉽게 정리해보자면, 각 팀별 네 명의 선수들은 포지션에 따라 차례대로 스톤을 투구함으로써 하우스에 근접하여 점수를 획득하려고 하는 동시에, 상대방의 스톤을 밀어내어 득점을 저지하려는 두 가지 역할을 모두 수행하는 전략 스포츠이다.
야구의 ‘회’에 해당하는 휠체어컬링의 엔드는 총 8엔 드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 컬링 종목은 10엔 드로 구성되어 있지만, 휠체어컬링은 그보다 짧은 시간 동안 경기가 진행된다. 즉, 8엔드의 시간 동안 각 엔드마다 한 선수가 2개의 스톤을 던져 최종적으로 득점한 점수로 승패가 결정된다. 동점일 경우에는 엑스트라 엔드가 진행되기도 한다.
휠체어컬링을 더 뜨겁게, 더 거칠게 바라보기
그렇다면 휠체어컬링 종목에는 어떠한 선수들이 참가할 수 있을까? 휠체어컬링 선수로 등록하기 위해서는 선수가 지체장애를 수반하고 있어야 한다. 보다 정확한 기준은 다리 또는 걷는 데 상당히 명백한 장애가 있어야 하며 일상생활에서 휠체어를 사용하거나 이에 상당하는 자격 규정의 범위에 적합한 선수만이 참여할 수 있다. 즉, 전혀 이동을 못하거나 아주 짧은 거리만을 걸을 수 있는 지체장애인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일반 컬링은 남자 컬링과 여자컬링 등으로 성별에 따라 경기를 각각 진행하고 있지만, 휠체어컬링은 남녀 혼성으로서 반드시 팀에 여성 선수를 포함해야 하는 규정이 있다. 위 규정에 따라 선발된 평창 동계 패럴림픽의 대한민국 국가대표 장애인 컬링 선수는 리드 방문자, 세컨드 차 배관, 이동하, 서드 정승원, 스킵의 서순석 선수로 총 5명이 한 팀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서 설명한 위 국가대표 선수들은 오직 휠체어컬링 종목만을 위해 자신의 모든 역량을 바쳐 연습한 대한민국의 어벤저스 팀이라고 볼 수 있다.
가족과 가정이 있음에도, 집보다 훈련소에서 대부분의 날을 합숙훈련하며 오직 컬링의 경기력만을 위해 연구와 분석을 행한다. 그러한 방식의 연습을 지난 몇 년의 시간 동안 지속해온 대단한 선수들이다.
많은 스포츠 경기가 개인전의 성격을 보여, 한 명의 스타 선수가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는 것만으로 승패를 좌우할 수 있다면, 휠체어컬링은 한 팀이 하나가 되어 지성과 협력을 함께 펼쳐야만 승리할 수 있는 게임 방식이어서, 팀워크와 끈끈한 스포츠 정신을 요구한다.
뿐만 아니라, 경기장 밖에서 이들 선수를 지도하고 묵묵히 보조하는 박종철 감독을 비롯한 코치 스태프진의 노력이 더해져 국가대표 휠체어컬링의 숭고한 조화가 비로소 완성된다. 그들은 미끄럽고 차가운 빙판 경기장에 놓여 있는 동안, 서로를 믿으며 뜨겁고 단단하게 의지한다.
현재 국가대표 휠체어컬링팀은 1년 전에 개관한 대한 장애인 체육회 실천훈련원에서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2017년에 이르러 전용 휠체어 컬링장이 개관하여 선수들이 보다 연습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뿐만 아니라, IoT 기술을 적극 활용하여 경기장 내 카메라 설치 및 과학 장비들을 통하여 보다 체계적인 훈련 녹화와 과학적인 경기 분석이 가능하게 되었다. 비록 휠체어컬링이 상당한 대중적 인기를 안고 있는 종목은 아니지만, 상대적인 무관심 속에서 휠체어컬링 선수들과 관계자들은 휠체어컬링이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 정상 스포츠 종목에 오를 수 있도록 오늘도 실력 발전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휠체어 컬링은 뜨겁다. 그리고 거칠다. 그 어떤 경기보다 더 뜨겁고, 더 거칠다. 휠체어에 몸을 의존한 채 20킬로그램의 스톤을 투구하는 선수가 넘어지지 않도록 강한 힘을 보태주는 동료애와 신뢰는 뜨겁다. 지체장애의 제약으로 빙판짱을 깎는 스위핑을 할 수 없어, 불완전한 빙판 위 하우스를 향해 혼신 있는 투구를 던지는 선수의 자세는 야생적이고 거칠다.
다가올 평창 패럴림픽에서 진행될 휠체어컬링 현장을 향해 우리의 응원을 더해보는 것은 어떨까. 휠체어컬링 국가대표 선수들이 더 뜨겁고 더 거칠게 경기에 임할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