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을 따르거나 남들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왠지 좋지는 않다. 하지만 2017년의 나는 마블의 슈퍼 히어로 영화를 좋아하고, 보이 그룹 중 방탄소년단은 정말 뛰어난 팀이라고 생각하며, 롱패딩을 살까 고민중이다.
하! 그래도 애써 변명을 해보자면 마블은 영화가 아니라 코믹스만 한국에 나올 때부터 좋아했고(그리고 <토르> 시리즈 중에 그 재미없다는 1편을 가장 좋아한다), 방탄소년단은 데뷔곡 듣고 나서 이 팀이 서구 시장에서도 인기를 얻을 수 있겠다고 말했고(이 팀의 프로듀서에게 직접 말했으니 증인은 있다), 롱패딩은 몇 년 전부터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찾느라 아직까지 못 샀는데 사람들이 롱패딩을 입기 시작했다(이건 좀… 많이 구차하다). 선견지명이 있다는 건 아니지만, 어쩌다보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사람들이 먼저 좋아하게 됐다고 애써 변명하고 있다.
다만, 카카오의 캐릭터 라이언만큼은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이 갈기없는 사자를 알기도 전에, 이미 사람들이 이 캐릭터를 너무나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폰케이스를 라이언이 그려진 것으로 바꿀 때 즈음에는 카카오 캐릭터를 파는 카카오 프렌즈 매장 입구에 거대한 라이언 피규어가 있었고, 매장 벽은 라이언 인형으로 가득했다. 그런데도 라이언 폰케이스를 사고, 라이온 잠옷을 입고 자며, 살 수 있는 가장 큰 라이언 인형을 살지 진지하게 고민했으니 정말 인기 있는 것만 좋아하는 인간일까.
그래서 열심히 변명거리를 생각해 봤지만 이건 그냥 내가 라이언을 좋아한 거고, 다만 그 김에 왜 좋아하게 됐는지 생각해 봤다. 가장 빨리 수긍한 이유는 슬퍼 보인다는 거였다. 모두 알다시피 라이언은 이모티콘으로 쓰이는 캐릭터인데도 무표정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표정이 변치 않는 캐릭터인데, 그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냥 슬퍼 보인다. 왠지 사연있는 얼굴이랄까. 누군가 저런 표정이 되려면 무슨 일을 겪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얼굴. 게다가 기쁨을 표현하기 위해 변화 없는 표정으로 열심히 팔을 휘젓거나 손으로 하트를 만드는 모습을 보면 귀여워 웃다 짠해서 슬퍼지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겪곤 했다. 정말 귀여운데 짠하고 짠한데 귀여운 이상한 기분이었달까.
이모티콘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정말 희한한 경험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것이 카카오에서 어느 정도 원하던 반응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조금 놀랍기도 했다. 카카오에 따르면 라이언은 ‘갈기가 없어 콤플렉스가 많은 수사자’고, ‘둥둥섬을 탈출한 왕자’라고 했다.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이모티콘으로는 지나치게 깊고 우울한 설정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모티콘으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안겨준 셈이다. 이거야말로 비주류였던 것이 주류를, 독특한 요소가 범대중적으로 바뀐 것 아니겠는가!……라고 나름대로 변명이라면 변명을 하고 있었다. 역시, 구차하다.
그런데 카카오가 이제는 주류가 아닌 비주류, 중심이 아닌 주변의 감성을 좀 더 밀어붙이기로 했나보다. 카카오가 새로 내놓은 캐릭터 ‘니니즈’는 라이언이 갖고 있던 의외의 설정들을 더 강하고 분명하게 보여준 것처럼 보인다. 세계관과 캐릭터에 대한 소개부터가 ‘빙하와 눈으로 뒤덮인 미지의 스노우타운’에서 살고 있는 ‘너무나 귀엽고 무해해 보이는 녀석들!’인데, ‘과연 정말로 무해한 녀석들일까?’라는 한마디가 덧붙는다.
그리고 ‘니니즈’를 영어로 쓴‘NINIZ’는 해골과 뼈로 만들어져 있다. 브랜드 캐릭터가 이래도 될까 싶은 시점에서, 각각의 캐릭터 소개는 한 발 더 나아간다. 외계인 팬다는 ‘북극곰 사진을 보고 충격을 돌아가신 부모님의 원수’를 갚으려고 ‘지구상의 북극곰을 찾아서 혼내주는 것’이 목표고, 토끼인 스카피는 ‘원래는 극악무도한 북극곰’이었지만 ‘마녀의 애완 펭귄을 잡아먹고 저주를 받아’ 토끼가 돼 버렸다고 한다. 게다가 토끼는 초식동물인데, 스카피는 ‘출처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고기를 요리하는 레스토랑을 운영한다. 또한 쌍둥이 케로와 베로니는 추운 것이 싫어 밖에 돌아다니지 못하는 ‘펭귄’이고, 공룡 조르디는 ‘오랫동안 화석으로 살아온 탓에 화려한 과거의 경력이 인정되지 않아’ 취업 준비 중인데다 기생 버섯에게 육신을 조종당하고 있다. 여기에 초콜렛에 집착하는 하프물범, 자칭 탐정이라며 스노우타운의 사건들을 해결하려는 콥과 빠냐가 있다.
한마디로 모든 캐릭터가 살짝 정상이 아닌 부분들이 있고, 몇몇은 억눌린 한이 있거나, 자신의 정체성과는 다른 본능으로 인해 고생한다. 블랙 코미디라면 무척 좋은 설정이겠다. 하지만 카카오 같은 브랜드의 새로운 캐릭터라면, 이건 꽤 도박처럼 보이는 일이기도 하다.
게다가 ‘니니즈’의 캐릭터 비쥬얼은 기존 캐릭터들에 비해 훨씬 모험적이다. 무표정한 라이언만 해도 모험적인 시도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라이언을 비롯한 카카오의 캐릭터들은 기본적으로 똑 떨어지는 곡선과 화사한 색감으로 이뤄져 있었다. 말그대로 이모티콘에 무난하게 쓸 수 있는 귀여움을 기본적으로 장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니니즈’의 캐릭터들은 애초에 누군가 펜으로 직접 그린 것 같은 그림체를 가졌다. 무표정한 것은 기본이고, 때로는 음흉하거나 잔인해 보이기도 하며, 그들의 행동은 카카오의 기존 캐릭터에 비해 보다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카카오의 캐릭터가 스카피처럼 칼을 들고 음흉해 보이는 웃음을 지을거라 상상할 수는 없었다.
어떤 이들은 조금 위험해 보이거나, 불편해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니니즈’는 고쳐야할 부분은 있을지라도 그 방향은 계속 달려가 볼 필요가 있다. ‘니니즈’의 캐릭터들은 우울하거나 억눌려있거나 삐딱하거나, 또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정상적이거나 안정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있다. 굳이 왜 그래야하는지 묻는다면, 만족스러운 대답을 할 수는 없다. 다만 개인적인 이유에서, 라이언이 짠해서 좋아했던 것은 그 모습에서 일정부분 개인적인 어떤 것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라고 할 수는 있다. 지나친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것은 경계하고 싶지만, 라이언을 볼 때 스스로에게 무엇인가 말을 하게 되기는 했던 것 같다.
모두가 밝고 상냥하고, 좋은 생각만 하며 그런 모습들만 2D 캐릭터로 옮기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마음 한구석에 어둡고, 불안하고, 때로는 나쁜 모습들이 있다. 그 중에는 사회와의 공존을 위해서라도 바꿔야할 것들도 있겠지만, 그대로 놔두며 긍정 받고 싶은 것들도 있다. 라이언의 컴플렉스가 오히려 그를 사랑하게 만든 이유가 된 것처럼 말이다.
‘니니즈’의 캐릭터들도 마찬가지다. 부모를 잃어서 원수를 갚기 위해 북극곰을 혼내주겠다는 외계인 팬다를 보며 잔인한 바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소중한 사람을 잃은 슬픔을 발견할 수도 있다. 마법에 의해 자신이 믿고 있는 정체성이 부정당하는 존재에게는 어떤 슬픔이 있을 것인가. 열심히 살았지만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새로운 공부를 하며 취업을 준비해야 한다면?
‘니니즈’의 캐릭터들이 겪는 이야기는 사실 지금도 누군가 겪는 문제들이다. 물론 무해한 캐릭터도 좋다. 하지만 무해한 것만 표현하는 세상이란, 정작 사람과 세상의 응어리진 부분을 표현하지 못할 수도 있다. 카카오의 질문을 조금 바꾸면 이렇게 되지 않는가. 우리는 정말, 무해하기만 한가?
생각해 보면, 2000년대 초반에는 귀여운 캐릭터가 예상할 수 없는 요소들을 갖고 있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단적으로 ‘엽기토끼’가 있었고, ‘짱구를 못말려’의 짱구도 흔히 생각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당시 이런 흐름은 기존의 것을 뒤집는 것, 또는 새로운 것에 대한 바람과 함께 캐릭터에 인간의 또다른 현실을 집어넣을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웠기 때문이었다. 짱구의 시선으로 어른들을 보면, 힘든 현실을 얼마든지 재미있는 방식으로 펼쳐질 수 있다. 귀여운 캐릭터로도 얼마든지 다양한 현실의 이야기를 반영할 수 있다.
‘니니즈’가 과거의 흐름을 다시 되살리거나 할 필요는 없다. 다만 ‘니니즈’의 캐릭터들은 스노우타운에서 각자 물고 물리는 관계로 설정돼 있다. 그들은 서로를 싫어하거나, 집착하거나 하며 어찌됐건 같이 살아간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이다. 캐릭터를 통해 인간의 즐거운 모습만을 보는 것도 좋지만, 캐릭터가 단순화된 모습으로 나의 감추고 싶은 모습을 반영하는 것 역시 보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이 캐릭터가 선배격인 기존 캐릭터들에 비해 덜 사랑받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은 낯선 비주류가 미래에는 익숙한 주류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지금까지 자신이 공감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사람은 넷플릭스의 시트콤 <굿플레이스>처럼 모든 것이 완벽하고, 모두가 착한 사람들만 모여 있는 ‘좋은 곳’에서 살지는 않으니 말이다.
심지어 <굿플레이스>에서조차 주인공은 남들보다 좀 더 나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지옥에만 보낼 수 있을 만큼 악하다고는 할 수 없는 캐릭터다. 그리고 주인공은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게 되지만, 동시에 주변 사람들과의 영향을 통해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들과 공존하는 법을 배워간다. 대부분의 인간은 그렇게 좋기도 나쁘기도 하면서 산다.
그렇다면, 그들이 만들고 쓰는 캐릭터는? ‘니니즈’의 캐릭터들도 스노우타운에서 끊임없이 갈등을 겪겠지만, 결국 함께 살아가며 이해의 가능성을 얻게 되지 않을까. 심지어 그들은 이사할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캐릭터들이니.
다시 유행과 주류와 뜨는 것 등등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마블은 외계로 납치된 지구인과 생체 실험을 당한 라쿤, 살아 움직이는 나무가 주인공인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제작했다. 설정만 들었을 때 누군가는 미친 계획이라고 했을지도 모르지만, 이 시리즈는 이제 마블의 주요 히트작 중 하나가 됐다.
언젠가 ‘니니즈’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지만 결과적으로 의미있는 선택으로 남을지도 모를 일이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미련과 집착과 무지가 뒤섞인 인간의 면면을 캐릭터에 반영하는 것은 그 자체로 멋진 일 아닌가.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인간의 (‘악한’이 아닌) 못난 부분까지 사랑하는 방법이고 말이다.
그리고 카카오에게는 미안하지만, 반드시 ‘니니즈’가 큰 인기를 얻을 필요도 없고 말이다. 그럼 이건 ‘나만 좋아하는 캐릭터’가 되니 이젠 내 취향이 비주류라며 큰 소리칠 수 있는 일이다. 만약 뜨면? 그건 내 선견지명이다. 인간이 이렇지 뭐……라고 애써 변명해본다. 정말 구차하다.
조금은 삐딱한 니니즈의 숨길 수 없는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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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벤트 기간
12/12(화)~12/1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