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놀아야 행복하다.
이 사실에는 딱히 반론의 여지가 없다. 굳이 행복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를 찾아보지 않더라도 어디에서나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고, 실제로도 맞는 말이다. 인간에게는 일도 필요하지만, 놀이도 필요하다. 잘 놀아야 행복해지고, 소위 ‘열일’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도 얻을 수 있다.
삶의 여유와 낭만, 주관적 안녕감은 물론이요, 삶의 의미를 갖추는 데 있어서도 놀이는 무척 중요하다. 그래서 조금씩 바뀌어가는, 작금의 사회 분위기는 무척 다행스럽다. 한때는 오로지 일만 강조하던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했지만, 오늘날에는 일 못지않게 노는 것도 중요하다는 인식이 서서히 공감대를 얻어가고 있는 듯하다.
‘욜로(YOLO)’,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Work & Life Balance)’ 등의 용어는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과거에는 노는 것이 업무에 도움이 될 리 없다고 생각했겠지만, 오늘날에는 잘 노는 것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창의적이고 효율적인 업무 행위를 돕는다는 인식이 그럴듯해졌다.
급기야 직장에서 업무와 무관한 행동을 하느라 시간을 보내는 것을 지칭하는 ‘공허노동(empty labor)’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양적 노동시간의 팽창이 곧 업무 효율성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어떻게 놀지?
우리는 종종 착각한다. 일하는 것은 어렵지만, 노는 것은 쉽다고. 하지만 노는 것도 기술(skill)이며, 결코 얕잡아 볼만한 것이 아니다. 놀이에도 기술이 필요하며, 찾아봐야 할 것도 많다. 놀이에 관한 적절한 식견과 행동적 요령을 갖춘 상태여야지만 우리는 더욱더 흥겹게 놀이를 즐길 수 있다. 생각해보자. 가장 흔히 떠올리는 여가 활동 중 하나는 바로 ‘맛집’들을 찾아다니는 일이다.
하지만 연인과의 특별한 데이트 코스를 짜느라, 배우자를 위한 결혼기념일 만찬을 고민하느라, 친구들과 즐거운 저녁 식사를 준비하느라, 직장에서 상사들이 만족할만한 식당을 찾아보느라, 부모님을 위한 근사한 한정식집을 찾아보느라 한 번이라도 고생해본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소위 ‘맛집’ 찾는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가를 말이다. 인터넷에는 블로그 등 광고글이 넘쳐나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다. 여러 번 교차 검증을 하고, 가격대와 장소를 비교하고 하다 보면 금세 하루가 다 지나가고 만다.
영화, 문학, 미술, 음악 등 소위 감상을 위한 놀이들은 어떠한가? 물론 쉽게 접근할 수도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낄낄댈 수 있는 영화도 있고, 소설도 있다. 굳이 어려운 생각할 것 없이 내가 받아들이는 대로 음악이나 미술을 즐기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소위 각 분야에 일가견이 있다 하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말한다. 나 자신의 입맛대로 작품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지속적인 공부와 감상 경험 쌓기 등 약간의 노력이 더해진다면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이 두 배, 세 배 이상으로 즐거워질 것이라고 말이다.
한편, 우리는 여가 활동의 최고봉으로 종종 여행을 언급하지만 이 또한 어렵게 접근한다면 한없이 어려울 수 있는 분야다. 아무 계획 없이, 배낭 하나 훌렁 매고 떠나는 여행의 낭만 또한 멋지지만 ‘실패’를 맛보기 두려워하는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여행 계획’ 세우기에 몰두한다. 여행지 선정, 동선 및 이동수단 파악, 관광지와 먹거리 체크, 지출 계획 수립, 준비물 등등 제대로 갖추어 여행하자면 그야말로 준비할 것이 산더미다. 오죽하면 그런 노동들을 대신해주는 여행업 시장이 자리 잡을 수 있었겠는가.
잘 놀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생각보다 시간도 많이 들고 알아봐야 할 것도 많다. 그래서 우리는 ‘잘 노는 법’ 배우기를 주저하고 그것을 심심찮게 미뤄버린다. 그래서 우리의 소중한 여가 시간은 언제나 단조롭게 흘러가고 만다. 기껏해야 퀭한 눈으로 SNS 뒤적거리는 일, 술 먹는 일, PC/텔레비전 앞에 앉아 시간이나 때우다 조는 것이 고작이다.
다양한 여가 활동들을 통해, 보다 활기차고 색다른 방식으로 놀아야 행복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이 귀찮은 나머지 계속해서 ‘게으름’을 부리게 되고, 매일 똑같은 놀이만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흔히 직장에서, 학교에서 일하고 공부할 때만 게으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놀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게으름’은 나타날 수 있다.
물론 ‘놀이에서의 게으름’을 부리게 되는 이유가 비단 우리 자신들에게만 있다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지하다시피 놀이보다는 일(work)을 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쏟아붓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우리 자신의 의지가 아닌, 사회의 의지로. 그러다 보니 우선 ‘잘 노는 법’을 고민하기 위한 에너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가뜩이나 학교에서, 직장에서 머리 쓰느라 힘들어 죽겠는데 여가에 머리 쓸 시간은 더더욱 없다. 노는 일에까지 스트레스받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우리는 보다 더 쉽고 간단하게 우리 마음속 공허함을 달랠 수 있는 길들을 선택한다. 가령 우리는 직접적인 경험보다는 간접적인 경험으로나마 그 공허함을 달래는 데 익숙하다. 여행을 직접 가는 대신, 여행 가는 프로그램을 본다. 맛있는 음식을 직접 먹는 대신 밥 먹는 프로그램을 본다. 직접 공연장에 가서 음악을 듣는 대신 음악 프로그램을 ‘본다’.
그러나 한편으로 사회가 우리를 너무나 잘 길들였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유년기부터 근면성실의 가치를 하도 주입받다 보니, 그래서 노는 것을 죄악시하는 풍토가 만연해 왔다 보니 사람들이 부지불식간에, 노는 일에 시간 쏟기를 주저하게 되었다. 겉으로는 여가, 놀이의 중요성을 외치지만 정작 내면의 길들여진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노는 것은 ‘낭비’다. 네가 놀고 있는 이 순간, 경쟁자는 한 발자국 앞서 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창조적으로 놀기를 포기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노는 것에 충분히 공을 들이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는 너무 힘들기도 하지만, ‘왠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더 잘 놀기를 주저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비단 문제시되어야 할 것은 공허한 노동뿐만은 아닐 것이다.
‘공허한 여가’, ‘공허한 휴식’. 삶의 의미, 안녕감, 여유, 행복 등과는 아직 거리가 먼, 그저 약간의 마음 달래기에 지나지 않는 그런 시간들. ‘잘 노는 방법’에 대한 고민은 우리가 단순히 노는 시간의 양을 늘리는 것 못지않게 중요히 고려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문제를 비단 개개인만의 고민이 아닌, 사회가 함께 나서서 고민해야 할 문제로 여기고 싶다.
원문: 허용회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