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stion
저희 팀장님은 팀의 거의 모든 일을 혼자서 다 하려고 하세요. 큰 가이드라인만 제시해주고 팀원들에게 맡겨도 될 일을 세부 사항 하나하나까지 다 정해주시죠. 그리고 무슨 말끝마다 “내가 너희들을 믿고 어떻게 일을 맡기냐”라며 팀원의 역량이 안 돼서 일을 못 맡기는 것처럼 말씀하세요. 만약 누가 팀장님의 아이디어를 비판하거나 그것보다 더 좋은 제안을 내기라도 하면 자기 아이디어가 더 좋다는 것을 인정할 때까지 팀원들과 설전을 벌이십니다.
팀장님은 팀원들한테 지는 게 정말 싫으신가 봐요. 자기가 팀원들보다 모든 일을 다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팀원이 팀장보다 일을 잘하면 ‘청출어람’이라서 더 좋은 것 아닌가요?
Answer
그렇습니다. 팀원이 팀장보다 일을 잘하면 ‘청출어람’이라서 팀장 입장에서도 좋죠.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팀장님들이 아직까지는 많지 않으신 것 같아요. 왠지 모르겠는데 팀원들이 자기보다 일을 잘하면 자존심에 상처를 입으시는 분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잠깐 삼천포로 빠져 보겠습니다. 예전에 워크숍 가서 했던 게임을 하나 소개해 드리죠.
- 워크숍 사례 : 구슬이 가장 천천히 내려오는 구조물 만들기
워크숍 가면 이상하고 유치한 게임 많이 하잖아요. 전에 다니던 회사의 워크숍에서도 예외 없이 이런 놀이를 했었죠. 일명 ‘구슬이 가장 천천히 내려오는 구조물 만들기’ 게임.
룰은 간단합니다. 20명 정도 되는 부서원을 A팀과 B팀 둘로 나눈 뒤 각각 나무젓가락, 종이, 테이프 등을 주고 구슬이 굴러 내려오는 구조물을 만들게 하는 것이죠. 주어진 시간은 30분. 구슬을 굴려서 가장 천천히 내려오는 팀이 ‘위너’. 단, 구슬은 반드시 굴러 내려와야 합니다. 내려오다가 중간에 멈추거나 하면 바로 실격입니다.
A팀과 B팀 모두 부장급 이상의 팀장이 한 명씩 있었습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두 팀의 팀장이 완전히 상반된 행동을 보였습니다.
A팀장은 굉장히 적극적으로 게임에 참여하는 매우 ‘모범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브레인스토밍 회의를 거의 주도하다시피 했죠. 또한 구조물을 만들 때에도 팀원들을 일일이 지시하고 감독하고. 열심히 일하는 팀장의 전형이었습니다. 반면 B팀장은 ‘탱자탱자’ 했습니다. 중간에 두 번 정도 담배 태우시고 오고. 그러고 나서는 괜히 미안하니까 “너희들이 알아서 잘 할 테니까 나는 참견하지 하고 스파이 노릇이나 할게”하면서 옆의 팀 진행상황 염탐하고 오고. 옆의 팀 과자 쌤치다가 걸려서 직싸게 욕먹고.
과연 어느 팀이 승리했을까요? 그렇습니다. 팀장이 ‘탱자탱자’하던 B팀이 승리했습니다. 그것도 30초 이상의 큰 격차로. 참고로 저는 B팀원이었습니다.
승패를 가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죠. B팀원들이 전반적으로 더 똘똘했을 수도 있고. A팀원들이 전날 마신 술이 덜 깨서 더 많이 헤롱헤롱 댔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B팀이 A팀보다 운이 더 좋았을 수도 있고.
하지만 제 생각에 승패를 가른 결정적인 요인은 다름 아닌 두 팀장 역할의 차이였습니다. A팀은 팀장이 팀을 적극적으로 리드한 반면 B팀은 그렇지 않았죠. 아니, 팀장이란 분이 오히려 딴짓하고 다녔죠. 담배나 피우고. 그러다 보니 A팀은 팀장 한 명의 아이디어가 팀을 드라이브했으나 B팀은 팀장을 제외한 나머지 팀원들의 집단 지성이 팀을 드라이브했습니다. 그 결과 A팀은 팀장의 아이디어가 거의 다 채택된 반면 B팀은 여러 팀원들의 다양한 아이디어가 채택됐습니다.
게임을 마치고 그 시사점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는 시간에 팀장님 눈치가 보여 아무도 그렇게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저랑 같은 다음 두 가지 생각을 했을 겁니다.
- 제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팀장 한 명이 팀원의 집단 지성을 당할 수는 없다.
- 팀장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그 팀의 성과가 확연하게 달라질 수 있다.
워크숍 진행자는 아마 다른 의도를 갖고 이 게임을 진행했던 것 같지만, 저는 이 게임을 통해 ‘팀장의 역할’에 대해서 정말 큰 시사점을 얻었습니다. 지금부터 팀장의 역할에 대한 제 ‘51% 정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마 앞선 질문에 대한 답변도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팀장의 역할은 무엇인가?
1. 팀장은 팀원보다 일을 더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팀원과 다른 일을 하는 사람’
팀장에게는 팀원과는 다른 팀장으로서 고유의 업무가 있습니다. 가령 팀원은 팀장이 시키는 일만 제대로 해도 일단 기본은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훌륭한 팀원이라면 자기가 맡은 업무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어야죠. 반면 팀장은 기본적으로 팀 전체 업무를 관리하고 가이드라인을 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추가로 팀원이 놓쳤거나 아니면 미쳐 생각 못 했거나 하는 일들을 찾아서 해야 할 때도 있고요. 임원급 팀장이라면 회사의 새로운 먹거리가 될 만한 신규 사업을 발굴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은 팀장이 된 뒤에도 ‘팀장이 해야 할 업무’를 하는 대신 ‘자신이 잘하는 업무’를 계속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잘 하는, 아니 과거에 잘 했던 업무에 대해서는 자기가 그 어떤 팀원보다도 여전히 잘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만약 자기 팀원 중에 그 업무를 자기만큼 잘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라이벌로 생각하고 바로 견제에 들어가죠.
또 어떤 팀장님들은 팀 업무와 관련된 모든 사항에 대해서 팀장이 팀원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팀원 중에 누가 자기보다 더 많이 아는 것처럼 행동하면 이를 팀장에 대한 도전으로 생각하고 그를 짓누르려고 하는 분도 있죠. 실력으로 안 되면 권위로. 권위로도 안 되면 평가권으로.
그런데 실제로 팀원들이 모두 ‘뽀록’이 아닌 이상, 팀장님이 팀원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설사 자기가 한때 아무리 날고 기는 실력을 갖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업무에서 일정 기간 손을 떼고 있었다면 담당 팀원보다 더 잘할 수는 없습니다.
팀장으로서 반드시 명심해야 할 점은 팀장은 팀원보다 일을 더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팀원과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스포츠에 비유하자면 팀장은 선수가 아닌 코치입니다. 코치는 그 역할이 선수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선수가 못한다고 코치가 직접 경기에서 뛰면 안 되죠.
앞서 말씀드린 ‘워크숍의 B팀장’은 팀원과 확연히 다른 역할을 했습니다. 스파이 노릇한다면서 옆 팀 염탐을 하고 다녔죠.
2. 팀장은 스스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팀원들을 움직여 일이 되게끔 하는 사람’
팀장은 팀원들을 통해서 업무를 수행하고 성과를 창출합니다. 팀장은 어떤 과제가 주어졌을 때 ‘내가 이 일을 어떻게 완수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안 됩니다. 진정한 팀장이라면 그것보다는 ‘내가 어떻게 해야 팀원들이 신바람 나서 이 일을 완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보통 작은 팀은 팀장 한 명에 팀원 5명으로, 큰 팀은 팀원 10명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아무리 ‘슈퍼 팀장’이라고 하더라도 5~10명의 팀원을 합친 것만큼 일을 잘할 수는 없겠죠. 따라서 팀장이 얼마나 많이 알고 있고 얼마나 일을 잘 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팀원들의 잠재력을 얼마나 많이 끄집어낼 수 있는가’입니다. 합리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분이라면 본인이 일을 어떻게 할지가 아니라 본인보다 몇 배나 더 많은 팀원들이 일을 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서 만약 어떤 과제를 받으면 먼저 ‘이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팀원은 누구인지’를 결정한 뒤 다음으로는 ‘이 친구가 신바람 나서 이 일을 하게 하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만약 이 친구가 도움이 많이 필요하다면 적극 개입해서 ‘소방수’ 역할을 하고, 그렇지 않다면 개입하는 정도를 최소화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팀장님들이 자기가 모든 일을 다 하려고 합니다. 질문하신 분의 팀장님처럼 팀원들의 역량이 안 돼서 일을 못 맡긴다는 게 주된 이유죠. 하지만 팀장님이 나서면 나설수록 팀원들의 역량 개발은 요원해집니다.
팀장으로서 명심해야 할 두 번째 사항은 팀장은 스스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팀원들을 움직여 일이 되게끔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영화에 비유하자면 팀장은 배우가 아닌 감독입니다. 감독의 역할은 배우의 연기를 잘 살려주는 것입니다. 감독이 직접 연기를 하려고 하면 안 되죠.
앞서 말씀드린 ‘워크숍의 B팀장’도 스스로 일을 하는 대신 팀원들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분위기와 환경을 조성해 줬습니다. 자기가 있으면 아무래도 팀원들이 불편해할까 봐 자리를 비켜줬죠. 그러고는 담배 피우러 갔지만…
3. 팀장은 ‘팀을 리드하는 사람’이자 동시에 ‘팀을 서포트하는 사람’
팀장은 때로는 앞장서서 길을 뚫어줘야 하고, 때로는 팀원들이 전진할 수 있도록 ‘지원사격’을 해줘야 합니다. 팀장은 팀의 리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팀의 비전을 제시하고, 팀의 전략을 수립하고, 그리고 팀의 성과를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팀을 대표해서 회의에 들어가 보고하고, 팀을 대표해서 팀의 과실에 대해서 비난을 받습니다. 팀원들이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으면 “나를 따르라”며 앞장서서 길을 뚫어줘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팀의 리더가 아닌 서포터가 되어야 합니다.
팀장은 팀의 리더일지는 몰라도 팀의 주인공은 아닙니다. 주인공은 다름 아닌… 조금 진부한 표현처럼 들리겠지만, 팀원 모두가 주인공입니다. 매 r챕터마다 주인공이 바뀌는 조지 R. R. 마틴의 판타지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처럼 팀의 주인공은 매달 바뀔 수 있습니다. 이번 달에 김대리가 승진 대상이면 이번 달 주인공은 김대리이고, 다음 달에 오과장이 중요한 보고서를 발표하면 다음 달 주인공은 오과장이 되겠죠. 팀장이 회장님 보고가 잡혀 있으면 그때에는 팀장이 주인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팀장은 때로는 주인공이 그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김대리가 승진하고 오과장이 보고서를 잘 발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원자 역할을 하는 것이죠. 그리고 항상 팀원의 역량 개발을 위해 힘써야 하고 후계자를 양성해야 합니다. 만약 팀원이 성과 달성이 어려워 실의에 빠져 있으면 “내가 밀어줄게”라며 ‘지원사격’을 해주기도 해야죠.
하지만 개중에는 항상 주인공의 자리를 꿰차려고 하는 팀장님들도 있습니다. ‘팀장이 잘 되는 게 곧 팀이 잘 되는 것’이라는 이상한 논리를 앞세워 팀원들로부터 무한 희생을 강요하죠. 팀의 모든 성과를 독차지하기 위해 팀원의 노력은 은폐하고 본인의 기여는 침소봉대합니다. 이런 팀장이 있으면 팀원들의 모든 의욕을 잃겠죠.
팀장으로서 명심해야 할 마지막 사항은 팀장은 ‘팀을 리드하면서 동시에 서포트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오케스트라에 비유하자면 팀장은 연주자가 아닌 지휘자입니다. 지휘자는 확실히 교향악단의 리더이죠. 하지만 바이올린이 솔로 연주를 할 때에는 지휘자는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솔로 연주자에게 집중되도록 서포트해줍니다.
앞서 말씀드린 ‘워크숍의 B팀장’도 팀을 확실하게 서포트해줬습니다. 지금 팀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당분이라는 것을 깨닫고 옆의 팀 과자를 몰래 가져오려고 했죠. 비록 발각돼서 욕만 먹었지만…
마무리하며
경영 컨설턴트인 리즈 와이즈먼은 그녀의 저서 ‘멀티플라이어’에서 바람직한 리더의 역할을 설명하기 위해서 보노(Bono)가 한 다음 말을 인용했습니다.
“영국 수상인 윌리엄 글래드스톤을 만나면 누구든 수상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돌아갔다. 그러나 수상의 경쟁자인 벤저민 디즈레일리를 만나면 누구든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방을 나섰다.”
눈치채셨겠지만 리즈 와이즈먼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리더의 상은 벤저민 디즈레일리입니다. 팀장이 스스로를 낮추고 주변 사람들은 높여줄 때 팀원들의 잠재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습니다.
팀장님들도 잠시 본인을 잊고 팀원들의 능력을 극대화시키 위해서 노력해 보시지 않으렵니까?
원문: 찰리브라운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