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모자이크의 ‘What does it mean to be human?’을 번역한 글입니다.
비행기 창 밖으로 스페인 남단에서 지중해를 향해 비쭉 튀어나온 석회암 바위산인 지브롤터가 보였습니다. 헤라클레스의 기둥 중의 하나였고 한때는 지구의 끝을 상징했으며, 그리스의 선원들은 이 바위 넘어로는 항해하지 않았습니다. 그 곳에는 미지의 대륙 아틀란티스가 있다고 믿었지요.
2016년 여름, 지브롤터는 21세기 판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지리학적으로는 스페인의 일부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영국에 속해 있기 때문에 브렉시트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것입니다.
7제곱킬로미터도 되지 않는 이 작은 지역에는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습니다. 이 곳은 사실 지난 수천 년 동안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습니다. 고대 유럽인들에게는 세상의 끝을 보기 위해, 페니키아 인들은 대서양으로 나서기 전 축복을 받기 위해, 그리고 카르타고 인들은 아프리카에서 새로운 세상을 찾아 이 곳으로 왔습니다.
하지만 내가 이 곳을 찾은 이유는 그보다도 훨씬 오래 전 이곳에 살던 이들 때문입니다. 3만 년에서 4만 년 전, 해수면이 지금보다 많이 낮았고 기후는 빙하기를 넘나들던 때입니다. 새와 같은 동물들은 생존을 위해 더 따뜻한 남쪽으로 향했고 여러 동물들이 멸종했습니다. 생존을 위해 버티던 대형 동물들 중에는 사자와 늑대, 그리고 적어도 두 종 이상의 인간이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 ‘현생 인류’와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우리의 사촌인 네안데르탈인입니다.
이들 원시 인류를 연구함으로써 우리는 바로 지금의 우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경험이 오늘의 우리를 만들었고, 그 경험 속에 아마 우리가 오늘날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들, 곧 당뇨에서 우울증에 이르는 질병의 해답이 숨어있을 것입니다.
고고학자인 클라이브와 제랄딘 핀레이슨은 고고학자들이 몰만한 오래된 차를 가지고 나를 호텔로 데리러 왔습니다. 이 작은 반도의 특징에 맞게 그들의 모습 역시 전혀 달랐습니다. 클라이브는 창백한 피부에 은발의 머리를 가지고 있었고 스코틀랜드 출신이었습니다. 제랄딘은 올리브색 피부에 검은 머리였고 나폴레옹의 정복을 피해 떠났던 제노바인 출신입니다. 우리는 매우 다양한 외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우리와 정말로 다른 종의 사람들이 살았던 지역을 방문하려 하고 있습니다.
과거 얼마나 많은 인간의 종(species)이 있었는지, 그리고 인종(race)은 얼마나 다양했는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여러가지 증거들은 60만 년 전 즈음, 불을 쓸 줄 알고 간단한 석기와 동물의 뼈를 도구로 사용하며 집단으로 대형 동물을 사냥하는 한 인간 종이 아프리카에서 발생했음을 말해줍니다. 호모 하이델베르그로 알려진 이들은 50만 년 전, 주기적으로 아프리카를 녹지로 만들었던 기후 변화의 잇점을 활용하면서 점차 유럽과 아시아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러나 30만 년 전, 유럽으로의 진출은 끝났습니다. 이는 아마 심한 빙하기 때문에 생긴 사하라 사막을 이들이 더 이상 넘어가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지리학적 분리는 진화에 의해 유전적 차이로 이어졌고 서로 다른 인종이 탄생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같은 종이었고 서로 교배가 가능했습니다. 아프리카에 남아있던 인종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곧 ‘현생 인류’가 되었고 더 추운 북유럽에 적응한 이들은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 그리고 우리가 유전학을 통해 대략적으로만 알고 있는 여러 인종들이 되었습니다.
약 6만 년 전, 현생 인류 일부가 아프리카를 벗어나던 시점에서 네안데르탈인들은 시베리아에서 스페인 남부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현생 인류는 네안데르탈인과 만났고 종종 그들과 교배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네안데르탈인의 게놈으로 알 수 있으며 나를 포함한 모든 오늘날의 유럽인들은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를 일부 가지고 있습니다. 이미 유럽의 환경에 적응했던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우리 조상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 도움을 주었던 것일까요?
절벽을 따라 나 있는 좁은 터널로 차를 몬 우리는 군 초소에 당도했습니다. 클라이브는 경비병에게 증명서를 보여주었고 우리는 공원 내부로 들여보내졌습니다.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운 우리는 낙석으로부터 머리를 보호할 헬멧을 쓰고 절벽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철제 계단은 우리를 60미터 아래의 좁은 해변으로 안내했습니다. 파도가 조약들 사이로 몰려왔고 바위 위를 걸으며 우리는 길을 찾았습니다.
나는 갑자기 절벽의 동굴을 발견하고 놀라 발을 헛디딜까봐 발걸음에 최대한 집중했습니다. 마침내 우리는 흰 절벽 면에 난 커다란 물방울 모양의, 안으로 들어가면 더 넓어지는 형태의 고람 동굴(Gorham’s Cave)에 도착했습니다. 지붕이 매우 높게 솟아 있어 마치 성당 처럼 생긴 이 지형은 네안데르탈인이 수 만 년 동안 거주하던 곳입니다. 과학자들은 이 곳이 네안데르탈인의 마지막 피난처였다고 믿고 있습니다. 약 3만 2천 년 전,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지면서 우리는 이 지구의 유일한 계승자가 되었습니다.
나는 입구에 있는 한 바위에 앉아 한때 나와 별로 다르지 않은 어떤 이들이 이 자리에 앉아 지중해와 아프리카를 보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지브롤터에 도착하기 전 나는 내 조상을 찾아주는 유전자 검사를 받았습니다. 내가 시험관에 침을 뱉어 보내자 그들은 내 유전자 중 1% 가 네안데르탈인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아직은 이보다 더 많은 정보를 말해주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나는 이 사실이 건강에 어떤 의미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이 지적이며 다양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내게 그들의 유전자를 물려주었고 나와 그렇게 가깝다는 사실은 무척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들이 살던 공간에 앉아 이제 그들 중 누구도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어쩌면 그들이 아닌 우리 인류가 멸종하고 네안데르탈 여성이 지금 이 자리에 앉아 그녀의 멸종한 사촌을 생각하게 되었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만들었고, 우리 인간이 극히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과 함께 나를 묘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했습니다.
고람의 동굴은 거처로 삼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25년 간 이 동굴을 꼼꼼하게 조사해온 클라이브는 네안데르탈인이 살던 시대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이야기합니다. 해수면은 훨씬 낮았고 바닷가를 향해 넓은 사냥터가 펼쳐져 있어, 네안데르탈인들은 바위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목표물을 찾고 서로에게 신호를 보냈을 것입니다. 풀숲과 호수, 습지는 새, 사슴, 그리고 다른 동물들의 서식처였을 것입니다.
오른쪽의 반도 끝은 해안가로 이어지며 조개가 풍부했고 석기를 만들기에 적절한 수석이 쌓여 있었습니다. 클라이브는 이 곳이 아름다운 풍경을 가졌을 것이라 말합니다. 주변의 다른 동굴까지를 포함해 이 지역은 아마 지구에서 가장 많은 네안데르탈인이 살았던 지역일 것입니다.
“네안데르탈인들의 도시였지요.”
동굴 깊숙한 곳에서 클라이브의 연구팀은 불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더 안쪽에는 잠을 자는 동안 하이에나, 사자, 표범 등의 동물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그들은 조개, 솔방울, 식물, 올리브를 먹었습니다. 대형 동물과 새를 사냥했습니다. 지금은 바닷속으로 잠긴 이 지역에는 여러 담수 호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유 시간에 앉아서 생각을 했습니다. 그저 살아남기에 급급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클라이브와 제랄딘은 고람 동굴에서 네안데르탈인의 예술작품을 비롯한 그들의 문화를 나타내는 여러 증거들을 발견했습니다. 바위에 새겨진 ‘해쉬태그’ 형태는 ‘기록’이 시작되는 초기 모습일 것입니다. 네안데르탈인이 보온을 목적으로 한 의복 외에 검은 깃털 겉옷이나 머리 장식을 만드는 등 일종의 의식을 치루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이들이 아프리카에서 나온 우리 조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회적 삶을 살았음을 의미합니다.
클라이브는 다양한 종류의 석기와 뼈, 동물의 머리뼈를 보여주었습니다. 나는 화살촉을 한 손에 쥐고 같은 기술이 생물학적으로, 문화적으로 서로 비슷하지만 한편으로는 전혀 다른 이들에게 수만 년 동안 이어졌다는 것을 생각하며 놀라움을 느꼈습니다. 유럽의 다른 네안데르탈 유적지에서는 13만년 전으로 추정되는 독수리 발톱 목걸이와 얼굴을 꾸미기 위해 쓰였을 황토분을 담은 조개껍질, 그리고 죽은 자를 묻기위한 묘지가 발굴되었습니다.
이들은 아프리카 바깥에서 진화하면서 더 어려운 환경에 적합한 능력과 문화를 발전시켰을 것입니다. 클라이브가 말했습니다.
“현생 인류가 중동에는 7만 년 전, 호주에는 5만 년 전에 도착했다는 점을 생각해보세요. 이들이 유럽에 도착하는데 그보다 훨씬 더 시간이 걸린 이유가 뭐겠어요? 나는 네안데르탈인이 매우 뛰어났고, 그 때문에 현생 인류가 유럽에는 진출하지 못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3만 9천 년 전, 네안데르탈인은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근친 교배로 인해 유전적 다양성이 줄었고 급격한 기후 변화로 인해 거주지를 잃게되자 이들의 수는 극히 줄었습니다. 이들이 삶의 중심으로 삼았던 숲이 많이 사라졌고, 비록 도구를 만들고 기술을 익히는 지능을 가졌음에도 이들의 육체는 새로운 기후와 지형에 맞는 사냥 기술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유럽의 일부 지역에서는 단 한 세대의 시간 사이에 울창한 숲이 사라지고 나무 한 그루 없는 평원으로 바뀌었습니다. 넓은 평원에서 단체로 대형 동물을 사냥하는데 익숙했던 현생 인류는 이런 변화에 쉽게 적응했습니다. 누 대신 순록을 잡으면 되었고 사냥법은 사실상 동일했습니다. 하지만 네안데르탈인들은 숲에서 살아가던 이들이었습니다.”
“정반대의 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지요. 만약 기후가 더 습해지고 따뜻해졌다면, 이 시점에서 네안데르탈인이 현생 인류의 흔적을 찾게 되었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 그리고 아직 우리가 파악하지 못한 다른 인류의 유전자 유산은 지금도 유럽인과 아시아인 속에 살아 있습니다. 우리는 평균적으로 1%에서 4%의 네안데르탈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며, 이들이 모두 동일한 유전자가 아니기 때문에 전체 인류를 따지면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 중 약 20%가 오늘날에도 존재합니다. 이는 매우 높은 수치이며 이때문에 연구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현생 인류가 유럽에서 살아 남는데 어떤 이득을 주었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다른 인종과의 교배는 실제로 그 환경에서 자연 선택 과정을 통해 특정한 특성을 진화시키는 것보다 해당 환경에 유용한 유전자를 얻는 훨씬 빠른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새로운 지역을 여행할 때 백신을 미리 맞아 면역력을 높이는 것처럼 네안데르탈인 역시 새로운 환경에 맞게 우리 면역 체계를 강화시켰을 수 있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 중 많은 것들이 피부와 머리카락에 포함된 단백질인, 곡류에 포함되어있으며 염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케라틴과 관계가 있습니다. 아마 네안데르탈인은 분명 빨간 머리였을 것입니다. 이런 눈에 보이는 차이는 우리 현생 인류에게 성적인 신호로 작용했을 수 있고, 그들의 더 거친 피부 역시 더 춥고 더 어두운 유럽의 환경에 어떤 잇점을 주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 중 유익하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 유전자들은 크론 병에 더 잘 걸리게 만들며, 방광 질환과 2종 당뇨병, 우울증 등도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와 관계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지방을 대사하는 과정에 영향을 주어 비만의 위험을 높였으며 담배에 중독되기 더 쉽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위의 질병의 직접적 원인은 아니지만, 이 질병과 관계되는 위험 요소로 작용합니다. 그럼 어떻게 우리는 이런 유전자를 수천 세대 동안 계속 유지하게 되었을까요?
이는 우리가 네안데르탈인과 교배하는 기간 동안 그 유전자들이 유용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수렵채집으로 살아가던 시절, 혹은 초기 농경시기에 우리는 종종 기아의 위험을 겪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당뇨병의 위험을 주는 유전자가 기아의 상황에서는 생존에 도움이 되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모든 것이 풍족해진 시대에는 고열량 음식 때문에 우리는 부작용을 더 크게 느끼게 된 것입니다. 어쩌면 이런 숨은 위험을 통해 이제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는 서서히 인간의 유전자 풀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이 우울증과 탐식 유전자를 우리에게 남겼다면, 또다른 고대 인류는 오늘날 파푸아뉴기니 등에 살고 있는 멜라네시아인들에게 유용한 유전자를 남겼습니다. 현대 유럽인과 아시아인이 네안데르탈인과 교배하던 무렵, 멜라네시아인들의 조상은 우리가 그렇게 잘 알지는 못하는 데니소바인과 교배했습니다.
데니소바인의 유전자는 낮은 산소농도에서의 신체 반응을 변화시켜 멜라네시아인들이 높은 고도에서 살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어떤 유전학자들은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인종이 전세계 여러 인류의 유전자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네안데르탈인과 다른 고대 인류와의 교배는 분명 오늘날 현대 인류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나는 런던 출신이지만 다른 영국 여자들보다 조금 더 어두운 피부색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나의 아버지가 원래 동유럽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류는 전 세계 각 지역에서 그 환경에 맞게 이런 매우 미묘한 피부색의 차이, 얼굴의 형태, 머리카락 등을 진화시켜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다른 인종과 지난 3만 2천 년 동안 교배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중국의 한족이나 아프리카 반투족과 매우 다른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유전적으로 사실 우리는 극히 유사합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 현대 인류 두 명의 유전자 차이는 두 침팬지의 유전자 차이보다 극히 적습니다.
현대 인류가 이렇게 유사한 것은 과거 어느 시점에서 우리가 수 백 가족으로 줄어들 정도의 멸종 위기를 겪었기 때문입니다. 이때문에 우리는 서로 다른 종으로 분화하기에는 너무 동일한 종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수 천 년 동안 우리는 지리적으로, 어떤 경우에는 문화적으로 다양성을 증가시켜 왔습니다. 분리된 집단에서 작은 유전적 문화적 차이의 효과는 확대되기 마련이며, 5만 년 전 우리 조상이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건너온 이후 이런 이들은 여러 번 일어났습니다.
내 유전자 분석 결과, 나의 하플로그룹(haplogroup)은 H4a입니다. 하플로그룹은 미토콘드리아 DNA 의 돌연변이를 의미하며 이는 모계를 따라 유전되므로 이론적으로 아프리카의 최초의 인류까지 추적할 수 있습니다. H4a는 유럽인과 서아시아인들에게 많이 발견됩니다. 유전자 분석회사는 내가 워렌 버펫과 같은 그룹에 속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돌연변이가 어떤 경로로 내게 유럽인의 특징을 전해주게 된 것인지를 알기 위해 나는 다른 연구자를 찾았습니다.
“나는 러시아 사람 한 명, 유카기르 족 한 명, 그리고 개들, 총, 덫, 음식 약간과 차 조금만을 가지고 헬기에서 내렸습니다. 우리는 인간이 살고 있는 지역 중에는 지구에서 가장 추운 곳인, 영하 50도 까지 내려가는 지역에서 음식과 모피를 구하고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에스케 윌러슬레브는 20대에 6개월을 시베리아에서 덫 사냥꾼으로 살았습니다. 그의 쌍둥이 동생인 레인 역시 그와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그들이 10대일 때 부친은 종종 그들을 스칸디나비아 북쪽 라플란드 야생 지역에서 스스로 몇 주 동안을 살아남도록 훈련시켰습니다. 이 경험은 그들이 툰드라 극지와 그곳 사람들에 대한 열정을 가지게 만들었고 마침내 더 오랜 시간 동안의 모험을 이들은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베리아는 훨씬 더 힘든 환경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꿈 같은 것이죠. 하지만 내가 겪었던 일들 중 가장 힘든 경험이었습니다.”
이 경험은 두 형제에 크게 영향을 미쳤고, 두 사람은 지난 5만 년 동안 극지에서의 생존이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 지를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에스케는 유전학을 공부했고 고대 유전자 분석 연구의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덴마크 자연사박물관의 지리유전센터(Center for GeoGenetics) 센터장인 그는 70만 년 전 말의 유전자를 분석함으로써 가장 오래된 유전자 분석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그린랜드에 살았던 4천 년 전 사카크 인의 유전자를 분석함으로써 최초로 고대인의 유전자를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고대인의 유전자를 계속 분석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초기 인류가 유럽과 그 너머로 이주하는 과정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하고 있습니다. 에스케는 나의 조상에 대해 어떤 사실을 말해줄 수 있는 가장 적임자입니다.
하지만 나는 먼저 그의 쌍둥이인 레인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는 인문학을 선택했고 문화인류학을 전공했으며 아르하우스 대학의 교수로 있습니다. 그는 에스케의 유전학적 접근이 내가 가진 질문에 모든 답을 줄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생물학과 문화 사이의 관계는 결코 원만하지 않습니다. 자연과학자들은 어떤 사람들이 과거에 있었는지를 밝힐 수 있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가설이 공격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가설은 그들이 어떤 생각을 했고 그들의 문화가 어떠했는지를 전혀 말해주지 않습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나는 에스케를 만나러 갔습니다. 식물원 1층에 있는 그의 유쾌한 사무실은 작은 해자가 딸린 성의 맞은편에 있었고, 과학자가 일하기에 이보다 더 나은 공간은 없을 듯 했습니다. 레인과 헤어진 지 몇 시간이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그와 쌍둥이인 에스케를 만나 인사하는 일에는 어딘가 어색한 면이 있었습니다. 일란성 쌍둥이는 유전적으로, 육체적으로 동일합니다. 오랜 시간 뒤에 그들이 남긴 유전자로 그들을 추적한다면, 그들을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아마 그들이 두 명이었다는 사실 조차 알지 못할 것입니다.
에스케는 문화적 관점의 증거를 모으기위해 점점 더 많은 고고학자들과 일하고 있다고 말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전자 분석은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알 수 없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만약 몇몇 지역에서 동일한 유물을 발견한다면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이 유물은 이를 만든 이들이 여기 살았다는 뜻일까? 아니면 그저 교환을 통해 이를 얻었다는 뜻일까? 그리고 아주 비슷한 유물을 발견했을 때에는 이런 질문이 있습니다. 이들은 두 지역에서 동시에 비슷한 문화를 발전시켰을까? 아니면 이들이 서로 만났던 것일까?”
“예를 들어, 한 이론은 수 천 년 전 아메리카에서 동시대 유럽의 석기와 비슷한 석기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아메리카를 처음 밟은 이들이 아메리카 원주민이 아니라 대서양을 건넌 유럽인이라고 주장합니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우리는 이 석기가 수렴진화의 결과이며, 이 석기를 사용한 이들이 유럽인과 무관한 이들이었음을 밝혔습니다.
그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이었습니다. 적어도 이동의 문제, 곧 사람들이 이 곳에 직접 왔을지, 아니면 그저 문화가 전달되었을지를 결정해야 하는 문제에서 유전학은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매우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에스케의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연구는 우리의 기존 상식을 모두 깨뜨렸습니다. 한때 우리는 아메리카 원주민이 베링해를 건넌 동아시아 인들의 후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2013년 에스케는 중앙 시베리아 지역 2만 4천년 전 소년의 유전자를 분석해 그가 고대 유럽인과 동아시아인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이자 아메리카로 건너간 이들의 후손임을 보였습니다. 이제 아메리카 원주민의 조상은 동아시아 뿐 아니라 유럽으로도 이어집니다.
그럼 나의 조상은 누구일까요? 나는 유전자 분석회사가 알려준 H4a 하플로타잎 결과를 에스케에게 말해주었고, 이 사실이 내가 유럽인임을 의미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비웃는듯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어요. 유전자 분석의 문제는 모든 집단을 분석할 수 없고 또 언제 돌연변이가 생겼는지를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는 점이죠. 가능한 오차 범위가 너무 크고 돌연변이 비율에 대한 추정도 많이 필요합니다.”
“고대 유전학(genetics)과 고대 유전체학(genomics)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한 개인에 대해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자 여기 5천 년전의 시대에 우리는 도착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보이나요? 이 사람들은 그 특정 유전자를 가졌나요?’”
오늘날 우리가 고대인의 유전자를 분석할 때마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유럽인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실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창백한 피부는 햇빛이 덜 비치는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그리고 추위를 피해 옷을 입게 되면서 부족해진 비타민 D를 보충하기 위해 진화했다고 우리는 믿어왔습니다.
하지만 창백한 피부를 유럽인에게 전해준 것은 키가 크고 갈색눈을 가진 훨씬 남쪽에 살았던 얌나야인(Yamnaya)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들과 만나기 전까지는 북유럽인들은 어두운 피부였고 생선을 먹어 비타민 D를 보충했습니다.
젖당에 대한 내성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유럽인의 90%는 우유를 소화할 수 있는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으며 과학자들은 이 유전자가 북유럽의 농경문화에서 발생해 긴 겨울 동안의 생존을 도왔을 것으로 추측해왔습니다. 하지만 에스케는 농경 문화 이후인 청동기 시대 수 백 명의 유전자를 분석해 이 이론 역시 사실이 아닐 수 있음을 보였습니다.
“우리는 유럽인들에게 젖당 내성 유전자가 전혀 존재하지 않음을 알아냈습니다. 이 유전자는 지난 2천 년 사이에 나타난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젖당 내성 유전자 역시 얌나야인이 가져온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들은 유럽의 농경민족에 비해 우유에 대해 약간 더 높은 내성을 가지고 있었고, 따라서 이들이 유럽인의 유전자 풀에 젖당 내성 유전자를 더했을 것입니다.
아마 2천 년 전 쯤 인구가 급격히 감소한 일이 있었고 이 때문에 그 유전자가 크게 퍼졌을 것입니다. 바이킹의 전설 중에는 화산 폭발 때문에 태양이 검게 바뀐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때 인구가 크게 줄었고 젖당 유전자가 널리 퍼졌을 수 있습니다.”
고대 유전체학의 진정한 가치는 인류의 기원에 대한 우리의 호기심을 채워주는 것을 넘어 오늘날 여러 집단에 나타나는 서로 다른 질병의 비밀을 알려주는데 있습니다. 생활습관이나 사회적 요소를 포함하더라도 어떤 집단은 다른 집단에 비해 당뇨병이나 HIV 에 특히 취약합니다. 이 이유를 밝히는 것은 우리가 질병을 더 효율적으로 치료하는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인간이 홍역이나 감기와 같은 감염에 대한 저항력을 가지게 된 것은 농경문화라는 새로운 생활습관에 따라 다른 사람 및 동물과 가까이 살게 되었기 때문으로 여겨져왔습니다. 유럽인들은 농경을 일찍 시작했지만 아메리카 원주민은 그렇지 못했고 이때문에 유럽인은 아메리카 원주민이 가지지 못한 질병에 대한 면역이 있었으며, 또한 아메리카 원주민이나 중국인보다 당뇨와 비만의 위험이 더 높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스페인의 한 수렵채집인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그는 자신이 접한 적이 없는 몇 가지 병원균에 대한 유전적 저항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즉, 유럽인과 어떤 집단은 다른 집단들이 가지지 못한 저항력을 일찍부터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정말 유럽에서 농경이 일찍 시작되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어떤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요?
에스케의 5천 년 전 사람들에 대한 유전자 분석 결과는 또한 유럽과 중앙 아시아에 기존의 상식보다 3천 년 먼저 대규모 역병이 돌았음을 보였습니다. 이들이 분석한 해골의 약 10%가 역병의 증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스칸디나비아 인과 북유럽인 일부는 다른 어떤 이들보다도 HIV에 대한 높은 저항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HIV 저항력이 그 때의 역병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농경이나 가축화와 같은 우리의 문화는 생각보다 우리 유전자에 영향을 덜 미쳤을지 모릅니다. 그저 임의로 발생하는 유전자 돌연변이가 오히려 우리의 문화를 결정하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돌연변이가 발생하며, 이들이 집단에서 퍼져나간다는 사실, 그리고 이 돌연변이가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과 질병에 대한 저항력,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음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너무나 명백합니다. 우리의 조상은 아프리카를 떠난 뒤에도 끊이없이 진화했으며 그 흔적을 계속해서 우리의 유전자에 남겨왔습니다. 우리 또한 지금도 진화하고 있습니다.
지브롤터 박물관에는 두 명의 네덜란드 고고학 예술가들이 만든, 그 지역에서 발견된 증거를 바탕으로한 실제 인간 크기의 네안데르탈 여성과 그녀의 손자 상이 있습니다. 그들은 옷을 입고 있지 않지만 목걸이와 머리에 깃털 장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네 살 정도 난 아이는 당당하게 서서 관람객에게 웃음을 짓고 있는 할머니의 품에 안겨 있습니다. 나와 그들이 유전자를 나눠 가졌다는, 그들과 내가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어색한 느낌을 받으며 나는 클라이브에게 현생 인류가 네안데르탈 인을 대체한 것이 우리가 그들보다 더 나은 문화를 가졌기 때문인지 물었을 때 그가 한 말을 떠올렸습니다.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대체했다는 것은 일종의 인종주의입니다. 매우 식민지적인 사고방식이에요.”
그는 말을 이었습니다.
“당신은 그들이 마치 다른 종인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구요.”
원문: 뉴스 페퍼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