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stion
제 팀장님은 그냥 이유 없이 화내요. 어떤 날은 보고서를 제대로 읽어보시지도 않고 화부터 내신 뒤 다시 해오라고 하세요. 그래서 다음날 기분 좀 좋을 때 가면 이번에는 잘했다고 칭찬하세요. 보고서는 바뀐 것 없이 그대로인데요. 또 어떤 날은 정말 별것도 아닌 일로 트집 잡아서 혼내요. 이때 말대꾸하면 히스테리컬한 반응까지 보여요. 이럴 때는 어떻게 하죠?
Answer
기분 참 씁쓸하시겠어요. 아무 이유 없이 깨지는 것만큼 억울한 것도 없죠. 아니, 이유가 없는 건 아니죠. 팀장님께서 그날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게 이유라면 이유겠죠. 타당한 이유가 아니라서 문제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이처럼 특별한 잘못도 없는데 깨지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학창 시절 일부 이상한 선생님과 무식한 선배님들로부터의 부당한 폭언. 남자들의 경우 군 복무 시절 가학적인 성향이 있는 것으로까지 의심되는 일부 고참들로부터의 이유 없는 폭행. 직장 역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사회이다 보니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직장생활 14년 차인 노 부장에게 전해 들은 에피소드를 말씀드리죠. 생생한 현장감을 전하기 위해 노 부장 1인칭 시점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노 부장의 에피소드 1: 깨질 때 안 깨지면 후환이 있다
제가 D그룹에 근무할 당시 저는 계열사인 A사와 B사를 담당하는 속칭 ‘계열사 담당’이었습니다. 사장님의 지시사항을 계열사에 ‘하달’하고, 계열사의 주요 이슈를 사장님께 보고하는 게 주된 임무였죠. 그런데 문제는 제가 맡은 회사가 모두 재무적으로 심히 어려운 회사였다는 겁니다. 입사하자마자 맡은 A사는 제가 담당하기 약 한 달 전부터 재무적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입사 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B사가 재무적 위기에 빠졌고, 그러자 B사마저 제게 맡겼습니다. 경력직이고 직급이 높다는 이유로 ‘위기 회사 전담 처리반’처럼 된 거죠. 억울했지만… 뭐, 어쩌겠어요. 그러던 어느 날 새로 부임하신 사장님께서 팀장님과 저를 부르셨습니다. 사장님은 저를 보자마자 고래고래 소리부터 지르면서 혼내셨습니다.
“아니, B사가 위기에 빠지도록 계열사 담당은 뭐 했어? 그렇게 일하고 월급 받을 자격 있어?”
순간 울컥했죠. 입사하자마자 어려운 회사들만 골라 맡아 고생은 고생대로 하는데 격려는 못 해줄 망정 혼부터 내시다니… 그래서 말씀드렸습니다.
“B사가 위기에 빠진 것은 제가 입사하기 전이었습니다.”
사장님은 순간 당황하셨고 제 옆에 계셨던 팀장님은 사색이 되었습니다. 사장님은 머쓱하신 듯 “그래? 그건 몰랐네. 자네는 B사 말고 또 무엇을 맡나?” 질문하셨고 팀장님은 떨리는 목소리로 “A사도 함께 맡습니다.”라고 대신 대답해 주셨죠. 혹시나 제가 또 말실수할까 봐 그러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사장님은 ‘옳다구나!’라는 표정을 지으시더니 데시벨을 한층 더 높여서 저를 혼내셨습니다.
“아니, A사가 위기에 빠지도록 계열사 담당은 뭐 했어? 그렇게 일하고 월급 받을 자격 있어?”
저는 또 울컥했죠. 그래서 또 사장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씀드렸습니다.
“A사가 위기에 빠진 것도 제가 입사하기 전이었습니다.”
이번에는 팀장님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얘졌습니다. 사장님은 한 10초 동안 아무 말씀 안 하시다가 툭 내뱉으셨습니다.
“알았어. 나가봐.”
그로부터 일주일 후 사장님께서 전 부서원을 불러 모아놓고 말씀하시다가 갑자기 저를 깨기 시작하셨습니다. 한 3분 동안 저만 깨시더군요. 왜 혼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하찮은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일주일 전에 깨려고 하실 때 깨져드리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의 표출로 이해됩니다.
노 부장의 에피소드 2: 깨질 때 깨져드리면 가까워질 수 있다
역시 같은 회사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이번에는 부사장님이 정말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으며 저를 깨기 시작하셨습니다. 발단은 제 보고서에 있는 ‘런칭’이라는 표현 때문이었습니다. 영어로 ‘launching’이라는 단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일반적인 표기법인 ‘론칭’ 대신 ‘런칭’이라고 썼는데 부사장님은 그게 좀 거슬리셨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무식해요. 아니, 대학 나오면 뭘 해? 국어도 모르는데. 영어로 ‘launching’을 ‘런칭’이라고 쓰는 무식한 사람이 어딨어요? 당연히 ‘론칭’이라고 써야죠. 이런 기본적인 상식도 없는 사람들이 보고서를 쓰니까 문제예요. ‘Launching’에서 모음은 ‘어’랑 ‘오’의 중간쯤인데 ‘어’ 보다는 ‘오’에 더 가깝지. 이 발음을 ‘어’로 표기한 사례가 단 한 개라도 더 있으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집니다. 혹시 그런 사례가 있나요?”
부사장님은 그 보고서를 쓴 사람이 저라는 것을 마치 모르시는 것처럼 저를 앞에 앉혀둔 채 말씀하셨습니다. 순간 두 가지 사례가 제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하나는 며칠 전 부사장님께서 재미있게 보셨다고 추천해주신 영화 〈어거스트 러쉬(August Rush)〉였고 또 하나는 부사장님께서 마시고 계시던 커피(coffee)였습니다.
“예, 있습니다. 바로 부사장님께서 지금 마시고 계시는 ‘커피’입니다. ‘코피’가 아니라 ‘커피’요.”
답변이 목구멍까지 올라와서 깔딱거렸지만, 그 당시 이미 이 회사 짬밥 먹은 지 1년이 넘었을 때였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이 말씀드렸죠.
“죄송합니다. 올바른 표현으로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지적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부사장님은 그다음부터 제게 참 잘해주셨습니다.
제안
그럼 지금부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제 ‘51% 정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제안은 주변에서 흔히 보는, 천성이 악하지는 않지만 본인 감정을 컨트롤할 능력이 조금 부족해 본의 아니게 실수하는 상사들에 한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앞서 군대 고참처럼 가학적 성향이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분들이나 운전 기사님들께 상습적으로 폭언을 해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모 대표님 같은 분들까지는 포함하지 않습니다.
다음은 직장인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착각과 실제 현실입니다.
- 흔한 착각: 직장 상사가 나를 깨려는 이유는 ‘내가 잘못했기 때문’이다.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더 이상 나를 깨지 않고 오히려 오해한 것에 대해서 미안해할 것이다.
- 실제 현실: 직장 상사가 나를 깨려는 이유는 ‘나를 깨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도를 이루지 못하면 직장상사는 불쾌해하면서 자신의 의도를 방해한 나를 원망하게 된다.
물론 내가 큰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진정 마음 아파하면서 잘되라는 좋은 뜻으로 깨는 경우도 가끔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깨질 만한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도 특별한 이유 없이 억울하게 깨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아니, 특별하다면 특별하다고 할 수 있죠. 말도 안 될 만큼 특별한 이유죠. 부서 군기를 잡기 위해서. 기 싸움에서 나를 누르기 위해서. 자기 상사한테 당한 것을 화풀이하려고. 자기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또는 그날따라 그냥 기분이 안 좋아서.
이처럼 직장상사가 어떤 의도를 갖고 나를 깨려고 할 경우에는 일단 그분 의도대로 깨져드리세요. 안 그러면 노 부장처럼 나중에 별것도 아닌 일로 훨씬 더 심하게 깨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자기가 하지도 않은 잘못까지 모두 떠안으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만약 내 책임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려고 한다면 일단 깨진 다음에 정중한 자세로 조심스럽게 말씀드리는 게 좋습니다. 노 부장처럼 사장님의 말씀이 다 끝나기도 전에 ‘사장님께서 잘못 아셨네요’라는 식으로 따지는 투로 말씀하시지 마시고요. 더 현명한 방법은 본인이 직접 변명하지 않고 함께 있는 동료가 대신해주는 것입니다. 노 부장의 경우에는 동석하셨던 팀장님께서 대신해주시는 것이죠. 물론 이것도 일단 깨진 다음에 하는 게 더 좋습니다.
직장상사는 일단 나를 신나게 깬 다음 ‘자신의 뜻을 이룬 데 대한 만족감’과 ‘그 뜻을 이루는데 순순히 응해드린 팀원에 대한 고마움’을 함께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내가 아무런 잘못도 없이 깨진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자기 뜻을 이루는 과정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팀원에 대한 미안함’까지 갖게 되겠죠. 만약 직장 상사가 깨려고 하는데 깨지지 않는다면? 그럼 나는 ‘그분의 의도를 방해한 괘씸죄’에 걸려서 언젠가 작은 실수에 꼬투리 잡혀 백배천배 더 심하게 혼날 수도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 독사 같은 상사한테 제대로 찍혀 회사 생활 종칠 수도 있고요.
정말 억울해서 못 참겠다 싶으면 어떡하죠? 아니면 몇 번 참아 드렸더니 만만하게 보여서 정말 시도 때도 없이 나만 가지고 뭐라고 한다면? 화가 나서 밤에 잠도 안 오고 화병 날 것 같으면? 그래도 그 순간만은 참으시는 게 좋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는 가급적 충돌을 피하세요. 나중에 일대일 면담을 신청하셔서 ‘이런이런 행동은 삼가 주셨으면 좋겠다’고 정말 정중하게 말씀드리세요. 만약 올바르게 사고하는 상사라면 이해해주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으니까 신중하게 판단하십시오.
그렇게 직장생활 하면 억울해서 열불난다고요? 그런 거 다 참을 수 있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도인이라고요? 그냥 일종의 게임이라고 생각하세요. 어린아이 응석받아주는 것처럼 ‘직장상사 응석받아주는 게임’. 속으로 ‘에구에구, 우리 새끼 우쭈쭈’ 하세요. 그게 마음 편합니다. 어린아이는 귀엽기라도 하지 직장상사는 징글징글하지만. ‘우리 새끼 우쭈쭈’가 아니라 ‘X새끼 우이씨’지만.
Key Takeaways
- 직장 상사가 나를 깨려는 이유는 ‘나를 깨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도를 이루지 못하면 상사는 불쾌해하면서 자신의 의도를 방해한 나를 원망하게 된다.
- 따라서 직장상사가 깨려고 하면 일단은 그분 의도대로 깨져드려라. 안 그러면 나중에 별것도 아닌 일로 훨씬 더 심하게 깨질 수 있다. 자기변호는 끝까지 다 깨진 다음에 정중한 자세로 조심스럽게 하라.
- 그냥 일종의 게임이라고 생각해라. 어린아이 응석받아주는 것처럼 ‘직장상사 응석받아주는 게임’. 그게 마음 편하다.
추신
이 글을 읽으신 뒤 심기가 조금 불편하신 분도 계셨을 것입니다. “상사의 부당한 갑질을 왜 받아줘야 하느냐?”라고 반론하실 수도 있습니다. “처세보다 실력으로 인정받는 사회를 만들어야지 왜 얄팍한 처세술을 강조하느냐?”라고 비판하실 수도 있고요. 다 맞는 말씀이고 동의합니다.
저도 상사의 부당한 갑질은 청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처세보다 실력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되어서 능력 있고 일 잘하는 사람이 공정하게 평가받는 세상이 오기를 바랍니다. 저도 지향하는 바는 제 글에 비판적인 생각을 갖고 계신 분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만약 차이가 있다면 그 지향점에 도달하는 방식에서 조금 차이가 있을 뿐이죠.
직장을 다니며 깨달은 점은, 아무리 지향점이 정당하고 올바르더라도 지향하는 바를 향해서 직진만 하면 정말 험한 꼴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후회는 없습니다만 아쉬운 점은 많습니다. 저도 한때는 ‘달걀로 바위 치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건 달걀만 힘들어지는 일이더라고요. 이 한 몸 바쳐서 기업문화 바꾸려고 했는데 결국 나만 조직 부적응자 되는 ‘살신성인’이랄까요?
직장상사의 갑질이 사라지고 처세보다 실력이 더 인정받는 세상이 오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그런 변화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런데 직장에서는 그런 변화를 상향식(bottom-up)으로 하기 어렵습니다. 위에서부터 하향식(top-down)으로 해야지요. 결국 누군가가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그런 변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따라서 제 생각에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내 힘을 키우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최대한 내 나와바리를 넓히고 적어도 내 나와바리 안에서만은 그런 불합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좋은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좋은 문화가 다른 조직으로도 확산되겠죠. 그런 위치에 오르기까지는 매우 안타깝지만 때로는 우회하고 때로는 본의 아니게 타협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도 있습니다. 상사의 불합리한 지시도 참아드리고 억울한 일도 마음속으로 삭일 인내심도 필요합니다. 그래야지만 내가 지향하는 바를 이룰 위치에까지 오를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제 제안이 극단적인 부류의 상사분들에게까지 다 적용될 수는 없습니다. 개중에는 정말 비상식적인 행동을 상습적으로 일삼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심지어 앞서 말씀드린 군대 고참처럼 가학적인 성향이 있는 것으로까지 의심되는 분들도 계시죠. 아니면 그냥 천성이 악하거나 인성이 덜된 분들. 운전 기사님들께 상습적으로 폭언을 하셔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모 대표님 같은 분들도 계시죠. 이런 분들의 폭언까지 모두 참고 견디며 인고의 세월을 보내라는 말씀은 절대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천성이 악하지는 않지만, 본인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이 아직은 조금은 부족해 본의 아니게 실수하는 상사들의 경우에 한해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욱하는 성격 때문에 순간 버럭 하시는 분들.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다 보니 가끔씩은 팀원들에게 화풀이하시는 분들, 아니면 정말 사소한 오해를 해 실수로 팀원을 혼내시는 분들. 어쩌면 tvN 드라마 〈미생〉의 오 과장님 같은 분들이죠.
이처럼 청산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야 하지만 때로는 나를 힘들게 하는, 어찌 보면 ‘조금은 불쌍한’ 상사분들의 ‘그 당시 부당하게 보이는 처사’에 대해서 지혜롭게 대처하자는 얘기입니다. 나도 언제 또 그런 입장이 될지 모르잖아요.
제 경우는 정말 혼날 일을 하지 않았는데 전 부서원 앞에서 억울하게 깨진 일도 있었습니다. 상무님께서 사무실 군기를 잡기 위해서 고참 부장인 저를 본보기로 전 부서원 앞에서 깨신 것이죠. 순간 욱했지만 상무님 입장을 이해 못한 것은 아니었기에 아주 깔끔하게 깨져드렸습니다. 이처럼 ‘다소 불순한 정치적 의도’를 갖고 깨시는 상사까지도 현명하게 대처해야 할 범주에 너그럽게 포함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이상한 상사분 만나서 억울한 일 당하신 분들께는 제 글이 누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의 아픔까지 담기에는 아직 제 경험이 많이 부족합니다. 그런 억울한 경우까지 마음속으로 삭이면서 참으라는 말씀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 글을 읽고 이렇게 말씀하신 분도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민족의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 힘쓰신 많은 분도 그런 식으로 생각했다면 우리나라 독립을 이룰 수 없었겠죠”라고. 이건 지나친 비약입니다. 직장상사 중에는 상종하지 못할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훨씬 더 많습니다. ‘소악’이 있고 ‘거악’이 있고 ‘더불어 살지 못할 거대악’이 있습니다. 이 정도는 구분해서 해석해야지요. 직장상사한테 깨지는 것과 일제시대 폭정을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확대 해석하면 이 세상에 할 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허구한 날 술만 마시고 들어와서 자녀를 학대하는 부모도 공경해야 하나요? “같은 반 학생들과 사이좋게 지내라.” 삥 뜯고 동급생 폭행하는 아이와도 사이좋게 지내야 하나요? “동물을 학대하지 말아라.” 광견이 나를 물려고 덤벼드는데 가만히 있어야 하나요? 이처럼 상대편의 말을 확대 해석하면 끝도 없습니다. 평범한 말도 정말 이상한 말이 될 수 있습니다.
“모두들 세상을 바꾸려 들지만 스스로를 바꾸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라는 대문호 톨스토이의 말씀을 인용하며 제 글을 비판하신 분도 계셨습니다. 제 글은 톨스토이의 이런 위대한 말씀에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의 글이 아닙니다. 직장이라는 거친 세파에 모질게 치이면서도 가족과 생계를 위해 하루하루 근근이 버텨나가는 저 같은 직장인을 위한 소박한 글입니다. 우리 시대의 영웅을 기대하며 쓴 글은 더더욱 아닙니다.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다른 사람도 저처럼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에서입니다. 제 알량한 처세술을 자랑하기 위해서 아니냐고 말씀하신 분도 계셨는데 저는 처세술에 능한 사람이 절대 아닙니다. 처세술에 능하지 못해서 높은 자리에까지 오르지도 못하였고요. 술도 못 하고 음주가무에도 약합니다. 좋은 뜻으로 쓴 글, 좋은 뜻으로 해석해주셨으면 합니다.
원문: 찰리브라운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