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적으로는 모두가 똑같이 ‘게으름’이라는 문제로 괴로워하지만, 사실 각자가 경험하고 있는 게으름들은 결코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다. 즉 우리는 누구나 게으름을 경험하지만, 동일한 원인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쉽고 재미있게 만드는 요령에 대해 잘 몰라서, 즉 일처리에 대해 서툴러 결과적으로 게으름으로 빠지고 만다. 누군가는 내면에 아직 풀리지 않은 심리적인 장벽 때문에 결국 게으름을 만들어낸다. 완벽에 대한 강박, 실패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 자신의 능력에 대한 불신이나 과신 등 게으름과 맞닿아있는 심리적 원인들이 제법 있다. 혹 누군가는 게으름에 빠지기 쉬운 환경적 요인 덕에 그렇게도 게으름을 피운다. 이들은 종종 억울함을 호소한다. 나는 공부할 준비가 다 되어 있었는데, 그래서 열심히 하려고 마음먹고 자리에 앉았는데 친구들이 자꾸 오늘만 놀고 내일부터 하자고 꼬드긴다고.
여러 가지 게으름을 만들어내는 원인들 가운데, 내가 특강에서 즐겨 설명하는 주제는 ‘일처리 요령’에 관한 것이다. 사실 굳이 개개인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수고를 들이지 않더라도, 단지 일하는 방법, 공부하는 방법을 조금 손보는 것만으로도 즉각적으로 게으름 극복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일처리 요령’에 대한 팁을 전달하는 것은 1회성으로 진행되는 특강의 주제로 알맞다. 특히 나는 일을 ‘재미있게’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그때 소개하는 것이 바로 여러 가지 보상(reward)의 위력에 관한 것이다.
핵심을 요약하자면 나를 기쁘게 해줄 수 있는, 크고 작은 여러 가지 보상들을 아낌없이 발굴하고 그것을 일과 함께 능수능란하게 버무릴 수만 있다면 충분히 지금보다 더 부지런한 자세로 즐겁게 일을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행동주의(Behaviorism)
보상이 인간을 어떻게 춤추게 하는가? 라는 문제를 심리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주제다.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마음(mind)의 존재를 열심히 부정했던 사람들이다. 관찰 가능해야 하고, 측정 가능해야 하며, 반복 검증이 가능해야 비로소 과학적 학문인 심리학의 연구 대상이 될 수 있을 터인데,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이 정녕 그러한 요건들을 충족시키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짙은 의심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릇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빛깔도, 형태도, 맛도, 소리도, 향기도, 촉감도 가지고 있지 않은, 불확실하기 짝이 없는 대상인데 그런 것이 어떻게 과학적 연구 대상이 될 수 있겠느냐는 논리였다. 그래서 그들은 오로지 겉으로 관찰 가능한, 인간의 행동에만 주의를 기울였다. 외부 자극을 맞은 인간은 어떤 반응을 생산해 내는가? 행동주의 심리학의 주요 관심사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더 이상, ‘나는 행동주의 심리학자요’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마음 연구의 복권(復權)을 외치며 야심 차게 등장한 인지혁명(cognitive revolution)으로 인해 ‘대세’ 였던 행동주의 심리학이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이 줄곧 지켜왔던, 심리학의 과학성에 대한 굳건한 신념과 그 열정만큼은 오늘날 모든 심리학자들의 가슴속에 뿌리 깊게 남았다.
그리고 행동주의 심리학은 ‘학습(learning)’이라는 현상에 대한 불세출의 업적을 세상 속에 남겨 놓았다. 파블로프의 개 실험으로 상징화된 고전적 조건 형성이나 스키너의 조작적 조건 형성 개념은 유기체가 새로운 행동 패턴을 어떤 방식으로 습득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남겨주었다. 특히 스키너는 그의 저작 『월든 투(Warden two)』를 통해 학습에 관여하는 보상(reward)과 처벌(punishment)이 얼마나 강력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그 자신의 무한한 애정과 신뢰를 가감 없이 드러내었다.
인간은 절대로 ‘보상’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
물질적인 보상이든, 심리적인 보상이든, 외재적 보상이든, 내재적 보상이든, 무언가를 얻기 위한 보상이든,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보상이든, 당장 눈앞에 있는 보상이든, 저 멀리 놓여 있는 보상이든 인간은 온갖 종류의 보상을 목표로 내달리게 되는 존재다. 인간은 종종 온갖 추상적인 관념을 위시하며 그 자신의 존재 가치를 동물 그 이상으로 격상시키길 꿈꾼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갈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결국 인간은 동물이다.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보상에 민감하다. 보상을 주겠노라며 뇌 안쪽에 자리 잡고 있는 보상회로(reward circuit)를 살살 건드려주지 않는다면 게으름 극복은 먼 나라의 이야기일 따름이다. 문제는 해야만 하지만 막상 하자면 귀찮고 하기 싫은 일들이, 좀처럼 우리에게 ‘보상’으로 다가오는 일이 없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하기 싫은 일을 ‘보상’으로 탈바꿈시키고, 결국 그것으로 우리의 보상회로를 자극시킬 것인가? 게으름을 극복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풀어야 하는 문제다. 결과적으로 행동주의 심리학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귀중한 조언을 들려준다. ‘접착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말이다. 즉, 우리의 보상회로를 자극하는 온갖 보상들을 발굴하고 그것을 하기 싫은 일에 가져다 붙이는 방식으로 행동조건화에 나서는 것. 그것이 게으름 극복을 위한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파블로프의 개 실험을 기억하는가? 맛있는 음식을 주면 개가 침을 흘리게 될 것은 당연지사다. 그런데 맛있는 음식을 받아먹을 때마다 종소리가 들렸음을 기억하게 된 개는, 결국 맛있는 음식 없이 종소리만 울릴 때도 침을 질질 흘리게 된다. 한편 스키너의 조작적 조건 형성에 관한 통찰은 새롭게 학습된 행동 패턴을 어떻게 강화하거나 줄일 수 있을지에 대해 중요한 힌트를 제공한다. 사실 이론적으로 엄밀히 따지고 들어가자면 매우 복잡해지지만, 여기서는 이 한 문장만 기억하자.
보상(reward)은 행동 빈도를 늘려주고, 처벌(punishment)은 행동 빈도를 줄여준다.
게으름을 극복하기 위해, 일을 어떻게 하면 보다 재미있는 활동으로 만들 것인가? 다음과 같이 정리해보자. 알코올, 담배, 설탕, 게임, 친구와의 수다, 쇼핑, 여행 등은 우리의 보상회로를 곧잘 건드린다. 하지만 공부나 업무는 도통 우리의 보상회로를 못 건드린다. 그렇다면 고전적 조건 형성 원리에 따라 먼저 하기 싫은 일에 하고 싶은 일을 ‘보상’이라는 이름으로 접착시키는 일부터 진행하자. 즉, 크고 작은 보상들을 적극적으로 학업계획, 업무계획 곳곳에 삽입하는 것이다. 조건 반사적으로 덜컥 하기 싫은 일을 바로 실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매력적인 보상을 스스로에게 약속해주자.
한편 이렇게 만들어진 ‘일하는 행위’, ‘공부하는 행위’는 이제 반복되어야 하고, 습관으로 정착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참고할 만한 것이 바로 조작적 조건 형성의 원리다. 바람직한 행위에는 지속적으로 보상을 주입해주고, 그것을 방해하는 행위에는 지속적으로 처벌을 가해 행동 빈도를 조절하는 과정이 이어져야 한다.
뻔한 이야기 아닌가? 보상, 처벌 이런 것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사실 그것은 오히려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떡 하나라도 더 주어야 사람이 움직인다는 것, 그리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억제하려면 어떤 방식으로든 처벌적 조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다. 보상 및 처벌 메커니즘의 이해는 아마 인류의 탄생과 함께 줄곧 이어져 온,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지혜일 터이다. 사실 파블로프나 왓슨, 스키너 등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의 공헌은 아주 먼 옛날부터 인류가 직감적으로 이해하고 늘 써먹어 왔던 지혜들을 이론적으로 구축하고 체계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보상과 처벌 기제를 통해 인간이 어떻게 조건화될 수 있는지를 실험적으로 보여준 것이 거의 전부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들의 의의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들은 학습 메커니즘을 공식화하고, 품질 보증 마크까지 제대로 찍어준 것이다. 인간을 움직여 일을 하게 만들려면 이것 만한 것이 없음을 제대로 입증해준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보상과 처벌의 중요성을 얼마나 가슴 깊게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있는가? 단지 문서화된 하나의 지식으로만 받아들이고 있는가? 아니면 살아 숨 쉬는, 생활의 지혜로 대접하고 있는가?
우리는 일을 할 때면 계획(plan)이라는 것을 세운다. 일간 계획, 주간 계획, 월간 계획 등 단위를 늘렸다 줄였다 하며 열심히 일 계획을 세워나간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일 계획 세우는 정성만큼, 보상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짜 놓은 계획표를 들여다보면 ‘해야 할 일’들만 한가득이다. 크고 작은 성과 달성 과정마다 나한테 구체적으로 무슨 보상들을 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쓰여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니 일들이 재미없게 느껴질 수밖에.
거창하게 계획을 세워둘 때까지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보상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도 없는지라, 그 이후부터 계획표를 꺼내 보는 것은 결코 유쾌한 경험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점점 계획표를 보는 것을 멀리하게 되고, 결국 이전과 같은 무계획적인 삶으로 돌아갈 일만 남게 될 따름이다.
원문: 허용회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