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New York Times의 「Losing It in the Anti-Dieting Age」를 번역한 글입니다. 「다이어트 안 하는 시대 1」에서 이어집니다.
물론 저는 비만 주간 콘퍼런스에 가서 살쪄도 괜찮다는 말을 하고 다니지는 않습니다. 처음 시작한 이래 비만 주간은 점점 규모를 늘려 어느덧 일주일 동안 계속되는 대규모 산업 박람회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회의에 참석해야 하는 포스터와 헤어진 뒤 저는 박람회장에서 행사에 참가한 비만 전문가들에게 소개하려고 사람들이 내놓은 제품들을 살펴봤습니다.
신형 압박붕대를 소개하는 동영상을 봤습니다. 배에 차는 이 압박붕대는 뱃살을 쉽고 단단히 조여주면서 위의 일부분을 밀어 올려줍니다. 위가 작아지면 당연히 먹는 양도 줄어드는 원리를 활용해 식욕을 억제하는 제품입니다. 환자의 위에 직접 삽입한 뒤 뱃속에서 부풀어 올라 마찬가지로 위의 공간을 차지해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작은 풍선을 직접 시연해 보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식습관을 개선하고 나면 언제든 다시 뱃속에서 빼낼 수 있는 풍선’이라고 제품을 홍보하던 사람은 말했습니다.
정확히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도무지 입에 익지 않는 슈퍼푸드로 만든 스무디도 마셨습니다. 한 업체는 자기들이 고안한 수분 보충과 식단 조절법을 소개하면서 글을 읽는 독자들이 기발한 방법에 환호할 거라고 요란스레 홍보했습니다.
“태피, 잘 아시죠? 저런 마술 같은 방법은 애초에 없어요.”
제게 스무디를 따라준 사람이 말했습니다. 스무디까지 얻어 마셨는데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줘야 하는 게 예의에 맞겠다고 생각하던 저는 그 말에 동의를 표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포스터가 회의에 참석하러 가기 전, 저는 사실 비만 주간을 보고 있으면 어딘가 슬퍼진다고 포스터에게 털어놨습니다.
먼저 이곳에는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인데 저를 비롯한 많은 비만인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만 취급하는 이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그 똑똑한 사람 수백 명이 각자 연구하고 고민을 거듭해 내놓은 해결책이라는 게 고작 슈퍼푸드 레시피나 식습관 교정, 뱃속에 집어넣는 풍선, 아니면 위절제술 같은 것에 불과하다면 결국 제대로 된 해결책이라는 건 없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포스터의 생각은 다른 듯했습니다.
“글쎄요, 저는 이 방을 찬찬히 둘러보다 보면 희망을 보기도 하는걸요.”
오프라 윈프리가 웨이트 워처스와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한 시점은 제가 다이어트를 시작한 지 25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저는 15살 때 《셰입(Shape)》라는 잡지에서 다이어트에 관해 읽은 뒤 곧바로 다이어트에 입문했습니다. 당시 저는 키 160cm에 몸무게 50kg이었죠.
그리고 몇 년 동안 꾸준히 장 세척을 비롯한 해독 레시피를 따르며 주기적으로 식욕을 억제하는 다이어트약을 세 번씩 먹었습니다. 점심때는 직접 갈아 만든 셰이크 두 잔을 먹고 저녁때까지는 물, 과일, 단백질과 탄수화물 중에도 좋은 탄수화물 외에는 절대 아무것도 먹지 않았죠(마치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처럼 탄수화물에도 좋은 탄수화물과 나쁜 탄수화물이 있습니다). 저녁으로는 제 한 손으로 움켜쥘 수 있는 양 이상의 음식은 먹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레몬을 탄 미지근한 물 두 잔을 먹으면 끝이었습니다. 비슷한 결심을 한 사람끼리 모인 자리에 나가 이렇게 자기소개를 한 적도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태피라고 합니다. 저의 가장 큰 문제는 식탐을 억제하지 못한다는 점이에요.”
손가락을 목구멍에 억지로 집어넣어 구역질을 하고 먹은 것을 억지로 토해내기도 했습니다. 어림짐작으로 그렇게라도 하면 살이 빠지지 않을까 기대했죠. 사우스 비치 다이어트, 애트킨스 다이어트, 슬림패스트만 먹기 등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이해가 빠르실 수도 있겠네요. 아마존 웹사이트에 들어가면 최근 검색과 구매 기록을 토대로 맞춤형 광고가 나오죠. 최근 제 맞춤형 광고는 『최면요법 위장 밴드(Hypnotic Gastric Band): 수술 없이 살 빼는 새로운 방법』이라는 책과 CD였습니다. 비만 치료용 수술과 마찬가지 효과를 낸다는 최면요법에 관한 책인 것 같습니다.
아니면 이렇게도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웨이트 워처스 본사를 방문했을 때 저는 당연히 취재차 갔던 것이지만, 직접 체험해봐야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다는 논리로 저 자신을 설득하며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일단 등록부터 했습니다. 그런데 제 이름을 받아적고 등록 절차를 도와주던 직원분이 이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습니다.
“가만, 뭔가 이상한데요. 태피 애크너라는 고객이 이미 3명이나 있어요. 어떻게 된 걸까요?”
저는 나지막이 속삭이듯 말했습니다.
“그 3명 다 저예요.”
“주소는 브루클린으로 돼 있는데요?”
“네, 저 고등학교 다닐 때요.”
“로스앤젤레스는요?”
“결혼 직전에 거기 살았어요. 나머지도 확인해보실 필요 없어요. 다 저 맞다니까요.”
이번에는 반드시 모든 걸 쏟아부어 효과를 보고 말겠다는 다짐으로 다이어트에 임했습니다. 사실 매번 그랬는데도 말이죠.
추수감사절을 몇 주 앞둔 어느 토요일 아침 8시, 뉴저지주 유니온에서 열린 모임에 참석했던 날을 기억합니다. 추수감사절 하면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즐기는 행복한 명절이라고들 생각하지만 그날 그 자리에 모인 우리는 진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한가한 명절 운운하는 소리는 집어치워라, 추수감사절은 절체절명의 위기다, 우리에게 추수감사절은 살인마나 다름없다고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죠.
올해도 어김없이 추수감사절이 찾아올 테고 명절을 몇 주 앞둔 그때 제가 참석했던 그런 종류의 모임이 수도 없이 일어날 겁니다. 아마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겁니다. 가족 중 누가 죽고 누구는 몸져누웠다는 이야기, 다니던 공장이 문을 닫고 실업자가 됐다는 안타까운 이야기, 고등학교 동창회 이야기에 이어 어김없이 ‘딸이 제빵에 흥미를 붙인 뒤로 자꾸 설탕 듬뿍 뿌린 롤빵을 구워댄다’ ‘남편이 자꾸 스테이크만 찾는다’ ‘(아들 몰래 채식용 패티로 재료를 바꿨더니) 아들이 귀신같이 미트로프 맛이 왜 예전 같지 않냐고 묻는다’ ‘직장 동료가 자꾸 휴게실에 도넛츠랑 베이글을 남겨놓고 가서 유혹을 참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겠죠.
이런 모임에 나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성인데, 이 모임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 하나 있다면 그 주에 어떤 일이 일어났든 반드시 모임에 나오는 겁니다. 도나라는 이름의 여성은 “이 모임은 제게 교회나 다름없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몇 달 전에 도나는 돌아가신 어머니 장례식을 금요일에 치르고 바로 다음 날 모임에 나왔습니다.
이 모임을 이끄는 데이나는 보통 방 한가운데 자리를 잡습니다. 리더답게 옷차림과 꾸밈에 세심한 신경을 쓰는 편입니다. 도저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매력의 소유자죠. 토요일 이른 아침 모임이다 보니 대부분 기껏해야 편안한 운동복 차림으로 오거나 옷 무게가 덜 나가는 레깅스를 입는 게 보통인데, 항상 긴 부츠를 신고 멋진 치마에 화장까지 빼놓지 않습니다.
자연히 독보적인 차림을 하고 모임에 와서는 지난 한 주 동안 체중을 감량하는 데 성공했거나 바람직한 습관을 들이는 데 진전을 보인 회원에게 큰 상을 내리듯 별 모양 스티커를 주곤 합니다. 몇 달 나오지 않은 이들의 이름까지도 잊어먹는 법이 없습니다. 그녀는 회원 한 명 한 명을 소중한 보물처럼 꼭 안아줍니다.
도나는 지난번에 왔을 때보다 체중이 늘었다고 오늘 모임에서 고백했습니다. 목표로 했던 몸무게보다 약 2.7kg 더 나가는 수준에서 한동안 변함이 없던 도나의 몸무게가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움직인 겁니다. 2009년, 네 무려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2009년 이 모임에 처음 나온 이후 도나는 매주 빠짐없이 출근 도장을 찍었습니다. 그 사이 무려 60kg이나 몸무게를 줄인 도나는 말 그대로 8년 전과는 완전 다른 사람이 됐습니다.
마지막 2.7kg이 문제였습니다. 정말 갖은 수를 다 동원했지만 더는 살이 안 빠졌던 겁니다. 백일기도를 드리는 심정으로 2주 동안 오로지 운동만 생각하며 헬스장에도 가봤습니다. 3주 전에는 이렇게 운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자꾸 신경이 쓰여 좀처럼 운동에 집중이 안 됐고, 결국 살을 빼는 데 별 효과도 없었습니다. 별 것 아닌 것 같던 마지막 2.7kg을 빼는 일이 뚱뚱했을 때 몸무게가 146kg 나갔다는 사실보다도 더 힘겹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약이 올라 죽겠다니까요.”
그녀는 제게 이렇게 말하며 저는 살을 어떻게 뺐는지 비결을 물었습니다.
“글쎄요, 저는 고작, 그러니까…”
전 어깨를 으쓱하며 고작 1.4kg밖에 못 뺐다는 말을 하려다가 자칫 그녀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신중하게 생각했습니다. 모임에 나오는 또 다른 회원인 에이미가 전에 제게 해준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죠.
“절대로 ‘고작 몇 kg 뺐는걸요’ 이런 식으로 말하면 안 돼요. 아시죠? 그럼 다들 상심이 이만저만이 아닐 거라는 거.”
모임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여러 차례 해봤습니다.
“어쩌면 이제 살을 빼는 데 집착하는 것보다 사회적으로 뚱뚱한 것, 비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쪽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 아닐까요? 여기 모인 우리 모두 사실 나무랄 데 없이 똑똑하고, 각자 하는 일 다 야무지게 해내는 성공한 여성이잖아요. 물론 남자분들도 계시고요. 그런 우리가 정말이지 검증된, 가장 효과적인 다이어트라는 것들 다 해봤죠. 안 해본 것 없을 거예요. 이렇게 열심히 해봤는데 잘 안 되는 거라면, 어쩌면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하지 않은 우리 잘못이 아니라 애초에 열심히 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던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모임에는 한동안 나오지 않다가 다시 얼굴을 비추는 사람도 많습니다. 대부분 부정적인 답을 내놓았습니다. 잔뜩 얼굴을 찌푸리면서 고개를 가로젓고, 심지어 저를 향해 어딘가 애처로운 표정을 짓는 이도 있었습니다. 마치 ‘지금 자네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하는 건가? 뚱뚱한 사람이 날씬해지고 싶지 않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았죠.
당장 도나만 해도 자매들은 모두 당뇨병으로 고생하며 약을 먹고 있지만, 그녀는 살을 빼고 난 뒤 당뇨병도 사라졌습니다. 지금보다 약 9kg 더 뚱뚱했을 때까지만 해도 등이 늘 아팠지만 이제 도나는 손자와 함께 바닥을 기어 다니며 한참을 놀아줘도 등이 멀쩡합니다.
이들의 논리에 사실 마땅히 반박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저만 해도 매번 모임에 올 때마다 거의 칼뱅의 소명설에 버금가는 무결점의 논리가 인도하는 가능성에 혹하곤 하니까요. 그 논리라는 건 우리 모두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그 논리입니다.
먹는 것을 줄이면 몸무게도 줄어든다. 결국 우리 몸은 섭취하는 열량이 부족하면 몸에 축적해 둔 지방을 연소해 필요한 열량을 태운다. 그럴수록 우리 몸은 날씬해지고, 가벼워지고, 작아져서 이 세상의 미적 기준에 더욱 부합하게 된다. (0 사이즈를 추앙하는 문화에서) 우리가 증발해버릴 때까지 작아져도 좋다.
(역주: 0 사이즈는 한국의 44 사이즈 개념)
처음에는 저도 이 모임 날만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만이 내가 처한 아픔을 온전히 이해해줄 수 있을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는 어쩌면 한낱 바람과 자기 합리화에 불과했는지도 모릅니다. 모임을 마치고 건물을 나서는 순간 이미 처음 기대는 온데간데없었고, 차에 타서 시동을 걸 때 즈음엔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그저 혼란스럽기만 했습니다.
여기서 하는 이야기들이 정말 따라 할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이라면 저도 기꺼이 시도해볼 텐데 도저히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죠. 그냥 먹는 것만 좀 줄이면 되는 건데, 어려운 일도 아닌데 도저히 선뜻 몸이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2년 전쯤, 마침내 제가 확인한 모든 통계가 가리키는 결론을 따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몸무게를 줄이려 더 애쓰지 않기로 한 겁니다.
다이어트를 끊기로 마음먹고 나서 보니 또 그렇게 할 수 없는 저 자신을 발견합니다. 평생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음식은 살찌는 음식 아니면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음식으로만 분류해 왔던 저인지라 무얼 어떻게 먹어야 할지, 즉 일상적인 식단을 짤 줄 몰랐던 겁니다. 영양 치료사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습니다(여기서 다이어트에 집착하는 것도 일종의 만성 질환 같은 것임을 배웠죠).
매주 치료사를 찾아가 상담을 할 때마다 분명 살을 빼는 데 효과적인 식단이 있을 거라며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럼 그때마다 치료사는 그런 방법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러서 다이어트를 그만두겠다는 결심으로 찾아오신 분이 몇 주째 똑같은 말만 되풀이해서야 되겠느냐며 핀잔을 주었죠. 그 말에 수긍을 못 하고 외려 치료사를 쏘아붙였습니다.
“당신은 날씬해서 죽었다 깨어나도 제가 얼마나 간절한지 절대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이런 말도 했습니다.
“관절염 때문에 제가 무릎이 얼마나 아픈 줄 아세요? 도덕이고 뭐고 다 필요 없이 정말 아프거든요. 제 여동생도 무릎에 관절염이 있어요. 그런데 걔는 안 아프대요, 글쎄. 왜 그런 줄 아세요? 걔는 날씬하니까요! 그러니까 선생님도 저를 이해한다고 착각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네요.”
가엾은 영양 치료사는 저 때문에 매주 인내력 테스트를 하며 훌륭한 인품만 인증한 셈이 됐죠.
저는 ‘당기는 대로 먹기(intuitive-eating)’ 수업도 들었습니다. 당기는 대로 먹기란 오로지 배꼽시계가 울리는 대로 먹는 것으로, 정해진 시간이나 식단 등에 구애받지 않는 방법입니다. 쉽게 말하면 배고플 때 참지 않고 무엇이든 배가 부를 때까지 먹는 겁니다. 수업에는 저를 포함해 총 6명이 있었는데 모두 교육 수준은 높지만 꼭 살을 빼고 싶어서 여기에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먼저 음식과 식단에 신경을 쓰며 먹어본 뒤 각자 문제점과 어려운 점을 털어놓고 이야기했습니다. 우리 앞에 음식이 주어집니다. 음식 냄새를 맡고, 음식을 입에 대봅니다. 그 음식에 관해 떠올려보며 음식을 맛보고, 음식을 바로 삼키기 전에 입안에서 이리저리 굴려봅니다. 그러고 나서 음식을 삼킵니다. 아직도 배가 고픈가요? 정말로요?
첫 주는 건포도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치즈부터 크래커, 케이크, 부활절에 먹는 사탕까지 조금씩 메뉴를 바꿔가며 비슷한 훈련을 되풀이했습니다. 우리는 조용히 둘러앉아서 마치 처음 지구에 도착한 외계인이 지구인의 먹을거리를 조심스럽게 탐구하듯 행동했습니다. 그런데 매번 이 훈련을 할 때마다 저는 눈물이 났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왜 그러느냐고 묻는 선생님께 저는 매번 같은 답을 내놓았습니다.
“저는 41살이나 먹은 성공한 전문직 여성이자, 집에서는 사랑받는 아내고 좋은 엄마예요. 일도 열심히 하고 그 덕분에 세상에도 제 나름대로 이바지하면서 사는데, 도대체 지금 여기서 이 빌어먹을 건포도를 씹어먹는 법이나 배우고 앉아있으니, 도대체 제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른 건지 서럽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그들은 저를 달래려 했습니다. 뚱뚱한 것을 혐오하는 것 자체가 이미 사회적인 편견에 물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오히려 왜 이들이 저를 위로하려 하는지 그 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한 번은 제가 테니스를 치다가 발목을 삐었습니다. 원래 발목이 좀 좋지 않았는데 더 골치 아프게 됐죠. 아무튼, 병원에 갔더니, 저를 태어나서 처음 만난 내과 전문의라는 사람이 병력이나 관련 기록은 열어보지도 않고 혈압(참고로 제 혈압은 아주 정상입니다)이나 체온 등 기본적인 상태를 체크하기도 전에 살을 빼기 전까지는 병원에서도 딱히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다고 퉁명스레 말하며 살을 빼는 데 도움이 되는 식단에 관한 지침서로 보이는 종이쪽을 성의 없이 제 손에 쥐여줬습니다. 이 사회가 이렇습니다.
글 쓰는 일로 취재차 들린 아이슬란드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제가 묵던 호텔 주인이 낚시를 가며 저를 배에 태워줬는데 태연하게 이렇게 말했죠.
“구명조끼 꼭 입으시라고는 안 할게요. 아마 물에 빠져도 잘 뜨실 것 같으니까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농담이라고 여기고 무시했습니다. 배에 타는 내내, 그리고 다시 뭍에 내릴 때까지요. 제가 바이킹족처럼 거대한 대구를 낚자 그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몸집이 거대한 사람은 역시 어떤 상황에서도 죽지는 않겠구먼요!”
비행기 제 옆자리에 탄 한 여자는 이렇게 비꼬듯 말했죠.
“아주 안락한 비행이 되겠네요.”
뉴욕 맨해튼에서 택시를 탔더니 이번에는 택시 기사가 저를 보고 “젤리”가 떨리는 모습이 재밌다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제 신체의 어느 부위를 지칭한 농담이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말이죠. 10회권을 다섯 번째 구매한 필라테스 학원에서도 이번이 필라테스는 처음이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요가 학원에서는 “정신력을 높이 산다.” “그저 꾸준히 출석만 하시면 성공”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참고로 저는 요가 경력 12년 차입니다.
제 웨딩드레스를 만들어준 재봉사는 결혼식 전에 살을 빼지 않는 신부는 난생처음 봤다고 말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앞에서는 한 정신 나간 사람이 제게 사탕을 주려고 해서 제가 정중히 거절했더니, 그는 저를 보고 “이미 살이 찔 만큼 쪘으니 더 먹으면 안 되는 걸 본인도 알겠지!”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저도 불쾌함을 참지 못하고 화를 내자 동생은 미친 사람을 왜 상대하느냐며 의아해했습니다. “넌 날씬해서 날 이해 못 해!” 뻔한 레퍼토리가 또 한 번 반복됐죠.
(그나저나 제가 이 글을 쓰면 아마 제 메일함은 온갖 비아냥과 조롱, 욕설로 가득 찰 겁니다. 기사에 달리는 댓글도 안 봐도 뻔하죠. 전에 한 여성 잡지에 우리 몸의 모습에 관한 에세이를 쓰던 적이 있었는데, 그 잡지 편집인이 제가 쓴 글을 인쇄한 여백에 이런 말을 써놓은 적도 있습니다. “그나저나 저 사람은 왜 쉴새 없이 먹는 버릇을 못 고치나?”)
이야기가 너무 딴 길로 샜네요. 다시 뉴저지주 유니온에서 열린 모임, 데이나는 모두가 보는 앞에 서 있습니다. 추수감사절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죠. 명절을 맞아 집에 온 대학생 아들이 머핀에 뭐가 들었는지 어떻게 알고, 남편은 으깬 감자에 버터를 넣지 않으면 이를 무슨 수로 알아낼지 같은 이야기가 오갑니다.
도나는 부활절 파이를 만들 때 지구상에 있는 모든 돼지고기를 다 먹기라도 할 것처럼 돼지고기를 듬뿍 넣습니다. 모임에 나온 이들은 살을 어느 정도 빼도 자기는 여전히 뚱뚱한 편인데 이를 깜빡하고 자기가 날씬한 사람이 됐다고 착각하지는 않을까 걱정합니다. 그래서 추수감사절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늘 경계해야 하는 날인 겁니다.
“어쨌든 추수감사절도 똑같이 1년 365일 중 하루잖아요.”
데이나의 말에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윈프리 씨 바꿔드릴게요.”
오프라 윈프리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그녀는 2년 전 발목을 다쳤던 하와이의 산 주변에 여전히 살고 있었습니다. 웨이트 워처스는 한 달간 심사숙고 끝에 홈쇼핑 네트워크 CEO를 지낸 민디 그로스만을 새 CEO에 임명했습니다. 그로스만은 사장실에 저를 불러 웨이트 워처스의 모바일 앱을 고객 맞춤형으로 개선하는 방법과 접속해서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고객에게 최고의 경험을 선사하는 방법이 뭐가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까무잡잡하게 태운 피부에 짙은 금발 머리, 분홍 립스틱을 바른 그녀는 마치 진 니더치가 다시 태어나 돌아온 것처럼 보였습니다. 웨이트 워처스는 4분기 연속 영업이익이 늘어나는 시점에 그로스만을 영입했는데 가치관과 생각, 정신적인 부분이 회사와 통하는 점이 무엇보다도 큰 요인이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가 직접 출연한 광고가 세상에 선을 보인 날 웨이트 워처스 주가는 곧바로 급등했습니다. 광고 속에서 오프라는 자신이 빵을 좋아하는데 예전에는 매일 먹고 싶은 만큼 빵을 먹어도 살을 뺄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이 광고를 본 많은 사람이 오프라가 어쩌면 마침내 세상과 너무 동떨어진 나머지 감을 잃은 것은 아닐까 의문을 품게 됐습니다. 한 광고에서 오프라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과체중 여성의 내면에는 사실 그 사람이 마음먹기에 따라 될 수 있는 또 다른 자아가 있어요. 저도 지난날 제 몸무게에 파묻혀 어떤 것이 진짜 제 모습인지 알아차리지 못했죠.”
즉각 이에 반발하는 의견이 인터넷을 뒤덮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도 날씬하지 않은 여성은 쓸모없다는 세간의 인식에 물들었다는 비난이 빗발쳤죠. 윈프리가 여성의 권리를 깎아내린다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이들은 윈프리가 웨이트 워처스에 투자하기로 한 건 “이 세상의 모든 평범한 여성들에게 비보”라고 말했습니다. 한 블로거는 노골적으로 실망감을 내비쳤습니다.
“웨이트 워처스는 끊임없이 여성의 몸을 대상화하고 여성을 향해 아직 부족하다는 메시지밖에 던질 줄 모르는 회사다. 다른 사람도 아닌 오프라 윈프리가 이런 회사의 가치를 높이 사 여기에 투자까지 했다는 사실이 실망스럽다.”
MSNBC의 멜리사 해리스 페리 앵커도 무려 5분 동안이나 방송에서 이 문제를 다뤘습니다. 그녀는 “이주의 편지” 코너에서 이렇게 평했죠.
“하지만 오프라! 당신은 이미 (몸매에 상관없이) 뭇 여성들이 닮고 싶은 본보기였습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이룩했던 수많은 업적 가운데 당신 허리가 지금보다 훨씬 잘록한 25인치였다면 특별히 더 잘 했을 거라고 말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프라 윈프리가 투자한 4,300만 달러는 벌써 1억 1,000만 달러로 가치가 뛰었습니다. 어쩌면 오프라 윈프리도 정말 투자 가치만 보고 이번 결정을 내렸는지도 모릅니다.
오프라는 자신을 향한 비판에는 이골이 난 사람입니다. 1985년, 투나잇 쇼에 오프라를 초대한 조안 리버스는 사전 인터뷰에서 거의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가 갑자기 본 방송 중에 살이 찌면 안 된다는 말을 덜컥 내뱉었습니다. 이렇게 이유를 덧붙였죠.
“아직 시집도 안 간 예쁜 여성이 살찌면 안 되잖아요.”
오프라는 이때 자기가 이미 할 수 있는 다이어트는 다 해봤다고 응대합니다. 무려 1985년의 일입니다. 그녀는 바나나, 핫도그, 달걀만 먹는 다이어트도 해봤고, 피클과 땅콩버터만 먹는 다이어트도 해봤다고 말했습니다. 1988년에 오프라 윈프리는 자기 이름을 딴 쇼에서 차에 가득 싣고 온 비계 30kg을 무대 위에 늘어놓고 자신이 그만큼 살을 뺐다고 과시했습니다.
1991년에는 《피플》 표지 모델로 등장했는데, 이때 오프라 윈프리는 자신이 다시는 다이어트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1996년 밥 그린과 함께 쓴 책에서 어떻게 해결책을 찾았는지 직접 설명했습니다. 2002년에는 자신이 직접 발행하는 잡지 《O》에 “내 몸의 평안을 찾는 확실한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습니다. 글의 제목처럼 오프라는 자신이 몸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평안을 얻었다고 밝혔죠.
2005년 《O》 표지에는 보통 독사진으로 등장하는 오프라 윈프리가 아니라 두 명의 오프라 윈프리가 등장합니다. 배꼽티를 입은 오프라가 활짝 웃으며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오프라의 어깨에 살짝 기대고 있는 사진이었죠.
2009년 또 한 번 두 명의 오프라가 등장한 표지가 나옵니다. 배꼽티를 입은 2005년의 오프라는 그대로인데, 오른쪽에 선 지금의 오프라는 4년 사이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한눈에 봐도 뚱뚱해진 오프라는 아름다운 드레스 대신 치수가 큰 보라색 운동복을 입고 있죠. 표지사진을 설명하는 제목도 이를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제목은 “어쩌다가 내가 또 이렇게 된 것일까?”였습니다.
오프라 윈프리와 이야기를 나누면 가장 오프라다운 모습을 금방 발견하게 됩니다. 그녀는 마치 노래를 부르듯 제 이름을 부르며 엄마처럼 친근한 목소리를 듣는 이들에게 각인시킵니다. 사람들도 이내 그 목소리를 편안하게 느끼죠.
“태피~!”
그녀는 다시는 날씬해지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의 몸을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평생 더 높은 의식의 영역을 찾아 그 상태에 머무르는 법을 익히려 노력해 왔다고 말했습니다. 아직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가장 높은 의식의 세계를 끝없이 추구해온 겁니다.
그녀는 하루에 세 차례나 쇼를 진행하고 출연하던 시절에도 단 한 번도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대신 무엇이 먹고 싶어지면 참지 않고 다 먹었죠. 먹는 거로 스트레스를 푼 셈인데, 그녀의 가방에는 감자칩이 늘 한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바쁘게 사시는데 스트레스 안 받으세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오프라는 진심으로 스트레스가 도대체 어떤 것일지 궁금했다고 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문화도 변했습니다. 오프라는 이 과정을 똑똑히 지켜봤죠. 이제는 다이어트를 하고 싶다거나 날씬해지고 싶다고 직접 말하면 안 되고 대신 “탄탄한 몸” “강인함”이라고 표현되는 건강을 목표로 내세워야 하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다시 한번 감옥처럼 그녀를 옥죄었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문화 현상도 마찬가지였죠.
“요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관한 얘기가 어딜 가든 빠지지 않죠. ‘당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같은 말은 유행이나 권고가 아니라 예외 없이 누구나 다 따라야 하는 하나의 강령처럼 돼 버렸어요.”
오프라는 웨이트 워처스의 새로운 제안을 수락한 배경에는 이런 변화가 영향을 미쳤다고 말합니다.
“먹는 것에 관해 저만의 철학이 어느 정도 생긴 상태였어요. 이런저런 생각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뒤로는 제 안에 뿌리를 내려 제 식생활은 무척 사려 깊은 수준에 올랐다고 생각합니다.”
오프라는 정치적 올바름을 비롯한 새로운 문화 현상을 그대로 따르는 데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보다 이 현상을 어떻게 하면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끄는 동력으로 삼을 수 있을지에 더 관심을 가졌습니다. 오프라는 제게 이렇게 말했죠.
“이따금 어떻게 해야 효과적일지 그 비결을 정말 간절히 알고 싶을 때가 있어요. 채소 주스 갈아 마시기, 단백질 셰이크, 온갖 해독 클린징 제품들, 이것저것 다 해봤어요. 그런데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효과가 나는 건 단 하나도 없었단 말이죠. 과연 어떻게 해야 꾸준히, 제 의식이 바뀌고 습관 자체가 바뀔 수 있을까요? 저는 갈수록 이 문제에 천착하게 됐어요.”
그렇다면 왜 오프라는 끝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받아들이지 못한 걸까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라면 자신의 몸무게도, 몸매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될 텐데 왜 그럴 수 없던 걸까요? 당뇨병 가족력이 있어 주의해야 하는 상황에서 필요한 수단을 동원해 이를 예방하는 행위를 왜 자신을 아끼는 일이라고 볼 수 없던 걸까요?
물론 오프라도 도중에 자기 원칙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전도사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아마 “내 몸을 받아들이기: 오프라는 이렇게 했다.” 같은 책을 냈다면 100만 부는 족히 팔렸을 겁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심장이 계속 두근두근 두근두근 뛰려면, 우리 몸을 지탱하려면 최소한 어느 정도는 무게가 있어야 해요. 그렇죠? 결국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해.’라고 스스로 주문을 외는 사람들도 몸무게가 90kg이 넘어가면 심장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고혈압이 오고 당뇨병 가족력이 있어서 당뇨병에 걸릴 위험이 커지면 이를 있는 그대로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어요. 받아들여서는 안 된단 말예요.”
저는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오프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제가 흐느끼고 있다는 건 오프라가 알아채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저도 모르게 동작이 커졌죠. 저도 다이어트를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내 다이어트를 빼면 제 삶에 남는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저는 먹는 것에 너무 쉽게 사로잡혔습니다. 먹을 것, 정말 망할 놈의 음식! 저 같은 경우 결국 모든 문제는 음식으로 귀결됩니다. 제가 다이어트를 한 이유도 언젠가 제 뜻대로 식욕을 조절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먹을 것 앞에서 저는 종종 이성을 잃는 수준이었으니까요.
식욕을 조절하는 건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이라는 걸 깨닫고 희망을 내려놓자 이번에는 몸이 받을 고통에 대한 걱정이 밀려왔습니다. 지금도 무릎이 이렇게 아픈데 앞으로 몇 년간 이 고통을 어떻게 견뎌낼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제 몸이 어떻다는 건 얼마든지 깨닫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 아닙니다. 그런데 저를 잠재적 고객으로만 보는 사람들에게는 제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 무릎은 영문도 모른 채 계속 고통받습니다.
이런 마음을 털어놓으면서 저는 오프라에게 동시에 이렇게 생각하는 제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마음의 평안을 찾으려는 모든 사람을 배신하는 건 아닌지 찝찝한 마음을 거둘 길이 없다고도 말했습니다. 세상에 일종의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결국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가시지 않습니다. 오프라는 말했습니다.
“맙소사. 태피, 제 얘기를 꼭 새겨들어 보세요. 제 담당 PD에게 항상 제가 하던 말도 결국 같아요. 다른 사람들이 다른 쇼에 나가서 무얼 했는지 보고 거기서 영향을 받는다면 우리는 절대 우리 쇼를 성공적으로 제작하지 못한다. 네가 성공하는 길은 단 하나, 너 자신만 바라보고 뚜벅뚜벅 너의 길을 가는 것이라는 말을 항상 했죠. 결국 ‘네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무얼까?’ 이걸 찾는 게 중요하다고요.”
여기서 오프라가 말한 “너”가 정확히 무엇을 지칭하는 건지 헷갈렸습니다. 저의 몸을 말한 걸까요? 아니면 제 마음속 무언가를 뜻한 걸까요?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두 가지를 굳이 별개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저는 제 몸을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제 몸이 다른 사람의 것이 되는 건 아닙니다. 잡지 표지에 실을 수 있는 저란 사람도 결국 둘이 될 수 없는 한 사람인 거죠.
몸무게를 향한 시선은 객관적이거나 중립적일 수 없습니다. 여성의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성의 몸은 본인 외에도 수많은 이들이 관심을 표하고 어떻게든 얽혀있는 대상인 것도 엄연한 사실입니다. 여성 해방을, 몸을 둘러싼 주변 시선으로부터의 해방을 지지하는 우리조차 결국은 서로 무얼 어떻게 하라고 조언하고 있는 셈이니까요. 남에게 날씬해지라고 권유하는 것이 끔찍한 일인 것처럼 살을 빼고 싶어하는 것은 가망 없는 일이고 잘못된 일이라고 훈수를 두는 것도 똑같이 끔찍한 일입니다.
여러 가지 다이어트가 단기적으로, 장기적으로 어떤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처음으로 저는 이 문제가 어쩌면 미쳐버릴 만큼 천착할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몸을 어떻게 생각하든, 긍정적으로 보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든, 아니면 몸을 바꿔보려 무던히 노력하든 다 괜찮습니다. 결국 친절한 배려, 인정, 노력 등 우리의 생각을 모두 안고 가는 것도 우리 몸이니까요.
3월 18일, 토요일, 유니온에서 열린 모임에서 도나는 마침내 자신의 목표 체중을 정했습니다. 6주 뒤 몸무게는 여전히 그대로인 채 도나는 평생 회원이 되기로 약속했습니다. 목표 체중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 프로그램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평생 회원은 도나 말고도 몇 명 더 있었습니다. 평생 회원으로 등록했다가 프로그램을 다시 시작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매번 모임에서 꼭 도나 옆에 앉는 아일린도 평생 회원입니다. 아일린은 작은 플라스틱 왕관을 쓰고 왔습니다. 평소 편한 운동복을 입곤 하는 도나는 오늘은 레깅스를 입고, 늘 신는 양털 어그부츠를 신고 왔습니다.
누군가 도나에게 마침내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었다고 말을 건넸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옛날 사진을 보여줬습니다. 사람들이 돌려가며 사진을 봤지만, 그녀가 사람들 뒤에 숨었기 때문에 사진 속의 누가 그녀인지 알아맞히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저 스스로 날씬하다고 생각하는 날이 영원히 오지 않으리라 생각했어요.”
도나는 말했습니다. 적어도 날씬한 사람처럼 계속 보이기라도 하는 것이 그녀의 바람입니다. 데이나는 도나에게 별표 스티커를 여러 장 떼서 건네며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오늘은 정말로 행복한 날이네요.”
우리는 모두 도나를 축하해줬습니다.
모임이 끝나고 집에 가려고 나와 건물을 돌아가는 길에 한 날씬한 여성이 컵케이크를 먹으며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습니다. 컵케이크 위에 입힌 달콤한 장식물을 혀로 이리저리 핥아먹는 모습이 마치 황홀경에 빠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또 다른 날씬한 여성은 (저칼로리 음료도 아닌) 보통 닥터페퍼 음료를 그냥 물처럼 마시고 있었습니다. 이어 집에 돌아가는 길에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치즈버거와 프렌치프라이를 푸짐하게 시켜놓고 저녁을 먹고 있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온갖 음식과 식습관, 생활 습관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며 자괴감에 젖어 관절염으로 아픈 무릎만 탓하며 사는 저와는 너무나 다른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당장 앞에 놓인 음식도, 자기 자신의 몸뚱어리도, 자기 앞에 놓인 삶도 쉽게, 편하게 대하며 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들을 마치 중국어로 떠들어대는, 혹은 끈 이론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처럼 물끄러미 쳐다봤습니다.
그러다 이 세상에 마법 같은 건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쳐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정신을 차렸죠. 그리고는 지금 여기에 앉아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아직 저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