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많은 분들이 네이버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서비스로 ‘지식iN’을 언급합니다. 지식iN은 2002년 10월, 네이버(당시 NHN)에서 시작한 ‘질문형 지식 검색’ 서비스입니다. 사용자가 궁금한 내용을 등록하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알고 있는 다른 사용자가 그 질문에 답을 해주는 ‘크라우드(Crowd)’ 서비스이자 집단 지성을 활용한 서비스였습니다.
이 서비스가 주목받은 가장 큰 이유는 서비스 출시 1년 만에 검색분야 3위, 포털분야 3위 사업자에 그치던 네이버를 검색분야 1위, 포털분야 2위로 만들어준 ‘일등 공신’ 서비스라는 점입니다. 몇 년째 독보적인 포털분야 2위를 하고 있던 야후코리아를 뛰어넘는 이변이었죠. 또 공급자, 수요자 모두에게 큰 변화가 사실상 힘든 검색서비스에서 1년 만에 3위 사업자가 1위로 껑충 오르게 되었습니다.
참고 : 네이버, 검색포털 1위 등극 (2003년) / 올해의 인터넷 9대 이슈.. 네이버 약진 (2003년)
이 기세를 몰아 연달아 오픈한 블로그, 카페 등의 서비스가 ‘대박’을 치면서 다음이 몇 년째 고수하고 있던 포털분야 1위마저도 네이버가 가져가게 됩니다. (참고 : 네이버, 포털순위 1위(2004년))
어떻게 네이버는 지식iN으로 1년만에 검색분야 1위를 탈환하고, 그 기세를 몰아 종합 포털 1위에도 오를 수 있게 되었을까요?
1. 한국 사용자 머릿속에 있는 ‘한글 데이터베이스’를 끌어오다
검색서비스의 불문율은 DB가 많으면 많을수록 검색 품질은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검색서비스들이 모두 좋은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죠.
하지만 2002년 당시에만 해도 온라인에 있는 한글 데이터베이스의 양은 영어권 국가의 데이터베이스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이 말인즉슨, 사용자의 검색어에 대응해서 보여줄 만한 콘텐츠(=겸색결과)가 없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검색 알고리즘이 고도화되고 기술력이 아무리 좋아진다고 한들 검색에 활용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가 없으면 말짱 도로묵인 셈이죠.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네이버는 깊은 고민을 하다가 한 가지 역발상을 하게 됩니다. 현재 웹상에 있는 한글 데이터베이스를 모으는 것은 양이 적기에 무의미하니 그럴바에는 차라리 ‘웹상에 없는 한글 데이터베이스’를 모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리고 웹상에 없는 한글 데이터베이스를 모으는 방법은 딱 1가지 뿐이었습니다. 웹상에 한글 데이터를 구축하는 것, 바로 한국인들의 머릿속에 있는 정보(한글 데이터베이스)를 웹상으로 끌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한 모델로 네이버는 P2P 성격의 Q&A를 생각했습니다. 사용자와 사용자를 서로 연결해 누군가 질문을 하면 누군가 질문에 가장 적합한 답변을 해주는 모델입니다. 이는 검색어와 검색어에 대응하는 검색결과를 ‘사용자’가 직접 만드는 구조였죠.
네이버는 사용자의 ‘질문’에 집중했습니다. 사용자가 ‘질문’을 한다는 것은 이 ‘질문’은 검색으로는 충분한 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답을 찾기 위해 웹사이트를 아무리 찾아봤지만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최후의 수단’으로 직접 질문을 등록하는 것입니다. 이는 다른 말로 바꿔서 말하면 네이버가 아무리 노력해서 웹문서를 긁어와도 보여줄 수 있는 답이 없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에 의한 수동적인 검색결과 등록이 필요했습니다.
결국 네이버는 웹에서 답을 찾기 힘든 질문을 네티즌들이 직접 할 수 있는 공간인 지식iN 서비스를 마련했습니다. 어찌 보면, 이는 검색 서비스의 자존심을 버리는 행동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그 질문을 해결해줄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가 없어”를 인정하는 꼴이었습니다. 하지만 네이버는 이런 치부를 이용하여 하나의 ‘검색 서비스’로 만들었습니다. 특정 질문에는 충분한 답변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쿨하게 인정하고 전문성을 갖춘 다수의 네티즌에게 검색 결과를 제공하는 역할을 맡긴 거죠.
그 결과, 지식iN은 네티즌들의 폭발적인 호응에 힘입어 1년 동안 무려 165만 건의 지식 DB를 쌓았습니다. 이 말은 즉, 네티즌의 머릿속에서 165만 건의 한글 데이터베이스를 끌어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데이터베이스 덕분에 검색 결과는 풍부해졌고, 더 만족스러워졌으며 다른 검색사업자들이 가질 수 없는 독점적인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검색 분야 3위에 그쳤던 네이버는 1년 만에 어떤 다른 검색 사이트들도 갖지 못한 지식iN 데이터베이스 덕분에 검색 분야 1위에 오르게 됩니다.
2. ‘성취 욕구’ 자극으로 자발적인 우수 답변자를 만들다
사용자가 궁금한 것을 질문하고, 사용자가 답변하는 모델은 참 이상적인 모델입니다. 문제는 역시나 ‘사용자 참여’ 입니다. 질문자의 니즈는 충분합니다. 웹상에서 답변을 찾을 수 없는 궁금증에 대해 지식iN에서 답변을 얻을 수 있다면 질문자는 충분히 질문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답변자’ 입니다. 어느 누가 자신의 귀한 시간을 활용해가면서 다른 사람의 질문에 답을 해줄까요? 그래서 지식iN은 답변자들이 자발적으로 답변을 할 수 있는 동기에 주목했고 이를 위해 인간의 ‘성취 욕구'(!)를 활용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지식iN은 ‘내공’과 ‘등급’이라는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질문자는 자신이 가진 내공을 질문에 걸고, 답변자는 내공을 얻기 위해 답변을 등록하게 됩니다. 최종적으로 질문자가 여러 답변자 중 1명을 선택하게 되면 그 답변자에게는 질문에 걸려있던 내공이 전달되게 되죠. 이 내공으로 답변자는 자신의 등급을 높일 수 있습니다.
지식iN은 총 19개의 등급 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내공, 채택 답변 수, 채택답변률의 조건을 채워야 다음 등급으로 등급 업이 가능합니다. 게임에서 레벨을 오르기 위해 시간과 돈이라는 리소스를 사용하듯, 지식iN 내에서 지식을 갖춘 네티즌들이 마치 ‘지식 게임’을 하듯이 다른 사람보다 먼저 등급 업이 되기 위해 답변을 달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내가 달았던 답변이 검색 결과에 노출되고 여러 사람의 ‘좋아요’를 받는 것도 성취감과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요소 중 하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답변 생산자들이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2003년 2월부터 <명예 지식iN>제도(지금은 ‘분야별 지식인’으로 바뀌었습니다)를 시행하면서 각 분야별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제도를 갖추었습니다.
명예 지식iN에 오르게 되면 지식iN세계에서는 일명 ‘전문가’로 대우받습니다. 어느 커뮤니티든지 전문가와 인기사용자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서비스 활동에 가장 큰 성취감이자 더 열심히 활동을 하게 되는 큰 요인이 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전문가’로 인정받은 답변자들은 지식iN에서 얻게 된 평판을 바탕으로 책을 저술하고 강연을 하는 등 전문 분야를 살리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런 ‘지식iN’ 스타들을 보면서 이처럼 되고자 하는 수많은 고퀄 답변자들을 양성하게 되었습니다.
이 밖에도 분야별 전문가에게 전달되는 <지식iN 장학금>, 답변으로서의 가치가 있고 사전을 대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지적 가치가 있는 답변의 경우 등록되는 <오픈사전> 등의 제도들은 모두 답변자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데 가장 큰 목적을 두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답변자들의 지식iN 애정도 한몫했습니다. 지식iN이 만들어진 처음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줬다는 ‘의미’에 큰 가치를 두고 있는 사용자들이 많습니다. 또한 역사가 오래된 서비스인만큼 지금의 지식iN을, 더 나아가 지식iN의 다양한 카테고리 중 이 카테고리는 내가 상위 답변자라는 답부심(답변+자부심)도 있습니다. 사용자들에게 ‘당근’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제도들을 만들어 고퀄 답변자들을 서비스로 끌어들였고 사용자와 함께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서비스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진 것도 답변자들이 꾸준하게 활동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3. 신의 한 수였던 <스펀지> 프로그램 PPL
한동안 “빛나라! 지식의 별”이 유행일 때가 있었습니다. 바로 KBS에서 방영되었던 <스펀지>라는 방송 때문입니다. <스펀지>는 2003년 첫 방송을 시작한 ‘에듀테인먼트(교육+오락)’ 프로그램으로 ‘네모난 박스’ 퀴즈를 맞추는 방식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방송 프로그램입니다. 그 인기에 힘입어 2004년에는 KBS 올해의 프로그램 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지식을 묻고, 패널들이 답을 맞추는 이 프로그램을 바로 네이버 지식iN이 PPL 마케팅했습니다. 지식iN 서비스를 통해 사용자들로부터 궁금한 질문이나 신기한 답변 등을 제보받기도 했고 프로그램 회차가 끝나고 나서는 방송에 나왔던 지식들을 모아서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지식iN 회원 중에 전문성을 인정받아 스펀지에 패널로 참여한 일반인도 있었으며 스펀지 방송을 통해서 네이버의 검색 순위를 살펴보고 그 주에 사람들이 ‘궁금해했던 내용’이 어떤 것인지를 함께 살펴보는 코너도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지식iN과 네이버로 이루어진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이 PPL이 신의 한수였던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온라인 지식’에 대한 관심을 방송을 통해 적극적으로 유도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는 ‘지식’의 소스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가던 시기였습니다. 사람들은 책이나 백과사전을 통해서 만나왔던 지식을 점차 온라인에서 만나게 되는 경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프라인 속에서의 지식은 전문적이고 깊되 업데이트가 빠르지 않았다면 온라인 속에서의 지식은 비록 깊이는 얕을지라도 빠르게 업데이트가 되고 시의성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런 경험과 지식의 재미를 <스펀지>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습득하게 되었고 언제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검색’을 통해 실제로 사용자들이 궁금한 것을 묻고, 답변을 받아 볼 수 있는 흐름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참 다양하고 잡다한 지식이 많다는 것을 알려주고, 궁금한 내용이 있을 경우 지식iN을 통해서 확인 또는 질문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셈이죠.
마치며…
네이버 지식iN은 사실 정말 성공하기 힘든 서비스였습니다. 사용자의 자발적인 참여를 ‘확신’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만 해도 ‘집단지성’으로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것 역시 참 빠른 생각이자 시도였습니다.
하지만 네이버는 지식iN을 성공시켜야 할 서비스가 아니라 ‘꼭 해야 하는 서비스’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웹상에 한글 데이터베이스가 없으니 데이터베이스를 생산해 낼 수 있는 ‘한 방’이 필요했던 것이죠. 의미 있는 검색 철학, 사용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다양한 제도들, 그리고 ‘온라인 지식’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을 유도한 마케팅 등이 네이버 지식iN의 여러 성공 요인 중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네이버는 지식iN으로 인해 사용자들의 인식 속에서 검색 기능이 가장 우수한 사이트로 꼽히고 (참고 : 네이버 하면 ‘지식검색'(2003년)) ‘지식 검색’이라는 새로운 검색 카테고리를 만들어냈다는 점에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덧 15년이 넘는 장수 IT 서비스가 되어 버린 지식iN, 한국의 포털 역사와 함께 했던 장수 서비스의 건승을 기원해봅니다.
원문: 생각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