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돼지 행크, 애완염소 토츠, 애완닭 쿠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한 쌍의 아기 오리, 그리고 애완견 미찌와 미니. 닥터 두리틀 속편의 캐스팅 목록 같지만, 이건 미국의 배우 토니 스펠링과 딘 맥터못이 기르고 있는 애완동물의 이름들이다.
국내에서라면 이 커플이 기르는 애완동물들은 한 종을 제외하고 모두 ‘축산물 위생관리법’의 규제를 받는다. 그리고 한 종을 제외하고는, 그것의 고기를 대놓고 먹는 데 별 문제가 없다. 제외된 한 종은, 당연히 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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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배우가 “키우는 돼지 먹는 돼지 따로 있지 않다”면서 ‘돼지고기 문화를 반대한다!’고 큰 소리로 전세계에 외친다고 생각해 보자. 황당해서 시선을 끌기는 할 것이다. 이 여배우가 전세계의 ‘염소고기 먹는 문화’를 야만으로 규정하고 전지구적으로 계몽의 깃발을 치켜든다고 생각해 보자. 이 농담은 아예 시장성이 없어서 아무도 쳐다보지 않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예쁜 닭을 어떻게 먹냐” “닭은 사람의 친구다” 하면서 닭고기 반대 운동을 펼친다고 생각해 보자.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 트위터 공식 계정이 비웃을 것 같다. 그런데 개는?
“키우는 개 먹는 개 따로 있지 않다”, “개고기 문화를 반대한다”, “이렇게 예쁜 개를 어떻게 먹나” “개는 사람의 친구다”, 모두 개고기 반대론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호소들이다. 그리고 돼지, 염소, 닭, 오리에는 안 통하는 이 호소가 개 이야기에는 잘 통한다. 개는 먹는 사람보다 키우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키우는 사람보다 먹는 사람이 많은 돼지, 염소, 닭, 오리가 가엾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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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건 ‘호소’도 아니다. ‘억지’다. 돼지, 염소, 닭, 오리의 생명권은 빼앗아도 되지만 개의 생명권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억지, 그리고 개의 생명권은 빼앗으면 안 되지만 자유권은 빼앗아도 된다는 억지. 동물권을 인정해 주려면 유보없이 전면적으로 인정해 줘야지 ‘개’만, ‘생명권’만 인정해 주자는 건 가식 아닌가.
혹자는 동물권의 전면 인정을 요구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동물권 전면 인정과 현재의 인간의 삶은 양립할 수 없다. 일단 동물들이 뛰어노는 그런 ‘자연’은 내셔널지오그래픽 바깥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택가로 내려온 멧돼지를 쏘아 죽이며 미안한 줄 모르는 데 익숙해진 만물의 영장들의 탓이다.
※ 축산물위생관리법이 ‘가축’으로 정의하는 동물은 소, 말, 양(염소 등 산양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 돼지(사육하는 멧돼지를 포함한다. 이하 같다), 닭, 오리, 그 밖에 식용(食用)을 목적으로 하는 동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동물(사슴, 토끼, 칠면조, 거위, 메추리, 꿩, 당나귀)이다. 문의 식품의약품안전처(농축수산물정책과), 043-719-3207
※ 동물권과 동물복지는 좀 다른 개념이다. 농림축산검역본부는 높은 수준의 동물복지 기준에 따라 인도적으로 동물을 사육하는 소 · 돼지 · 닭 · 오리농장에 대해 국가에서 인증하고 인증농장에서 생산되는 축산물에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마크’를 표시하게 하고 있는데, 제일 먼저 적용된 건 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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