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글 [심리학이 말한다] 오지랖과 꼰대질이 필요 없는 이유에서는 사람들이 자기중심적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내가 이랬으니까, 너도 그럴 거야” 식의 꼰대질과 오지랖을 떤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꼰대가 되어가는 걸까?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1. 귀인오류 스킬 : 나는 내 노력으로 성공했어!
여기에 우리는 내가 잘 한 건 ‘내 능력이 좋아서’인데 못한 건 ‘상황이 안 좋아서’’라며 그때그때 자기 좋은 대로 원인을 돌리는 ‘귀인오류’ 스킬을 가지고 있다.
일종의 정신승리 같이 쓰이는 이 스킬은 내가 잘한 건 나의 내적 요소들(능력, 성격) 덕분이라며 ‘역시 난 잘났어’를 가능하게 하고 실패한 건 운이나 환경 같은 외적 요소로 돌림으로써 ‘운이 나빴을 뿐. 내가 못한 게 아니라고!’ 또한 성립시킨다. 결국 어느 경우에나 자신을 좋게 생각할 수 있는 철옹성을 쌓아준다.
이런 귀인 오류는 ‘근본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흔하다 . 그러다 보니 실패에 작용한 것만큼이나 나의 성공에도 ‘환경이나 운’의 영향이 적지 않았을 텐데도 이를 깡그리 무시하고 자신의 성공을 ‘모든 것은 순전히 나의 능력과 노력 덕분’이라고 이야기 하는 경우가 여기저기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에 대해 조언할 때도 그가 처한 상황의 영향을 무시하고 ‘너도 (나처럼) 노력하면 돼. 모든 건 네 노력 부족 때문이야’라고 하기도 한다.
과연 우리가 그렇게 믿고 싶은 것처럼 우리가 가진 모든 게 순전히 우리의 노력 덕분일까? 남들은 내가 운 좋게 가진 재능이나 기회를 못 가진 게 아닐까? 그리고 설령 내가 처한 상황은 노력을 통해 극복할 수 있었다 할지라도 타인의 상황 역시 비슷한 노력으로 쉽게 극복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일까? ‘너도 나처럼 노력하면 성공해’라는 말을 하기 전에 이 전제들이 맞는지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 (관련글 : <청담동 앨리스의 질문> 당신의 성공은 자신의 능력과 노력 덕분인가요?)
2. 자기 합리화 : 내 삶은 멋지고 훌륭해!
이렇게 우리는 남과 나의 다름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나는 순전히 내 노력으로 성공했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모두가 나처럼, 내 방식대로 노력하고 살면 좋다’고 쉽게 생각해 버린다. 그런데 이런 생각에는 단순히 잘 모르고 착각하는 것 이상의 동기적인 이유가 있다.
때로 우리는 ‘내 삶을 괜찮아 보이게 하기 위해’ 자기 삶의 방식을 남에게 강요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실제로 느껴지는 삶의 괴로움뿐 아니라 자신의 삶이 괴롭고 힘들다는 ‘사실’을 잘 견디지 못한다. 장밋빛이어야 하는 내 삶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내가 불행하다니!!!’
그래서 우리들은 좋지 않은 상황에 대해 ‘나름 이유가 있는 거야’, ‘다 좋은 측면이 있을 거야’라며 합리화 작업을 하곤 한다.
이런 정당화는 특히 되돌릴 수 없는 결정같이 삶의 중요한 부분들에서 잘 나타난다. ‘벗어날 수 없다면 즐겨야 해. 그러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 없어!’같은 모습이랄까.
기혼인 사람들과 미혼인 사람들이 결혼관에 대해 논할 때 ‘나는 이 라이프 스타일이 나한테 잘 맞아’라며 끝내기보다 ‘결혼은 신성한 것’ VS. ‘싱글라이프야 말로 최고’ 같이 자신의 상태를 ‘이상화(idealize)’하는 경우가 한 예이다. 연구에 의하면 결혼한 사람들은 결혼해서 행복하건 아니건 간에, 앞으로도 계속 이 상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느낄수록 ‘결혼은 모두에게 좋은 것’, ‘기혼자들이 미혼인 사람들보다 더 행복’, ‘기혼자들이 미혼자들보다 더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사람들’ 등의 문항에 더 높은 점수를 매기는 경향을 보인다.
반면 미혼인 사람들 역시 앞으로도 계속 자신이 미혼일 거라고 생각할 때 더 ‘싱글이야 말로 모두에게 좋은 것’이라는 의견을 보인다.
3. 암묵적 강요 : 내 삶이 합리적이니까 너도 그렇게 살아야 해!
이런 내 라이프스타일 이상화 작업이 자기 머리 속에서만 되뇌는 수준에서 끝나면 참 좋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자신의 삶을 합리화 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이 살게 만들고 ‘역시 좋구나’라는 동의를 얻는 것, 그리고 ‘당신은 정말 잘 살고 있군요’라고 하는, 자신의 삶의 방식에 대한 광범위한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자기 합리화 과정에는 자연스럽게 ‘모두가 나 같이 살아야 해’라는 암묵적인 강요가 포함된다.
연구에 의하면 자신의 삶을 합리화 해야 할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유독 자신과 라이프스타일이 비슷한 사람에게 더 큰 호의를 보인다. 회사 직원을 뽑을 때도, 정치인을 지지할 때도 ‘나와 비슷한 라이프 스타일을 가진 사람’이 더 이상적인 직원, 정치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 내 삶이 이상적이라는 생각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남들도’ 나처럼 살아야 올바른 인간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네 삶의 이상화 작업은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아주 적극적으로, 경계 없이 이루어 지기도 한다.
“애 낳고 키우는 거 정말 힘들어.. 근데 넌 언제 낳을 거야?” “글쎄요 마음의 준비가 되면요”
A: “무슨 소리야, 잘못 생각하는 거야. 빨리 낳아.”
B: “ㅇㅇ 힘든 일이니 원할 때 해야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이 두 가지 대화를 다 경험한 감상은 ‘혹시 A는 지금 매우 불행한 건가?’라는 느낌이었다. 아이는 축복이라며 혼자 기뻐하는 데에서 끝나지 않고 지나치게 주변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고 자기처럼 할 것을 강요하는 모습이 (물론 모든 경우에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뭔가 스스로 만족할 수 없어 타인의 인정이 절실한 듯 보였던 것은 기분 탓이었을까?
꼰대질의 최종 메시지 “나처럼 되라고! 날 인정하라고! 내가 옳다고!”
여튼 이렇게 내 삶을 아름답게 치장하고 싶다는 나의 만족을 위해 내 삶을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기 삶의 방식을 선전하게 되고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내 삶의 방식을 강요하기에 이르게 된다. 서로 다른 우리들에게 각자 자신에게 제일 좋은 독특한 삶의 방식이 있을 것이고 ‘단 하나의 만능 인생’이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간단한 사실을 인정하기보다 ‘(나를 따라)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를 외치게 된다.
결국 수 많은 소위 ‘너를 위해 하는 충고’에는 ‘나 정도는 살아야지 않겠니? 너가 봐도 난 대단하지 어서 그렇다고 말해줘’라는 메시지가 담기게 되고 결국 ‘나! 나! 나! 나!’만이 남게 된다.
지금 남에게 하고 있는 충고가 정말 순수하게 상대방을 위해서 하는 충고인가? 혹시 거기에 타인의 인정을 통해 내 삶을 합리화 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많이 담겨있지는 않은가?
[리빙 포인트] 사실 생각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 조언이 별로 필요 하지도, 잘 맞지도 않을 수 있다. ‘너’를 위해 한다고 하는 충고가 사실 ‘나’를 위한 것일 수 있다-를 기억해 보자.
* 의견을 보태 주신 미역님께 감사를.
참고 문헌
Tetlock, P. E. (1985). Accountability: A social check on the fundamental attribution error. Social Psychology Quarterly, 48, 227-236.
Laurin, K., Kille, D. R., & Eibach, R. P. (2013). “The Way I Am Is the Way You Ought to Be” Perceiving One’s Relational Status As Unchangeable Motivates Normative Idealization of That Status. Psychological science, 24, 1523-15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