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한 경제발전으로 얻게 된 현대화는 삭막한 도시 라이프를 만들었습니다. 나 혼자도 제대로 챙기기 힘든 시대에 생존을 요구받으면서 어떻게든 버티라고 강요받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나만을 생각하고, 내 가족만을 생각하고 더 나아가 내가 믿는 ‘우리 편’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도시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더 냉철합니다. 수익 창출이 존재의 이유인 비즈니스에서는 돈이 안 되는 일은, 우리 사업에 도움이 안되는 관계자는 배척하게 됩니다. 또한, 있는 사람은 더 있게 되고, 없는 사람은 더 없게 되는 양극화는 더욱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 속에서 최근, 다시 ‘함께’ 하기 위한 움직임이 보이고 있습니다. 그것도 ‘비즈니스’ 필드에서 그렇습니다. 나보다는 우리를 외치며 ‘함께’의 가치를 보여주기 위한 대안적 모델, ‘협동조합’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협동조합이란 사전적 정의로,
“경제적으로 어렵고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있는 사람들이 뜻을 같이하고 힘을 한데 모아 스스로 자신들의 처지를 개선하고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든 경제조직”
을 뜻합니다.
협동조합의 시작은 19세기 중엽 영국에서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1844년에 발족한 로치데일 공정선구자조합이 근대 협동조합의 효시입니다. 이 협동조합은 자본주의의 성립·발달 과정에서 발생한 빈부의 격차·실업·저임금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했습니다. 그로부터 10여 년 후에는 프랑스와 독일에서도 협동조합운동이 일어났죠.
국내의 경우에는 1920년대 중반, 우리 한민족에 의해 전개된 조선물산장려운동·외화배척운동·납세거부운동·소작쟁의·민립대학설립운동 등과 함께 일어난 민간 협동조합운동을 최초의 진정한 협동조합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역사적으로도 오래된 ‘협동조합’이 오늘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탈바꿈해서 보여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례들이 있는지, 그리고 왜 다시 함께하기 위한 경제조직, ‘협동조합’이 뜨고 있는지 시리즈 포스팅을 통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 소개드릴 협동조합 사례는 국내 로컬푸드 1번지, 완주로컬푸드협동조합입니다.
완주로컬푸드협동조합
생산자에게는 소농민들의 농산물 판로 기회를
소비자에게는 건강하고 신선한 친환경 식재료를
완주로컬푸드협동조합은 조합원 1,088여 명이 모여 만든 지역협동조합입니다. 완주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농민분들이 모여서 만든 협동조합이죠.
이 협동조합은 크게 1) 농산물 직매장과 2) 식당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직매장의 경우 6군데를 운영하고 있고 대표적인 모악산 직매장은 연간 24 만명이 방문하며 연간 52억의 매출을 거두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이면서도 연매출 수십억 원을 거두는 비즈니스 모델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기한 점은, 어느 누구도 손해를 보지 않는 ‘함께’ 비즈니스라는 점입니다.
이곳 농산물 직매장에서는 조합원들이 직접 생산한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곳의 원칙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은 농산물 재배부터 운송, 상품 진열까지 ‘조합원’이 직접 한다는 것입니다.
조합원은 자신의 밭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아침 일찍 가지고 와서 직접 수량과 가격을 컴퓨터에 입력한 뒤 바코드 스티커를 받습니다. 그 스티커에는 각 생산자들의 이름이 적혀있죠. 조합원들은 바코드 스티커를 자신이 가져온 농산물에 직접 부착한 뒤, 상품을 차곡차곡 매대에 진열합니다. 매장 직원이 아니라 조합원이 직접 합니다. 그렇게 애지중지 자식처럼 키운 농산물들을 떠나보낼(!) 준비를 하죠.
직접 농민이 자신이 판매할 농산물의 무게, 가격 등을 정하고 바코드 스티커를 받아 포장된 농산물에 부착한다.
판매 수량은 상관없습니다. 어떤 조합원은 무 5개를 소량으로 가지고 와 판매하기도 하고 어떤 조합원은 양배추 농사가 잘됐다며 양배추 수십 개를 가지고 오셔서 진열하기도 합니다. 이곳은 대농이 아닌 소농이 우선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단, 특정 품목이 너무 많이 진열되지 않도록 조합원들이 자율적으로 수량을 조절합니다. 판매되지 않고 남게 되면 다시 생산자에게 돌아가야 됩니다. 신선한 농산물만 판매하겠다는 조합원들의 신념으로 만들어진 판매 원칙 때문입니다. 이렇게 서로 최대한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이익을 조절하면서 ‘함께’ 잘 살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매일 오후 9시, 조합원들은 이 시간을 제일 기다립니다. 바로 내가 진열한 농산물이 얼마나 팔렸는지 수량과 예상 수입이 앱 알림으로 오기 때문입니다. 내가 생산한 만큼, 진열한 만큼 정직하게 수입이 들어옵니다. 하루에 몇천 원을 벌 수도 있고, 어떤 날은 수십만 원을 거둘 수도 있습니다. 이 재미에 소농민들은 더 열심히, 재밌게 농사를 짓습니다.
내가 작은 밭이라도 농사를 지어 훌륭한 농산물을 재배하면 받아줄 곳이, 판매할 곳이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적으면 적은 만큼, 풍작이면 풍작인 만큼 정직하게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곳이 이곳입니다.
보통 마트의 경우는, 대형 농산물 생산자(대부분 기업형 농장이죠)와 계약을 해서 농산물을 납품하기 때문에 영세 농민들은 판로를 개척하기가 어렵습니다. 판로라고 해봐야 시장이 전부이지만 요즘과 같은 날씨에는 모두들 시원한 마트로 향하죠.
하지만 이곳에서는 내 밭이 몇 평 되지 않더라도 내가 만든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습니다. 얼마 되지 않은 금액이더라도 통장에 수입이 찍히는 걸 보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죠. 어르신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에 무리가 없을 때까지는 농사로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이 돈으로 손주에게 선물을 사주기도 하고 자식에게 손 안 벌리고 병원비로 사용하기도 하죠. 이처럼 소농, 영세 농민들에게 협동조합은 모두가 잘살기 위한 경제 모델 중 하나입니다.
그럼 소비자들은 어떨까요? 소비자들은 이곳에서 생산자의 이름을 만납니다. 각 상품마다 어떤 생산자가 생산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상품을 진열하고 있는 생산자를 만나 상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농약을 치지 않은 친환경 농산품들만 판매가 가능합니다. 완주농업센터에서 불시에 농작물을 검사해 농약이 검출되게 되면 그 생산자는 조합에서 강퇴를 당합니다. 이를 피하기 위해 모든 조합원들이 ‘무농약’으로 친환경 재배를 하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이런 건강한 먹거리를 위해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옵니다. 게다가 농산물 생산자가 직접 운송과 진열을 하다 보니 유통비와 인건비를 줄일 수 있고 그 혜택을 소비자에게 드리고 있습니다. 친환경 농산물임에도 가격이 저렴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이곳에는 빵집도 하나 있습니다. 완주농업거점센터에 있는 완주 지역 어머님들이 제빵사 자격증을 취득해서 운영하고 있는 곳입니다. 이곳의 특징은 빵의 모든 재료가 ‘완주산’이라는 점입니다. 빵을 만드는 밀도, 빵 안에 들어가는 팥도 모두 완주산입니다. 또 방부제를 쓰지 않아 하루가 지나면 ‘썩는 빵’으로 유명합니다. 어떤 소비자는 ‘썩는 빵’을 보고 방부제가 들어가지 않은 빵임을 알고 감사의 표시를 했다고 합니다.
지역민의 재료가 자영업자의 상품으로 변하고, 다시 지역 소비자를 만나 생산자/자영업자/소비자가 모두 이득을 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매장 2층의 로컬푸드 식당에서는 바로 농산물 직매자에서 구매한 ‘로컬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 모두 완주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입니다. 지역 주민들이 지역 식재료로 지역 밥상을 만들고 있는 거죠. 음식 맛도 기가 막힙니다. 손맛 좋다고 하는 어머님들을 모셔 왔기 때문입니다. 지하 직매장에서는 건강한 식재료를 구매하고 2층 식당에서는 그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어볼 수 있습니다. 생산자, 그리고 소비자, 더불어 지역 주민이 모두 함께 잘 살기 위한 모델이 이렇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다음 2편에서는 최근 생겨나고 있는 ‘아티스트 협동조합’에서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혼자로는 창작 이외 홍보, 마케팅, 판매가 힘든 아티스트들이 서로 모여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새로운 창작을 시도하기도 하고 마켓을 개최하면서 수익을 거두기 위한 시도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 이 글은 다큐멘터리 3일 ‘완주로컬푸드협동조합’ 편을 시청한 뒤, 내용을 정리한 글입니다.
- 이미지의 경우 ‘다큐멘터리 3일’에서 캡쳐하였습니다.
원문: 생각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