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The Atlantic사의 What Mirrors Tell Us About Animal Minds를 번역, 게시한 글입니다.
지난 1월, 가디언의 한 편집자는 대머리 독수리가 자신의 모습이 비친 물을 바라보는 사진을 두고 이런 트윗을 올렸습니다. “독수리가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이 사진이 최근 뉴스란을 채우고 있는 내용들에 대한 비유는 아닐 것이다.” (역주: 독수리는 미국의 상징입니다.)
이 사진은 모두 62,000 번 리트윗 되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애틀랜틱의 내 동료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독수리가 자기 모습을 알아볼만한 지능이 있을까?”
글쎄요.
1838년 3월, 젊은 무명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 역시 같은 의문을 가졌습니다. 런던 동물원을 방문한 그는 우리에 갇힌 제니라는 오랑우탄이 거울을 가지고 노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는 제니가 거울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기록했습니다.
제니는 거울을 검사하고, 거울에 키스했으며, 거울에 얼굴을 대고, 거울에 다가가면서 몸을 숙였습니다. 제니는 거울 속에서 무엇을 본 걸까요? 그게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챈걸까요? 그리고 아마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해야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우리가 알 수 있을 것인가일 것입니다.
100년 뒤, 심리학자 고든 갤럽 주니어는 이 마지막 질문에 대한 한 가지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1970년 그는 거울에 익숙한 네 마리 침팬지를 구해, 이들을 마취했습니다. 그들이 마취된 사이 그는 침팬지의 눈썹을 붉게 염색했습니다.
정신이 돌아온 침팬지가 다시 거울을 보게 되었을때, 이들은 인간이 그런 상황에서 할법한 행동을 그대로 했습니다. 바로, 거울을 본 뒤 자신의 눈썹을 만진 것입니다. 그러나 침팬지와 달리 원숭이들은 자기 얼굴의 붉은 표시에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갤럽은 침팬지는 자신을 알아보지만 원숭이는 알아보지 못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는 것은 보다 고등한 지능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는 것이 자아라는 개념과 관계 있다는 점에서 이번 실험은 유인원에게서 자아 개념을 발견한 최초의 실험이 될 것이다.”
갤럽의 거울 실험은 동물의 지능을 연구하는 가장 유명하면서도 논쟁적인 방법입니다. 이 실험은 수십 종류의 동물들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동물이 거울이 아닌 자기 몸의 해당 부분을 건드릴 경우, 그리고 그 영역을 평소보다 더 자주 만질 경우 사람들은 그 동물이 거울 속 자신을 인식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최소한 이런 행동은 자아를 인식한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곧 그 동물이 자신의 몸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어쩌면 갤럽이 반복해서 주장한 것처럼, 이 실험은 자기 자각(self-awareness)을 검사할 수 있는 실험일지 모릅니다.
어떤 동물들은 일관적인 결과를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침팬지와 오랑우탄은 대부분 분명하게 실험을 통과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해피라는 아시아코끼리는 2006년 아주 커다란 거울을 빤히 쳐다본 후, 자신의 머리와 몸통의 표지를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두 코끼리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범고래와 큰돌고래 역시 실험을 통과한 것으로 결론내려졌습니다. 이들은 원숭이나 코끼리처럼 사지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지만, 자기 몸의 표지를 확인하기위해 특별하게 몸을 꼬고 늘였습니다. 사육된 가오리 두 마리 역시 비슷한 행동을 보였지만, 다른 관련 연구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행동을 분명하게 해석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사실 거울 실험을 통과하지 못한 동물들, 그러니까 거의 대부분의 동물들의 경우에 이들의 행동을 해석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판다와 개도 거울 실험을 통과하지 못했고 바다사자 역시 실패했습니다. 이들은 거울속 자신을 무시하거나, 싸우거나, 같이 놀기를 원했으며 그 모습이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고릴라는 실험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수십 년 동안, 고릴라는 거울 속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는 유일한 유인원으로 여겨졌지만, 그 후 인간과 긴 시간을 지낸 몇 몇 고릴라가 거울 실험을 통과했습니다.
갤럽의 최초 실험 이후 수십 년 동안, 원숭이의 성적 역시 좋지 않았습니다. (마크 하우저의 원숭이 사기사건도 이와 관련된 것입니다.) 그러나 2010년 위스콘신 매디슨 대학의 아비게일 라잘라는 다른 실험 때문에 뇌에 이식물을 심은 실험실의 원숭이가 거울 속 자신을 보고 자기 머리를 확인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거울실험에 실패했던 다른 원숭이들과 달리 이 원숭이는 분명 자기 머리 위 물건을 확인했습니다. 이들은 이후 자기가 보지 못했던 성기를 거울을 통해 확인하는 행동까지 보였습니다. “우리는 이들이 자신을 자각한다고 객관적으로 주장할 수는 없지만, 이들이 보이는 여러 행동이 그럴 가능성을 암시합니다”라고 라잘라와 그녀의 동료들은 기록했습니다.
갤럽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원숭이가 거울 실험을 통과하지 못할 때에도 눈에 보이지않는 물건을 찾는데 거울을 이용한다고 말했습니다. 곧, 자신을 자각하지는 못하지만, 거울이 빛을 반사한다는 사실은 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거울 속 자기 머리위 물건을 만진것은 자기가 느끼지만 보지못하는 위치의 이상한 물건을 만진 것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거울 실험을 해석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비둘기와 언어 능력을 가진 아프리카 회색 앵무새를 포함한 대부분의 새들은 거울 실험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조류의 연패 기록은 2008년, 괴테 대학의 헬무트 프라이어가 자기 목의 노란 점을 지우려는 골디와 게르티라는 이름의 두 유럽 까치의 행동을 발견함으로써 깨졌습니다.
이는 포유류를 제외한 동물들 중 거울 실험을 통과한 동물을 발견한 최초의 실험이며, 그 동물이 까치라는 점은 매우 그럴듯했습니다. 까치는 어치, 까마귀와 함께 까마귀속(corvid)에 속합니다. 이들은 “깃털달린 유인원”이라 불릴 정도로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새 중에 거울 실험을 통과하는 새가 있다면, 까마귀속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까마귀속 새들이 통과하지는 못했습니다. 서양갈까마귀(jackdaws)가 실패했고, 큰부리까마귀(jungle crows)역시 실패했습니다. 놀랍게도, 도구를 매우 능숙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까마귀 중의 까마귀라 불리는 뉴칼레도니아 까마귀 역시 거울 실험에 실패했습니다. 그들은 거울을 통해 숨은 음식을 찾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울 속 자신을 보았을 때 날개를 펼치거나, 공격하거나, 거울 뒤를 찾는 등 다른 새를 만났을 때 하는 행동을 취했습니다.
동물의 왕국에서 지식인으로 행세하지만 거울 실험에 실패하는 동물들 중 가장 놀라운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일 것입니다. 다수의 심리학자들은 대부분의 아이들은 18개월에서 24개월 사이에 거울 실험을 통과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는 이러한 가정이 서구의 국가에서만 통한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의 타냐 브로쉬가 케냐 아이들을 대상으로 행한 실험에서 82명의 아이 중 단 두 명만이 거울 실험을 통과했습니다. 물론 케냐에서 거울은 미국처럼 어느 집에나 있는 물건은 아니지만, 그래도 거울은 존재하며 사람들은 이를 자주 사용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 어떤 아이들은 여섯 살이나 먹었음에도 – 그저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기만 했고 이마에 묻은 무언가를 떼어 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브로쉬와 다른 이들은 피지, 페루, 잠비아 등의 다른 비서구권 국가에서도 이와 비슷한 결과를 얻었습니다. 명백하게 자신에 대한 자각을 가진 이 지역의 사람들이 거울 실험에 실패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연 이 거울 실험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요? 예를 들어, 브로쉬는 케나의 아이들은 자기 모습이 거울에 비친다는 것을 이해했지만, 이를 가지고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다고 말합니다.
직접 행동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배우기를 장려받는 서구의 아이들과 달리, 시골 오지의 아이들은 주로 관찰과 흉내를 통해 배웁니다. 자신의 얼굴에 있는 표지를 보고 이들은 “어쩌면 그 표지가 자기 몰래 어른들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남겼다고 가정하고 이를 닦아낼 생각을 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거울 실험을 통과하지 못한 다른 동물들에게도 비슷한 설명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고릴라들이 거울 실험에 실패한 것은, 고릴라 사회에서 눈을 마주치는 것이 공격성을 드러내는 신호이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개의 실패는, 개가 시력보다는 후각이 중심이 되는 사회에서 살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아시아 코끼리 세 마리 중 두 마리가 실패했지만, 조슈아 플로트닉이 사이언티픽 아메리칸과의 인터뷰에서 말한것처럼 코끼리는 거대한 동물이며 “자신의 몸에서 무언가를 떼내기 보다는 진흙 같은 것을 자신의 몸에 붙이는 데 더 익숙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이 동물들은 거울 속 표지를 보고도 그 표지를 인식하지 못했거나, 그 표지로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거나, 아니면 그저 무관심 했을 수 있습니다. 거울 실험으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침팬지와 오랑우탄처럼 손을 사용할 수 있고, 호기심이 많고, 시각 중심적이며, 몸을 단정하게 하는데 관심이 많은 동물들이 마침 서구의 과학자들이 쉽게 해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기 몸의 표지에 반응했다는 것 뿐입니다. 어쩌면 이 실험은 테스트를 받는 동물보다, 이런 테스트를 만든 인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실험일 수 있습니다.
거울 실험의 결과가 성공과 실패라는 두 가지 결론밖에 없다는 점도, 이 사실이 마치 “자기에 대한 자각이 전적으로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두 가지 상태 밖에 없다고 가정한다는 점에서” 또다른 문제가 된다고 데비 켈리는 썼습니다. 어떤 종은 어떤 조건에서만 통과하기도 합니다.
작은 흑백무늬의 클라크잣까마귀는 좋은 예입니다. 야생에서 이 새는 잣을 땅에 묻어 숨기지만, 다른 잣까마귀가 지켜본다는 것을 알 때에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지난해, 켈리가 잣까마귀를 깨끗한 거울 앞에 두었을때에도 이들은 거울 뒤 자신을 다른 잣까마귀이며 잠재적인 도둑이라 여기고 잣을 땅에 묻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켈리가 깨끗한 거울이 아니라 표면이 울퉁불퉁해 흐릿하게 보이는 거울을 두자 이들은 자유롭게 잣을 묻었습니다. 켈리는 이를 이상하게 여겨, 흐릿한 거울을 두고 몸에 표지를 두는 기존의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잣까마귀는 깨끗한 거울에서는 이 실험을 실패했지만, 흐릿한 거울에서는 자신을 알아보았습니다.
켈리는 잣까마귀가 흐릿한 거울을 볼때에는 움직임이나 그림자를 통해 그 모습이 자신임을 알아본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깨끗한 거울은 일종의 과도한 감각 신호로 작용해, 자신에게 익숙치 않은 감각이 쏟아지는 효과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런 깨끗한 거울은 자연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잣까마귀가 바깥 세상에서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는 표면은 호수나 개울, 웅덩이처럼 흐릿한 거울일 것입니다.
이제 처음 독수리로 돌아가봅시다.
독수리는 자신의 모습을 인식할 수 있을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을까요? 우리는 이에 대한 답을 알지 못합니다. 프란스 드 발의 말을 변용하자면, 우리는 다른 동물이 얼마나 영리한지 알 수 있을만큼 영리하지 못하며, 따라서 우리는 자기자각(self-awareness)과 자아인식(self-recognition)을 확인할 수 있는 더 나은 실험을 고안해야 합니다.
그 독수리는 어쩌면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경쟁자를 바라보는 것일 수 있습니다. 나는 처음에는 동료에게, 아마 그 독수리는 사냥감을 찾고 있을 것이라 말했고, 그 사실 역시 지금 현실에 대한 어떤 비유는 아닙니다.
물론 그 말은 농담이었지만, 이 말 역시 거울 실험 논쟁에 대한 한 가지 사실을 알려줍니다. 거울 실험은 동물이 거울을 통해 무엇을 보는가에 관한 것이지만, 또한 그 동물을 보는 우리 자신의 모습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원문: 뉴스페퍼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