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화된 웹툰이 원작보다 재미 없는 이유에서 이어집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 각색은 어디로?
다음 만화속 세상에서 연재된 HUN의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보자.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개봉 2주차까지 550만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고 최종 스코어는 630만을 넘어섰다. 아마도 이제껏 나온 웹툰 원작 영화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 아닐까 싶다.
웹툰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연재 당시에도 신선한 설정과 비장함 속에서도 잃지 않는 캐릭터들의 유머, 그들이 달동네 사람들과 만들어가는 인간미 넘치는 에피소드들이 한데 어우러져 큰 인기를 얻었다. ‘들개로 태어나 괴물로 길러져 바보로 스며들다’는 영화의 카피처럼 인간병기로 길러진 살벌한 남파간첩들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로 세상에 스며들어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생기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은 독자들을 웃기고 울렸다.
이미 인기가 검증된 이 웹툰의 영화화 소식이 알려졌을 때 독자들은 이전의 웹툰들이 영화화 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최소한 ‘원작만큼만 재미있기를’ 바랐다. 김수현, 이현우 등의 청춘스타가 주연으로 캐스팅되고 연기파 배우인 손현주가 합류하며 기대는 점점 높아졌고, 개봉 직후 과도한 스크린 점유에 대한 말들이 많았지만 해외 블록버스터들이 속속 개봉해 점유 스크린 수가 현저히 줄었음에도 성과를 냈다.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말이다.
원작을 넘어서는 영화를 만들기란 정말로 쉽지 않다. 원작을 소비한 관객이라면 그걸 어떻게 해석해서 만들든 만족감보다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다. 검증된 원작을 가져와 영화로 만들면 원작의 유명세와 인지도까지 함께 얻으며 마케팅과 관객동원에 도움이 된다는 이점이 있지만, 그런 요소들 때문에 영화제작시 운신의 폭이 줄어드는 것이다. “원작은 이런데 왜 영화에서는 이런 장면을 안 넣었나”, “비중은 적어도 원작에서 이 역할은 아주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데 왜 통편집 당했나” 등등.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제작되는 영화에선 쉽게 들을 수 없는 말이리라.
<은밀하게 위대하게> 역시 <절벽귀>처럼 완성도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다. 뛰어난 원작에 기대어 별다른 수정 없이 마치 만화의 한 컷 한 컷을 나열할 뿐인 영화다, 꽃미남 배우들을 캐스팅하여 팬심에 호소하는 영화다, 만화에서는 허용되는 설정과 연출의 빈 공간을 채워 넣지 않은 나이브한 영화다, 등등.
영화 칼럼니스트 김태훈은 영화평론가 이동진과 함께 SBS TV <접속 무비월드>에 출연해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에 대해 “우리까지 이 이상한 열풍에 낄 필요는 없다” “스토리의 메인 줄기와 세부적인 디테일이 조응하지 않으며 흐름이 끊긴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런 ‘돌직구’ 비평을 비웃기라도 하듯 영화는 흥행일로를 달리고 있다. 왜?
흥행의 절대 요소: 관객이 원하는 밥상을 대접하기
다들 알다시피 영화의 예술성이나 만듦새, 완성도와 흥행은 곱게 정비례하지 않는다. 다소간의 미진함을 상쇄시킬 만큼 매력적인 다른 요소가 있거나 대부분의 요소가 별로임에도 단 하나의 매력으로 관객을 끌어들일 자신이 있다면 충분히 흥행이 가능하다. 어마어마한 티켓파워를 지닌 배우 한 사람의 힘이나 특정 장르를 좋아하는 집단에 확실히 어필하는 코드가 될 수도 있는 것.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해당 웹툰을 좋아하는 집단에 어필하는 동시에, 잘생긴 청춘스타들을 대거 출연시켜 그들의 팬 층에 어필하는 데도 성공했다.
거기에 하나 더. 극중에서 미모의 세 남자 배우의 끈끈한 유대, 그들 간의 로맨스(?)를 상상하게 만드는 BL(Boy’s Love)코드를 적절히 활용해 배우 개인의 팬 뿐 아니라 팬픽(보통 남자 아이돌그룹 멤버들끼리 커플을 만들어 전개하는, 팬들이 쓰는 소설)을 즐겨보는 1020 여성들, 팬픽을 소비하는 계층과 교집합을 가졌지만 결이 다른 BL 마니아들의 지지를 얻는 데에 성공했다.
화면 가득 펼쳐지는 꽃미남들의 ‘므흣’하고 ‘흐뭇’한 비주얼, 그리고 미남들의 처절한 싸움에 열광했다. 재관람 열풍도 일었다. 그들에게 있어 원류환이 왜 굳이 동네 바보 형 행세를 해야 했는지, 길에서 배변(!)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납득할 만한 이유가 영화에 나오는지 안나오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한 팔로 물구나무서기 한 상태에서 푸시업을 할 때 드러나는 복근의 섹시함이나, 클라이맥스에서 그들의 두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에 이입을 할 뿐이다. 그게 나쁜가?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원하는 것을 얻어가는 건 당연한 소비자의 권리다.
웹툰이 가진 장점을 수용하며 영화의 완결성을 갖춘, ‘좋은 각색’을 보고 싶다
‘절벽’ 으로 돌아가 보자. <절벽귀>를 본 독자들이 영화 ‘절벽’에서 원하는 게 무엇일까. 포털사이트에서 ‘절벽귀’를 검색해보자. 절벽귀의 절벽 까지만 검색해도 따라 붙는 자동검색어 중 상위에 있는 것이 ‘절벽귀 깜놀’이다. 정확한 예는 아니나 해당 작품이 어떤 식의 입소문이 났으며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연관검색어는 한 명이 검색해본다고 해서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동시에 이는 독자들이 ‘절벽’에 기대하는 바 이기도 하다. 무서운 이야기는, 무서워야 한다. 관객을 불시에 깜짝 놀라게 해야 한다. 뒷목이 서늘하게 만들어야 한다. 공포영화는 응당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관객이 실소를 터뜨린다면 <무서운 영화>가 아닌 이상 그건 실패한 공포영화다.
절벽을 타고 올라오는 구신은, 만화에서는 단 한 컷만으로도 공포를 만들어낼 수 있다. 영화는 다르다. 귀신이 나오기 전에 인물의 동선과 리듬으로 상황을 조성하고, 분위기를 끌어내야 한다. 만화의 연출 리듬과 영화는 다를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영화에서는 ‘깜놀’이 존재하지 않는다.
<절벽귀>는 소재가 탁월하고 치밀하게 구성해 종국에 섬뜩함을 느끼게 하는 복선이 있으며, 관객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만한 대목까지 고루 갖췄다. 걸작이라고 말할 만큼은 아닐지라도 분명 잘 만든 짧은 이야기다. ‘절벽’은 각색을 하는 과정에서 고민 없이 원작의 결을 그대로 답습하며 공포‘영화’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공포’를 잊어버렸다.
그건 웹툰이 더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원작의 각색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설사 원작에 허점이 많다 해도 각색하는 과정에서 치밀하게 보완하고 새로운 요소를 투입하여 영화만의 완결성을 갖춰야 한다. 그게 각색의 기본이다. 원작을 그대로 만든다며 부족한 점까지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태만이고 능력부족이다.
주호민의 <신과 함께> 3부작은 첫 편인 ‘저승편’이 연내 개봉을 목표로 한창 촬영 중이며 정연식의 <더 파이브>는 이미 제작을 마치고 개봉을 앞두고 있다. 하일권의 <목욕의 신> 장이 <미확인 거주물체> 황미나 <보톡스> 서나래 <낢이 사는 이야기> 등 판권이 팔리고 스크린으로 관객들을 만나길 기다리는 작품들이 줄을 서있다.
지금까지 나온 웹툰 원작 영화들은 소기의 성과를 거둔 작품도, 흥행에 성공한 작품도 있지만 웹툰이 가진 장점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영화적 재미를 살린, 원작을 뛰어넘는 작품은 드물다. 바라건대 원작을 ‘그대로’ 옮기기보다는, 영화적으로 뛰어난, 자체로 완결성을 지닌 뛰어난 영화가 나오기를 바란다. 위에 언급한 저 작품들 중 하나가 그런 영화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섣부른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