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강풀 원작의 <아파트>와 B급 달궁의 <다세포 소녀>가 영화화 되어 극장에 걸렸다. 결과는 둘 다 흥행참패.
독자들은 ‘만화 그대로만 찍어도 이거보다 낫겠다’며 실망을 금치 못했고 영화관계자들은 ‘그대로 찍으면 영화가 안된다’고 항변했다. 비록 시작부터 쓴맛을 봐야했지만, 이때부터 영화계는 꾸준하게 웹툰의 영화화 판권을 사들였다. 웹툰이라는 만화연재의 새로운 방식이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웹툰으로 데뷔한 작가들의 성장과 종이매체 연재를 고수하던 기성작가들의 유입, 웹툰 고유의 연출과 화법에 이미 익숙해한 신진 작가들의 데뷔가 활발해졌고 더욱 더 다양한 이야기와 상상력이 넘실댔다.
서사와 장르가 뚜렷한 웹툰들이 많아지고 더 많은 독자들이 몰리며 이전보다 ‘(영화로) 해볼 만한’ 작품들의 라인업을 짜기가 쉬워졌다. 하지만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흥행에 성공을 거두는 일은 의외로 나타나지 않다가, 2010년, 드디어 ‘웹툰 원작영화는 흥행에 실패한다’는 속설을 어.느.정.도 깬 작품이 등장하는데 윤태호의 <이끼>가 그것이었다. 논란의 여지는 있었지만 350만 명이 넘는 관객들이 <이끼>를 위해 극장을 찾았고 그해 있었던 각종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며 단순히 ‘가능성을 봤다’를 넘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지표가 되었다.
완성도 있는 스토리 제공의 원천으로 자리잡은 웹툰
해외에서는 주로 대중소설이 원천 스토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한국에서 대중소설 보다는 웹툰 쪽이 더 충실하게 그 역할을 이행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개성적이고 기발한 아이디어의 보고이며 일상의 이야기를 가장 많이 다루고 있는 매체, 웹툰. 새로운 이야기, 기발한 상상력을 늘 찾아다니는 영화와 드라마 제작자들은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개발하는 데 들이는 수고 이상으로 이미 잘 만들어놓은 이야기를 찾고 재빨리 가져오는 데 공을 들인다. 효율적이기도 하거니와 이미 기존작품을 소화한 독자들의 관심을 덤으로 얹어 얻을 수 있는데 무엇을 더 망설이랴.
그들은 매의 눈으로 작품을 훑는다. 먼저 찜하는 놈이 임자이기 때문에 당장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 여건이 되지 않더라도 일단 판권은 사고 본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26년> 등 이미 여섯 편의 작품이 영화화 된 강풀은 바로 이전 연재작인 <조명가게> 역시 영화 판권계약을 마친 상태다. 2012년과 2013년 최고의 화제를 모은 만화인 윤태호의 <미생>은 드라마로 만들어지기 이전에 각 등장인물의 에피소드를 담은 모바일 티저영상을 제작, 공개했다.
HUN 작가의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해외 블록버스터들이 속속 개봉하는 와중에도 630만 이상의 최종 스코어를 기록했다. 2013년 8월 현재, 웹툰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13편이며 판권계약을 마치고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거나 이미 크랭크인 한 작품은 10여 편을 상회한다. 웹툰원작영화라는 신종 장르가 생기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여느 때보다 웹툰의 영화화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화제의 웹툰 <절벽귀>의 영화화 실패 원인: 리얼리티의 부재
웹툰 영화가 화제가 되는 와중에 조용히 영화로 제작되어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있는 작품이 있다. 옴니버스 호러영화 <무서운 이야기>(2012)의 두 번째 편인 <무서운 이야기 2>. 네이버에 연재된 오성대 작가의 9화로 맺음한 짧은 만화 <절벽귀>가 영화의 첫 번째 이야기로 나온다.
조난괴담 ‘절벽’이라는 이름의 단편은 원작을 그대로 옮겨왔다. 두 친구가 함께 산에 갔다가 실수로 절벽에서 떨어져 조난을 당하고, 생존본능과 이기심 때문에 벌어진 사소한 사건 하나가 계기가 되어 그만 실수로 친구를 죽이고 만다. 살아남은 한 명은 무려 일주일을 버틴 끝에 가까스로 구조되지만 죄책감과 자괴감, 두려움 등이 뒤범벅된 정신적 불안증세가 계속되고, 급기야 죽은 친구의 환각과 환청마저 들리는 상황에 이른다. 그 때 죽은 친구의 동생이 그의 앞에 나타나고, 형이 죽은 곳에 가서 유골을 뿌리고 싶다는 동생과 함께 친구를 애도하기 위한 또 한 번의 산행이 시작된다는 게 대략의 줄거리다.
원작을 본 독자라면 영화를 볼 때 해당 장면들이 눈에 선할 정도로 대부분의 장면들이 웹툰과 흡사하게 만들어졌다. 다만 영화에서는 두 주인공에게 약간의 배경설정을 추가했는데 이는 친구의 죽음이 실수가 아닌 고의성이 담겼을 수 있다는 암시를 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말한다면 이 영화는, 함량미달이었다. 우선 리얼리티를 따져보자. 겨울산을 올라 2주간 산장에 머무를 것이라 했던 이들의 옷차림이 일단 수상하다. 그들은 스트리트 패션지에 나올법한 ‘야상’을 걸치고 백팩을 매고 있다. 지하철 노약자석의 등산객들을 보라고. 게다가 조난당한 주인공들은 일주일동안 아무것도 마시지 않고도 살아남는데, 의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사람이 물을 전혀 마시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기간을 4~5일로 본다. 영화에서처럼 일주일을물 없이 버티려면 빛이 완전히 차단되고 체온과 기온의 차이가 크지 않으면서 습도가 높은 장소에서 조난을 당해야 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그러고도 초코바를 먹겠다고 까부는데, 탈수로 바싹 마른 목구멍으로 초코바 같은 거 넘어가지 않아 왜그래…
리얼리티와 디테일은 작품의 완성도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꼽는 덕목이다. 물론 영화가 안고 있는 이런 문제들은 원작에서도 감지된다. 그러나 한 편을 보는데 고작 몇 분이 걸리고, 이마저도 독자가 원한다면 더 빠르게 스크롤을 내려버리는 것이 가능한 웹툰과 누구나 같은 속도로 감상해야하는 영화는 엄연히 허용의 한계가 다르다. 영화에서는 리얼리티가 대단히 중요해진다. 우리가 현실에서 보는 익숙한 풍경이 영상으로 개연성 있게 재현되어야 한다. 어느 정도의 과장이나 왜곡, 생략 등이 허용되는 만화의 장르적 특성이 영화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사실적인 영화에서 드러나는 미숙함이나 부자연스러움은 배우가 직접 연기하는 연극보다도 적나라하게 까발려진다. 도저히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장면들이 보일 때, 상영 도중 나가버리지 않는 이상 그 어색함과 작위적인 장면을 외면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관객에겐 고문에 가까운 괴로움을 선사한다.
만화와 영화, 엄연히 다른 문법과 그 괴리
‘좋은 콘텐츠는 그대로 다른 장르에 이식해도 여전히 좋은 콘텐츠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과했다’는 말을 앞에서 했다. 원작을 좋아해서 영화로 각색된 작품을 일부러 극장까지 찾은 관객들이 영화에 실망하며 늘 하는 얘기 중 하나가 ‘원작을 콘티 삼아 그대로 찍어도 이거 보다 낫겠다’ 아닐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러면 곤란합니다.
만화의 경우 컷과 컷 사이의 공백을 독자의 상상력으로 메우고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독백이나 해설 등 텍스트의 삽입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영화에서 상황의 설명을 영화적 연출 없이 독백으로 메울 수는 없다.
‘절벽’이 공포영화라는 것에 주목하자. 공포영화는 연출과 편집 테크닉이 중요한 장르다. 만화에서 느끼는 공포의 포인트와 영화에서의 그것은 엄연히 다르다. 편집의 리듬감을 달리 하거나 소리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거나 혹은 만화에서는 전혀 고려대상이 아닌, 배우의 연기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잘 섞여야 비로소 관객에게 원하는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만화에서 생략이 가능한 사건 발생의 ‘이유’를, 납득 가능한 이야기로 만들어내기 위해 곳곳에 보이는 빈틈을 메우는 것도 중요하다. 그것은 당위를 부여하는 작업이다. 이를테면 두 친구는 절친한 사이인 것 같지만 주인공이 프리 트레이더(증권투자로 돈을 버는 직업)로, 친구의 돈을 가져와 상당한 돈을 벌어들였고 그 돈을 가로채기 위해 친구를 ‘의도치 않았지만’ 죽였을 수도 있다는 암시를 보여준다.
원작만화는 오로지 절벽에 떨어진 이후의 이야기만 있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흥미로울 수 있지만, 기왕에 뭔가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설정을 만들어냈다면 적절하게 이용을 해야 한다. 설정의 빈 공간만을 채우고 끝낼 것이 아니라 영화만의, 설정 이상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완벽히 고립된 환경에서 의지할 것은 서로의 우정이 아니라 주머니에 든 초코바 하나뿐이다. 둘도 없는 친구는 고작 초코바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화를 내고 싸우고 거짓 연기를 하다가 결국 한 명의 죽음에 이른다. 생존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구조 후에 내가 벌어들인 돈을 전부 차지해야 하는데”란 생각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절벽 아래로 떨어져버린 초코바를 구하기 위해 내려간 친구를 고의로 놓아버리거나 극적으로 보일 수 있는 다른 이유를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놈의 초코바를 먹기 위한 다툼을 더 비열하고 파괴적으로 그려 관객 역시 다른 이유보다 세상에서 제일 귀한 그 초코바의 행방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유도하는 건 어땠을까.
‘절벽’에서 두 사람이 느끼는 고통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을 만큼 절박하지 않아 보인다. 혹은 작위적으로 보이거나. ‘절벽’은 각색의 실패사례다. 인기 웹툰이 원작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그 속에서 끄집어낸 이야기를 어떻게 영화적으로 재해석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지를 고민했어야 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보여준 웹툰 원작 영화의 흥행 방식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