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의 글에서 “고용률 70% 로드맵 정책의 핵심은 “정책의 목표를 경제성장률이 아니라 고용률로 삼은 것” 이라고 말했다. 경제성장률은 성장 우선이고 고용률은 분배 우선이기 때문에 고용률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일까? 그렇지 않다.
애초에 작은 개방경제를 가진 우리나라가 “인위적으로 높게 책정한 경제성장률”을 정책의 타겟으로 삼는 것 자체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첫째로 경제성장률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고, 둘째로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외부여건에 많은 부분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경제성장률은 이미 정해져있다
지난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공약은 바로 “747 정책” 이었다. 경제성장률 7% 달성 · 소득 4만 달러 · 세계 경제 7대 강국 진입. 바로 여기서 “경제성장률 7%”를 목표로 삼은 것이 많은 화제가 됐었는데, 경제학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이것이 얼마나 어이없는 소리인지 잘 알 것이다.
한 국가가 1년동안 달성할 수 있는 경제성장률 범위는 애초에 정해져있다. 바로 “잠재성장률” 때문이다. 잠재성장률이란 ‘한 국가가 주어진 물적자본 · 인적자본 · 조직자본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했을 경우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이다. 잠재성장률은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노동자수와 생산성에 의해서 결정된다.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생산성이 증가할수록 잠재성장률은 올라간다.
잠재성장률은 단기간내에 변하지 않는다. 한 국가의 인구규모는 제한되어 있고, 생산함수를 상향이동 시키기 위해서는 인적자본 · 물적자본 · 조직자본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교육을 통해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교육제도의 변화와 더불어, 새로운 교육의 영향을 받은 세대가 노동시장에 참여해야 하는데 이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기술개발에 따른 자본생산성 향상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기술이 탄생해 실제 현장에 적용되고 산업 전체를 변화시키는 것은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더군다나 경제개발 초기와는 달리 노동투입증가에 한계가 있고 획기적인 생산성 증가가 어려운 경제개발 성숙기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점차 하락하고 있다. 국내 주요 민간경제연구소에 따르면 1990년대 6% 중반에 달했던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최근 3%대 중후반까지 하락했다. 그런데 임기 내에 7% 경제성장률을 달성하겠다? 이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그럼 연초에 각국 정부가 발표하는 경제성장률 목표는 무엇일까? 이것은 “이만큼의 잠재성장률을 달성하도록 노력하겠다” 라는 의미이다.
물론 단기적인 기간 내에 잠재성장률을 뛰어넘는 경제성장률을 달성할 수는 있다. 그러나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초과해 확장 갭이 달성되는 경우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 다시 말해, 인위적으로 높은 수치의 경제성장률을 목표로 하고 이를 달성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
만약 이명박 정부가 “우리는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임기 내에 묵묵히 노력하겠다” 라고 발표하고 정책을 수행했으면 납득 가능하다. “묵묵히 노력한다” 라는 의미는 “장기적인 시간이 걸리더라도 노동 · 자본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교육제도의 변화 · 기술투자 · 제도변화를 위해 노력하겠다” 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그저 수치상 높은 경제성장률 달성을 위해 4대강 사업 등 무리한 일만 벌이고는 물러났다.
작은 개방경제인 한국, 대외여건 변화에 취약
게다가 작은 개방경제를 가진 한국의 단기 경제성장률은 대외여건의 변화에 의해 좌우된다. 한국의 무역의존도는 GDP 대비 110%에 육박하는 반면, 내수시장 크기를 결정하는 민간소비는 GDP의 53%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높은 경제성장률을 한해의 목표로 정하더라도 미국 · 중국 · 유럽 등의 경제상황이 좋지 않으면 목표달성이 어렵다. 작은 개방경제 국가의 대통령이나 정부는 경제성장률에 대해서 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책의 목표를 단순히 인위적으로 높게 설정한 경제성장률로 정할 경우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고, 대통령과 정부는 5년 임기 내에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노력 등을 등한시하게 된다.
실업률은 3%인데 고용률은 60%인 우리나라
실업률의 문제는 “실업률의 측정 방식” 때문에 생긴다. 실업률은 ‘실업자 수 ÷ 경제활동참가자 수’로 측정한다.
여기서 용어의 정의가 필요하다. 생산가능 인구는 15세 이상인 자, 경제활동 참가자는 생산가능 인구 중 구직활동에 참여한 자, 실업자는 최근 4주간 구직활동에 참여했고, 일자리가 생기면 일을 할 수 있고, 현재 일자리가 없는 자를 의미한다.
여기서 “경제활동 참가자”를 측정하는 것이 상당히 애매한데, 최근 4주간 구직활동에 참여하지 않은 “공무원시험 준비생 · 전업주부” 등은 비경제활동인구로 실업률 측정에서 빠지게 된다. 공무원시험 준비생 등을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실업자에서 제외할 수 있을까?
즉, 애초에 경제활동참가율 자체가 낮다면 실업률을 유의미한 지표로 보기 어렵다. 현재 우리나라의 실업률은 3% 대로 OECD 최상위 수준이지만, 고용률은 60% 초반대로 OECD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 해준다. 따라서 정책의 목표를 실업률로 잡아버리면 어찌됐든 낮은 실업률을 달성할 수는 있겠지만, 실질적인 삶의 질 증가를 달성하기 어렵다.
고용률을 정책의 목표로 삼는 경우, 적극적인 노동시장 참여를 촉진
이러한 문제를 가진 실업률을 대신하기 위해 쓰이는 것이 “고용률” 이다. 고용률은 ‘취업자 수 ÷ 생산가능인구’이기 때문에 실업률과는 분모가 다르다. 경제활동 참가율에 영향을 받지 않고 순전히 취업자수에 영향을 받는 지표이다.
따라서 정책의 방향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정책의 목표를 실업률로 삼는 경우, 단지 실업자수를 줄이는 소극적인 정책이 나오게 된다. 그러나 고용률을 목표로 삼는 경우, 비경제활동 인구의 노동시장 참여를 독려하는 적극적인 고용정책이 나오게된다. 즉, 경제활동에서 소외된 전업주부 등의 여성들이나 20대 청년 등의 고용촉진을 위해 노력한다.
고용노동부의 “고용률 70% 로드맵” 정책이 “여성 일자리” 문제나 “높은 대학진학률로 인한 20대 청년층의 늦은 노동시장 참여” 문제를 개선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비경제활동인구의 노동시장 참여를 이끌어내려면 제도 및 문화 개선이 필수적이다. 기업의 부당노동행위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법조항을 새로 만들거나 노동법 적용을 엄격히 해야 할 것이다. 또, 여성에게 불리한 가부장적인 기업문화를 고치기 위해 노력하거나 여성채용을 늘리는 기업에게 인센티브를 줄 수도 있다. “고용률 70% 로드맵”에 나온 것처럼 국가가 공공 보육 · 육아시설을 늘릴 수도 있다. 아니면 국가가 재정을 투입하여 복지서비스를 늘리고 이를 통해 일자리와 시장가치를 창출할 수도 있다.
이러한 제도 및 문화 개선은 5년 임기의 대통령과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고, 균형노동량과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인 경제성장에 도움되는 일이다. 그리고 내수소비시장을 키워 대외의존도를 줄일 수 있다.
이것이 정책의 목표로 경제성장률을 지향하는 것과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잠재성장률의 획기적인 증가는 5년 임기의 대통령과 정부가 달성할 수 없는 것이고 경제성장률 그 자체는 대외여건의 변화를 크게 받는데 반하여, 여성 · 청년 · 중장년층의 고용률을 늘리기 위한 제도 및 문화 개선과 재정투입은 5년 임기의 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고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묵묵히 노력”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고용률 중심의 경제정책을 펴면 GDP 증가는 따라오게 되어있다. 고용률 증가를 위해서는 여성의 일자리 참여나 내수서비스업 발전이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소득이 증가”해 “소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바로 “소득 중심 성장 “, “수요 중시 경제정책” 이다.
무엇을 위해 경제성장을 하는가: 경제성장률이냐 고용률이냐
정책의 목표가 경제성장률이냐 고용률이냐가 던져주는 물음은 이것이다. 바로 “무엇을 위해 경제성장을 하는가” 이다. 고용률 정책도 경제성장을 달성하기 위해 시행하는 것이다. 경제가 꾸준히 성장하지 않는다면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고 소득이 줄어들어 사람들의 삶의 질이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경제성장은 필요하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경제성장은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경제성장률에 초점을 맞추는 정책은 경제성장을 위한 경제성장일 뿐이다. 수치적으로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해도 사람들의 삶의 질 증가가 없다면 무의미할 뿐이다. 반면 고용률에 초점을 맞추는 정책은 실질적인 삶의 질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수단이 본래 목적을 압도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